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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제와 인간, 두 모습의 경계에서, <종말의 바보> 배우 전성우
정재현 2024-05-02

<종말의 바보> 속 삼총사는 교사, 군인 등 하나같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모범적인 태도를 요구받는 직업에 종사한다. 그중 전성우가 연기하는 성재는 직업이 무려 신부다. 천주교 도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 시민이 성당에 다니는 웅천시의 보좌신부 성재는 주임신부(강석우)가 실종되자 졸지에 성당을 지키며 지구 종말을 마주한 신자들의 마음을 보살핀다.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성재조차 거듭 비극이 닥치자 평생 믿어온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품는다. 어느 날 성재는 성서 구절을 인용해 신에게 고백한다. “기억하소서, 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는지를.”

- <종말의 바보>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 김여진 배우와 함께한 연극 <마우스피스> 직후 선배의 남편인 김진민 감독님을 뵙게 됐다. 이후 연이 닿아 작품까지 찍었다. 종말이라는 키워드로 만든 우리나라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성재는 특히 뒷머리를 길게 기른 장발의 신부다. 천주교 신부에게 흔히 보이는 스타일은 아닌데.

= 감독님이 촬영 전 머리를 길러본 적 있냐는 질문을 건넸다. 어릴 때 장발을 해본 경험은 있지만 매체에 장발로 등장하긴 처음이었다. 조사해보니 신부들에게 따로 두발 규제가 없었다. 드라마는 픽션이니 극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그리고 종말이라는 극한상황에 어울릴 만한 모습을 보이려면 배우인 나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남자들에겐 소위 말하는 머리발이 있지 않나. (웃음) 비주얼에 확연한 변화를 주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다만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잦은 변화를 줄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도 있고 장면의 연결을 생각하면 스타일의 한계도 있었다. 작품을 통해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어 새로웠다.

- 웅천시의 공동체가 결집하는 데 성당이 매우 중요한 장소로 자리한다. 그래서인지 성재가 추모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을 포함해 작품 속 성당에 관한 묘사가 구체적이다. <베어 더 뮤지컬>의 가톨릭계 고등학교 재학생 제이슨이나 <열혈사제>의 한성규 신부를 연기한 경험이 도움을 줬나.

= 신부라는 직업이 특정한 틀이 있어 보이지만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작품 준비 과정에서 몇 차례 실제 신부님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 무얼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신부 같은 느낌을 구현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오히려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사제란 직업의 고착된 이미지를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부에게 금기시되는 행동만 범하지 않는다면 사제도 똑같은 사람이다.

- 웅천시 마을 사람들 전체가 성당에 상당히 의존한다. 이 공간에 관해 어떤 해석을 내렸는지.

= 성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과 경건함 때문에라도 종말이 오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종교에 의존했을 것이다. 내 집이 있어도 종말이 다가오는 상황에 집의 의미가 전과 같았겠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배역을 준비하며 ‘신부가 된다는 건 어른이 되는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곧 성당의 존재 이유와 같지 않을까. 성재는 책임감과 신념으로 신자들을 지키고 보살피며 어른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 종말이 예정되자 중학생들조차 시한부 인생을 달관하고 자조하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성재만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긍정하고 낙관한다.

= 성재도 신부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 살면서 끝을 정하고 살진 않지 않나. 처음엔 끝이 정해진 상황에서 여생을 보낸다면 아무리 신부라도 불안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성당의 교리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고 한다. 죽음의 다음 차원을 믿는 성재는 상대적으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덜할 것 같았다. 성재가 불안하다고 해서 미래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모처럼 마을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베풀 때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고해소 안에서 신자들의 고해를 들을 땐 냉정하게 자신을 다잡지만 고해소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분노하는 모습도 보인다.

= 사제로서의 모습과 인간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외줄을 타듯, 두 모습의 경계에서 내가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사람의 고해에 100% 공감하며 함께 감정을 호소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신의 뜻을 해답처럼 전하는 게 옳은 표현일지 끝까지 고민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다. 실제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들으면 감정적으로 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 CG가 들어갈 부분을 상상하며 연기하는 경험은 어땠나.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관해 상상을 요하는 무대 연기 경험이 도움을 줬는지.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무대는 매체처럼 공간을 컷 개념으로 이동하기엔 제한이 많다. 이를 표현하는 배우가 확신이 없을 때엔 무대를 함께 보는 관객도 눈앞에 무언가 있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 내 상상 속 실체와 실제 CG가 다를 수 있지만 확신을 가진 채 무언가를 바라보려 애썼다.

- <종말의 바보>가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 <종말의 바보> 속 수많은 인간 군상은 끝을 보고 살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 ‘인생의 종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 곱씹었다. 그럴수록 현재 내가 사는 삶의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최근 <네이처 오브 포겟팅>이라는 움직임극에서 연기한 톰도 시작은 명확했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결말을 맞는다. 그 배역을 연기하며 끝을 짐작한다 해도 지금 내가 사는 삶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종말이 닥치든 그렇지 않든 현재 자신이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건네며 작품을 감상하면 훨씬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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