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watch 2010.11.14 23:48
자연에 맞서려던 인간의 의지는 마침내 문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우리가 만든 문명 구조는 먹이 사슬의 피라미드와 닮았습니다. 조직의 상부가 작동하려면 반드시 하위 구조의 산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만든 문명 피라미드는 자연계를 대신하는 지경까지 나아갔습니다. 꿀벌이 하던 수분은 일용직 노동자가 대신합니다. 흙과 바람과 물이 키우던 동물들은 화학 비료가 대신 키웁니다. 이것은 인간 이성이 자연계가 행하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이렇게 자연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십시오. 자연을 정복한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지 나 자신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인간 이성으로 가공된 것들 밖엔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점차 자연계로부터 유리당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자연 속에서 삶의 당연한 누림으로 여겼던 많은 것들이 확장되는 문명 피라미드에 갇혀 구하기 어려운 산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족'이란 개념도 포함됩니다. 만일 국민에게 보편 복지를 수행해 줄 국가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원시 인류의 유물인 가족은 사라져도 괜찮은 것입니다. 보다 조직적으로 사회 개체수와 구성원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구습에 사로잡혀 사회 활력을 높일 방법을 외면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전통적인 주부의 역할을 위협하고 있는 건 가사 도우미 뿐만이 아닙니다. 청소기, 밥통, 세탁기 등... 또 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가정교육을 파괴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은 해체된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나로부터 파생된 유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가족이란 어리석은 제도의 노예로 살아가는 건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현명하다는 건 이렇게 증명됩니다. 즉, 이제 인간은 스스로 문명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자신을 부품으로 정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일 가족이란 제도가 그른 것이라면, 내 가족의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의 공공성도 허상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가족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싸이코패스들을 신문명의 선구자로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들이야말로 인간은 부품에 불과하며, 인류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사명(스스로를 던져 문명 피라미드를 쌓아올려라!!)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품'들에겐 이미 죽음마저 의미가 없습니다. 판사 앞에서 '나 자신을 심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뿐이요!!' 했다는 모 범죄자는, 이미 우리가 만들어낸 논리가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현재, 지금까지 쌓아올린 사회 속의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높은 수준의 공동체로 위기를 전이시키는 중입니다. 이것은 자연계를 대신해 인간 의지로 하여금 만물을 정의케 하려는 우리들의 노력과도 합치됩니다. 문명 피라미드를 보다 넓고 높게 쌓을 수만 있다면, 인간은 진실로 '신'도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하는 삶의 구조를 감지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떨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역시, 죄의식으로부터 눈을 질끈 감아버리면 이 거대한 신문명의 조류에 동참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죄의식이란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으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가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즉 인간 이성이 자연계를 대신해 스스로 만물의 조정자로 행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태초의 가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문명 피라미드를 쌓아올린 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나약한 육체를 지키기 위해 문명이란 도구로 자연 앞에 방패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기 위해 문명을 사용합니다. 과연 그 때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다른 것일까요?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명의 창끝이 이미 스스로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