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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

Doubt Doubt

2008 미국 15세이상관람가

드라마 상영시간 : 104분

개봉일 : 2009-02-12 누적관객 : 13,377명

감독 : 존 패트릭 샌리

출연 : 메릴 스트립(알로이시스 수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플린 신부) more

  • 씨네218.20
  • 네티즌8.21

의심하는 자 vs 의심받는 자, 당신은 누구편에 설 것인가!

존 패트릭 셰인리는 진실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변화를 강요하고, 도덕적 신념에 의해 한정된 맹목적 정의의 통렬한 결말을 보여주는 연극 <다우트>를 각색해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는 1964년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활기에 가득한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는 철의 여인이며, 공포와 징벌의 힘을 굳건히 믿고 있는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 분)에 의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이어지던 학교의 엄격한 관습을 바꾸려고 한다. 당시 지역 사회에 급격히 퍼지던 정치적 변화의 바람과 함께 학교도 첫 흑인 학생인 도널드 밀러의 입학을 허가한다. 하지만, 희망에 부푼 순진무구한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 분)는 플린 신부가 도널드 밀러에게 지나치게 개인적인 호의를 베푼다며, 죄를 저지른 것 같다는 의심스러운 언급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알로이시스 수녀는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고 플린 신부를 학교에서 쫓아 내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도덕적 확신 이외에 단 하나의 증거 하나 없이, 알로이시스 수녀는 교회를 와해시키고 학교를 곤란에 빠트릴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플린 신부와의 은밀한 전쟁을 시작한다.

영화 <다우트>는 존 패트릭 셰인리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배우로는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바이올라 데이비스 등이 있다. 제작은 스콧 루딘과 마크 로이볼이 맡았고 제작 총지휘는 셀리아 코스타스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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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5명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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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About The Production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죠?”
플린 신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불안한 일이다. 여러분도 시험 성적 때문에 고민하거나, 울리지 않는 전화를 보며 밤을 새워보았다면 어떤 기분인지 잘 알 것이다. 이는 심리적 갈망으로 의구심에 빠지게 되면 보통 확신을 갖기 위해 나름대로 이론을 세우게 된다.”

<뉴욕 타임즈>, 찰스 아이셔우드

존 패트릭 셰인리의 <다우트>는 영화 시작부터 강력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불확실함의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관객을 두 명의 수녀와 한 명의 신부 그리고 어린 남학생, 주인공뿐만 아니라 관객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다시금 확인하고, 편견과 판단력, 신념과 의구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만들며, 영화를 보는 내내 도발적인 미스터리의 세계로 매혹한다. 영화 <다우트>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와 도덕적 딜레마에 의해 점점 달라지는 세상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의심’이라는 단어는 존 패트릭 셰인리가 지난 십 년 간 호평을 받도록 해 준 연극 대본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불러일으켜 준 단어이며, 이제 연극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작품을 확장시켜 불확실성의 새로운 씨앗을 비로소 영화의 유동성을 빌어 표현하게 되었다.

작품을 집필할 당시, 존 패트릭 셰인리는 당시 TV매체에서 말 그대로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며 논쟁을 벌이던 정치계의 거물들의 대립 구도를 회상하기에 이른다.

존 패트릭 셰인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를 둘러싼 많은 곳에서 어떤 확신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모두 나름대로 견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그들 사이에 진정한 교류는 없었죠. 만약 누군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대중매체라는 거대한 대극장 위에 있는 사형대에 제 발로 오르는 것과도 같았어요. 우리 사회에는 확신이라는 가면이 존재했고, 바로 거기서 빈틈이 생기고 발전해 온 것이라는 걸 강하게 표현하고 싶었죠. 바로 확신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의구심이라는 부분 말 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분명한 사실을 널리 알리는 대본을 쓰고 싶었어요. 확실성이 궁지에 빠지고, 성장과 변화가 난무하는 무한성을 내포한 ‘의심’이라는 개념에 대해 샅샅이 탐험하고 싶었죠. 대체로 서로 대화가 끝나는 때 ‘확신’이 자리잡게 되거든요. 그리고 저는 대화에 관심이 많아요. 사실 대화의 다른 이름은 바로 ‘인생’이거든요. 우리는 ‘불확실성’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사는 법을 배워왔어요. 우리 시대의 대화 속에 존재하는 ‘침묵’이 바로 ‘불확실성’, 즉 ‘의심’이죠.”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도전 과제는 영화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의 가제를 그가 말하려는 이야기 구조, 즉 밝혀지지 않은 사실과 진실, 그 조직 속에 어떻게 끼워 넣느냐는 것과 결합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객들로 하여금 사건의 발단은 정확히 알지만, 마지막 결말은 느슨하게 만들어 관객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전반적으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이 꾸준히 주장해 온 것은 바로, 관객들을 한 가지 고정된 결론으로 이끌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감정은 바로 관객에게 속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감독으로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낄지 말해주기 보다는 관객들 스스로 뭔가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죠.”

일단 감독이 불확실성, 즉 의심이라는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정하고, 필연적으로 인간의 신념에 도전해 동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배경을 심사숙고 하기에 이른다.

“고민이 많고 일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제 나름대로 사물을 보는 방법을 적용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야 지역 교구 목사가 신도를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바탕이 될 테니까요. 그들이 겪었던 단순한 교회 스캔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대신 대부분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상황과 정반대의 상황을 대립시키고, 그러한 억지스러운 주장들을 관객들 나름대로 각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죠.”

종교적인 기운이 가득한 교구 학교의 원칙과 동정심 문제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갈등의 장 속에서 올바르게 표현되기 위한 영화 세팅이 결정된 후에서야, 연극 <다우트>는 풍부한 개인적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고,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을 브롱크스 근교, 아일랜드계 카톨릭 노동계급이 다니던 유년 시절의 학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전 그 사람들을 잘 알아요. 알로이시스 수녀는 제가 직접 체험했던 카톨릭 교구 학교의 수녀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죠.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모습에 대한 향수를 알로이시스와 함께 공감하고 있다고 할까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1964년 당시 폭발 직전의 분위기를 위시한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 사이의 대립의 장을 만들어냈다. 1964년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벌어진 직후이며,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발발하게 된 시기였다.

“견고한 구조로 이루어진 종교 집단의 제도와 더불어 위계 질서 내부에 존재하는 견고한 진리를 벗어 던지게 된 중요한 시기였죠. 그러한 제도와 위계 질서에 점점 의문을 품게 된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

또한 카톨릭 교회에 변화의 그림자가 점점 번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1962년 요한 23세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교회가 더욱 현대화되고, 다양화되고, 평신도가 접하기 쉬운 종교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개혁의 물결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 중반, 교회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수녀들은 더 이상 수녀복을 입지 않았고, 신부와 신도들 사이에 존재하던 형식도 많이 간소화되었다.

“저는 잃어버린 순간에 대한 어떤 단편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1964년, 브롱크스 주변을 걷다 보면, 모자와 수녀복을 갖춰 입은 수녀님들을 쉽게 볼 수 있었죠.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모자와 수녀복을 입은 수녀님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예전의 모습은 영원히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죠. 플린 신부는 1960년대 초에 생겨난 여러 가지 변화의 결과물과 많이 닮아있어요. 자신이 서 있는 종교 단체에 의문을 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조직 속에서 종교인으로 활동했죠. 플린 신부는 자신이 사랑하는 교회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랐던 거죠.”

알로이시스 수녀를 자극해 교구 신부를 몰아내려고 하는 영화의 중심 사건은, 플린 신부와 흑인 학생 사이의 지나친 친밀한 관계를 시작으로 도널드 밀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인종의 문제를 또한 다룬다. 감독은 인종 차별 철폐가 이루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이 팽팽하던 시절, 학교에 단 한 명의 흑인 학생이 다녔다는 흐릿한 기억이 있었다.

“학교에 한 명의 흑인 학생이 다닐 때, 여러분은 그 학생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 아이의 입장이 되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나의 사회적 위치를 더 복잡한 방식으로 살피게 되며, 그러한 문제를 점점 깊은 수준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 중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어요. 제가 경험한 인생이라는 그런 거죠. 인간이라는 존재는 원래 모순되고 불합리하고 의심스러운 상태로 계속 남아있기를 원하죠.”

알로이시스 수녀가 처음으로 자신이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이러한 모든 것들의 이야기에 결정적인 시련을 가져오게 된다. 흑인 학생의 어머니 밀러 부인, 다른 학생들, 그리고 제임스 수녀를 향한 연민과 공감이 점점 커져서, 알로이시스 수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확신이 산산이 부서지게 되는 것이다. 본인도 인간적이고 변화한 카톨릭 단체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은 자신의 신념과 감정에 의해서 경험한 것들을 스스로 감수하도록 남겨진다. 바로 이런 점이 존 패트릭 셰인리가 말하고자 하는 ‘의심’이라는 것이다.

“수 백 년 이상, 감독은 영화 안에서 질문을 던지고 결말 부분에 이르러 해답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우트>에서 아무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들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면, ‘정말 멋진 이야기죠?’라고 말하면서, 관객 스스로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존 패트릭 셰인리의 연극은 2004년 가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 웨이에 이르기까지 비평가들과 관객의 쏟아지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연극 <다우트>는 2005년 월터 커 극장에서 첫 문을 열었고, 총25번의 시사회와 총 525번의 공연을 했다. 이어 전국 순회 공연과 여러 국가에서 제작되기에 이른다.

연극의 성공을 이뤄낸 존 패트릭 셰인리는 <다우트>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영화화 하기로 결심한다. 존 패트릭 셰인리는 이미 영화 <문스트럭>의 각본가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쓴 각본 중 <다우트>의 각본을 집필할 때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더욱 직관적이고 역동적이면서 1960년대 급성장하던 노동 계급의 활기찬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제 자신이 브롱크스에서 성장했던 과거의 기억을 담아낸 작품이기 때문에, 연극 무대에서는 무대 배경과 무대 장치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전달했죠. 하지만 영화는 실제 당시의 배경, 진짜 건물들까지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진실성이 더해졌고, 배우들 또한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죠. 연극 무대와 달리 무척 사실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기억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준 셈이죠.”

Another Side Of DOUBT: The Screen Adaptation

브로드웨이 공연이 시작되자,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다우트>를 관람한 엄청난 수의 관객들이 연극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매일 밤, 공연을 본 관객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나타냈고 극장 내부에 일치된 힘이 느껴졌죠. 확신이라는 주제와 그 결과에 대해 많은 관객들이 뭔가 논의할 것이 생긴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 때 이를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 패트릭 셰인리는 연극을 영화로 각색하기 위해,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수녀의 삶,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브롱크스 근교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들이 그것이었다. 또한 실제 수녀들의 생활과 그 내부의 모습을 재연해야만 했다. 수녀들의 삶은 무척 신비스런 것이어서 때로는 일반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위해서 실제 수녀님들이 살고 있는 비밀스러운 영역, 전통과 비밀스러움이 가득한 곳과 소통해야만 했죠. 수녀들의 일상 속 침묵을 영화 구조에 활용하고 싶었어요. 소음이 가득한 바깥 세상에서는 고요함과 평화가 굉장한 의미를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침묵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어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하고, 각각의 인물들이 선택한 단어들에 대해 심사숙고 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가령, 플린 신부의 경우, 매 주 설교를 할 때 변화와 성장, 집단의 개방성에 대한 중요성을 강렬한 어조를 사용해 강조합니다. 플린 신부가 열심히 준비한 설교문을 말할 때 신도들은 조용히 앉아서 듣고 있죠. 신부의 말이 다른 주인공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식의 외적인 변화와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죠.

연극을 영화로 각색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에너지가 넘치는 감정을 전달하고 사건의 긴박감, 그리고 이야기 속에 깊이 새겨진 문제를 표면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는 극적이고, 통찰력 있고, 언변에 능한 인물이죠. 자신이 하는 말을 무기로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요. <다우트>의 이야기가 대부분 대화를 통해 전개됩니다. 특히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의 입을 통해서요. 이런 부분을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그 방법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처음에 각색하던 대본은 단순히 연극 대본을 영화 대본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얼마 동안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에 획기적인 사건이 터졌다. 바로 플린 신부가 ‘베개 설교’를 하는 장면을 각색할 때 생긴 일이다.

“단순히 플린 신부가 설교를 하는 장면으로 그리지 않고, 실제 베개 속 깃털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장면을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고민이 해결되었어요. 나머지 부분에서도 그런 기법을 사용할 것을 마음 먹었죠. 주인공의 말과 그 것에 배어있는 물리적 실체를 표현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영화를 보면, 우리가 실제 살아가고 있는 인간성과 자연스러운 세상을 탐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가령 백열 전구가 갑자기 나간다거나, 앞을 못 보는 수녀가 앞을 보는 것처럼 행동한다던가, 바람이 불어 냅킨이 날린다던가 하는 부분 말입니다.”

“또 하나 엄청난 발견이라고 한다면, 바로 대본을 각색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이 영화는 미스터리 장르에 고정된 관행적인 요소를 제대로 이용해 담화의 힘을 이끌어내야만 했습니다. 영화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그가 정말로 그렇게 행동했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저는 미스터리의 오랜 관행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순간 의문을 던지고 결론에 이르러서도 해답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제작했어요. 아마 관객들은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양보심은 오히려 영화 감독으로서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카메라 위치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각색했다.

“영화에서 표현하고 싶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와 결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두 사람을 처음부터 병렬 형태로 위치하도록 만들어서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연극에는 없던 새로운 장면을 영화에서 사용합니다. 바로 플린 신부가 처음 설교를 하던 성당을 다시 등장 시킨 것입니다.”

“신도들과 헤어지기 위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성당 내부의 신도들을 차례로 비춥니다. 이를 통해 모든 신도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관객 스스로 확인하고 결론 내릴 수 있도록 한 거죠.”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성 안토니 성당을 이끌어가고 있는 가톨릭 수녀회에 이 영화를 헌정하려고 마음 먹었다. 수녀님에 대한 공포심을 가진 반항심이 많던 카톨릭 신도 소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통해 모순을 표현하면서도 셰인리 자신은 유년기에 스승이던 수녀님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만났던 수녀님들을 통해서 엄청난 정서적 발달을 한 셈이죠. 그리고, 수녀님들의 무욕적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한 헌신,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수고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중 제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페기 수녀님으로 알려진 메리 마가렛 매킨티 수녀님이다. 바로 감독이 원기 왕성한 신입생이던 시절, 21살의 나이로 처음 교단에 섰다. 어린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젊은 수녀님은 극 중 제임스 수녀로 다시금 탄생했고 조언자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기뻐했다.

“페기 수녀님은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영화 제작 기간 내내 원기 왕성한 힘을 보여줬습니다. 메릴 스트립에게 로사리오 묵주 쥐는 법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자를 쓰는 방법 등 모든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어요. 카톨릭 수녀회 측에서도 엄청난 후원을 아끼지 않았구요. 정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분들이에요.”

페기 수녀님은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아담스, 그리고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 가깝게 교류하면서 카톨릭 종교인들의 복장, 의식과 전통 그리고 영감을 받은 수녀로서 자신의 신념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었다. 또한 성 안토니 학교에서 경험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제작진들과 공유했다.

“그곳에서 가르치던 때는 정말 즐거웠어요. 모든 것들이 엄격한 규율에 의해 정해져 있었지만, 그만큼 평화로운 곳이었죠.”

페기 수녀님의 고증을 통해,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가 가상의 장소, 성 니콜라스 학교의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기운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두 세대가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와 신념을 주입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지에 대해 신랄하게 논쟁하던, 그리고 엄청난 사회적 종교적 격변이 발생했던 당시를 말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페기 수녀님이 말한다.

“교황님은 창문을 열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했어요. 한 번 열린 창문은 쉽게 닫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변화를 환영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전처럼 안정된 삶을 살았고, 또 어떤 이들은 변화를 원치 않았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바로 예배 의식입니다. 사제는 신도들에게 등을 돌리고 서지 않았고, 신도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예배를 했죠. 제단도 낮아져서 평신도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했어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메시지는 포용력을 가져오게 된 아름다운 것이었죠. 물론 우리는 자주 망각하고는 하지만요.”

또한 196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어린 사제들에 대한 기억도 털어놓았다.

“젊은 사제들은 당시 변화하는 사회와 더불어, 플린 신부처럼 더 친근하고, 개방된 모습을 보였어요.”

독단적인 알로이시스 수녀와 친절하고 솔직한 제임스 수녀 중 어떤 쪽과 비슷하냐는 질문에 페기 수녀님은 제임스 수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수녀님 모두 자신이 훈련 받은 데로 행동한 거라고 봐요. 제임스 수녀의 경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후, 더욱 세심해지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수녀의 전형이고, 알로이시스 수녀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전에 훈련 받아서 교회가 엄격하고 규칙과 규율에 한정되었던 시기의 수녀의 모습과 비슷해요. 사실 저는 제임스 수녀님처럼 살아서 알로이시스 수녀님의 모습이 더 좋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올곧고 냉정한 성격이지만 내면은 더없이 친절하거든요.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혹시나 벌어질 지 모를 사태에 대해 확실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페기 수녀님은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이 일궈낸 성과에 대해 엄청난 긍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존 패트릭 셰인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가르친 게 바로 접니다. 그래서 제 학생이 글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최고가 되었다는 점이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네요.”

Portraying DOUBT: Casting The Film

배우를 캐스팅 할 때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연극 무대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배우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대신 새롭고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연극 무대를 영화로 옮기는 것은 원하지 않았어요. 매우 창조적이고 지성적인 앙상블로 배우들과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 내고 싶었죠.”

캐스팅 초기부터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알로이시스 역에 메릴 스트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놀라운 연기력의 미묘함을 표현할 수 있는 여배우가 필요하며, 단순히 대사를 읊는 것이 아닌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녀 역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시시각각 알로이시스 수녀 내면의 열정과 극에 치닫는 의구심, 정의와 진리에 대한 의문까지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 말이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메릴 스트립은 알로이시스 수녀의 강직하고 복합적인 부분, 그리고 고결함과 확신을 디테일하고 자존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연기할 수 있는 적격의 배우라고 느꼈다.

“저는 알로이시스 수녀가 정말 좋습니다. 비록 만년필에서 볼펜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을 못 견뎌 하면서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승산 없는 싸움을 하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알로이시스 수녀의 행동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질 게 뻔한 싸움을 합니다.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된 것이지만, 무모한 싸움을 시작할 정도로 알로이시스 수녀 자체는 무척 용감하다고 볼 수 있죠. 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당시, 알로이시스가 수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녀가 살던 당시에는 선과 악 사이에서 투쟁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로 여겨졌죠.
하지만 1960년대는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랐죠. 1944년 당시에는 알로이시스 수녀의 태도가 완벽하게 들어맞았겠지만, 1964년,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알로이시스 수녀의 태도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석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메릴 스트립이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에서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메릴 스트립은 변화무쌍한 배우예요. 그녀에게 수많은 색이 뿜어져 나오죠. 또한 자신이 맡은 배역의 특성에 적당한 한계에서 흥미로운 선택을 합니다. 그녀와 함께 작품을 하는 것이 이렇게 스릴 넘칠 줄은 미처 몰랐어요. 메릴 스트립의 심장과 영혼, 상상력은 넓고 개방되어 있어요. 마치 6차선 고속도로처럼요.”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마치 총으로 병을 쏘았을 때 여러 가지 빛이 퍼지듯, 그녀는 모든 장면에서 완벽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깊이와 진실을 바탕으로 연기하기 때문에 정도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죠.”

메릴 스트립 역시, 존 패트릭 셰인리의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우트>는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도 같은 이야기예요. 게다가 감독님이 제게 기회를 주었고, 연극을 스크린 속에 확장시키고 농축되게 구체화시켰죠. 놀라운 것은 모든 사건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캐릭터와 장면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을 색다른 방법으로 녹여냈다는 점입니다. 정말 대단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이야기를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고, 세계 모든 곳에 있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된 셈이죠. 여러분과 가족, 직장,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간 관계가 가득 담긴 작품으로 변화하게 된 셈입니다.”

“<다우트>는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과 경험의 프리즘을 통해 보게 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천상과 속세 두 곳에서 권위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는 거죠. 제 입장에서 이 영화는 자비의 가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해심과 인간들이 겪는 사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연관된 이야기죠.”

영화 속에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정신적 반향과 감정적 충격이 가득한 순간에서도 강력한 침묵을 영화 대부분에서 사용하는 방식 또한 메릴 스트립을 감동시켰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수사법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순간은 가능성과 위협 혹은 자비로 가득하니까요. 감독님은 침묵을 잘 이해하고 계신 분이에요.”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준비하기 위해 메릴 스트립은 무엇보다 성 빈센트 대학의 수녀들과 친밀하게 어울렸다. 그녀는 당시에 즐거운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수녀님들의 규율과 청렴한 지성미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죠.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또한 <다우트>에 묘사된 자신이 가진 권력을 교묘히 휘두르는 신부와 자신이 가진 힘을 색다르고 미묘한 방법으로 널리 확장시키는 수녀 사이의 힘 겨루기를 직접 체험했다고 전한다.
메릴 스트립은 알로이시스 수녀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심사 숙고했다고 말한다.

“그녀가 누구인지, 단순한 질문을 넘어서는 것을 알아보고 싶었어요. 어디 출신인지? 어떤 이유로 수녀가 되어 봉사를 하며 평생을 바친 것인지? 혹 비밀은 없는지? 성장 배경에 특이할 점은 없는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저의 임무였죠.”

이런 작업은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이 배우와 함께 일하는 방식에서 강화되었다고 말한다.
“전반적으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님은 창조적인 활동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이었죠. 그리고, 매번 ‘그런 모습은 처음인데요’라고 행복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런 말을 자주하니까, 배우들도 기분이 좋고 자유로움을 느꼈죠. 그런 것을 배우들에게 바라거든요.”

알로이시스 수녀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감독은 일 대 일로 대결을 펼칠 플린 신부 역에 적합한 몇 몇의 배우를 의논했다.
“그 중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유일하게 매 장면 메릴 스트립의 진땀을 빼놓을 강력한 힘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되더군요. 그리고 실제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을 찍는데, 그야말로 대혈투가 벌어졌어요. 마치 두 명의 투사를 보는 듯 놀라운 연기를 보여줘서 찍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제게는 가장 감동적인 몇 주였죠.”

그리고 두 배우 모두 자신의 역할에 결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 배우 모두 지금까지 오랜 연기 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지만, 깊은 심연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같아요. 그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마지막 모습을 묶은 매듭은 풀리지 않고, 마지막 문도 절대 열 수 없죠. 바로 그런 점이 매력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릴 스트립은 <갈매기>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 어머니와 아들로 연기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 무척 기뻤다고 한다.

“이번 영화에서 적수로 만났지만, 단순한 적수가 아닌 인간성이라는 모든 요소에 있어서 더 복잡미묘한 상대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역할을 줄이려고 했지만,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경우는 쉽게 물러서는 배우가 아니었죠. 왜냐하면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강력한 관심사는 모든 모순점을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거든요.”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두 배우가 서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음양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루어낸 듀엣이었다고 말한다.

“영화를 찍지 않는 시간에는 각자 고개를 푹 숙이고, 고통스러운 듯이 자신만의 세계를 느끼는 듯 했어요. 그러다 큐 사인이 들어가면 자기 연기를 소화했죠. 그럴 때면 지축이 흔들릴 정도더군요.”

수많은 작품을 관객 앞에서 연기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항상 그의 관심을 끌어온 것은 난해한 주제를 가진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이번 영화에 인물들의 열정을 제외하고는 절대적인 요소가 없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설전도 좋았고 그 사이에 위치한 종교적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 정치적이고 성적인 문제와 인종의 문제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특히 좋았어요. 정말 놀랍고 만나기 힘든 작품이에요.”

하지만, 그는 처음 배역을 제안 받고 망설였다고 말한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 너무 놀랐어요. 제가 이 역을 맡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하지만 도전할 만한 역할이고 흥미로운 작품이며, 감독님이 저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구나 싶더군요. 그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볼만 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때, 곧바로 ‘좋아요’라고 대답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었어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플린 신부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순간 자신을 드러내는 한편, 동시에 자신을 숨기려는 인물이 된다는 점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플린 신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현대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어요. 진실과 종교 그리고 삶의 여러 단면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어서,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도전 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플린 신부가 도널드 밀러에게 가진 특별한 관심이 플린 신부의 현대적인 사상에 흠 잡을 데가 없어 고민하던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좋은 구실을 제공해 주고, 두 사람이 닮은 구석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적대 구조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어요. 강인한 인물이며 서로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죠. 알로이시스 수녀 입장에서 플린 신부는 자신의 삶과 정체성과 교회에 대한 식견을 위협하는 존재이고, 반대로 플린 신부 입장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는 교회가 평신도들과 맺고자 하는 관계를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두 사람 모두 쉽게 물러설 성격이 아니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에서 두 사람은 다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의심이 가득한 희뿌연 세상에서는 살지 못하죠. 그녀는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고, 절대적인 것을 원해요. 반대로 플린 신부는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고 해도 불확실한 세계에 존재하기를 원하죠.”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그 사건에 대해 플린 신부가 저지른 중요한 과오를 깨닫고 결론을 내렸지만, 메릴 스트립이나 에이미 아담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과 의견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우리 이야기의 가장 멋진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캐릭터에게 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 관객들은 플린 신부에게 등을 돌릴 거예요. 이 영화는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입니다. 그와 동시에 해답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죠.”

배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카톨릭 교회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수련에 동참했다.
“신부님들의 신체적이고 논리적인 행동 자세와 카톨릭 역사, 그리고 지금까지 겪어온 카톨릭의 변화 양상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론적이 아닌 가슴으로요. 우리 이야기는 카톨릭이라는 종교가 전부가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는 어떤 영화에도 있음직한 인물이죠.”

플린 신부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바로 제임스 수녀이다. 제임스 수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도널드 밀러와 플린 신부가 비밀스럽게 만나는 것에 대한 걱정을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털어놓고, 그 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가 설전을 벌일 때, 제임스 수녀는 관객의 거울이 되어, 두 사람의 논쟁을 중재하려고 애쓰며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고 애쓴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임스 수녀는 영화 속 모든 인물들에게서 배우게 되죠. 반대로 나머지 인물들도 제임스 수녀에게서 배움을 얻죠. 영화 속 어떤 인물도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볼 수 없어요. 영화가 전개되면서 모두 변화를 겪게 되거든요. 물론 제임스 수녀도요.”

제임스 수녀 역을 맡은 배우는 <준벅>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뒤이어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디즈니의 <마법에 걸린 사랑>의 주인공 에이미 아담스이다. 그녀는 <다우트>가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제임스 수녀 역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연극도 봤고요.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무척 기뻤어요. 제임스 수녀 역할에 매료되어서 열심히 연기했고 최선을 다했어요.”

에이미 아담스는 제임스 수녀의 예의 바름과 인물이 겪는 내적인 변화에 깊숙이 매료되었다.
“제임스 수녀는 자신의 심장과 영혼, 그리고 신념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에요. 선한 것에 대한 믿음이 강하죠. 그러다 플린 신부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가 고수해 오던 진실에 대한 감각을 뒤흔들고,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 자체가 변하게 돼요.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작은 의구심의 씨앗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통해 신념을 잃는다기 보다는, 교사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과 하느님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식견이 달라지게 되죠. 누군가에게 진실인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제임스 수녀는 본래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이 가진 신념의 새롭고 깊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세트장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로 분한 메릴 스트립과 플린 신부로 분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사이에서 실제 연기를 하게 된다는 것 때문에 엄청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두 배우가 대단한 재능과 엄청난 내공을 가진 대배우였던 탓에 너무 겁나고 움츠러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제임스 수녀가 두 사람을 즐겁게 하고 그들에게 배우기를 원했던 것처럼, 저 또한 그런 심정이었답니다.”

세 사람 사이에서 점점 커지던 긴장감은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폭발하기에 이른다. 그 장면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는 처음으로 플린 신부를 불미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제임스 수녀는 그의 유죄에 대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주저한다.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정말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 하겠더라고요. 엄청난 긴장감을 견디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 장면을 본 관객 여러분에게 제가 느꼈던 긴박감과 불안함이 전달되기를 바래요.”

<다우트> 이후 차기 작품인 <줄리와 줄리아>에서도 에이미 아담스와 함께 연기하게 된 메릴 스트립도 그녀의 재능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자유롭게 휘날리는 눈송이와 같은 자질을 갖고 진정한 순수함을 전해줄 수 있는 배우는 거의 없어요. 진심을 다해 믿음을 가진 어린 수녀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해 주었고, 그래서 그녀가 캐스팅된거라고 생각해요. 에이미 아담스는 정말 뛰어난 배우입니다.”

에이미 아담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또 다른 사람은 실존 인물이자 제임스 수녀의 장본인 페기 수녀였다. 에이미 아담스는 페기 수녀가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녀의 타고난 성격을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페기 수녀님의 습관을 따라 하거나 흉내 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페기 수녀님의 정신을 통해서 이를 표현하고 싶었죠. 페기 수녀님은 생동감 넘치고, 항상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분이라서 아직도 소녀의 모습을 간직한 분이세요. 바로 그런 점을 본뜨고 싶었죠.”

또한 단순히 수녀 복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모자를 쓰면 정말 색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게 돼요. 주변 시야를 완전히 가리기 때문에 집중력이 그만큼 강해지죠. 또한 실제 제임스 수녀처럼 허영심이 사라지게 되고요. 제임스 수녀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새롭고 도전심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었어요. 의구심을 지닌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제 연기를 할 때는 나만의 세계가 완전히 전복되는 느낌이랍니다.”

에이미 아담스는 모든 배우들이 배우는 과정에 대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의 개방성에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감독님은 그 어떤 것에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이전에 보았던 뻔한 것들은 보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죠.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모든 새로운 것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자세로 임했어요. 인물을 머릿속으로 분석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감성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게 정말 맞는 말이거든요.”

<다우트>의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도널드 밀러의 어머니이다. 알로이시스의 충격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주저 없이 아들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는 것만이 자신의 관심사라고 밝혀 알로이시스 수녀를 당황케 한다.

“밀러 부인은 고통스럽고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에,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자식의 미래를 위해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해요.”

밀러 부인을 연기할 배우를 캐스팅 할 때,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토니 상 수상자이자 <앤트원 피셔>로 인디펜던트 스피릿 시상식 후보로 오른 바이올라 데이비스를 강력히 추천했다. “제가 봤던 여배우 중에서 가장 재능 있는 배우 중 하나였거든요.”

물론 밀러 부인이 등장하는 장면은 알로이시스 수녀와 만나는 마지막 한 장면뿐이지만, 이 장면은 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끌고, 복잡성과 의구심의 그물을 창조하는 부분이어서, 그 후 알로이시스 수녀를 자신이 의도한 이상으로 달라지게 만드는 중요한 장면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적인 장면이에요. 밀러 부인은 단지 엄마로서 아이를 구하려고 하죠. 아들을 그냥 한 쪽에 던져버리고, ‘제 아들이 게이라고요? 저는 그런 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런 일에 말려들고 싶지도 않네요’라고 방관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게 어떤 것인지도 혹은 이후 어떤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 채 아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 훨씬 용감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밀러 부인의 일상은 그야말로 지옥이죠. 아빠가 아들을 때리는 모습을 봐야 하고, 아들을 카톨릭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뼈빠지게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녀가 가진 유일한 행복의 원천은 바로 아들에 대한 사랑이에요. 그래서 알로이시스 수녀가 학교로 오라고 전화했을 때, 자신의 유일한 행복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걱정했을 거예요.”
하지만, 밀러 부인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고, 또한 1964년의 관습의 실제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고 덧붙인다.

“흑인이고, 게이이며, 어리던 아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어린 흑인학생에게 1964년 당시 주어지는 기회란 어떤 걸까요? 밀러 부인은 거대한 장애물과 싸우고 있어요. 애들 아빠가 아들을 미워한다는 것, 학교 사람들 모두가 아들을 원치 않는 다는 것, 그리고 항상 괴롭힘을 당하고 맞는 다는 것도요. 알로이시스 수녀의 말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고 이렇게 들렸을 거예요.”

“당신 아들을 파멸시키겠어요.” 밀러 부인 입장에서 볼 때,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파멸시키고도 남을 사람으로 보였을 테니까요.”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지금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금 같으면 알로이시스 수녀가 뭐라고 한다면 그저 욕 한마디 하고 말면 되겠죠. 하지만 당시 알로이시스 수녀는 수녀일 뿐만 아니라 여자이기도 했거든요. 밀러 부인은 수녀님 마음에 호소해야겠다는 색다른 방법을 선택한 거예요.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요. 그래서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아들을 위해 구걸하는 것을 선택하는 거죠.”

“여러분들도 느끼면 좋겠지만, 밀러 부인도 많은 부분에서 의구심을 품고 있어요. 내가 하는 행동이 아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알로이시스 수녀가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아들을 망치는 게 아닐까? 알로이시스 수녀 때문에 끔찍한 위치에 놓인 셈이죠. 밀러 부인은 그저 아들이 학교를 잘 졸업하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에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데이비스는 알로이시스 수녀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앞으로 알로이시스 수녀가 겪어갈 여정을 매혹적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평생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어요. 다른 방식의 삶은 전혀 알지 못하죠. 그런 것이 없어지면 금방이라도 죽는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무너져 내리게 되는 거죠. 의구심을 품는 것은 나쁜 게 아니에요. 불확실한 것을 파고드는 것도 그렇죠. 바로 그럴 때 인간이 성장하게 되거든요.”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의 대본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서 진짜 엄마의 입장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다고 말한다.

“단순히 사회적인 대변인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여러 엄마들에게 만약 영화 속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아들을 위해서 행동할 것인지를 물었죠.”
외부에서 촬영하는 것은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연기에 기대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던 탓에 제 자신을 더욱 추스른 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공공 장소에서 촬영하는 사적인 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많은 스태프들이 둘러싼 가운데서 촬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죠. 덕분에 밀러 부인의 좌절감과 알로이시스 수녀와 인간적이고 친밀한 소통을 원하는 감정을 밖으로 끌어내기에 수월했어요.”

메릴 스트립과 처음으로 함께 연기를 한다는 점도 바이올라 데이비스에게는 신나는 일이었다.
“겁나고 두려웠어요. 메릴 스트립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배우예요. 완전히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에 감정 이입된 모습이 제게 큰 영향을 줬죠. 단지 잔인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인물이 아니에요. 자세히 보면 알로이시스 수녀의 연약한 부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메릴 스트립은 바이올라 데이비스 때문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회상한다.

“밀러 부인은 알로이시스 수녀의 예상에서 번번히 빗나가거든요. 바이올라의 연기는 완벽했어요. 어머니로서 얼마나 간절한 심정인지를 잘 표현해서, 오히려 제가 연기하는 데 힘들 정도였죠.”
무엇보다도 바이올라 데이비스에게 큰 영감을 준 것은 바로 감독이 밀러 부인과 다른 인물들을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모든 이야기가 감독님 머릿속에서 나온 거죠. 감독님만이 모든 인물을 꿰뚫고 있어요. 감독님은 밀러 부인을 잘 알고 계시지만, 저는 그저 상상한 것에 지나지 않죠.”

Manifesting DOUBT: The Design

<다우트>를 좁은 연극 무대에서 넓고 유동적인 3차원의 공간인 스크린 위로 옮기기 위해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무척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이 황량한 반면 생기와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환경에 저항하는 모습을 그린다면 인물의 인간미가 더욱 잘 배어나올 거라고 생각했죠. 영화 속의 물리적인 배경이 드라마와 긴장감, 감정을 강화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만약 전화가 계속 울리는 데도 받지 않고 있으면, 제임스 수녀는 마치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고, 알로이시스 수녀의 사무실에서 블라인드를 걷는 장면은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던 혈전을 잠시 피하는 수단이 되거든요. 모든 카메라의 움직임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혹은 인물을 묘사하는데 가장 적절한 위치로 이동해야 합니다. 스크린에 드러나는 구도는 반드시 인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반영하거나 그들이 느낌과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다우트>의 실제 배경인 노동자 층이 거주하는 브롱크스 근처
카톨릭 교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겠다는 생각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다우트>는 뉴욕의 이야기예요. 제가 자란 바로 그곳에 가서 영화를 찍겠다고 생각했죠. 다른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풍부함과 질감을 담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결과적으로 영화 속 가상 공간인 성 니콜라스 교회는 뉴욕의 몇몇 지역의 교회를 이용해 영화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특히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성 니콜라스 교회와 학교 내부의 인테리어가 작품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담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그냥 가을이 아니라 한껏 부풀어 올랐던 생동감이 사라지고 초록잎이 갈색으로 물들고 바닥에 떨어지는 시기를 나타내야 해요. 막 새로운 가지와 새 시대 정신으로 탈바꿈하는 시기인 거죠. 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내부에서 촬영하는 장면에 새로운 색감을 사용했어요. 알로이시스 수녀의 사무실 내부는 생기발랄한 초록빛이지만, 창문 바깥은 멀리 나뭇가지가 모두 떨어지고 추위가 내려앉은 보도 블록이 깔린 모습을 표현했어요.”

이러한 작은 요소들도 작품을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사무실 창문은 계속 열리고, 바람이 들어오죠. 하지만 알로이시스 수녀는 계속 창문을 닫으려고 애씁니다. 바로 변화의 바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영화에 담기 위해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7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작업을 했다. 감독은 로저 디킨스가 이런 황량함과 날카로움을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카메라 감독이라고 격찬 한다.
“로저는 현존하는 최고의 카메라 감독일 뿐만 아니라, 순수한 미적 감각, 그리고 제가 <다우트>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카메라 이동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사람이죠. 또 제가 시각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조명과 카메라 이동을 하는데 그 모든 것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알거든요.”

로저 디킨스도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과 일하는 것이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다우트>와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감독이라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신있고 정확하게 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덕분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하면서 즐길 수 있었고요.”

제작 준비 단계에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그에게 교회와 학교 바깥 세상의 차이와 특히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 장면의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감독님은 수도원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이 세상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했죠. 가령 잎이 떨어져 창문에 부딪힌다거나, 비가 쏟아진다거나, 벼락이 치고, 블라인드 너머로 햇살이 내리쬔다던가 하는 걸요. 관객들에게 이러한 요소들의 강력한 힘과 영화 속 인물들이 매 순간마다 본능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여주고 싶어했죠.”

로저 디킨스는 조명이 사용되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낮추어서 주인공의 얼굴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명을 사용하면 자연스러움이 많이 사라지기 때문에 관객들이 인공적인 빛에 현혹되게 마련이거든요. 얼굴을 중점적으로 찍으면, 주인공의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힘을 쉽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해요. 관객들은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고 싶어해요.”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미술 감독 데이빗 그룹먼을 제작에 참여시켜서, 인물의 생동감을 살리도록 디테일을 담당하도록 했다.
“데이빗은 색감과 디자인에 대해 강한 의견을 피력했고,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색감과 디자인을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당시 상황이 손에 만져지는 듯한 생생함을 표현해 낼 수 있었죠.”

데이빗 그룹먼은 이렇게 말한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죠. 당시 시대를 그려내는 팔레트에 명확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날카롭고 충격적인 효과를 자아냈죠. 외부 세트의 경우 유기적인 색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내부 세트를 찍을 때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사상이 충돌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양한 색감을 기획했죠.
예를 들어, 많은 장면을 촬영했던 알로이시스 수녀 사무실에는 진한 초록색을 사용했어요. 감독님은 ‘더 강렬한 색감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죠. 그래서 매우 두드러지는 초록색을 사용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고양시켰죠. 그야말로 숨을 턱하고 멈추게 하는 강한 색상이었는데, 감독님 생각이 옳았어요. 사무실 내부의 색감 덕분에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반응이 더욱 강한 느낌을 줬거든요.”

생기 넘치는 색상은 다른 방에도 사용되었다.
“다른 수녀들이 쉬는 방에도 색감에 신경을 썼어요. 감독이 ‘성모 마리아의 푸른 빛을 쓰자’고 하더군요. 여러 가지 샘플을 보여주었더니, 그 중 가장 강렬한 푸른 색을 골랐어요. 카메라가 방 안을 잡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만한 파란색이었죠.”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의 디자인 기풍의 중심은 관객에게 의구심을 계속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이한 색을 많이 사용한 것입니다. 감독님은 방에 들어갈 때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의구심을 자아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했죠. 이를 통해 관객들이 확신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한 것이고, 이런 점이 영화의 중심이 된 거죠.”

영화 속에서 작용하는 더욱 강렬하고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것은 브롱크스 지역 특유의 건축물이었다.
“황갈색이나 노르스름한 벽돌이 많아서 이 또한 영화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한 몫을 한 셈이죠. 따스함과 거친 힘을 가진 벽돌이 한창 변화의 시기를 겪던 사회의 전통적인 인습을 반영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두 사람은 금욕적인 삶을 사는 수녀들과 사회적인 삶을 즐기는 플린 신부 사이에 차이를 극대화 시키는 방안도 논의했다.
“플린 신부와 두 노 신부가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은 마치 클럽하우스 같은 분위기를 연상케 합니다. 플린 신부는 다른 신부들과 새로운 방법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어요.”

또한 교회의 위계 질서 상 남성들은 관습과 신념의 규율을 잠시 잊고 자유롭게 권위를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요소로도 활용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수녀들은 항상 엄격함을 유지하고 자신의 희생과 금욕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수녀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리넨천, 최소한의 장식, 고독함, 잘 정리된 방 등을 강조해서, 신부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과 대조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또 하나, 어려웠던 것은 바로 플린 신부가 설교를 하는 성당을 1964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성당은 많이 변형된 모습이었죠. 성 빈센트의 교회에서 촬영을 했는데, 높은 제단을 만들고 뒤쪽으로 제단의 길을 만들어야 했어요. 과거 성당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수녀님들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서, 무척 어렵고도 감정을 자극하는 작업이었죠. 원래 상태로 복귀시켜 놓으니, 수녀님들이 무척 기뻐하시더라고요.”

<다우트>에 사용된 의상 또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이 의도하는 시각적 컨셉과 진부하기 짝이 없는 수녀들의 의상을 진화하는 세상과 대조시키고, 아이들과 그 부모의 더욱 자유로운 복장을 표현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상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아카데미 상 수상에 빛나는 의상 감독 앤 로스를 섭외했다.
“앤 로스는 매우 지적인 사람이라서, 고전적인 스타일이 가미된 우리 영화에 잘 어울리는
의상을 만들어 줄 수 있었죠. 또한 배우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재주가 있어서,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아담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바이올라 데이비스에게 필요한 것 모두를 제공해 주었어요.”

앤 로스의 가장 큰 고민은 1960년대 후반에 사라진 전통적인 중세 스타일의 카톨릭 수녀회 복장을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복식은 거의 소멸된 상태로, 예전 복장을 고수하는 수녀들만 이를 입고 다녔다. 독특한 수녀복, 수수한 모자와 검정 망토는 19세기 초반 카톨릭 수녀회의 창립자 시튼 수녀 때부터 입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 사용된 수녀복은 시튼 수녀님과 함께 1964년대 당시 수녀복을 착용했던 분의 것을 완벽히 재현한 거예요. 당시 수녀복 재단법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규칙이 있더군요. 손목이 보이는 길이부터 어느 정도 길이가 바닥에 닿아야 하는지, 수녀복 속에는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가터 벨트에 스타킹을 묶는 법까지 있더라고요. 매우 자세하게 적혀 있는데, 대부분 끔찍할 정도로 불편하겠다 싶은 것들이었죠.”

앤 로스는 학생들의 교복에도 새로운 요소의 변화를 주었다.
“당시에도 교복을 입기는 했지만, 그 때 유행하던 일종의 날렵함이 녹아 있어요. 머리 스타일이나, 신발, 교복을 입는 스타일도 그렇죠. 이 부분은 전통적인 환경 속에서 개인주의가 도래하던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님의 어린 시절 기억을 함께 떠올리면서 해결했어요.

마지막으로, 앤 로스는 아들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 한껏 차려 입고 학교에 왔을 밀러 부인의 의상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당시 흑인 여성들은 집안 일을 돕는 일을 하기 일쑤였고, 잘 사는 동네 사람들을 만날 때는 제일 좋은 모자와, 코트를 입고 다녔어요. 바로 그런 점을 밀러 부인 의상에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자신이 도널드의 엄마라는 자부심과, 어떻게든 아들을 잘 키워서 더욱 편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특히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함께 작업하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정말 훌륭한 여배우예요.”

또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은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올랐던 딜런 티슈너에게 놀라운 솜씨를 발휘해 편집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작가는 머릿속으로 필름을 어느 정도 길이에 맞게 배분하게 마련이죠. 처음 딜런이 편집을 하는 것을 보고 제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보다 훨씬 훌륭해서 너무 놀랐습니다. 딜런은 대본의 음악적인 리듬을 살려가면서 편집을 하더군요.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어서 일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다음으로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하워드 쇼어가 영화 음악을 제작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날아왔다.
“이번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작곡하는 게 하워드 쇼어에게는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되었을
겁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광범위하고도 강렬한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하지만 어떠한 편견이나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이야기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 마치 배심원과 같은 태도로 훌륭하게 작업을 성공시키더군요.

하워드 쇼어는 존 패트릭 셰인리와의 작업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 영화의 감정적인 구도를 음악적으로 고양시키는데 합의했어요. 음악 속에서 인물들
사이의 주제를 반영시키고, 또한 구 시대 속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죠.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이 쓴 각본을 거울처럼 담아내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이었다고 해야겠죠. 작곡을 할 때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의 생각을 소리로 옮기는 확성기가 된 기분이었어요.”

하워드 쇼어는 영화 음악을 작곡할 때 <다우트>의 중심적 세부 항목이 1960년대 브롱크스 카톨릭 교구학교라는 점에 염두에 두었다.
“전통적인 찬송가에 기초를 둔 다양한 아이디어가 다시 떠오르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성가에 대한 지식이 많은 영향을 줬던 셈이죠. 그 당시 전통적인 부분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악기 소리를 사용했어요. 덜시머, 치터, 팬 플루트, 만돌린, 각종 리코더, 페달식 오르간과 아이리쉬 부주키도 썼죠.”

하워드 쇼어는 마음 속에 자연스러운 세상을 떠올렸다.
“기후와 바람이 이 영화의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거든요. 바람의 변화, 폭풍우가 불어온다거나 하는 경우에서요. 이런 기후적 요소를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오케스트라 반주를 사용했어요.”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이 원하는 것이 <다우트>라는 영화가 어떠한 결론도 강요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음악에서도 이를 똑같이 표현한다.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과 일하는 건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죠. 그의 아이디어가 강렬해서 음악도 그 힘 덕분에 강해진 셈이죠.”

Behind DOUBT: The Sisters of Charity Remember Life in 1964

<다우트>를 영화화 하는 데 있어서, 존 패트릭 셰인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당시 카톨릭 수녀회가 설립한 학교의 모습과 자신의 인생을 사랑과 기도, 열정과 봉사에 바친 수녀들의 삶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재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존 패트릭 셰인리는 자신의 유년 시절의 스승이었던 카톨릭 수녀회 일원의 도움을 받아 당시 학교의 상황을 샅샅이 파헤쳤다.
수녀들의 삶은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우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희생적인 모습이었다. 수녀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주변 소녀들과는 완전히 다른 급진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과 가족의 의문을 사기도 했다고 말한다.

“주님의 부름에 응답한 것뿐이에요. 바로 이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아버지도 결국엔 승낙하셨지만, 처음엔 내키지 않아 하셨어요. 마지막 3주의 시간을 주고 포기하라고 하셨지만, 결국 아버지의 생각이 틀렸던 거죠.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제 선택을 존중해 주십니다.”
지난 71년 동안을 카톨릭 수녀회에 몸 담고 있는 아이린 수녀의 대답이다.

과거 수녀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더 단순하고 엄격하고 고립된 것이었다. 수녀들은 엄격한 규율인 호라이움에 따라 새벽 기도 종소리를 들고 일어나, 침묵의 시간과 개인 명상을 했다. 오전 7시 미사가 끝난 후, 학교 수업이 시작되기 전 간단히 조용한 아침 식사를 했다. 카톨릭 수녀회의 일원인 페기 수녀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 시간을 기다렸다고 회상한다.

“8시 10분에 저녁 침묵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9시가 되면 모든 불을 꺼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책을 읽고 싶어서 몰래 손전등을 가지고 다녔죠.”

당시 수녀들은 가족 이외의 바깥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았다. 병원에 가기 위해 수녀원을 나설 때는 반드시 동행이 따라 붙었다.
“엄격한 생활을 유지했죠. 술을 마시거나 파티에 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장례식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결혼식에는 갈 수 없었죠. 심지어 저는 동생 결혼식에도 가지 못해서 무척 슬펐답니다.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죠.”
교실 밖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로 여겨졌다. 교실 안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42명 이상 가량의 학생들과 씨름했다. 푸가지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교사라는 직업과 아이들을 사랑해요. 하지만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규율이 필요합니다. 저는 말썽꾸러기도 좋아해요. 그 사실을 아이들도 알고 있고요. 점심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 나가서 농구나 하키를 가르쳐 주기도 한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4년에는 카톨릭 교회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을 나이 든 수녀들은 싫어했지만, 젊은 수녀들은 환영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자유와 세상과 접할 수 있는 관대함을 허용해 주었고, 수녀회 내부 생활도 점차 자유를 찾아갔다. 수녀들이 운전 면허를 따고, 투표에 참여 하는 등 플린 신부가 말한 것처럼 점차 ‘친밀한’ 수녀로 변모했다.

하지만 많은 수녀들이 변화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처음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던 하느님에 대한 헌신을 위한 노력과 엄격한 정신력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1948년부터 카톨릭 수녀회에 몸 담았던 리타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많은 변화를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세월이 변하면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반대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죠. 하지만 저는 중도를 유지하려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 종을 울려서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도 있어요. 전화가 쉴새 없이 울리고 사람들이 들락 날락 거리면 평화로운 공간을 찾고 싶어지거든요.”

교회가 변한 것처럼 사회도 많이 변했다. 특히 수녀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많이 달라졌다. 모든 수녀들은 요즘 아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죠. 당당히 의견을 말하고 약삭빠른 구석이 생겼어요. 하지만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아이들이 나쁘거나 불친절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1960년대에 처음 수녀 생활을 시작할 당시와 매우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이죠. 지금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힘든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돕는 것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는 기본적인 요소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변했지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똑같아요. 아이들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울 어른과 선생님이 곁에 있어야 하거든요. 아이들은 저희에게 의존합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달라진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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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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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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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
  •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
  • [제62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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