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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구름

亂れ雲 Scattered Clouds

1967 일본

드라마 상영시간 : 108분

감독 : 나루세 미키오

출연 : 카야마 유조(시로) 츠카사 요코(유미코) more

  • 네티즌8.67
나루세식 멜로드라마는 매우 차갑거나 혹은 너무 현실적이라서 멜로드라마가 될 수 없는 경계선에 놓여 있으며, 그 미묘한 경계로 얻어지는 모더니티의 윤곽이 은밀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오즈의 가족들과는 달리 나루세의 연인들은 앉거나 서는 순간 정교하게 커팅된 카메라워크를 통해 다시 한번 일본식 좌식생활의 리듬을 시선의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워 놓치기 쉽지만, 그 세계로 진입한 순간 아시아영화의 숨결은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나루세의 마지막 작품으로 더글러스 서크의 영화 <마음의 등불>을 연상케 하는 설정으로부터 불가능한 관계의 사랑 이야기가 처연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진다. 갓 결혼해 임신 3개월째인 유미코는 통산성에 근무하는 남편 히로시와 함께 미국에 갈 생각에 들떠 있다. 하지만 히로시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면서 그들 부부를 맞이할 행복감은 산산이 부서진다. 유산까지 하게 된 유미코는 남편을 죽인 자동차 운전사 미시마를 용서할 수 없고 미시마는 그대로 죄책감에 빠져든다. 영화는 관계가 불가능할 것 같은 이 두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혀 서두르지 않는 정연한 발걸음으로 따라가면서 우리를 그들에게 동화하게 만든다. 대사가 거의 없이 진행되는 마지막 10분간의 시퀀스는 나루세의 연출력의 정점을 보게 하며 그 뒤에 이어지는 여관방에서의 이별 시퀀스는 보는 이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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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어떤 사건이 일어났던 한순간, 만일 1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 주어진다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좀더 이야기를 좁히기 위하여 고전기 일본영화의 거장에게로 다가가보자. 오즈 야스지로의 ‘가옥’ 안에서는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미조구치 겐지의 ‘정원’에서는 그 사건이 운명처럼 드리워진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세상’에서는 그 사건이 결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나루세 미키오의 ‘주변’은 그 사건의 이전과 이후를 응시한다. 같은 일본의 하늘 아래 그들의 소우주는 크기를 다르게 설정하면서 깊이도 다르게 파악한다. 그래서 발견의 순서로 회자되는 절대 거장 3인방이라거나 나루세 미키오를 칭하는 네 번째 거장 같은 타이틀은 영화의 위대성을 가름하는 서열이 될 수 없다. 보면 볼수록 비교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게 하고 그 직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독자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루세 미키오가 평생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멜로드라마의 자장 안에서, 남과 여 단 두 존재를 위해 모든 것을 거두절미한 상태에서 ‘사건의 삭제’는 매우 특별해진다. 대부분의 나루세 영화에서 캐릭터들이 수많은 곤경을 겪지만 문제점이 축적되는 과정이 없다는 것은, 서구의 멜로드라마들과는 정반대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가장 강력한 사건만 남고 그 속에서 불운한 캐릭터들이 맹목적이고 잔인한 운명의 희생자들로서 연속되는 부침과 타격에 압도당하는 것이 서구의 멜로드라마라면, 나루세 미키오는 오히려 숙명을 거부하며 사람들과 사회에 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나루세식 멜로드라마는 매우 차갑거나 혹은 너무 현실적이라서 멜로드라마가 될 수 없는 경계선에 놓여 있으며, 그 미묘한 경계로 얻어지는 모더니티의 윤곽이 은밀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도호영화사의 35주년 기념작이자 나루세 미키오의 마지막 영화인 <흩어진 구름>은 그의 스타일을 집약한 대표작은 아니다. 게다가 가장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해외 공관 부임을 앞둔 남편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게 되자 임신 상태였던 미망인은 현실의 무게와 남편을 죽게 한 젊은 남자와의 애증을 이중고로 치르게 된다. 분명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망인 유미코와 가해자인 미시마는 치명적인 사건으로 만났다. 그러나 나루세는 이 사건을 유미코의 형부가 받는 전화 한통으로 생략한다. 그 대신 장례식에서의 조우, 남편이 남긴 연금, 미시마가 지불하는 도의적 보상금의 내역들은 어찌나 시시콜콜한지 저절로 그들의 피로감과 죄책감을 주판알처럼 튕겨댄다.
멜로 안에서 그 대면을 피해가는 방식은 나루세의 엄격한 공간 설정에서도 여지없이 증명된다. 소박한 연립주택의 현관 앞에서 출발한 영화는 신혼의 단꿈을 빼앗긴 미망인을 단 한번도 일반적인 가정의 다다미방에 놓아두지 않는다. 유미코가 생전의 남편과 만나는 한번의 장면도 커피숍에서 보여지며, 그 이후에 그녀가 다소곳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전통여관일 뿐이다. 대부분은 그녀가 생계를 위해 고향의 올케가 경영하는 여관에서 일하는 장면이며, 새로운 러브스토리가 시작되고 마감되는 곳도 섹슈얼리티가 차단된 다른 여관방이다(특히 나루세의 대표작 <부운>을 본 사람들이라면 유미코와 미시마가 들어가게 되는 두 여관의 장면이 거의 같은 숏으로 반복되는 것을 주목할 것.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분석처럼 나루세 영화에서 병석에 눕거나 간호하는 남녀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층위로 묶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좀더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다다미방에서 인물의 행위를 포착하는 유연한 나루세 스타일을 목격할 수 있다. 늘 수평적인 시선을 맞추며 앉아 있는 오즈의 가족들과는 달리 나루세의 연인들은 앉거나 서는 순간 정교하게 커팅된 카메라워크를 통해 다시 한번 일본식 좌식생활의 리듬을 시선의 영화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워 놓치기 쉽다는 점이 나루세 미키오의 장점이자 단점이긴 하지만, 그 세계로 진입한 순간 아시아영화의 숨결은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연호/ 전 <키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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