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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부산의 화양연화
이주현 2022-10-07

<씨네21>에 갓 입사했을 무렵 회사엔 부산 출신 선배들이 꽤 있었다. 과연 영화의 도시답게 부산이 키운 영화기자들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기간이 되면 숨겨왔던 사투리와 함께 자기만의 맛집 리스트를 당당히 꺼내놓곤 했다. 이를테면 돼지국밥은 어디가 맛있고 복국은 어디가 잘하고 밀면은 어디가 최고라는 식으로. 부산에서 나고 자라 객원기자 시절부터 부산영화제 공식 데일리팀에 꼬박꼬박 합류했던 나는 사투리 통역이나 해운대 지역의 길안내 역할엔 자신 있었지만 부산의 맛집 소개 앞에선 매번 고난도의 숙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복국이나 돼지국밥을 부산영화제에 출장 와서 처음 먹어봤을 정도니 “네가 그러고도 부산 사람이냐”는 소리를 돌림노래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듣고 또 들었다. 그럼에도 부산영화제 기간만 되면 괜히 부산 사람이라는 뿌듯함에 혼자 조용히 젖어들곤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축소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탈피해 ‘완전한 정상 개최’를 선언한 터라 부산영화제 출장길에 오르는 나의 마음도 평소보다 더 두근댔다. 부산역에서 택시 기사님에게 목적지인 해운대를 말할 때는 명랑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절로 튀어나왔을 정도니까. 물론 무뚝뚝한 택시 기사님은 대답도 없이 액셀을 밟았지만.

3년 만의 정상 개최인 만큼 올해 부산영화제엔 다수의 해외 영화인들이 방문한다. 그중 최고 인기 게스트는 ‘올해의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인 배우 양조위가 아닐까. 개막식 레드 카펫에서부터 다음날 기자회견까지 국내 취재진의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번호에 실린 부산영화제 개막식 화보와 허문영 집행위원장 인터뷰 기사에서도 양조위를 만날 수 있는데,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인터뷰에서 그를 “초세대적인 스타”라고 칭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나는 양조위 세대가 아니다”라고 했다가 궁색하게 해명해야 했던 일이 떠올랐다. 1980년대엔 홍콩의 강시영화들을 보고 강시 흉내나 내며 놀던 어린이였기에 양조위의 데뷔 시절을 목격하지 못했고, <비정성시> <첩혈가두>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시절의 양조위에게도 실시간으로 열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런데 괜히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존중받는 양조위를 특정 시대의 스타로 가둔 것만 같아 이제라도 저 말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양조위는 10월6일의 기자회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배우 인생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전반부 20년은 배우는 단계, 후반부 20년은 배운 것을 발휘하는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연기자라는 직업을 즐기는 단계다.” 앞으로도 양조위에게 반하는 일은 많겠구나 싶다. 10월7일에 열리는 ‘양조위의 화양연화’ 오픈 토크 행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름다운 미소를 마음에 담아갈 수 있기를, 부산영화제에서 멋진 추억 많이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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