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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말들은 이미 그곳에 있고, 우리는 자꾸만 그곳을 지나쳐버린다 ‘모퉁이’
소은성 2022-08-10

“우리는 어느새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마침 그곳을 자각하는 우리가 거기 있을 테니까.” 일종의 제사로 쓰인 이 두 문장은 영화의 제목 ‘모퉁이’가 어떤 장소를 지칭하는지 말해준다. 그곳은 모종의 운명이나 우연한 이끌림에 의해 다다르게 되는 곳이 아닌, 수없이 지나치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다가 우리가 알아채는 순간에야 존재하는 곳이다. 바로 이 모퉁이에서 영화과 졸업생인 성원(이택근), 중순(하성국), 병수(박봉준)가 만난다. 세 사람, 특히 성원과 병수는 거의 10년 만에 만났음에도 서로에게 받은 상처를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지 못한 성원은 과거에 자신의 이야기를 훔쳐 영화로 만들었던 병수에게 적의를 숨기지 못한다. 그리고 중순이 이 사이에 끼어 있다.

세 사람이 마주친 길모퉁이를 돌아가면, 그들이 학생 때 자주 찾던 단골 가게가 있다. 이 가게와 근처 골목에서 세 사람은 함께, 또는 둘씩 짝을 지어 예전에 끝냈어야 할 말들을 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모퉁이는 말들이 맞닥뜨리는 곳이기도 하다. 말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그들의 말은 금세 서로에게 다시 상처를 입힌다. 다만 영화에 등장하는 사물들, 운동화, 펜, 콜라 캔, 물때 낀 컵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이동하는 것처럼, 말들 또한 미끄러지다 마주치기를 반복한다. 이를테면 영화의 시작부터 성원의 속마음을 전해주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어느 순간 병수의 목소리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이야기를 발설할 때가 그렇다. 그것은 병수의 것일 수도, 또는 성원이나 중순의 것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감독 신선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선택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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