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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유롭고 진중한 스릴, '파로호'
김성찬 2022-08-17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중공군을 무참히 격파했던 전투를 지시하는 명칭의 호수 파로호. 이 근처 화천에서 도우(이중옥)는 물려받은 모텔을 운영하며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본다. 무력해 보이기만 하는 그에게 모텔에서 벌어진, 벌써 세 번째인 투숙객 자살 사건은 도우를 더욱 작아 보이게 한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 날 노모가 실종되고, 다른 여성 투숙객이 같은 날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다. 그러잖아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젊은 청년, 당돌한 다방 여종업원, 루게릭병을 앓는 미용실 주인의 남편 등 평범하지 않은 주변 인물들과 접하면서 주의가 흐트러지던 차, 경찰이 호의적이었던 태도를 거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자 도우는 당황한다.

도우의 내면은 물로 이루어진 장소에서 느끼는 여러 정서 중 고요, 침체, 불안, 어둠, 공포 등의 정념과 상통한다. 작품은 호수의 심연을 닮은 도우에게 벌어진 사태를 실제와 가상을 넘나들며 그려낸다.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인식의 혼돈을 현실과 환상으로 엮어서 서스펜스와 스릴을 자아내는 사례는 흔하다. <파로호>에서 주목할 것은 고유한 리듬과 흐름이다. 영화는 관객을 현혹하기 위해 완급 조절 없이 속도를 내거나 분별없이 이미지를 제시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다. 또 유사하다고 여겨질 영화들이 인물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일이 잦다면, <파로호>에서는 사회의 부조리가 그 음영을 이따금 작품에 드리우면서 입체적인 긴장감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타 작품과 구별시킨다. 명확한 결론에 대한 강박이나 책임지지 못할 모호함 어느 한쪽으로 치닫지 않은 점도 부각할 만하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출품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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