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것도 없이 엉망진창이면 좋겠어요. 우당탕탕, 왁자지껄, 대환장, 근본 없는….” 새 프로그램을 여는 말이 이래도 될까 싶지만, KBS 예능 프로그램 <홍김동전>은 정말 그렇다. ‘구개념 버라이어티’를 자처하며 목요일 저녁이라는 애매한 시간대에 나타난 이 예능은 그냥 막 던진다. 무엇을? 동전을. 출연자들이 각자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번지점프, 뒷면이 나오면 간주점프해야 하는 식으로 운에 운명을 맡기는 전개는 밑도 끝도 없고 ‘요즘 예능’치고는 호흡이 느리다. ‘추억의’ 번지점프에 토크 박스까지, 정녕 하늘 아래 새로운 아이템은 없는 걸까?
그러나 도대체 어떤 야심을 갖고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없는 <홍김동전>의 기묘한 편안함은 의외의 조합에서 나온다. 이제 어딜 가도 고참 대우를 받지만 서열 같은 건 관심 없는 개인주의자 김숙과 제멋대로처럼 보이지만 누구에게도 모진 소리 못하고 차라리 자폭해버리는 홍진경, 두 내향형 인간 겸 중년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부터 신선하다. 대개 ‘형님’이 서던 자리에 ‘누님’들이 들어가고, 젊은 여성에게 분위기 띄우는 막내 역할을 맡기던 예능의 관성에서 벗어나자 불편한 권력 구조 대신 어떻게든 잘 좀 해보고 싶은 각자의 분투가 살아난다. 억울하게 당하는 캐릭터로 살벌한 예능 바닥에서 살아남은 저력의 조세호와 정반대로 심드렁한 포커페이스 주우재는 티격태격하며 분량을 만들고, 버라이어티가 낯설어 헤매던 우영도 빠르게 성장한다. 특히 숫자에 약한 멤버들과 달리 확률 계산에 자신감을 보이며 여유로워하던 주우재가 잇따라 확률의 신에게 배신당해 불운의 사나이로 전락하고 흑화하는 과정은 ‘그깟’ 동전 던지기의 마력을 보여준다. 시청률의 신이 이들을 보고 웃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편성의 신이 있다면 조금 더 시간을 주시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