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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재난이 또 다른 비극의 메타포가 될 때, '인플루엔자'
김예솔비 2022-08-24

3개월차 신입 간호사 다솔(김다솔)은 한 가지 결심을 품고 있다. 신입이 들어오면 절대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말대꾸하지 말라는 선배의 주문에도 꼿꼿한 고개는 마음속으로 이러한 다짐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전염병이 덮쳐오고 간호사 수가 부족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다솔의 결심은 무너진다. 다솔은 자신의 사수에게서 들었던 모욕을 기어이 신입 간호사인 은비(추선우)에게 되풀이한다. 서로의 탓으로 밀어내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폭탄 돌리기.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전염병의 양성 판정을 받는 일보다 어려워 보인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전염이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과 ‘태움’으로 알려진 간호사들 사이의 폭력의 대물림. 실상 영화가 방점을 찍는 것은 후자의 전염이다. 코로나가 아닌, 판토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바이러스는 각혈과 발작을 일으킨다는 자극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감염자가 들썩거리며 토하는 피보다 무서운 것은 간호사들 사이에서 무자비하게 오가는 폭언과 폭력이다. 따라서 영화 속 팬데믹 설정은 ‘태움의 대물림’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염의 예후를 가시화하는 비유적인 풍경처럼 보인다. 팬데믹의 역학이 스스로를 더욱 첨예하게 드러내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새롭게 창조한 팬데믹의 풍경이 단순히 전염의 속성을 강조하는 메타포에 그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더불어 “폭력은 전염병이다”라는 정언명제만을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듯한 일방향적 운동이 영화를 쉬이 예측 가능하게 만들며 몰입을 저해한다. 그럼에도 과잉된 폭력에 노출되는 경험만큼은 충격을 남긴다. 황준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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