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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계획>
2001-04-02

시사실/행복한 가족계획

남성 중심적이며 경직된 노동시장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실직은 단지 일을 잃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능력자’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쓴 채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행복한 가족계획>의 주인공 가와지리 역시 마찬가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을 추스리기도 전에 그는 가족들의 질시라는 고단한 현실과 마추쳐야 한다. 가업을 물려받을 가게 직원에게 딸을 주고 싶었던 장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구박하는 아내나 “아빠를 닮아 운동신경이 꽝”이라고 얘기하는 아들까지 이 실직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와지리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단지 300만엔이 탐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추된 권위와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다. 짐작하겠지만 가와지리가 피아노 연주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일주일 동안의 도전 과정에서 그가 자신감을 찾고 온 가족이 다시금 화사한 웃음을 지을 수 있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족계획>의 미덕은 한 남성과 그의 가족이 힘겨운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과정을 과장된 상황설정이라는 화학조미료 없이 담백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아베 쓰토무 감독은 <남자는 괴로워> <학교> 시리즈로 유명한 야마다 요지 감독의 조감독 출신답게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에서 자잘한 재미를 이끌어낸다. 물론 갈등들이 별다른 계기도 없이 봄날 햇살에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TV쇼 ‘행복한 가족계획’은 한 가족이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가장이 이에 도전, 성공하면 꿈을 실현시켜주는 프로그램으로 일본 TBS에서 실제로 방송중이며 한국에서도 ‘특명 아빠의 도전’이라는 아류작이 방영되기도 했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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