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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추리엔 친절하고 재미엔 불친절한 추리물, '9명의 번역가'
이우빈 2022-09-14

영국, 중국, 스페인, 그리스 등 각국의 번역가 9명이 지하 벙커에 모인다.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소설 ‘디덜러스’의 최종편인 3권 ‘죽고 싶지 않았던 남자’를 비밀리에 번역하기 위해서다. ‘디덜러스’ 시리즈를 단독 출판 중인 옹스트롬 출판사의 편집장 에릭(랑베르 윌슨)은 ‘디덜러스’ 원고의 보안을 위해 번역가들의 외부 출입 및 연락을 차단하고 작업 일정을 통제한다. 하지만 번역 작업에 돌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릭에게 한 협박 메일이 도착한다. ‘디덜러스’의 원고 일부를 이미 인터넷에 유포했으며 돈을 보내지 않으면 다른 부분까지 공개하겠다는 내용이다. 에릭은 9명의 번역가 중 해커가 있으리라 의심하고, 번역가들을 감시·협박하며 범인을 물색하기에 이른다.

추리물에 있어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범인이 자신의 범행 과정을 낱낱이 설명해 사건의 구멍을 열심히 메울 때다. <9명의 번역가>는 이 안타까운 순간을 여러 번 반복한다. 영화의 중반부터 특정 인물이 사건의 중심인물로 부상하면서 범행의 소상한 동기, 과정, 심지어 마지막 반전까지 편리하게 밝혀준다. 주변 인물들은 사건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퇴장할 뿐이다. 대신 편집장 에릭이 번역가들에게 각종 폭력을 가하는 범법자로 변모하고, 문학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전사까지 획득하며 유일한 안타고니스트로 설정된다. 이에 중심 서사는 악인을 처단하는 의적의 정당성만 강조하는 단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추리물의 가장 큰 매력이어야 할 복잡다단한 추리 그 자체의 즐거움이나 인물간의 심리극 따위는 배제된 채 이야기는 단순한 권선징악에 그치는 모양새다. 더군다나 번역가, 편집자, 관계자를 작가가 되지 못한 비운의 인물로만 그리는 태도 역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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