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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무가’ 배우 류경수, “접신, 안되면 되게 하라”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2-10-12

‘노력하는 무당’이라는 말은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접신을 통해 앞날을 훤히 들여다보는 게 무당만의 선택받은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신남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무당의 일을 익히고 연습한다. 신이 알려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알아내면 된다는 마음으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밖으로 돌진한다. 신남과 한몸이 된 류경수는 그의 강단과 짠한 모멘트를 세심하게 그려냈다. 그건 신남이 가진 결핍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 오랫동안 누적된 인정욕구를 류경수가 훤히 들여다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드라마 <지옥>(2021)에 이어 신앙과 관련한 작품에 참여한 게 두 번째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재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장르를 크게 가리지 않지만 판타지 요소와 함께 색깔이 뚜렷한 작품을 좋아한다.

-영화 <브로커>(2022>, 드라마 <이태원클라쓰>(2021), <지옥> 등에서 캐릭터성이 강한 조연을 그려내면서 주인공을 부각하도록 도운 데 반해 이번엔 개인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무당이 되기로 결심한 신남은 접신이 잘 안되자 직접 고객의 정보를 찾아나서는 실천력 강한 인물이다.

=신남은 계속해서 무언가에 도전하지만 원래 세운 목표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다. 어떤 계산 없이 몸부터 던지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실패를 많이 했다는 건 그만큼 무언가를 많이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남의 정서를 계속해서 보여주려 했다. 그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쌓여서 무당 학원까지 가게 됐는지, 또 영화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속으로 어떤 혼잣말을 되뇌는지 상상하면서 표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를 바랐다.

-미용실에 가서 미용사가 “머리 어떻게 잘라드려요?” 했더니 신남이 “무당처럼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이 ‘무당스러움’을 어떻게 익히려 했나.

=평소였다면 감독님과 ‘무당 같은 게’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눴을 거다. 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무당처럼요”라고 답하는 신남을 보면서 얘는 아직도 그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인데 정확한 정보까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여기는 이렇게 자르고, 또 여기는 저렇게 해달라고 상세하게 주문했을 거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는 건 여전히 무당스러움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모든 걸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한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굿판뿐만 아니라 힙합도 연습해야 했다. 평소에도 힙합을 좋아하는지.

=포크 좋아한다, 포크. (웃음) 연기지만 촬영장에서 혼자 힙합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는 게 낯설고 쉽지 않았다. 류경수의 자의식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아야 하니까 그 장면에 집중해서 몰입하려 했다. 근데 마침 신남은 모든 게 어색해서 행동이 뚝딱거리는 사람이다. 힙합을 맨날 듣고 다니지만 정작 본인이 하는 건 그렇게 어려워한다. 하지만 신남이 힙합을 잘하는 것도 이상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나가지 않았겠나.

-이한종 감독과 특별한 인연으로 <대무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한 영화제에서 같은 섹션의 다른 작품으로 묶여 이한종 감독님과 뒤풀이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그때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었고, 감사하게도 나의 대학교 졸업 공연까지 와주셨다. 그 공연에서 선보인 연극은 <12인의 성난 사람들>로 굉장히 이성적인 캐릭터를 맡았다. 그 졸업 공연을 보신 뒤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는데 아무리 봐도 신남은 당시 연극의 인물과 상반되는 캐릭터였다. 보통 기존과 비슷한 인물을 제안하지 않나. 이런 제안을 한 감독님이 내겐 흥미로웠다. 감독님은 워낙 돌발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중심을 잡는 평온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함께 작업하면서 배우들도 불안하지 않았다.

-배우 류경수는 어떤가. 무속신앙을 믿기도 하는지.

=찾아다니진 않는다. 곁에 있는 사람이 “내가 뭐 봐줄까?” 하면 궁금해하는 정도다. 다만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거나 괜히 찝찝한 행동은 안 한다. 무속신앙보다 생활 속 미신을 믿는 것 같다.

-15살에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 영화사에 찾아갔다는 일화를 들었다. 어려서부터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어릴 적에 한 유명 배우가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 매일 출퇴근하듯 영화사에 찾아가 청소를 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해야만 배우가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예전에 사진관에서 찍은 경직된 인상의 사진 여러 장을 뽑아 빈 종이에 붙이고 그 아래에 ‘안녕하세요, 저는 류경수입니다’ 하고 자기소개서를 써넣었다. 일종의 포트폴리오였다. 막상 영화사에 도착하고 나서는 용기가 나질 않아 들어가질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랜 시간 뒤에 결국 사무실에 들어가 배우가 되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더니 모두가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그때 나이 지긋한 어른 한분이 “야, 너는 무슨 어린애가 배우를 하겠다 그러냐? 근데 너는 뭐가 돼도 되겠다” 하셨다. 그날 어떤 일이 벌어진 건 아니지만 그 말을 들은 뒤로 힘을 얻었다. 버티는 힘을.

-2007년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이후 34편의 영화, 9편의 드라마, 3편의 연극에 임했다. 얼굴 없는 단역부터 이름이 있거나 직업으로 대체되는 조연, 그리고 지금의 주연 자리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무엇이 제작진으로 하여금 자신을 찾게 한다고 생각하나.

=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을 땐 오직 내가 더 잘생겼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찾아주는 사람이 없고, 또 주변 친구들이 성형해보라고 권하기도 할 땐 정말 내 얼굴 때문에 연기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전형적인 꽃미남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 연기의 범위를 더 넓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잘생겼다면 신남이 어울렸을까? <지옥>의 유지사제를 맡을 수 있었을까? 이젠 더이상 외모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를 어떻게 변모하고 확장할지에 몰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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