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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넷플릭스 ‘글리치’④ 배우 나나, “타투를 한 단짝”
김소미 2022-10-13

드라마 <굿와이프>의 로펌 조사원을 시작으로 <킬잇>의 형사, <저스티스>의 검사를 거치며 주로 도시적인 마스크와 장신에 어울리는 전문직 여성을 연기했던 나나가 <글리치>에서 드디어 또래의 생태계에 착륙했다. 보편적인 청년을 묘사한 캐릭터인 홍지효(전여빈) 옆에서 온갖 반작용을 담당하는 허보라는 지효가 광기에 휩싸이자 외려 절묘한 현실감각을 발휘한다.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았을 만한 이상적 단짝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허보라의 행동파 기질은 학창 시절에 앞장서서 흉가 체험에 나서곤 했던 나나의 기세를 이어받은 것이고, 강단 있는 말투에 가려진 여린 마음과 조심성은 배우 스스로도 지키고 싶어 하는 자기다운 면모다. 덕분에 나나는 허보라를 연기하며 “한층 자유롭고 시원하고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부스스한 갈색의 히피 머리로 등장하는 <글리치>의 보라는 외양부터 개성이 강하다. 직접 아이디어를 더했나.

=보라가 늘 같은 목걸이를 하고 나왔으면 해서 먼저 제안했다. 특히 관심 갔던 건 보라의 몸을 뒤덮은 타투의 위치와 크기, 각각의 그림이 의미하는 내용이었다. UFO 추종자이면서 숨 쉬듯이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는 점이 문신에서도 디자인적 요소로 드러났으면 했다. 그게 보라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취향으로 느껴졌다.

-사라진 지효의 남자 친구 이시국(이동휘)을 찾아다니면서 결국은 지효와 보라, 두 여자 친구의 관계가 확장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관계성을 어떻게 바라봤나.

=오묘한 사이. 우정이라고만 정의하기도 조금 애매하고, 넓은 의미에서는 오히려 가족 또는 로맨스에 가깝달까. 특히 보라에게 지효는 유일한 존재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마음을 연 사람이 지효였기 때문에 과거에 지효의 오해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을 때 큰 상처를 받는다. 대본에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보라가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지효와의 기억을 계속 되뇌며 살았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지효만 한 새로운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마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였을 테고.

-<글리치>는 사운드 믹싱의 완성도가 높고 배우들의 대사도 디테일하게 잘 들린다. 앞선 드라마들에서 전문직 역할을 소화할 때와는 또 다른, 나른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말투가 매력적이었다.

=상황에 따라 목소리와 말투가 많이 바뀌는 편인데 굳이 택하자면 원래 조금 느리게 말하는 편이다. <글리치>는 그동안 내가 참여한 작품들 중 후시녹음(ADR) 비중이 유독 많았던 작품이다. 촬영 끝나고 시간이 꽤 흐른 후 ADR 작업을 해서 처음엔 좀 헤맸다. 노덕 감독님이 “그새 보라가 너무 착해졌네. 얼른 다시 돌아와주세요”라고 자꾸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난다. (웃음) 아마도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톤을 새로 잡아나가면서 대사의 뉘앙스가 좀더 잘 다듬어진 부분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UFO까진 아니더라도 비현실적인 요소들에 관심을 가지는 편인가.

=어릴 때부터 유독 겁없는 애였다. 궁금증도 많아서 뭔가 기이하거나 신기한 현상이 있으면 친구들 앞에 나서서 해보는 쪽이었다. 예를 들면 분신사바라든가. (웃음)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작품인 법정 드라마 <굿와이프>, 그리고 이번 <글리치>를 놓고 보면 극중 제1파트너로 여성 캐릭터와 호흡할 때 생기는 특유의 활력이 있다. 강단 있고 명쾌해 보이지만 막상 상대와 관계가 친밀해지면 반전 매력처럼 여린 모습을 보여주는 면도 비슷하다.

=실제로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그걸 잃고 싶지 않다. 함께하는 배우와 이렇게까지 잘 맞는 느낌은 나도 <굿와이프> 이후로 처음 느꼈다. 그때 (전)도연 언니와 굉장히 편하고 즐거웠는데 이번에 여빈 언니랑 촬영하면서 여자들끼리 느끼는 감정이나 세세한디테일까지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힘을 얻었다. 지효와 보라로서 7개월간 쭉 함께였다. 어릴 때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었는데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팀워크 속에서 혹시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언젠가부터 인간관계를 맺을 때 조심하는 게 습관이 됐다. <글리치> 촬영장에선 여빈 언니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이끌어주고 촬영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줬다. 지금까지도 그게 너무 고맙다.

-능청스러운 청년 민원왕 구세라를 연기한 드라마 <출사표>(2020)로 K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여자우수상을 받았을 때, 수상 소감에서 평소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역할을 너무나 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연기에 욕심이 생겼나.

=애프터스쿨 시절에는 회사에서 시켜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했다. 나는 나대로 불만이 많았지. (웃음) 그런데 어쨌든 자꾸 피드백을 받다보니 오기가 생겼고, 마음 잡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모든 게 너무 재밌어졌다. 오디션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순간도 기억하고 있다. 그 무렵 <굿와이프>를 만났다. 학창 시절에도 그다지 대단한 장래희망 같은 게 없었으니 이렇게까지 욕심이 나고 잘하고 싶은 건 살면서 연기가 유일한 셈이다. 다만 앞으로는 좀더 신중하게 내 마음도 잘 들여다보면서 작업하고 싶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뭐가 힘들고 뭐가 좋은지 요즘 점검해보고 있다.

-<글리치>에 이어 10월26일 개봉하는 영화 <자백>에서 극중 살인사건의 피해자 김세희를 연기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유민호(소지섭)의 진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설정이라 기대된다.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느낌으로 연기해야 해서 무척 큰 도전이었다. 모두 감독님의 디테일한 지시와 리허설이 있어서 가능했다. <글리치>도 <자백>도 결과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만족스럽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내게는 정말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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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