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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③]고다르의 21세기 작업, ‘그리고’의 방법론을 연장하기

고다르의 21세기 작업은 20세기 후반부터 이미지와 몽타주의 본성과 관련하여 규정하고 심화한 ‘그리고’(ET)의 방법론을 연장했다. 이미지의 연쇄를 만드는 것은 정확히는 이미지들 ‘사이’에 있어야 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구성해야 함을 뜻한다. 고다르가 안느 마리 미비유와 함께 제작한 1970년대 작품에 대한 세르주 다네와 질 들뢰즈의 논평이 이를 입증한다. 다네는 <여기와 저기>(1976)에 대해 “고다르는 감독의 진정한 장소가 ‘그리고’(ET)에 있음을 말한다”라고 썼다. 들뢰즈는 대안적 TV프로그램 <6x2, 커뮤니케이션의 위와 아래>(1976)에 대한 인터뷰에서 다네의 견해와 다음과 같이 공명한다. “‘그리고’(ET)는 하나도 다른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항상 사이(entre), 두 사물의 사이다.” 이를 입증하듯 21세기의 고다르는 형식과 기술의 차원에서는 필름과 디지털 사이에서, 그리고 역사와 제도의 차원에서는 시네마와 박물관 사이에서 움직였다.

<사랑의 찬가>

고다르의 디지털

유세프 이샤그푸르와의 대담집 <영화의 고고학>에서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들)>(1988~98)에서의 “비디오는 시네마의 아바타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비디오 편집은 이질적인 원천의 이미지를 필름 편집보다 손쉽게 모으고 연결하고 중첩할 수 있으며 “그리기 행위”에 비유할 수 있는 색채와 형태 변형의 도구를 제공한다. <사랑의 찬가>(2001)에서 고다르는 현재와 과거를 왕복하며 예술의 운명을 성찰하는 에드가를 자신의 반영으로 제시한다. 35mm 필름으로 촬영된 고화질의 흑백 세계는 포화된 색채의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된 과거의 세계와 다층적으로 접속한다.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이 지적하듯 이와 같은 두 세계의 접속은 필름에서 디지털 비디오의 시간으로 이행하는 영화의 상황을 반영한다. <필름 소셜리즘>(2010)에서 이와 같은 이행에 대한 성찰은 영화적 세계의 변화에 대한 응시로 변주된다. 유럽과 지중해의 주요 도시를 운항하는 유람선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 감시 카메라, 휴대폰 카메라가 동원되었고 온라인 비디오 이미지 또한 삽입되었다. 이 여러 촬영 장치와 포맷은 제국주의(하이파), 스페인 내전(바르셀로나), 2차 세계대전(나폴리)과 같은 20세기의 위기에 대한 기억 및 당대 유럽의 정치·경제적 위기와 대조적으로 목적 없는 여흥에 도취된 유람선 내부의 파국적인 경관을 열화되고 범속한 형태로 담아낸다.

고다르는 <언어와의 작별>(2014)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디지털 3D영화 제작에 나선 이유로 3D가 “정해진 규칙이 없는 포맷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기술사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독자에겐 다소 기이하게 들릴 수 있다. 입체경은 19세기에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보다 먼저 발명되었고, 뤼미에르 형제를 포함하여 20세기 전반부에 입체영화를 실험한 다양한 기술자가 있었으며, 텔레비전이라는 당대의 뉴 미디어에 대한 반응으로 1950년대에 할리우드가 새로운 시각적 경험의 견인차로 홍보했던 3D영화의 짧은 유행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입체영화의 계보를 고다르가 모를 리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고다르에게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 이후 디지털 3D를 영화산업의 ‘뉴 노멀’로 홍보하기에 바빴던 할리우드 거물의 예언적 설교, 그리고 이들이 상찬했던 몰입적인 스펙터클의 증폭 가능성을 실현하는 3D 포맷이라는 가정이 흥미롭지 않았을 뿐이다. 산업적 권력과 이것이 제공하는 환상의 차원을 넘어선 3차원 영화의 가능성을 위한 게임의 규칙은 고다르에게 여전히 창안의 대상이었다.

고다르는 옴니버스영화 <3X3D>(2013)에 포함된 <세개의 재난>과 <언어와의 작별>에서 3D를 세개의 주사위 던지기에 비유한다. 주사위를 던지는 아이의 태도와 장인의 태도를 견지하며 고다르는 입체영화의 디스포지티프와 그 미적 효과를 실험했다. 캐논 HD 카메라와 고프로(GoPro), 루믹스(Lumix) 등의 저가 카메라를 망라하는 다양한 포맷의 촬영 장비를 장착할 수 있는 나무 고정 장치를 제작 활용했다. <필름 소셜리즘>에서도 협력했던 촬영기사 파브리스 아라그노에 따르면 <언어와의 작별>에 적용된 3D 촬영 시스템은 할리우드의 입체영화 제작에서 통상 적용되는 양안 시차 거리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 실험은 현실을 몰입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거나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현실에 맞게 이미지를 복제하는 표준적인 3D영화 제작의 프로토콜을 위반하거나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대신 이는 공간의 왜곡 및 유령 효과(3D 촬영에서 두 카메라의 각도를 크게 벌림으로써 두눈이 종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두 이미지를 제시할 때 발생하는 형상의 중첩 효과)를 통해 관객의 응시를 동요시키는 효과를 지향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고다르 자신이 셀룰로이드와 비디오를 넘나들며 전복하고 창안했던 영화언어의 지평, 그리고 그 지평 아래 전개되어온 2차원 영화의 역사를 탐구하고 재구성하는 기획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양가적 태도는 고다르가 인터뷰에서 ‘아듀’(Adieu)에 대해 환기했던 이중적 의미와 공명한다. ‘아듀’는 일반적으로 ‘작별’(goodbye)로 번역되지만 고다르 자신이 거주하는 스위스 칸톤(자치주)에서는 ‘안녕’(hello)이라는 뜻으로도 통용된다.

즉 <언어와의 작별>은 몇몇 평자들이 생각하듯 20세기 영화와의 작별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디지털 3D 기술은 고다르가 스스로 실천했던 20세기 영화의 연장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대니얼 모건은 이 작품에서 3D영화를 이루는 두 이미지(왼눈과 오른눈에 호응하는)가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되거나 중첩되는 방식을 “눈 사이의 몽타주”라고 말했고, 니코 바움백은 영화 초반 두 남녀가 연속적 카메라 운동 속에서 분리되다가 중첩되는 장면을 지적하며 이를 “예이젠시테인과 바쟁의 결연“으로 명명했다. 이와 같이 2차원 영화의 언어가 디지털 3차원의 세계 속에서 갱신되는 방식은 2차원 영화의 역사적 차원, 그리고 2차원 영화가 재현하는 인간과 세계의 차원으로도 연장된다.

<언어와의 작별>에서 TV스크린으로 재생되거나 직접 인용되는 과거 영화의 단편은 3차원으로 매개될 때 할리우드영화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돌출 효과 대신 2차원 영화에서 기원하는 심도 효과로 제시된다. 또한 고다르는 이 영화에서 변주되는 남녀(즉 두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는)의 세계 ‘사이’에 사물과 자연, 동물(고다르의 애완견 록시)이라는 제3항을 삽입하고, 이들을 친밀하고 낯선 방식으로 바라보기 위해, 또는 (록시의 시점으로 보이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이들의 탈인간적 응시를 체현하기 위해 왜곡과 불균형 효과를 적용했다.

<이미지 북>(2018)에서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들)>에서 아날로그 비디오로 실험했던 몽타주의 가능성, 즉 이질적인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원천을 가진 이미지와 사운드의 본래 맥락과 역량을 분리시키고 이들을 다수의 역사적 담화와 철학적 단상을 위해 결합하고 교환시키는 몽타주의 가능성을 디지털 비디오로 연장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고다르의 디지털 비디오 편집은 이미지들의 다양한 군집을 구성하는 것 이상의 효과로 나아간다. 인용된 영화와 온라인 비디오 클립의 열화와 해상도 붕괴, 이미지와 사운드의 갑작스러운 일시 정지 및 감속, 무지 화면을 통한 이미지의 불연속, 이미지와 사운드의 분리 및 자유로운 믹싱은 <필름 소셜리즘>에서 본 것보다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점에서 평론가 에이미 토빈이 이 작품에서의 고다르가 1960년대 북미 아방가르드 영화에 가까워졌다고 말한 것은 적절하다. 이는 <이미지 북>의 한 챕터 제목이기도 한 ‘중앙 지역’(La Région centrale)이 마이클 스노우의 전설적인 1971년 영화를 가리킨다는 사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관습적인 지각을 넘어선 지각의 영역을 개방하는 디지털 편집 및 시각효과의 활용은 ‘배우지 않은 눈’(untutoured eye)의 가능성을 탐구했던 스탠 브라카주를, 발견된 영화 푸티지와 사진을 대상으로 20세기에 고안했던 영화적 기법을 디지털 도구로 업데이트하는 고다르의 접근은 켄 제이콥스의 디지털 비디오 작품을 연상시킨다. 이 점은 고다르가 <이미지 북>에서 다빈치의 <세례 요한>(1513)을 포함하여 영화, 회화, 만화를 포괄하며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손의 이미지로도 입증된다. 몽타주가 사유의 작용이고 그리피스나 예이젠시테인이 영화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광대하면서도 손의 작업을 요구한다는 점, 이는 고다르가 매체들을 경유하며 실천했던 바다. <이미지 북>의 보도자료에서도 고다르는 이 점을 단언한다. “심지어 디지털 편집도 손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손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 영화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다섯 손가락에 근거함을 보여준다.”

<영화의 역사(들)>

고다르의 뮤지올로지

고다르와 예술의 관계는 누벨바그 시기의 작품부터 분명히 드러났다. <미치광이 피에로>(1965)에 인용된 입체파 회화와 팝아트 일러스트는 고다르의 과감하고 강렬한 색채 활용과 콜라주 미학의 원천을 지시했고, 이보다 전 <국외자들>(1964)에는 주인공 트리오가 경비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루브르박물관 복도를 질주하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이 둘의 몽타주를 통해 초기 고다르가 박물관 및 예술작품을 대하는 양가적 태도를 알아볼 수 있다. 앙투안 드 베크가 말하듯 한편으로 고다르는 예술작품을 영화에 삽입함으로써 그 작품을 둘러싼 아우라를 재건하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박물관을 위대한 유산의 보존과 교육을 수행하는 보수적인 제도라고 여겼다.

물론 <영화의 역사(들)>가 입증하듯 고다르의 박물관 이념을 이와 같은 양가적 태도로 환원할 수만은 없다. 영화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영화의 역사, 영화가 구성하거나 외면했던(홀로코스트) 20세기의 역사, 그리고 영화와 미술사 및 지성사와의 교차로 구성되는 역사라는 세 가지 차원 모두에서 박물관은 고다르에게 <영화의 역사(들)>의 모델이 되었다. 이 모델은 페르낭 브로델과 같은 역사학자, 엘리 포르와 같은 미술사가, 시네마테크의 이상적 모습으로 영화박물관을 생각했던 앙리 랑글루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 예술작품의 사진 복제 및 이미지와 텍스트의 병치로 이루어진 ‘상상적 박물관’(musée imaginaire)을 제안했던 앙드레 말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영화의 고고학>과 <오래된 장소>(2000)의 내레이션에서 알 수 있듯 상이한 시간과 맥락에 놓인 자료들을 ‘성좌’(constellation)로 구성하는 발터 베냐민의 몽타주 개념은 이와 같은 영향을 종합하는 중요한 방법론이 되었고, 비디오는 이를 실행하는 충돌과 혼합의 도구가 되었다. <영화의 고고학>에서 고다르가 단언하듯 “우리는 모두 박물관에서 태어났”고 그곳이 어쨌든 “우리의 고국”이라면, <영화의 역사(들)>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박물관을 비디오의 전자적 흐름 속에 건축한 결과였다.

2006년 퐁피두센터에서 개최된 <유토피아로의 여행(들): 장뤽 고다르1946-2006, 잃어버린 정리를 찾아서>(Voyage(s) en utopie, JeanꠓLuc Godard, 1946-2006: à la recherche d’un théorème perdu, 이하 <유토피아로의 여행(들)>전)는 <영화의 역사(들)>가 구축한 시청각적 박물관을 미술관의 제도적 공간에 구현하고자 했던 전시였다. 큐레이터 도미니크 파이니와의 협력으로 고다르가 2000년대 초반부터 기획했던 전시의 제목은 <JLG에 따른 프랑스의 콜라주(들): 영화 의 고 고 학>(Collage(s) de France, archéologie du cinéma, d'après JLG, 이하 <콜라주(들)>전)이었다. 그 특유의 언어유희로 제목에서 기법으로서의 ‘콜라주’와 ‘콜레주 드 프랑스’를 동시에 환기시키는 이 전시의 기획안은 ‘신화’(영화의 알레고리), ‘카메라’(은유), ‘현실’(꿈), ‘인류’(이미지) 등의 제목이 붙은 9개 방으로 구성된다. 고다르는 이 전시가 <영화의 역사(들)>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단편은 물론 여러 회화와 텍스트, 조각의 인용과 다양한 구조물을 수반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18개의 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퐁피두센터는 고다르의 기획안이 지나치게 방대하고 많은 예산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고, 고다르는 그로 말미암아 타협적으로 실현된 <유토피아로의 여행(들)>전에 만족하지 않았다. 고다르와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퐁피두센터와의 중재에 분투했던 파이니는 전시 몇달 전 해고되었고, 고다르는 기자회견과 언론 전시 공개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콜라주(들)>전의 9개의 방과 달리 <유토피아로의 여행(들)>전의 전시 공간은 3개의 방으로 구분되었다. ‘그저께(과거완료)’라는 제목의 방에는 앙리 마티스와 니콜라 드 스탈의 그림이 걸리고 <시민 케인>(1941)에서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은 재너두 저택 장면을 보여주는 스크린이 설치되었으며 고다르와 미비유가 공동 제작한 중단편영화들이 아이팟을 통해 반복 재생되었다. 영화사에 대한 고다르의 회고적 응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어제(과거)’ 방에는 알렉산드르 도브첸코의 <병기고>(1928), 프리츠 랑의 <마부제 박사의 유언>(1931), 니컬러스 레이의 <쟈니 기타>(1954)를 비롯한 20세기 영화 작품 14편의 발췌본이 정치적 모더니즘 시기 고다르를 대표하는 <주말>(1967),<동풍>(1969) 및 고다르의 자전적 에세이 영화 <JLG/JLG: 12월의 자화상>(1995)과 더불어 여러 평면 디스플레이에 전개되었다. 고다르의 동시대 미디어 문화 비판을 무대화한 ‘오늘(현재)’에는 할리우드 스펙터클 영화의 제국주의적 폭력을 대표하는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2001)이 침대 위에 놓인 커다란 와이드 스크린 LCD TV를 장식한 가운데 일련의 포르노영화 이미지가 반복 재생되는 LCD TV를 갖춘 주방과 TF1, 유로스포츠의 실시간 방송을 무음 재생하는 두대의 LCD TV가 설비된 거실이 마련되었다. 영화의 단편들 이외에도 여러 오브제와 설치물, 텍스트의 인용구들이 전시장 곳곳에 겉으로 보기에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다. ‘그저께(과거완료)’ 방에는 칠이 완료되지 않은 페인트 자국과 목재 및 강판이 있었다. 모형 기차가 이 방과 ‘어제(과거)’ 방 사이를 왕복하고, 인용된 영화 단편을 보여주는 두대의 TV수상기를 열대식물이 둘러쌌다. 즉 이 전시를 구성하는 재료 중 상당 부분이 발견된 오브제, 조각적인 구성물, 혼합 설치작품을 닮은 구조물이었고 이들 중 대부분은 방치되거나 공사 중인 장소, 또는 폐허를 연상시켰다.

<언어와의 작별>

<유토피아로의 여행(들)>전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콜라주(들)>전에서 영화의 장치를 미술관에 복원하려는 고다르의 구상, 즉 인용된 영화들을 반복 재생하는 키오스크를 넘어 영화를 기술적-문화적-제도적으로 구성하는 빛과 어둠, 영사의 결합체를 설치의 형태로 구현하고자 했던 기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전선으로 어지럽게 연결된 다수의 소형 모니터와 이동용 재생장치가 화이트 큐브의 벽면과 빈 공간에 포진되었고, 미술관 방문자의 관람성은 영화관에서의 집중 및 몰입보다는 혼란과 방향 상실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고다르 연구자와 비평가들은 고다르가 <영화의 역사(들)>를 포함하여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변주했던 인용과 몽타주의 논리가 전시 구성물의 배치로 연장되는 방식을 읽어내거나, <경멸>(1963) 및 <작은 독립영화사의 흥망성쇠>(1986) 등 고다르의 여러 영화에서 다루어졌고 그의 여러 미완성 기획들로도 뒷받침되는 실패의 모티프가 전시 공간의 미완성 및 폐허의 모습으로 반영되었다고 주장했다.

<유토피아로의 여행(들)>전은 1990년대 이후 영화와 동시대 미술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이라는 경향을 점검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벤트로 남아 있다. 제니 샤마레트가 적절하게 지적하듯, 이 전시를 고다르의 필름 및 비디오 작업이 미술관 설치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연장된 것으로 평가하거나 ‘큐레이터로서의 고다르’라는 창조적인 행위자를 인증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전시 기획 및 준비 단계에서 다양한 행위자들(고다르, 파이니, 퐁피두센터 등의)간의 긴장과 갈등을 간과한 것이다. 즉 이 전시의 위태로운 준비 과정 및 공개 이후의 스캔들은 미술관과 영화가 오랫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기능해온 두개의 제도이며 이들간에는 매끄러운 교섭을 넘어선 틈새와 마찰이 존재할 수 있다는 토마스 엘새서의 견해를 확인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고다르는 필름 시기 작품의 주제와 기법을 미술관의 설치작품으로 연장시킨 하룬 파로키, 샹탈 아커만, 아녜스 바르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등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술관과 영화관 사이에서 작업했다. 그 결과 관객은 이 전시(그리고 지금까지도 북미와 유럽에서 전시되고 있는 <콜라주(들)>전의 모형)에서 영화와 예술작품, 예술작품과 레디메이드, 이미지와 텍스트를 ‘그리고’를 포함한 두개의 항과 마주하고, 이들간의 간극과 가능한 접속은 물론 내재적인 불화마저도 사유하도록 안내된다.

소진되지 않은 것

아날로그 미디어와 디지털의 사이에서, 시네마와 박물관의 사이에서 자신의 영화적 세계와 영화언어를 확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불일치와 틈새, 불연속과 불안정마저도 그 확장의 결과로 제시했던 고다르의 21세기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자 예고되고도 도래할 미래처럼 끝났다. 그의 죽음을 1970년대부터 그가 반복해서 설파한 ‘영화의 죽음’과 연관하여 말하기보다는, 그가 말년에 전해준 말을 인용하는 것이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사유하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 케랄라국제영화제가 평생공로상을 수여하면서 2021년 3월 가진 온라인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영화의 경험과 산업적 생태계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상황에 대한 논평을 요청하는 질의자의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가 영화계에 있었을 때는 제작자와 제작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배급이 중요한 것이다. 배급과 배급자들이 영화의 제작과 제작자들을 집어삼켰다.” 이 말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로 상찬하는 리드 헤이스팅스나 이를 영화 형식 및 경험의 ‘게임 체인저’로 단언하는 산업 관계자들에 대한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포스트-시네마 조건 속에서 영화 형식과 경험의 경계를 점검하고 다시 그리는 작업은 영화적 유산에 대한 역사적 탐색,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단절보다는 갱신을 목표로 수행되는 제작의 다양성을 살펴보고 평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지인들에 따르면 고다르는 단지 ‘소진된’(épuisé) 것이라고 했지만, 영화의 변모하는 존재론에 대한 성찰은 소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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