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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흡혈의 세상
정소연(SF 작가) 2022-10-27

빵 공장의 소스 배합기에 사람이 끼여 죽었다.

이 문장은 사실이다.

사고가 나자 동료들이 교반기에서 시신을 꺼냈다. 회사는 교반기에 빨려들어간 시신을 수습했던 동료들을 다음날 바로 그 현장, 사고난 교반기를 흰 천으로 덮고 폴리스라인이 쳐진 공장에 출근시켜 일하게 했다.

이 문장도 사실이다.

세상의 어떤 물건도, 샌드위치든 반도체든 뭐든, 정말 어떤 물건도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이렇게 일해서는 안된다. 조금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안전장치를 제거한 기계 앞에 사람을 세우고, 약간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사람 수를 줄이고, 안전교육을 없애고, 교육을 받았다는 거짓 확인서를 한달치 몰아 작성하도록 하는 회사에서 일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일하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된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곳에서 똑같은 기계로 계속 소스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런 ‘해서는 안되는 일’을 시키는 회사가 존재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팔아도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 대한민국에는 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의 구분이 없다. 더 신속한 작업을 위해 안전장치를 끈 기계로 인한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공단 지역에서는 뉴스거리조차 아니다.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도록(산재율이 올라가면 회사의 산재보험료가 인상된다) 소위 ‘공상처리’로 공장 근처 병원에 바로 실려가 처치를 받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많다. 사망 사고 소식조차도, 드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끊이지 않는다. 날마다 일하다 죽은 사람들의 소식이 들린다. 깔려 죽고, 끼여 죽고, 낙하물에 맞아 죽고, 빠져 죽는다. 물리적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과로사나 자살을 한다.

자본에는 윤리도 생각도 없다고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본질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안이한 변명이다. 사람의 목숨값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되지 못한다. ‘해서는 안되는 일’을 시키는 회사는 망해야 하는데, 사람 목숨값이 그만큼 비싸지 않으니 어떤 회사도 망하지 않는다. 오너 리스크로 망하고 투자를 잘못해서 망하고 부동산 때문에 망할 수는 있어도, 사람 목숨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끔찍한 세상에서, 노동자는 알면서도 위험한 일을 한다. 목숨값은 어차피 어디서도 쳐주지 않고, 살려면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때로는 외면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불매운동으로 불편한 마음을 달래고, 피칠갑이 된 샌드위치를 먹고 피땀 묻은 택배를 받고, 내 피눈물로 차린 밥상 앞에 앉아 다른 누군가의 피를 먹는다.

남의 목숨이 싼 것도 내 목숨이 싼 것도 싫다. 이 흡혈의 세상이 지긋지긋하다. 누구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모두가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