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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혜옥이', 희망의 늪에서 노력이 무의미해질 때 분열되는 청춘의 자아
오진우(평론가) 2022-12-07

명문대 출신 라엘(이태경)은 5급 행정고시 준비를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 입성한다. 엄마(전국향)는 물심양면으로 딸을 뒷바라지한다. 희망의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라엘의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합격은 쉽게 되지 않는다. 라엘은 어느새 32살이 되었다. 초시생의 총명함은 사라지고 점차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엄마는 불합격의 원인을 이름에서 찾았다. 엄마는 용하다는 스님에게서 ‘혜옥’이란 이름을 받아온다. 라엘은 혜옥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우며 시험을 준비한다.

<혜옥이>는 5급 행정고시 N수생 혜옥이가 겪는 고된 수험 생활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매몰 비용의 오류’라는 개념을 주인공 혜옥을 통해 풀어낸다. 매몰 비용의 오류란 과거에 투자한 비용이 아까워 같은 행동을 반복함을 의미한다. 언젠가 시험에 합격하리라는 희망은 늪이 되고 혜옥은 그 속으로 침잠한다.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의 차이점은 산동네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 수많은 책을 이고 고장 난 우산을 쓴 혜옥이 언덕을 오르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이다. 이와 함께 영화는 실내 공간을 활용한다. 혜옥이 묵는 고시원은 채광은 좋지만 공부에 집중해야 하기에 외부는 차단된다. 내부에서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장치는 포스트잇이다. 포스트잇이 늘어난 만큼 시간이 흘렀고 그 위에 적은 희망의 메시지는 절망으로 바뀌고 공간은 지옥이 된다. 노력을 강조하는 능력주의 사회를 풍자한 <혜옥이>는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 장편부문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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