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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2년에 돌아보는 장 마리 스트로브의 주요작 3편

불일치의 역사들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1968)

어쩌면 장 마리 스트로브야말로 진정한 앙리 랑글루아의 후예인지 모른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악보와 편지가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 관객은 기표의 제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사운드 필름의 등장 이후, 막간 자막의 사용은 불필요해졌다. 무성영화에서 자막은 대사를 전달했지만, 토키영화의 등장으로 역할을 잃었다. 구조적인 면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결과물만을 바라보면, 이 영화가 시네마의 관점에서 음성과 텍스트를 고민한 흔적이 발견된다.

1950년대 프랑스의 시네필들은 프랑스어 자막 없이도 의미가 전달되는 외국영화들에 열광했다. 대표적으로 미조구치 겐지가 그랬다. 그들은 스스로 미조구치의 스타일을 납득했다고 믿었다.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의 결과물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곳에서 음악은 음성보다 더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동한다. 관객이 청취한 텍스트는 ‘편지’가 아니라 오히려 ‘악보’에 더 가까운 듯 보인다.

안티고네(1992)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는 유명한 그리스 비극을 영화로 옮긴다. 바로 <안티고네>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는 왜 이 내용을 극장에서 만나는지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원작’은 처음 소포클레스가 썼다. 소포클레스의 글은 이후 휠덜린을 통해 ‘독일어’로 번역된다. 독일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브레히트가 ‘연극’으로 각색하는데, 이 영화는 바로 브레히트의 희곡을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영화’화한 결과물이다. 이 모든 단계에 서로 다른 예술 장르의 관습이 누적돼 있다.

스트로브는 각색하지 않고 기존 문서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때, 플롯과 환상의 힘을 빼는 것이 스트로브식 미장센의 핵심이다. 우리는 배우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존의 텍스트를 듣는다. 그들은 허공을 쳐다보며, 상대방이 아닌 저 너머의 무언가를 응시한다. 이들에게서 안티고네의 고뇌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과거의 유산 위에 드러나는 현재의 순간들이 포착된다. 피사체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새들은 노래하며, 도시의 소음은 고대의 인물들을 감싼다.

장마리 스트라우브, 당신은 어디에(2016)

2006년 이후 홀로 작업을 시작한 스트로브는 18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 초기 몇편은 필름이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디지털로 촬영됐다. <장마리 스트라우브, 당신은 어디에>도 디지털영화다. 스트로브는 현대 극장의 전환을 ‘장치 변화’의 일환으로 수긍한 듯 보인다.

사실 스트로브는 필름의 물질적인 특성에 심취했던 작가는 아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디지털로 전환되었을 뿐, 기존의 개념과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화면 바깥에 있던 감독과 그의 부인은 ‘고양이’라는 자연의 대치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역사를 공유한다. 프레임 안과 밖은 서로 연결되지만, 시각적으로는 분절된다. 어쩌면 그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그의 두 번째 부인은, 고양이를 통해 그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적 에세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스트로브는 불일치의 방식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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