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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태풍의 계절>
이다혜 2023-01-17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여자들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둔 부정한 기운”을 가진 여자들이 마녀의 집을 찾아 온갖 하소연을 쏟아내고 해결책을 구한다. “자신의 기구한 운명, 육신의 고통과 불면증, 꿈에 나타난 죽은 식구나 친척, 산 사람들과 티격태격한 일, 아니면 돈-거의 대부분은 돈 문제”에 대하여. 마녀에게는 제대로 돌보는 법이 없는 딸이 하나 있었고, 마녀가 죽은 뒤 딸은 어머니의 지위- 마녀- 를 물려받아 어머니가 해온 역할을 이어가던 어느 날 살해된다. 멕시코에서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라크루스주의 한 마을에서 마녀가 살해당한 사건을 다루는 소설인 <태풍의 계절>은 어둡고 슬프며, 마지막 순간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총 8장으로 이루어진 <태풍의 계절>에서 사건의 진실을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여러 이유로 자기 자신만 돌보기도 지독하게 벅찬, 혹은 약물에 절어 있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이 인물들 대신 진실의 조각을 맞춰내야 하는 이는 독자다. 이 5개의 장은 모두 각 하나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하나의 단락 안에서 독백과 대화와 묘사가 모두 이루어진다), 마녀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베라크루스에서의 삶에 대해 알려준다. 읽다 보면 온갖 악취와 끈끈한 더위, 감출 수 없는 가난이 책장에서 배어나온다. 이 땅에서는 생리부터 출산까지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일생일대의 실수가 된다. 여성에게도, 성소수자에게도.

페르난다 멜초르는 베라크루스에서 실제 있었던 마녀 살해 사건을 바탕으로 <태풍의 계절>을 썼다. 멜초르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제 사건에서 살해당한 흑마법사는 남자였는데, 소설에서는 마녀로 바꾸었다. “남성을 공포에 떨게 하고 따라서 처벌받아 마땅한 강력한 여성의 상징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마을에서 여성이 살해당하는데,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여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진실에 매달리는 이는 다시 한번, 소설 속 누구도 아닌 독자다. 지독할 정도로 몰입하게 하고 끝내 고통과 슬픔을 안기는 소설.

349쪽

그 안에 귀금속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보물은 없다. 단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슴을 찢는 고통만이 어른거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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