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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간 김현주와 배우 김현주가 쌓아온 것들
김소미 2023-01-26

액션과 리액션 속에서 배우는 것들

- <정이>와 달리 드라마 <트롤리>에선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결이 돋보인다. 혜주(김현주)를 자신의 고통을 소리내어 말할 때조차 선하고 연한 면이 도드라지는 인물로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 혜주는 자기한테 가시가 박혀 있는데 그걸 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빼 버리면 죗값을 다 치른 것처럼 홀가분하게 살아갈까봐 스스로 계속 아파하기로 한다. 윤리적으로 민감한 한편 10대 시절의 비극적인 경험으로 인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에 두려움도 분명 갖고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 이전에 형성된 본연의 모습은 또 다를 거라고 봤다. 원치 않게 힘을 잃어버린 혜주가 원래의 혜주 위에 오랫동안 덮인 그런 그림을 상상했다. <트롤리>는 나의 선택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세 상처를 줄 수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세상에서 너무 고통받은 한 사람에게 이제는 짐을 조금 내려놓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 드라마 장르의 경우 비슷한 일상과 시대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두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배역마다 사용하는 말투에 있어 작품별로 확연히 구분되는 연기를 보여준다. 가령 <지옥>,<언더커버>(2021), <왓쳐>(2019)에서 모두 변호사 역을 했지만 문장의 어미 처리 방식부터 다르다. 어떻게 접근하나.

= 캐릭터를 잡으면 일단 고유한 말투부터 생긴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트롤리>의 혜주처럼 자기 생각을 꺼내면서도 마음껏 확 펼치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악센트가 따라서 나온다. 같은 변호사라고 해도 법정처럼 제한적인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 한 매 순간의 리액션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면 가장 먼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영역이다.

- <신석기 블루스>(2004), 국가인권위원회의 옴니버스영화 프로젝트 <시선 너머>(2011) 출연 이후 <정이> 사이에 10년 이상의 간극이 있었다. 드라마 작업에 집중한 건 주어지는 캐릭터에 있어 드라마쪽에 좋은 기회가더 많았기 때문일까.

= 그렇다기보다 한동안 드라마만 들어왔다. 배우의 선택지는 우선 나를 먼저 선택한 작품들 속에 있기 마련이니까. 영화에 관해서는 신인 때 출연한 몇 작품들의 경험을 통해 사실 묘한 공포심을 품고 있기도 했다. (1990년대 말에 출연한) 필름영화 현장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던 데다 영화, 드라마, CF 등 여러 활동이 한데 겹쳐 나 자신이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참 많이 혼났다. 그게 몇번 반복되면서 필름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몸이 경직됐다. 일의 가짓수와 속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고 지금 생각해보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 2000년대 들어 연기에 매진하면서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벗고 빠르게 신뢰감을 쌓았다. 대하드라마 <토지>를 기점으로 트렌디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형사·법정물, SF까지 당대의 메인 스트림 장르를 언제나 흡수해 온 필모그래피의 소유자가 됐다.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시대에 딱 걸친 세대인데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부터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크고 두려워하는 성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결국엔 어떻게든 시대의 흐름에 융화되려고 노력해왔다는 점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시청자들의 유행에 민감한 TV드라마는 특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배우가 수행하는 연기 톤도 달라지게 된다. 지금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의 작품으로 새로운 자유도를 경험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내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진제공 오계옥

인간 김현주와 배우 김현주를 쌓아온 것들

- 19살 때부터 하이틴 잡지 모델로 활동을 시작해 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구가한 뮤직비디오 산업에서 주목받는 얼굴로 떠올랐다. 배우로서 진중한 인상을 남기려는 바람은 이때부터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인가.

= 그보단 취업에 가까웠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한데 생각이 없었던 편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애착을 갖고 열심히 한 면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 강한 물살에 휩쓸리듯 마구 떠다니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 돌부리에 머리를 딱 부딪힌 것처럼 정신이 들더라. 정말이지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번뜩 느꼈다. 공백기를 가지고 쉬게 된 것이 그즈음이다. (2000년대 초까지 쉼없이 달려온 김현주는 2006년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를 마무리하고 약 2년간 휴식했다.-편집자)

- 예술인과 직업인의 비중에 대해 염려해온 편인가.

= 굉장히 힘들게 고민해온 질문이다. 나는 배우 일을 계속해도 될까를 두고 긴 시간 무수히 갈등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결국은 다시 열의를 되찾기 위해 어떻게든 해보자고 노력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 과정의 반복 속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이제 겨우 4~5년 되었을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된 건.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상태를 잘 유지해보면 좋겠다.

- 지금의 균형감을 찾기까지 주로 어떤 시간을 보냈나.

= 나 자신에게 그저 시간을 많이 준다. 혼자 있음이 귀한 건 어릴 때부터 그랬다. 태생적으로 외로워지기 쉬운 성향인 것 같기도 하고. 최근 몇년은 일이 많아 바빴지만 사실 나는 자연인 김현주의 삶을 더 응원한다. 혼자 나를 채우는 일이 곧 비우는 일이라서다. 그래야 어느새 다시 새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는 내가 된다.

- 듣다보니 자연인 김현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궁금해진다.

=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고 많이 걷는다. 걷는 것도 중독이 되는 행위다. 우체국, 은행, 마트 등 혼자 잘 다니는데, 특히 마트에 갈 때 배낭을 메고 가서 가방에 딱 맞게 들어갈 만큼만 사오는 일이 좋다. 차 타고 가면 괜히 이것저것 더 쟁이게 된다니까. (웃음) 사교에는 큰 흥미가 없지만 어디 학원 같은 곳에서 만나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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