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인터뷰] ‘갯마을 차차차’ 신하은 작가에게 영향을 준 드라마 선배 작가는?

사진제공 tvN

어디든 작가는 자기 자신과 싸운다

그는 “혜진과 홍반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마다 사는 이야기로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었다”며 “조연들한테 한번씩 핀 조명을 받는 순간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하은 작가는 수많은 인물에게 각자의 서사를 부여하고 이를 16회 안에 적절히 안배했다. 2017년 데뷔해 공동집필 두편에 단막극 한편(<문집>)을 발표한 신인 작가가 해내기 쉽지 않은 작업이다. 조연이 많은 상황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동선을 잘못 계산하면 중간에 서사를 빼는 상황이 올 수 있고 그러다보면 작품이 산만해질 수 있다. 신하은 작가는 시놉시스를 쓰는 과정에서 인물 배분에 특히 신경 쓴다고 했다. “전체 16회를 나눠놓고 그 안에 여러 인물의 어떤 이야기를 등장시킬지 사전에 꼼꼼히 배분해둬요. <갯마을 차차차>에서 등장인물의 사연이 처음 계획한 대로 풀렸어요. 단 한 사람 조남숙은 아이와 관련한 서사가 없었는데 중간에 넣었어요. 남숙이 얄미운 캐릭터여서 좀더 사랑받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원래는 남숙한테 멀리 떨어져 사는 연하의 해군 남편이 있고, 그래서 마지막에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차청화 배우님한테 남편 기대하시라고 했는데, 나중에 죄송하다고 했죠. 하하하.”

굳이 분류하자면,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작품을 잘 쓰려면 작법 스타일이 규칙적이어야 하는 걸까. 조연이 주연인 대표적인 작품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도 계획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오전에 글을 쓰고, 점심을 잘 챙겨 먹고 다시 오후에 글을 쓰고 일정 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닫는다. 밤을 지새우며 불규칙한 생활을 하지 않는다. 신하은 작가도 작업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내놨다.

“계획적으로 대본을 쓰는 스타일에 가까워요. 회차에 신리스트를 짜고 나면 일정을 끊어서 하루에 몇신씩 써요. 예를 들어 열흘 안에 써야 하면 최소 8일 안에 하루 열신씩 쓴다고 일정을 잡아놓고 그대로 작업해요. 안 써지는 날을 대비해 하루 이틀 여분을 두죠. 반드시 최종 날짜를 지켜요. 드라마는 협업이라서 완벽할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뒤늦게 보여주기보다 제가 조금 아쉽더라도 일단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게 저한테는 효율적이었습니다.”

신하은 작가는 작업실은 따로 두지 않고 집에서 대본을 쓴다. 그는 “집이 집중이 더 잘되기도 하고, 내 몸을 챙겨서 어디로 데려다 놓는 게 시간을 쓰는 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눈을 뜨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책상에 앉는단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기 싫어질까봐 우선 몸부터 책상에 앉혀두고 컴퓨터를 켜고 작업물을 꺼내 읽다보면 정신을 차리게 된다며 웃었다.

장소가 어디든 루틴이 어떻든 간에 작가는 결국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드라마가 아무리 협업이고 소통이 잘되더라도 대본을 완성하는 건 결국 작가다. 모든 스탭과 배우가 현장에 있는 동안 작가는 혼자 작업실을 지킨다. 그런 면에서 집필하는 건 행복과 괴로움을 동시에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를 쓰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어떻게 즐거울 수 있을까. “드라마를 쓰는 것도 저한테는 덕질의 과정이에요. 제가 쓴 게 영상으로 구현돼 나올 것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과정도 즐거워요.”

사진제공 tvN

▼ 신하은 작가의 작품은 따뜻한데 날카롭다. 윤혜진-홍반장(홍두식)을 통해 남녀 관계 설정을 새롭게 한다. 공진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는다. 모두가 가족이다. 이런 시선은 작업실이 아닌 작가의 집 서재에서 나온다. 작가는 작업실을 따로 두지 않고 집에서 대본을 쓴다. 현대시를 전공한 그의 곁에는 늘 시집이 있다.

오랜 덕질을 드라마 쓰기로 완성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 키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드라마에서 처음이랄 수 있는 작품이 어릴 때 본 <여명의 눈동자>다. ‘철조망’ 신이 단편적으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김수현 작가의 주말 드라마를 보고 컸고, 중고등학생, 대학생 때는 노희경 작가, 인정옥 작가의 작품으로 그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 뒤 21세기 초반에 ‘로코’(로맨틱 코미디) 부흥기를 다 즐겼다. “<아르곤>을 하며 이윤정 감독님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드라마 키즈’였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그는 지금도 드라마를 챙겨보고, 좋아하는 작품은 대본집도 산다고 했다. 작가로 데뷔한 뒤 “드라마를 보면서 마냥 좋은 마음에 부러운 마음이 더해졌다”고 한다. “와, 정말 잘 쓰시잖아요. 임상춘 작가님은 천재인 거 같고….”

드라마를 사랑하는 작가답게, 여러 작품을 두루 보면서 아쉬운 점을 자신의 작품에서는 바로잡으려 한 노력이 보인다. 신하은 작가의 작품은 투박함 속에 따뜻함이 있고, 거기에 한 가지가 더 담겨 있다. 날카로움이다. 투박해 보이는데 고정관념 등을 깨부숴나간다. <갯마을 차차차>를 다시 보면 처음에 따뜻함에 놓친 다른 게 보인다. 유사가족, 남녀의 관계 설정 변화, 성소수자의 마음을 사랑하는 방식 등이다. 혜진이 고생한 자신에게 선물한다며 500만원짜리 목걸이를 사는 장면이 나온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이를 본 홍반장이 그의 씀씀이에 실망하거나 이를 계기로 다툴 법하다.

작가는 홍반장한테 이런 대사를 부여한다. “네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너한테 선물하는 건데 왜 내 눈치를 봐.” 신하은 작가는 “여자가 더 잘났다고 해서 남자가 자격지심을 갖게 그리는 것을 깨고 싶었다. 능력 있는 여성이 자기를 위해 소비하면서 왜 눈치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초이한테 사랑 고백을 받은 여화정(이봉련)이 대답하는 장면은 다시 보기를 권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유사가족을 얘기하는 부분이다. <갯마을 차차차>에서는 모두가 가족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가 된 홍반장을 온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키웠다. 혜진과 ‘새엄마’(로 표현하겠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표현하는 데도 여느 드라마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것과 다르다. 여기서는 ‘새엄마’가 혜진과 서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대로 가져가며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신하은 작가는 “실제로 사회가 그렇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정상가족 이런 것 깨져버리고 모든 형태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존중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담았다. 가족애라는 게 혈연이 아니어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것, 혈연보다 뒤늦게 맺어진 가족이 더 가족같이 느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반장이 반말하는 문제도 영리하게 잘 정리했다. “모든 사람한테 다 반말하는 것으로 했어요. 그리고 혜진이 부모님한테 그 반말 때문에 때론 한소리 듣게 했죠.” 방영 당시 화제가 됐던 장면에서 마지막 대사는 연출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너 왜 자꾸 나한테 반말해” 하는 혜진 아버지의 질문에 홍반장은 말한다. “친근하고 좋잖아요.” 이때 홍반장을 몰래 부른 혜진 아빠의 대사는 이렇다. “너나 좋지, 이 ××야.”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