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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울메이트’ 민용근 감독, “파편화된 이미지에 감정을 담았다”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3-03-23

<혜화, 동> 개봉 이후 12년 만에 민용근 감독이 장편영화를 내놓았다. 그사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옴니버스영화 <어떤 시선>에 참여했고, 그 인연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다룬 책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을 쓰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게 그에겐 ‘사이드잡’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준비하던 영화가 무산되면서 “영화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무렵, 그는 중국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리메이크작 연출을 제안받았다.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의 운명적인 우정을 담은 <소울메이트>를 만들면서 영화를 사랑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오랜만에 다시 느낄 수 있었다는 민용근 감독을 만났다.

- 전체 흐름은 원작과 거의 흡사하지만 구체적인 배경은 한국에 맞게 각색됐다.

= 스토리 기획 단계에서 강현주 작가와 제주와 서울 두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자는 전체적인 세계관을 함께 정했다. 그다음엔 시대 배경을 정해야 했다. 강현주 작가가 시나리오 1~2고를 썼고 내가 3고를 썼는데, 점점 이야기가 디벨롭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전혀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결말을 가진 이야기였다. 각자 다른 버전의 시나리오를 쓴 뒤 취할 것은 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결정됐다. 내가 쓴 시나리오에서는 73년생의 미소와 하은, 80년생의 미소와 하은이 나오기도 했다.

- 최종적으로 88년생의 이야기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앞의 두 이야기도 의미가 있었지만 다루고 있는 시대가 길어서 3대의 스토리로 퍼지는 느낌이 있었다. 좀더 미소와 하은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있었고, 그림 모티브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서 지금 버전이 됐다. 시대적으로도 73년생이나 80년생의 과거는 이미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뤄졌다.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폴더폰 문화와 미니홈피 등 접점이 있는 부분들도 있어서 지금 버전으로 결정했다.

- 일찌감치 김다미 캐스팅이 확정됐지만 캐릭터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상대 배우를 찾는 과정이 오래 걸린 것으로 안다.

= 김다미 배우가 <이태원 클라쓰>를 촬영하는 동안 시나리오를 썼다. 다미씨는 미소도 하은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역할이 이른바 센 캐릭터가 많다 보니 하은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인물을 연기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배우가 미소 캐릭터의 결핍과 자유분방함을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고, 최종적으로 미소 역할을 하게 됐다. 소니씨는 <악질경찰>을 보면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굴과 눈빛에 다양한 서사가 담겨 있어서 영화 매체에 굉장히 잘 어울렸다. 우연히 서너번 만날 일이 있었는데 생각도 깊고 굉장히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 느낌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가 소니씨에게 하은 역을 제안했다.

- 김다미, 전소니, 변우석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 다미씨와 소니씨는 다른 연기 방식을 갖고 있는데 그게 캐릭터와 맥락이 닿아 있는 부분이 있었다. 미소는 자유분방하고, 다미씨도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다. 시나리오 리딩이나 리허설 때는 감정의 10~20%만 쓰다가 슛이 들어가면 사냥꾼이 무언가를 포착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적중시킨다. 하은 캐릭터는 오랫동안 감정을 눌러담고 있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인물이다. 소니씨는 감정을 먼저 표현하지 않고 물밑 작업을 하듯 에너지를 응축하며 연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캐릭터를 보는 시각이 매우 섬세하다. 진우에겐 변우석의 선한 눈매가 꼭 필요했다. 진우에겐 진우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에 순수했던 측면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성인이 됐을 때 보여주는 퀭한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이었다.

-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 논문 주제가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적인 연출에 대한 실천적 연구’였다.

=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앞뒤 맥락 없이 등장하는 시적인 문장이 창작에 굉장히 좋은 지침이 됐다. 한획 한획이 모여 그림이 되고, 단문이 모여 글이 되고, 한숏 한숏이 모여 영화가 된다. 현실에 있는 요소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한 것들을 어떻게 재조직하느냐에 따라 전체의 뉘앙스가 달라진다는 개념이 와닿았다. 방송 일을 하다가 오랜만에 단편영화 <도둑소년>을 찍을 때 이 개념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무표정의 얼굴, 소년의 손을 파편화시켜서 재조직했을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나올 수 있을까? <혜화, 동>과 <소울메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클로즈업이 많이 쓰였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클로즈업은 영화적이지 않다. 미묘한 뉘앙스만 있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쌓였을 때 전체가 만드는 감정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것 같다. 또 “감정이 사건을 이끌어가게 하라.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문장이 내게 굉장히 중요했다. 사실 요즘엔 그 반대로 많이 한다. 대부분의 스토리 기획이 아이템 위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흥미와 자극의 요소는 있는데 자칫 잘못 만들면 감정이 다 빠져버린다. 나 역시 스토리 작업을 하다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소울메이트>는 후반부의 감정을 위해 나머지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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