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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범죄도시3’, 이준혁의 여유롭지만 저돌적인 ‘빌런 주성철’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3-05-30

- 마동석 배우의 전화 한통으로 <범죄도시3>에 출연하게 됐다고.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관한 설명도 듣지 않고 섭외에 응한 셈인데.

= 오히려 운명 같았다. 회사 동생, 그리고 매니저와 여행차 강화도로 가고 있을 때였다. 우리끼리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직업적인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동석 선배가 전화를 해선 <범죄도시> 세 번째 시리즈의 빌런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범죄도시2>도 개봉하기 전이라 <범죄도시3>가 만들어지는 줄도 몰랐지만, 하겠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재밌는 타이밍이었다. 마치 내 고민에 대한 해답을 곧바로 얻은 것 같았다. 한편으론 왜 나일까 싶기도 했다.

- 왜 본인이었던 것 같나.

= 안 그래도 현장에서 “왜 저예요?”라고 물어봤다. 마동석 선배와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내 작품을 꾸준히 봤고, <야구소녀>를 통해 변화를 증명해냈다고 느껴 꼭 같이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정말 감사했다.

- 빌런 주성철을 들소에 비유하며 소개한 게 재밌었다. 특유의 무게감과 여유 때문이었을까.

= 그런 것도 있고, 마주하면 위협적이지만 어떤 면에선 그렇지 않다는 양면적인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돌진할 땐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잘 컨트롤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 그 밖에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감이 있고, 실패해본 적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였나.

= 주성철은 매사 당당하다. 뭔가에 실패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마약 거래를 해왔기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경찰을 살해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부패한 세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좋은 머리로 권력을 십분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 끼치게 무서울 때가 많았다. 영화에서 주성철은 큰 거래를 앞두고 있는데, 아마 그 순간이 그의 전성기였을 거다. 이를테면 <범죄도시3>에서의 상황은 주성철의 ‘운수 좋은 날’이었던 거지. (웃음)

- 주성철에게 몰입하기 위해 삶의 패턴을 바꾸기까지 했다고.

=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살았다. 운동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하고 평소에도 거칠고 강한 말투를 계속 시도해봤다. 주성철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그가 할 만한 이야기를 해보고. 이런 과정이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됐다.

- 19kg을 증량했다. 영화 개봉 전부터 달라진 외향이 크게 화제가 됐는데, 체중을 늘린다는 조건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나.

= 원래 여러 가지 안이 있었는데 마동석 선배와 감독님이 확고하게 증량을 원했다. 한편에선 매끈하게 나오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고 어쩌면 성철은 그래도 됐을 인물이지만, 결과물을 보니 증량하길 잘했다 싶다. <비밀의 숲>의 동재처럼 샤프하게 나왔다면 과연 마동석 선배의 상대가 됐을까.

- 증량한 배우들에게서 ‘자신의 가용 에너지가 달라지고 내뱉는 숨까지 달라진다’는 소회를 종종 들었다. 비슷한 변화가 체감되던가.

= 맞다. 그런 느낌이었다. 가진 에너지가 확실히 달라질뿐더러 주변의 반응도 확 바뀌었음을 느꼈다. 가령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가 그 사람보다 훨씬 크면 상대가 주춤할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순간이 더러 있었다. 친구들도 증량한 날 보고 엄청 놀라더라. (웃음)

- 커진 몸으로 액션 연기를 해보니 어땠나. 몸의 움직임이 확연히 달랐을 텐데.

= 사실 내가 한 액션은 날것의 것이 대부분이라 미리 정확하게 합을 맞춰 연습하진 않았다. 대신 덩치에 맞게 무게감 있는 액션을 많이 준비해주셨고, 액션스쿨에 갈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연습했다. 싸우는 것보다 상대를 때리고 발로 짓밟는 연기에 익숙해지는 게 훨씬 어려웠다. 미안해하며 어설프게 하는 것보단 제대로 해서 빨리 끝내는 게 낫기 때문에 할 때 확실히 하려 했다.

- <범죄도시3>의 두 빌런 중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는 일본도를 주로 사용하는 반면 주성철은 자신의 주먹을 주 무기처럼 사용한다.

= 그 자체가 자신감이 넘친다는 방증이라 여겼다. 사실 주성철이 무력을 쓸 일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인맥이 넓고 부리는 사람도 많으니 여차하면 전화 한통으로 지시하면 끝날 일이다. 필요시 간단한 무기를 챙길 수는 있겠지만 리키처럼 매번 칼을 들고 다니는 유형의 인물은 아니다.

- 과거에 복싱한 경험이 액션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 확실히 도움이 됐다. <사우스포>를 보고 너무 좋아서 미리 배워놓은 건데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웃음) 얼마 전 디즈니+ 시리즈 <비질란테>를 촬영할 때도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과거 노력의 대가를 얻는다 여겨질 때 작게나마 내면의 행복감이 채워지곤 한다.

- <범죄도시> 시리즈의 다른 빌런들과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주성철은 정장을 입는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스타일링에 신경을 많이 쓴 편인가. 피부톤도 본인의 것보다 몇 단계 어둡게 표현했다.

= 태닝을 엄청 했다. 분장까지 했지만 아쉬움이 좀 남는다. 개인적으로 피부가 더 까맣고 지저분하게 나왔으면 했다. 의상은 감독님과 마 선배, 의상팀의 의견이 종합된 결과다. 주성철의 생활 반경을 떠올렸을 때 날렵하게 뛰어다니기보다 격식을 갖춰야 할 때가 많을 것 같았고, 정장을 입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 듣다보니 주성철의 첫 등장 신이 떠오른다.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눈앞의 상대를 가격하고 그의 얼굴과 옷에 피가 튀긴다. 그런 상황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흰 정장을 갖춰 입고 나타난 건데, 그 자체만으로 주성철의 성정이 파악되는 듯했다.

= 그 오프닝 신을 거의 마지막에 찍었다. 빌런이 첫선을 보이는 장면이라 현장에서 다들 예민해져 있었고 정말 최선을 다해 찍었다. 신경을 많이 쓴 신이었다. 그 밖에 주성철이 마석도를 처음 만나는 장면도 그랬다. 마주했을 때 성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작아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여러 고민 끝에 완성한 신이다.

- 첫 악역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악역을 맡은 적은 없었다. 관객이 배우 이준혁의 변화를 기대하는 만큼 본인이 느낀 바도 클 것 같다.

= 이만큼 시시각각 달라지는 빌런은 처음이다. 여유 있다가 저돌적이었다가, 공격하다 곧바로 당하기도 하고. 신 바이 신으로 보면 주성철은 묘하게 다 다르다. 때로 인물의 그런 변주가 부담돼서 잠 못 이룬 적도 있고, 꿈에 이상용 감독님이 나온 적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현장에서 더 뜨거웠고 애정도 많이 남는다.

- 매번 새로운 모습에 도전하는 것 같다. 일례로 지난해 공개된 오디오 무비 <리버스: 기억과 진실>을 들 수 있는데, 오직 목소리로만 연기를 펼쳤다.

= 어릴 때부터 성우 분들의 연기가 매력적이라고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성우가 아닌 내게 작품 제의가 들어오다니 신기했다. 말한 것처럼 해보지 않은 영역에 대한 궁금증은 항상 있어서 출연을 결정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완성본을 눈감고 들었는데 예상보다 사운드가 훨씬 좋더라. 요즘 영상 매체를 너무 많이 봐서 그에 대한 피로도가 있었는데 눈을 감고도 장르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이 컸다.

- 청자나 관객 입장에서의 경험까지 고려하는 편인가.

= 무척 중요하다. 결국 나도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까.

- 영화, 드라마 말고 외적인 활동도 눈에 띈다. 세상을 떠난 반려견 팝콘을 주인공으로 2021년 <안녕 Popcorn>이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제작 전반을 살피고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등 한 콘텐츠의 전체 디렉팅을 맡아보니 어떻던가.

= 우선 무료라 그런지 내가 한 모든 작품 중 가장 별점이 높다. (웃음) (<안녕 Popcorn>의 앱스토어 별점은 4.9다.-편집자) 상업 작품에 참여할 땐 아무래도 내 색깔을 드러내는 데에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부담감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녕 Popcorn>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팝콘이라는 강아지의 작은 모험담이지만 이걸 만들고 플레이하면서 슬픔과 동시에 안정감을 느꼈다. 게임 리뷰를 보니 생각보다 그런 이들이 많더라. 떠나보낸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며 ‘난 잘 지내고 있어’라고 말하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감동받았다.

- 이후 <안녕 팝콘>이란 책을 낸 것도 다른 사람들과 팝콘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나누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건가.

= <바빌론>에서 ‘스타는 죽더라도, 그의 영화를 틀면 다시 살아난다’는 대사를 하지 않나. 팝콘도 누군가 계속 게임을 플레이하고 책을 읽어준다면, 적어도 그 세계에선 계속 살아 있는 거라 생각한다. 책의 인세는 전부 기부할 예정이다. 떠난 뒤에도 팝콘이 계속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이대로 팝콘이 어디론가 더 나아간다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 차기작은 <비질란테>다. 대학생 지용(남주혁)을 영웅으로 프로듀싱하는, ‘비질란테’의 설계자로 등장한다는 컨셉이 흥미롭다.

= 그룹의 부회장으로서 부유한 사람인데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다 실제로 히어로로 활약할 수 있는 지용을 만나고 그를 서포트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좀 사이코패스적인 면이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 퀸의 남자 버전이랄까. 이런 느낌의 캐릭터를 연기해본 적이 없어서 주성철과는 확실히 다른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 앞서 여러 영화를 예시로 드는 걸 보면서 역시 시네필답다고 느꼈다. 남은 한해 기다리는 작품이 있다면.

= 당연히 <오펜하이머>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킬리언 머피가 이 매력적인 인물을 연기하는데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니. 말이 안되는 조합이지 않나. (웃음) 사실 영화를 본 뒤에 보려고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후반부의 몇십 페이지를 좀 남겨뒀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신작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도 기다리고 있고 마지막으로 <범죄도시3>를 꼽고 싶다. 영화 <더 메뉴>에서의 ‘치즈버거’ 같은 영화랄까! <범죄도시3>처럼 즐길 수 있는 작품은 우리에게 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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