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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서사가 되는 영화 속 음악과 치열한 팜도그, 제 76회 칸영화제
김소미 2023-06-02

3.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충격과 중독적인 사운드

<애스터로이드 시티>

송경원 중반부까지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폴른 리브스> 이전에 조너선 글레이저의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있었다. 기자들끼리 내부적으로도 다들 1위로 꼽지 않았나. 형식적인 충격으로는 경쟁부문 중에서 이 작품이 1등이다. 현대미술 같다. 오프닝에서 검은 화면에 사운드만 계속 나오다가 갑자기 빨간 화면으로 물든다. ‘지금 뭘 하자는 거지?’ 싶은 순간 아주 화창한 날씨 아래 강가에서 소풍 중인 가족의 모습이 펼쳐진다. 아우슈비츠 영화에서 형식 실험을 한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 재현의 문제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김혜리 <사울의 아들>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듯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두고도 카포의 트래블링숏을 말하는 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소미 악의 평범성, 정확히는 악의 진부함에 대해서 계속해서 감각을 환기시키며 차갑게 주입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주제를 미적으로 해부한 홀로코스트 영화가 이제는 나올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아우슈비츠 담장 너머에 사는 부유한 지휘관 가족들의 일상이 그 유토피아적인 겉면과 달리 실상은 얼마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회피와 기만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폭로하는 장면들이 선명한 충격을 준다.

송경원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이어서 이야기해볼 수 있는 경쟁부문 영화들의 주요 경향 중 하나가 영화음악의 남다른 존재감이다.

김혜리 유행인가 싶을 정도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음악이 영화를 서포트한다기보다 하나의 독자적인 플레이어가 되어 영화의 다른 요소들과 동등하게 합주한다.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경쟁작 중 자기만의 화법을 발명했다고 말할 만한 영화인데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공연 같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풀밭에서 소풍 중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가족의 롱숏이다. 모두가 모여 있다가 여자와 소녀들이 먼저 줄지어 이동하고, 그다음엔 남자와 소년들이, 마지막으로 젖먹이를 안은 소장의 아내(잔드라 휠러)가 카메라에 잡힌다. 이를 보며 2차대전 당시 유대인 가족들이 성별과 연령으로 나뉘어 찢어져 수용됐던 역사를 자연히 떠올리고 있었다. 요컨대 블로킹과 구도, 동선과 음악이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어 비언어적으로 의미를 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소장 가족의 반려인 검은 개가 있는데 이 개의 움직임 역시 리듬감을 만들고 관객의 시선을 움직이는 기능을 정교하게 해낸다. 올해 오스카에서도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음향적 음악이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받아 트렌드의 변화를 감지하게 한 바 있다. 한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메모리아>에서 던진 “사운드도 시네마인가?”라는 질문에 올해 칸 영화들이 각기 답을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송경원 정확히 말해 음악은 아니지만 왕빙 영화에서도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미싱 소리의 감옥 같은 영화였는데, 계속 듣다보면 그런 소음조차 하나의 스코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다가온다. 극적인 터치가 배제된 앰비언스 사운드가 마치 의도를 가진 표현처럼 와닿는 경험을 했다. 음향의 음악화라고 할까. 공통적으로 음악과 음향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들이 보인다.

김소미 반대로 영화음악이 점점 음향효과로서 재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클럽 제로>와 <아나토미 오브 어 폴>에서 쓰이는 미니멀한 음악은 프레임 내부에 존재하는 서사적 장치인 동시에 화면 밖에서 영화의 편집점, 분위기 형성 등에 기여하는 기술로서도 기능한다. 조금 밀어붙이자면 감독들이 영화의 위기가 대두되는 이 시대에 극장 경험이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공통적으로 질문하는 과정에서 청각 요소에 대해서도 재고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각적인 미장센만큼 청각적으로 영화적인 경험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일 수 있다.

김혜리 음향 얘기를 한 김에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엄청나게 많고 빠르고 매너리즘적인 대사는 알아들으라고 쓴 대사가 아니라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쓴 대사 같다. 아까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형식주의의 극한이라고 말했는데 대사를 이렇게 쓰는 것도 내용에 대한 관심에서 관객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가 하면 <메이 디셈버>의 토드 헤인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스코어 위에 지어진 영화”라는 표현을 썼다.

4. 치열한 팜도그

<클럽 제로>

김혜리 공식 상영작 속 개 연기 중 최고를 뽑는 팜도그상이 있다. 보통 개는 영화 속 인물의 반려견으로 등장한다거나 특정한 서사적 기능을 담당하는 존재인데 올해 칸의 특이한 점은 우선 개가 나오는 영화가 나오지 않는 영화보다 많을 정도로 빈도가 높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개들이 배경의 일부도 아니고 액션의 주체도 아닌 중간쯤에서 미묘한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검은 대형견과 <클럽 제로>의 부잣집 비글이 그런 예다.

김소미 <아나토미 오브 어 폴>에서도 보더콜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고일 수도 있고 살인일 수도 있는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지난한 법정 싸움이 이어지는데,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의심과 작은 거짓말, 그로 인한 피로로 지쳐갈 동안 모든 것을 목격한 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대로다.

송경원 <어바웃 드라이 그래시스>에는 개가 한두 컷 나오는데 인상적이다. 눈덮인 길에서 자는 개의 모습이 주인공의 상황과 겹쳐 보인다.

김혜리 <퍼스트 카우>를 비롯한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제는 동물을 찍는 태도와 서사적 쓰임새에 따라서도 영화를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비단 생태주의가 부상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점점 다양하고 복합적인 주체를 다루면서 영화가 동물을 어떻게 재현하느냐도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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