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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잠’ 유재선 감독,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워질 때
김소미 2023-06-02

단란한 부부가 다가올 출산을 기다린다. 배우인 남편은 TV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진로 재설정을 뒤늦게 고민하고, 의기소침해진 파트너를 독려하는 아내는 티나지 않게 경제권을 책임지고 있다. 어려움이 없지야 않지만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생활력 있는 젊은 부부의 집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어느 늦은 밤, 잠에서 깬 남편이 덩그러니 앉아서 “누가 들어왔어”라고 중얼거리기 전까지는. <>은 밤마다 잠에 취해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남자 현수(이선균)와 그의 증세가 몽유병인지 빙의인지 의심하기 시작한 여자 수진(정유미)의 이야기를 다룬 한밤중 스릴러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연출부, <옥자> 조감독을 거쳐 루이스픽쳐스와 손잡은 유재선 감독은 신인감독의 1~2번째 영화를 상영하는 비평가주간에서 첫 데뷔작을 선보이게 됐다.

- 수면 중 보이는 이상행동을 결혼 생활의 풍경 속에 스릴러로 풀어냈다. 처음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 2019년 6월부터 9월 사이에 시나리오를 썼다. 중요한 목표는 재밌는 장르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고 당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사를 중첩시키게 됐다. 과거엔 결혼 제도를 막연히 비관적으로 생각했다면, 막상 결혼 준비를 하게 되자 한결 낭만적인 가치관을 투영하게 되더라.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서울 순 있지만 현수와 수진의 관계만큼은 서로를 더할 나위 없이 믿고 의지하는 베스트프렌드이자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 이런 두 남녀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문제를 개인이 아닌 하나의 공동체로 극복해가는 모습을 그렸다.

- 후반부로 갈수록 한국 무속 신앙에 얽힌 오컬트적 요소도 핵심적인 소재로 기능한다. 겁에 질린 수진은 현수의 상태를 의심하지만 동시에 가족의 결속에 대한 집요한 믿음도 버리지 못하면서 긴장이 팽팽해진다.

= 보통 이런 장르의 영화는 주인공이 위협의 대상이나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거나 탈출하려고 애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에선 가장 공포스럽고 두려운 존재가 가장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이 딜레마를 만든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부부의 괴로움은 서로로부터 도망가지 않기로 선택하면서 발생하기도 한다. 같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공포의 대상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돌파할 수밖에 없다.

- 스릴러이자 오컬트이면서, 무엇보다 둘이라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연인의 고난 가득한 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 실제로 배우들의 연기에서 시니컬한 느낌이 묻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생각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자들이어야 했다. 연기할 때 작은 제스처에서라도 한숨을 쉬는 것 같은 호흡이나 먼 산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 처리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달했다.

- 영화를 총 3장으로 구성한 이유는 뭔가.

= 처음 자신에게 부여했던 프로덕션의 조건이 모든 이야기가 한 장소에서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소의 한계를 내러티브적으로 극복해보고 싶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변하는 기점을 중심으로 세개의 챕터를 중심으로 풀면서 효율과 재미의 문제를 고민했다.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의 시간을 점프하면서 그사이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의 뉘앙스를 관객이 능동적으로 추측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의 경우 1장은 수진과 현수의 따뜻하고 아늑한 집 안, 그들의 사랑을 보여준다. 2장은 조금 더 푸르고 차갑게 폐소공포를 유발하는 분위기다. 3장은 무속적인 소품을 활용해 일종의 영화적 허용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수진의 감정만큼이나 환경 역시 과감하게 뻗어나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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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