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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병> Tropical Malady
2004-10-12

타이, 2003,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오후 2시, 메가5

타이의 신성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열대병>은 무척이나 낯선 영화다. 영화의 절반은 병사와 소년의 수줍은 로맨스에 할애된다. 두 사람은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마을을 거닐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영화를 보러가고, 가라오케에서 수줍게 노래를 부른다. 완벽하게 따사로운 퀴어 영화의 동화(童畵)속에서 펼쳐지는 행복한 이미지들을 뒤로 하고 밤이 찾아온다.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화면이 정지한다. 영사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의아해질 무렵, 영화는 별안간 전반부와 전혀 다른 세계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병사는 어두운 정글을 헤매이며 (아마도 사랑하는 소년을 잡아간)호랑이의 유령을 쫓아다니고, 위라세타쿤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글을 조명 하나 없이 무성영화처럼 찍어낸다. 전반부의 드라마와 후반부의 판타지를 연결하는 이상한 순환구조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 테지만, 퀴어영화와 타이 민담이 뜬금없이 뒤섞인 이 아방가르드한 실험영화는 불가해하면서도 매혹적인 영화적 경험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영화를 공부한 위라세타쿤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영화감독으로 팝 아트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을 꼽고 있는데, 그것은 이 불가해한 영화가 타이 영화의 전통으로부터 나온것이 아니라 서구 아방가르드 영화의 숨결을 거꾸로 아시아로 가져온 드문 케이스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열대병>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며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는데, 심사위원장인 타란티노는 "소수 심사위원들의 열렬한 지지로 수상을 결정하게 되었다"라는 설명으로 시상에 대한 심사위원단들의 논란도 있었음을 밝혔다. <열대병>은 영화를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틀속에서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경험일테지만, 낮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관객에게는 여러번의 관람에 흔쾌히 도전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품이다.

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