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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포옹> Lost Embrace
2004-10-13

아르헨티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2004, 감독 다니엘 부르만, 오후 5시, 부산 1관

아르헨티나 청년 아리엘은 홀로코스트를 피해 폴란드에서 탈출한 유태인 가문의 자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갓난 둘째아들을 두고 이스라엘 군대에 자원입대한 뒤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기가 청년이 되도록, 한마디 변명도 없이. 쇼핑몰에서 속옷가게를 하고 있는 어머니도 아버지 이야기는 피하기만 한다. 아리엘은 아버지가 떠난 사연을 알고 싶어서 유럽으로 가려고 하지만, 또다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가 돌아온다. 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한 고민과 불만을 떠안길 수 있었던 아버지. 그의 비밀을 알게 된 아리엘은 골목길을 달리고 달려서 화해를 향해 뛰어간다.

서른 남짓한 나이만큼 경쾌한 영화를 만든 다니엘 부르만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로부터 사연을 듣고 지나가는 행인의 단편까지 모아 <잃어버린 포옹>을 완성했다. 식민지로 개척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유독 유럽 이민이 많은 아르헨티나. 아리엘은 가게 수만큼이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쇼핑몰에서 지내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뿌리를 고민한다. 그의 할머니는 아직도 유럽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손자인 아리엘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할까. 부르만은 젊은이에겐 매우 무거울 수 있는 이런 고민을 재빠른 수다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부담가지 않게 소화했다. 어쩌면 진지한 문제를 진지하지 않아 보이도록 파고드는게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무게 잡는 장면이라고는 거의 없는데도 주연 다니엘 엔들러가 올해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탄 건 그때문일 것이다. 또다른 다니엘인 부르만도 심사위원 대상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