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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기자시사
오정연 2007-06-05

일시 6월5일 오후2시 장소 명동 CQN

이 영화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수묵화처럼 아름다워서 중국 화폐에 나올 정도인 산샤는 양쯔강 중상류의 지명이다. 1993년 이곳에서는 거대한 댐건설이 시작됐고,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는 현재 진행중이다. 2000년된 마을이 2년 만에 물에 잠기는 이곳은, 사방에서 건물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까지 솟은 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스틸 라이프>는 사라짐이 일상인 장소에 도착한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다. 16년 전 자신을 떠난 아내와 딸을 찾아온 남자 한산밍을 따라 3분의 1, 2년째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온 여자 션홍을 따라 3분의 1 가량이 진행된 영화의 마지막 3분의 1은, 한산밍이 가족과 해후하고 또다른 일감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묘사한다. 결국 두 남녀는 서로 어떠한 연관도 맺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변한 세상이 다시 자신으로 하여금 변화를 강요하는 패턴에 익숙해진 둘의 외로움은 영화의 서글픈 정서를 완성하는 강력한 공통분모가 되어준다. 산샤의 노동자들을 화폭에 담는 화가를 소재로 다큐멘터리 <>을 찍으러 산샤에 도착한 지아장커는 동시에 극영화 <스틸 라이프>를 완성했고, 이 영화로 지아장커는 2006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00자평

‘산사(三峽) 댐 건설’의 현장은 오늘날 중국의 축도(縮圖)다. 삶의 공간을 수몰시키는 ‘근대화’는 동시에 그 수몰의 현장을 관광 산업의 대상으로 ‘풍경화’시킨다. 지아 장 커의 카메라는 그 풍경화의 ‘소음(관광 유람선의 확성기)’에 저항하며, 그 소음 속을 살아가는 연약하지만 질긴 삶의 모습을 뒤쫓는다. <스틸 라이프>는 근대화-풍경화의 ‘미친’ 질주(폐건물이 로켓이 되어 날아가는 초현실적 공간)에 저항하는 한 편의 ‘정물화’이다. 그 저항은 과거-현재-미래를 한 순간으로 압축하는 속도의 영도(모든 것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잠재성의 공간)를 향한다. ‘산사’는 ‘중국’이기만 할까? 그곳은 한국이고, 아시아고, 전 세계 모든 소수적인 삶의 공간이다. 지극히 ‘미니멀’한 화법으로 ‘온 세계’를 담아내는 지아장커, 화이팅!!!. 변성찬/ 영화평론가

물에 잠긴 과거, 부서지는 현재, 뿌연 안개로 흐려진 미래. 그것은 ‘산샤’의 시간. 초라한 사내가 16년 전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와 딸을 찾아 산샤로 들어온다. 한 여자가 2년 동안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산샤를 방문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단 한차례도 스쳐지나가지 않는다. 영화는 절절한 사연을 품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산샤의 고단한 시간을 살아내며 선택의 순간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낸다. 누군가는 허망함을 딛고 사라짐을 받아들이며, 누군가는 그 사라짐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낼 것이다. 어제 있던 건물이, 사람이, 가치가 오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 빠른 변화의 시공간은 웬일인지 역동적이지 않고 더 이상 나아가길 거부하며 그 자리에 멈춰선 느낌을 준다. 영화는 그렇게 찍는다. 죽기도 전에(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유령이 되어버린 풍경. 어쩌면 그것은 산샤의 마지막 저항. 카메라는 인물들이 프레임 밖으로 나간 후에도 풍경의 소리 없는 저항을 응시하는 마지막 증인처럼 그렇게 가만히 지켜본다. 하지만 이처럼 흐느끼듯 사라져가는 시공간 속에는 검게 그을린 단단한 육체로 자본의 바람에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노동에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 환경과 역사에 대한 섣부른 감상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사라짐은 너무도 아픈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살아야만 한다. 죽어가는 풍경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건네준 가르침. 남다은/ 영화평론가

격변하는 현대사 속에서 사는 자들이 겪는 특이한 파토스의 경험이 있다. 그들은 변화 속에서 대규모로 자행되는 재해와 같은 망각에 맞서야 한다. 자연의 힘을 거스르는 거대한 댐 공사와 같은 인공의 사업 속에서 작은 인간들이 쌓아놓은 삶의 세부는 영화 속 화면과 같이 아웃 포커싱된다. 영화는 각각의 아내와 남편을 찾아 샨샤로 온 두 남녀를 보여준다. 그들은 한편에서는 무너지는 더미들 속에서, 한편에서는 쌓아올리는 발전 속에서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을, 영영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조우한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인 시간들을 넘어선 곳에 어떠한 신비가 작용하고 있다. 이 신비, 압도적인 자연과 압도적인 인공이 나날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산샤에 출현한 이 사소하고도 홀연한 신비 앞에서 무너뜨리고 쌓아올리는 인간의 시간이란 참으로 묘연해진다. 송효정/ 영화평론가

<소무>에서 <세계>까지, 지아장커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동시대 중국사회를 목격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급박한 변화를 강요당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어리숙하고, 연민을 자아냈으며, 그들을 통해 우리들은 그림처럼 화려한 당대 중국영화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중국 인민의 그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아장커의 다섯번째 장편 극영화 <스틸 라이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한산밍과 션홍. 그간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얼굴을 비췄던 배우들이 연기하는 두 명의 주인공들이 겪는 상실감은 연민이 아닌 공감의 대상이다. 백지를 달러로, 유로화로, 인민화로 바꾸는 마술쇼, 자신이 사는 집이 내일 철거된다고 해도 두말없이 비켜줘야 하는 주민들, 다소 위험하더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일감이 있다면 기어이 얕은 뿌리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 노동자들…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마다 현대 자본주의의 기막힌 은유가 될 법한 상황이 산재한 그곳, 산샤는 현재 한국사회와도 그리 다르지 않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선에 담긴, 동세대인을 향한 뜨거운 손길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정연/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