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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유산>
이주현 2009-10-13

<유산> The Legacy 베르나르 에몽│캐나다│2009년│96분│월드 시네마

<유산>은 매우 건조한 영화다. 마치 정물화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정적이다. 각종 효과는 최대한 배제한 채 인물에만 집중한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고향을 지키며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돌봤던 의사 레인빌은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팍팍한 도시에서의 삶이 버거웠던 디옹은 후임을 구하던 레인빌을 만나 조용한 소도시 노르메탈에 발을 들인다. 레인빌은 자신이 늘 해왔던 마을 사람들의 방문 진료를 디옹에게 부탁한다. 조용한 소도시의 조용한 일상을 예상했던 디옹은 그들의 삶이 곧 바스라질 낙엽 같다는 데 놀란다. 겉으로 보이는 조용한 일상은 그들이 자존심이라는 가면으로 가려 만든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돌보던 마을 사람들이 한명씩 생을 마감하고, 레인빌 박사조차 세상을 뜨자 디옹은 점점 자신을 잃는다. 집나간 아버지 때문에 입을 봉해버린 소녀, 임신 중절 수술을 거부하는 십대 소녀를 만나면서는 자신의 삶에 쩍하고 균열이 일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다 디옹은 빵집에서 일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믿음과 치유, 희망을 본다. 사람들에게 ‘유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새벽까지 식빵을 굽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무엇을 본다.

<유산>은 죽음을 보여주면서 삶을 이야기한다. 비극도 희극도 모두 산 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길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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