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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 <원점>
이주현 2009-10-14

<원점> Zero 파벨 보로브스키/ 폴란드 / 2009년 / 110분 / 플래시 포워드

불가능을 모르는 나폴레옹도 <원점>의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주인공도, 내러티브도 없는 이 영화는 다중인물, 다중플롯 전략을 활용해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에 익숙한 우리의 머리를 세게 후려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A라는 인물이 알약을 쏟는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건 사람은 흥신소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B. 시간을 살짝 되감아 보면 B는 전화를 걸기 전 C라는 여자의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 여자는 누군가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많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등장한 뒤)D라는 인물이 술집에 들어가 바텐더 E에게 술을 시킨다. 바텐더의 엄마 F가 버스를 탄다. G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버스에서 내린다. G가 식료품 가게에 들어가면 택시기사 H가 등장한다. H는 가게를 나와 손님 I를 태운다. (많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등장 혹은 재등장한 뒤)J는 공원에서 꼬마 아이에게 호두를 선물 받는다. 꼬마의 할머니 K가 딸과 통화를 하는데 그 딸은 C이고, K네 집에 종이인형을 팔러 온 할아버지 L은 바텐더 E의 아빠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그게 정상이다. <원점>의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야기의 가지는 수만 갈래로 나뉠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설 때쯤 궁금해지는 건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제목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원점>은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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