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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미쳤다는 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컨셉”
강병진 2012-08-30

<응답하라 1997>의 연출자, 신원호 PD

<응답하라 1997>의 연출자는 KBS에서 <남자의 자격>을 연출했던 신원호 PD다. 현재 전체 촬영분량의 80%가량을 끝낸 그는 연출과 편집을 모두 도맡아서 하고 있다. 서울 모처에서 촬영 중인 그에게 만남을 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 1시간 간격으로 3번에 걸쳐 전화로 대화했다. <응답하라 1997>에 관한 궁금증에 대해 그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응답했다.

-<응답하라 1997>은 어떻게 기획한 작품인가. =우리의 일이라는 게, 남들이 안 한 걸 찾는 거다. 지난해에 홍대 근처에 있는 ‘밤과 음악사이’라는 술집에 갔었다. 주로 90년대 음악을 틀어주는 곳인데, 94학번인 내 또래만이 아니라 20대 초반 대학생들도 그 노래들을 떼창으로 부르고 있었다. 어린 친구들에게도 이 음악들이 소구된다면 90년대 문화의 힘이란 도대체 어떤 걸까 싶더라. 한때는 70, 80년대를 추억했지만, 이제는 주 소비층이 30대가 됐고, 복고의 시대도 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90년대를 이야기해보자는 게 첫 출발이었다. 사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대인데, 다시 조사해보니 많이 다르더라. 세상의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까 새것도 빨리 옛것이 되는 것 같았다.

-1990년대 중에서도 1997년을 사는 H.O.T의 팬이 주인공이다. =시대는 어디까지나 배경일 뿐이다. 여기서 또다시 남들이 안 해본 이야기를 하려했다. 여러 가지를 떠올렸는데, 이른바 ‘빠순이’이야기는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 나도 연예계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팬문화를 한심한 눈으로 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엔터테인먼트업계를 먹여살리면서 대중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거다. <남자의 자격>을 할 때도 소녀시대와 카라의 삼촌팬들을 다룬 적이 있었다. 아이템을 정하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실제로 부딪쳐보니 그들 나름의 철학과 뜨거움이 있더라. 팬이라는 존재의 사랑이 독특해 보였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랄까? 사랑을 주면서 자신이 행복해하는 거니까. 평소에도 누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 드라마도 그랬으면 했다.

-<응답하라 1997> 이전에도 1990년대를 추억하는 일들은 많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면, <건축학개론>이 나왔을 때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다. =나름 1990년대를 ‘일빠’로 다루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편성이 밀리는 동안 걱정을 많이 했다. 분명히 어디서든 치고 나올 텐데. <건축학개론>이 나왔을 때, 작가들과 함께 단체관람을 했었다. 정말 “어떡하지?” 싶더라. (웃음) 우리도 <기억의 습작>을 전체 테마곡으로 쓰려 했었으니까. 그런데 마음을 고쳐먹어보니, <건축학개론>에 대한 반향이 크다는 건 우리의 방향성이 틀 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같더라.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연출에서 나름 차별점을 두었다면 어떤 거였나. =1990년대는 이미 현대화될 만큼 된 시기였다. 잘 지어놓은 세트로는 한계가 있었고, 그 안에 무엇을 채워넣을 것인가가 중요했다. 헤어, 분장, 의상, 소품이 관건이어서 많이 압박을 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수소문하고 작가들이나 나나 집에 있던 것들을 뒤져서 소품들을 구비했다. 나도 본가에 가서 짐을 뒤졌다. 극중에서 학찬이(은지원)가 들고 있는 삐삐나 윤제 병실에 놓여 있던 영화잡지 <KINO>는 내가 가져온 거다.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나중 탁구부>나 <점프 트리 A+> 같은 만화책도 보게 될 거다. 그렇게 많은 소품을 준비했지만, 굳이 강조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 오히려 흐름을 깰 것 같더라. 미장센으로만 보여줘도 그걸 아는 사람들은 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되고, 발견한 사람은 잔재미를 느낄 거다.

-1997년 중에서도 이야기의 배경을 부산으로 선택한 건 어떤 이유였나. =일단 부산보다는 사투리가 먼저였다. 향수를 건드리는 이야기인 만큼, 나름 아련한 정취가 있었으면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예능을 하던 사람들의 습관일 거다. 예능PD나 작가들은 단 1초도 채널이 돌아가게 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다. 콤팩트하면서도 촘촘한 재미가 우선이다. 인물들이 얽히고설키고,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로 만나면서 반전이 일어나는 짜임새를 구상했다. 그러다보니 대사도 한줄 한줄이 재밌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말맛이 살아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사투리가 재밌겠더라. 로맨틱한 상황에서도 사투리로 표현할 때 더 설레는 느낌이 있다. 극중에서 윤제가 반복하는 “만나지 마까?” 같은 대사가 그런 경우다. 이유를 추가하자면 서울이 전국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데, 나름 지역균형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웃음)

-대사의 말맛을 살리려면, 대본만큼 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인국과 정은지를 캐스팅할 때의 기준은 어떤 거였나. =사투리 연기는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주연만큼은 무조건 ‘네이티브’여야했다. 사실 처음에는 부산 본토 출신 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A급 스타를 원했다. 그런데 내가 드라마에 크레딧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채널베이스가 케이블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예능프로그램을 만들던 때에 자주 하던 방식을 생각했다. A급이 안될 경우에는 차라리 등급조차 안 매겨진 사람을 선택해서 등급을 매겨주는 방식이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사람을 키우는 재미가 있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성장을 보는 재미가 있다. <남자의 자격>의 김태원이나 김성민이 그런 경우였다. 오디션을 정말 많이 했다. 참여한 배우 가운데 시원이와 윤제가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던 게, 서인국과 정은지였다. 물론 부담스럽기는 했다. 인국이는 아직 <사랑비>에 출연하기 전이었고, 은지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친구들은 분명히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PD가 미쳤다는 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컨셉이었다.

-배경음악 선곡은 어떻게 하나. 워낙 좋은 노래들이 많았던 시대이다 보니, 에피소드별로 떠오르는 음악들이 한두곡이 아닐 것같다. =각 회의 테마곡은 미리 회의를 통해 정해놓고, 디테일한 음악들은 음악감독이 넣어주는데, 결국 넣어봐야 정확한 느낌을 알겠더라. 어쩔 수 없이 나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서도 보편성을 찾고 있다. 태웅(송종호)의 에피소드에서 <I MISS YOU>를 넣을 때는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엔 넌 줄 알았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너무 직접적이라 깰 수도 있겠더라. 하지만 인물이 자신의 사랑을 각성하는 순간이니, 결국 그게 맞겠다 싶었다. 최종적인 고민은, 이게 원래 강수지의 노래이고 나는 원곡을 더 좋아하는데, 강수지와 서지원의 노래 중 어떤 걸 선택할까였다. 아무래도 남자 보이스가 어울려 보였다.

-선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능에서 드라마로 연출 영역을 확장했다. 평소에도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나. =원래는 방송보다 영화를 하고 싶었다. 영화현장도 쫓아다녀 봤는데, 너무 힘들어서 비겁한 선택을 한 거다. 방송에서 역량을 키워서 영화를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입사를 해서 예능을 하고 여기까지 와보니 결국 똑같은 것 같다. 예능이 다른 장르에 비해 저평가받지만, 이야기를 해주는 차원에 보면 어느 장르에도 밀리지 않는다. 드라마를 할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예능 안에도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으니, 그런 걸 다루는 노하우는 어느 정도 쌓이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응답하라 1997>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매우 감사하다. 다음에는 뭘 할지 아직 모르겠다. 드라마로도 하고 싶은 게 있고, 예능으로도 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7>은 처음부터 나온 제목이었나. =시놉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만 해도 이 드라마는 가족이 중심인 이야기였다. 그때 가제는 ‘박순이 가족’이었다. ‘빠순이’를 응용한 발음이었다. 그런데 컨셉을 잡다보니 아련한 느낌을 주는게 좋더라. 어차피 그 시대는 응답할 수 없을 테니까. 구체적인 시놉시스가 나왔을 때, 마지막 문장에서 지금의 제목을 따왔다. “나의 90년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들리는가, 나의 90년대여. 들리면 응답하라!” 이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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