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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힘없는 이들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김성훈 2015-06-09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아쉽게도 황금종려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캐롤>은 올해 칸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전작 <아임 낫 데어>(2007) 이후 거의 8년 만에 내놓은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그사이에 5부작 드라마 <밀드레드 피어스>(2011)를 연출하긴 했다)으로,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섭은낭>과 함께 칸 공식 데일리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아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혔다. 잘 알려진 대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프라이스 오브 솔트>(The Price of Salt)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루니 마라),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1952년 뉴욕, 장난감 가게 점원 테레즈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무척 바쁘다. 어느 날 가게 안으로 들어온 캐롤이 장갑을 두고 나간다. 아름다운 여인 캐롤을 잊지 못한 테레즈가 장갑을 돌려주고, 캐롤은 답례로 식사를 함께할 것을 제안하면서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카메라는 서로에게 섣불리 가까워지지 않고, 그렇다고 멀어지려고도 하지 않는 두 여성을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담아낸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인터뷰 내내 “이 영화는 두 ‘여성’의 사랑이 아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임을 거듭 강조했다.

-<캐롤>을 맡기 전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줄 몰랐다. 지난 2012년 케이트 블란쳇, 사라 폴슨 등 몇몇 배우들의 출연이 확정됐었다.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엘리자베스 칼슨 프로듀서가 이 작품을 제안해왔다. 시나리오가 아름다워서 머리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소설을 연달아 읽었는데 역시 아름다웠다.

-원작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프라이스 오브 솔트>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잘 알려진 대로 그 소설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녀가 기차에서 쓴 첫 번째 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앨프리드 히치콕에게 팔렸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그녀는 크리스마스 때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어느 날 우아하게 생긴 여자가 다가와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 게 좋겠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받아 적는다. 그 일이 있은 뒤로 그녀가 수두에 걸려 온몸에 열이 올라 집에서 쉬면서 쓴 게 <프라이스 오브 솔트>다. 소설이 출간된 뒤 그녀는 다시 그 집으로 가 그녀를 몰래 훔쳐봤다. 필리스 네이지 작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잘 각색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뉴욕이 배경이다. 이 시기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나.

=소설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듯이 이 시기는 레즈비언의 정체가 무엇인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때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감정의 근거가 무엇이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말이다. 그걸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타포를 찾아야 했다. <캐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사랑이었다. 그게 캐롤과 테레즈 같은 두 여성이다.

-원작과 다른 제목으로 결정한 이유는 뭔가.

=소설이 출간됐던 1952년에는 원래 제목이 <캐롤>이었다. 이후 출판사와의 문제 때문에 <프라이스 오브 솔트>로 바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프라이스 오브 솔트>가 더 좋다. 미스터리하고 도발적이다. 물론 사람들이 왜 <캐롤>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는지 이해한다. 캐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니까.

-원작에서는 테레즈의 꿈이 극장 세트 디자이너였는데, 포토 저널리스트로 바뀐 이유가 뭔가.

=연출을 맡기 전, 이미 시나리오에서 바뀌어져 있었다. 포토 저널리스트로 바뀐 설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소설에서는 테레즈가 예술적 야망이 큰 데다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돈 많은 화가인데 그런 걸 좀 덜어냈다. 영화에서는 테레즈를 원작에 비해 좀더 일상적이고, 눈에 덜 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 루스 오킨, 비비안 마이어, 에스더 버블리, 헬렌 레빗 같은 미국 여성 포토 그래퍼의 사진을 많이 봤는데,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과 욕망을 바라보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캐롤은 일상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 여자로 보였다.

=음…. 캐롤뿐만 아니라 어떤 인물도 자신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캐롤은 가장 친한 친구 애비(사라 폴슨)와도 잘 지내지 못하고, 남편 하시(카일 챈들러)와의 결혼생활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한다. 그녀의 삶 자체가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지 않은 셈이다.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삶을 송두리째 부순 뒤 새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이 처한 여러 상황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게이나 레즈비언의 사랑이나 결혼 문제가 과거에 비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고, 법적인 문제도 많이 발전했다. 그럼에도 성정체성 문제는 “당신은 그렇게 태어났어요”라든지 “체크하세요. 게이인지, 스트레이트인지”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테레즈는 무척 순수한 여자다. 그간 루니 마라가 연기해온 캐릭터들과 상당히 다르다.

=테레즈는 방어적인 태도를 가진 여성이다. 때로는 짜증을 내기도 하고. 그건 사랑에 상처받고, 인간관계에 실망한 데서 오는 감정 때문이다. 반면, 캐롤은 테레즈의 그런 면모를 무척 부러워한다. 슬픔, 아름다움, 사랑….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해 그런 감정을 준비해 만나는 경우는 없을 거다. 사회적 지위, 나이, 경제력 등 여러 요소가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그래서다.

-캐롤의 남편 하시를 보면 캐롤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게 이해가 된다.

=소설에 비해 영화 속 하시는 좀더 혹독한 남자다. 돈 많고, 사회적인 지위를 갖춘 데다가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탓에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한계를 가진 사람이다. 아내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힘들어한다. 심지어 다른 여자(테레즈)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하잖나. 상처를 받은 남자가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아내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테레즈가 캐롤의 집 밖에서 훔쳐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테레즈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그 장면에서 시점을 테레즈에서 캐롤로 바꾸고 싶었다. 케이트 블란쳇의 아이디어였다. 테레즈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아무도 앞으로의 일을 알 수 없는 느낌도 있어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촬영 스타일이 당신의 2002년작이자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파 프롬 헤븐>을 떠올리게 한다.

=글쎄. 이 영화는 1950년대를 떠올리게 할 표현이 필요했고, 더 클래식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많이 봤는데 사진 속 뉴욕은 축 늘어져 보였다. 그래서 따뜻하고, 시원한 색들을 섞어 현재 긴장감 넘치는 화면을 구현해냈다.

-케이트 블란쳇과의 작업은 전작 <아임 낫 데어>(2007)에 이은 두 번째다. 어땠나.

=두 번째 일하면서 그가 훌륭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았냐고? 아니다. <아임 낫 데어> 작업할 때 이미 깨달았다. 케이트의 대기실에서 밥 딜런의 옷을 입고 가발을 쓴 그녀의 모습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루니 마라는 어땠나.

=그녀는 1950년대 활동했던 배우 겸 가수 진 시먼스처럼 생겼다. 루스 오킨이 짧은 헤어스타일을 한 사진을 많이 봤는데, 거기에 영감을 받아 테레즈의 스타일링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테레즈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은 없었다.

-두 여성의 사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뭔가.

=<캐롤>은 레즈비언 문제라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테레즈가 “캐롤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랑과 다를 바 없다. 난 남자 옷을 입고 짧은 머리를 한 여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난 여자이고, 그저 여자를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말하지 않나. 그의 말대로 나 역시 두 ‘사람’의 ‘사랑’을 그려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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