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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싱크홀' <타워> 김지훈 감독 표 재난 서사와 코미디의 결합
이주현 2021-08-06

<엑시트>의 유독가스 테러, <백두산>의 화산 폭발, <터널>의 터널 붕괴, <부산행>의 좀비 떼 출현, <해운대>의 초대형 쓰나미 등 그간 한국에선 다양한 재난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천재지변이나 이상기후, 인재에 가까운 각종 사고나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현상까지 재난의 종류와 양상은 영화마다 다르지만, 재난영화 속 인물들이 생존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것만은 똑같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재난을 맞닥뜨린 인물들이 생존 방법을 모색하며 위기를 넘고 또 넘는 이야기. 그것이 재난영화의 공통된 플롯이다. <싱크홀> 역시 이러한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영화 속 재난은 갑작스러운 땅 꺼짐 현상인 싱크홀이다. 크고 작은 싱크홀이 우리나라에서 연평균 900건, 하루 평균 2.6건 발생한다고 하니 새로운 도심형 재난이라 부를 만하다.

영화는 비 오는 날 이사를 하는 동원(김성균)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11년 만에 서울에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동원은 뿌듯한 마음으로 이름마저 희망찬 청운빌라 501호에 짐을 푼다. 이사 첫날부터 401호의 만수(차승원)와 주차 문제로 부딪치며 정다운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이보다 더한 찜찜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어린 아들이 신기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바닥에 유리구슬을 놓자 구슬은 멈춰 있지 않고 한쪽으로 또르르 굴러간다. 건물의 수평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벽에 금이 가고 유리문이 깨지고 단수가 되는 불안한 전조는 결국 대형 싱크홀 사고로 이어진다. 빌라가 통째로 땅속으로 꺼져버린 것이다. 집 안에 남아 있던 청운빌라 주민들은 물론, 전날 동원의 집에 집들이를 갔다가 거나하게 술에 취해 외박한 김 대리(이광수)와 인턴 은주(김혜준)도 졸지에 지하 500m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지상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설상가상 빗물이 차오르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재난영화의 플롯은 완전히 새로울 수 없기에 영화의 재미는 재난의 의외성이나 스펙터클, 재난에 대처하는 캐릭터의 매력, 재난이 함의하는 메시지 등으로 결정된다. <싱크홀>은 싱크홀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재난을 한국의 부동산 이슈와 연결시키면서 상승과 하락의 이미지들을 활용한다. 사는 동네에 따라,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전세인지 자가인지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이 나뉘는 사회에서, 주인공 동원은 대출을 최대치로 받아 신축 빌라에 입주한 인물이다.

동원뿐 아니라 싱크홀에 떨어진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서민들이다. 만수는 헬스장과 사진관에서 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리운전까지 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고, 만수의 아들 승태(남다름)는 주로 집 안에 머물며 때 되면 PC방에 가는 게 일인 청년이며, 동원의 직장 동료 은주는 명절에 선물 세트를 받지 못하는 인턴사원 신분이다. 싱크홀이라는 재난을 만나 아득한 지하로 추락한 이들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서민들의 팍팍한 현실에 관한 시의적절한 은유를 보여주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가 주인공들의 안위만 챙기느라 또 다른 재난의 희생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영화가 챙기지 못한 희생자들이야말로 진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싱크홀>은 심각한 재난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캐릭터들을 활용해 코미디를 구사한다. 초고층 건물에서의 화재를 그린 <타워>, 심해 괴생명체와의 사투를 그린 <7광구> 등을 만든 김지훈 감독은 이번엔 과감하게 재난에 코미디를 더했다. 그러면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차승원, 김성균, 이광수를 캐스팅했는데, 이는 캐릭터 코미디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과장된 코미디에 몰입하고 감정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캐릭터의 매력과 태도, 재난 서사와 코미디의 결합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CHECK POINT

대규모 세트

영화에 등장하는 청운빌라, 청운빌라 주변의 동네, 지하 500m 싱크홀은 모두 제작진이 지은 세트다. <화려한 휴가> <타워> 등에서 김지훈 감독과 손발을 맞춰온 김태영 미술감독이 20여채의 건물을 지어 동원과 만수가 사는 동네를 만들었고, 대규모 암벽 세트 등으로 싱크홀을 표현했다.

신스틸러

차승원, 김성균, 이광수, 김혜준이 영화의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싱크홀>에는 만만치 않은 신스틸러들이 등장한다. 청운빌라의 주민으로 나오는 김재화는 웃음소리만으로도 주목을 끌며, 차승원의 아들로 나온 신인배우 남다름과 김성균의 아들 수찬으로 나온 아역배우 김건우도 야무지게 제 몫을 해낸다.

해외영화제 초청

<싱크홀>은 여러 해외영화제에 초청됐다. 스위스 최대 영화제인 제74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피아차 그란데 섹션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선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이어 동유럽 최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27회 사라예보영화제에선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들을 소개하는 키노스코프 섹션에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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