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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Eric Rohmer)

1920-04-04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7.5

기본정보

  • 원어명Éric Rohmer
  • 다른 이름Jean Marie Maurice Schérer; Maurice Henri Joseph Schérer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0-04-04
  • 사망2010-01-11
  • 성별

소개

에릭 로메르는 다른 누벨바그 감독에 비해 훨씬 뒤늦게 알려졌지만 ‘최후의 누벨바그’라는 말을 들을 만큼 가장 지속적으로 누벨바그 영화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60년에 발표한 그의 첫 장편영화 <사자의 신호>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로메르는 동료들이 영화감독으로 전업해 활동하고 있는 동안에 <카이에 뒤 시네마>를 지키면서 편집장을 역임했고 서서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로메르의 야심은 18세기 철학자 파스칼, 라브와이예르, 라 로슈푸코 등과 같은 ‘도덕주의자’(Moraliste)의 실천을 영화로 옮기려는 것이다. 프랑스말로 도덕주의자는 도덕이라는 말의 일반적인 뜻과는 다르다. ‘도덕주의자’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연 로메르의 영화는 “난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도중 뭘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행동이 아닌 생각을 담은 영화 말이다”라고 말한 언명을 증명하는 바가 있다. 로메르는 식탁에서 등장인물이 파스칼의 철학을 읊는 따위의 사소한 대화장면에서도 등장인물의 마음을 읽어내는 놀라운 영화기법과 정신의 소유자다.

20년에 프랑스 낭시에서 태어난 로메르는 장-마리 쉐레가 본명이고 나치 점령기에는 질베르 코르디에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썼다. 50년부터 에릭 로메르라는 이름을 걸고 영화평론을 했는데, <카이에> 출신 비평가 중 제일 밀도있는 글을 썼다. 클로드 샤브롤과 함께 로메르가 쓴 앨프리드 히치콕 연구서는 이 분야의 선구적인 저서로 평판이 높다. 59년부터 63년까지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을 역임한 로메르는 그 사이에도 꾸준히 영화를 찍었다. 50년대부터 단편영화를 연출한 로메르는 62년 ‘로샹주 영화사’를 차리고 영화를 만들었다. 로메르 자신이 훗날 ‘여섯개의 도덕이야기’라고 이름붙인 연작의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였던 <몽소 빵집 La Boulangere de Monceau>(1962)과 <수잔의 가방 La Carriere de Suzanne>(1963)은 고만고만한 반응을 얻는 데 그쳤다. <몽소 빵집>은 26분짜리 단편이었고 <수잔의 가방>은 60분짜리 중편이었다.

몇년 후 67년에 로메르는 ‘도덕이야기’ 연작을 잇는 35mm 장편극영화를 기획하는데 바로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Ma Nuit Chez Maud>(1969)이다. 이 영화는 로메르의 명성을 굳혀 주었으며 흥행에서 크게 성공했고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미권의 평단에서도 열렬히 박수를 친 작품이다.<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의 내용은 단순하다. 장 루이는 열렬한 가톨릭신자. 장 루이는 우연히 교회에서 본 여학생 프랑수아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장 루이가 좀처럼 다가가기 힘들 만큼 프랑수아는 수줍음을 심하게 타는 여성이다. 장 루이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파리의 한 식당에서 옛 친구 비달을 만난다. 비달은 마르크시스트인 대학교수. 비달은 장 루이에게 자신의 애인 모드 집에 같이 가자고 한다. 모드는 지식인이면서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여성. 그날 밤 장 루이와 모드와 비달 이 세사람은 같이 저녁을 보내며 장 루이가 좋아하는 파스칼 철학에 대해 생기넘치는 대화를 나눈다. 비달은 그 자리를 떠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 루이에게 모드와 같이 밤을 보내라고 꼬드긴다. 모드 역시 장 루이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엄격한 도덕주의자 장 루이는 망설인다. 밤이 깊어지자 모드는 루이를 유혹한다. 그러나 마음은 있으나 이성에 억눌린 장 루이는 모드와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 이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영화 제목 그대로 모드 집에서 보낸 하룻밤이 약 40여분간 전개된다. 모드와 비달의 2인 화면, 장 루이의 1인 화면, 그리고 모드와 비달과 장 루이를 함께 잡은 3 인 화면이 황홀하게 이어지는데 겉으로 고상한 얘기를 나누는 세 등장인물의 내면에 카메라가 쉽게 가닿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 결말에서 관객은 등장인물 중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은 모드뿐임을 알게 된다. 모드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묘사된 자유주의자 여성이다.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은 누벨바그 영화의 결정판이다. 별로 극적이지 않은 ‘작은’ 얘기에서 인생을 깊이있게 관찰하는 능력이 로메르에게는 있었다.

‘도덕이야기’ 연작의 네번째와 다섯번째 이야기는 <클레르의 무릎 Le Genou de Claie>(1970), <수집광 La Collectionneuse>(1967), 그리고 <사랑, 오후 L’Amour, L’Apr -Midi>(1972)로 이 도덕이야기 연가는 끝났다. 70년대 중반 <0 후작 Die Marquise Von 0>(1976) 등의 유명한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찍었던 로메르는 80년대부터 다시 새로운 연작을 풀어놓았다. 이 연작은 ‘희극과 속담’이란 제목을 단 <비행사의 아내 La Femme de L’Aviateur>(1981)부터 시작하는데 대개 현대 프랑스사회에서 살아가는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 감정에 당황해서 쩔쩔매다가 마침내 자기 구원을 찾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연작은 장 자크 베넥스가 만든 <베티 블루>처럼, 신경쇠약 직전의 프랑스 사람을 담은 신경질적인 푸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주 사적인 투로 영화를 끌고 가지만 ‘도덕이야기’를 잇는 현대인의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다.

<해변의 폴린 Pauline a la Plage>(1983), <달밝은 밤 Les Nuits de la Pleine Lune>(1984), <내 친구의 친구 L’Ami de Mon Ami>(1987) 등으로 이어진 ‘희극과 속담’ 시리즈는 다시 <봄 이야기 Conte de Printemps>(1989), <겨울 이야기 Conte d’Hiver>(1991), 최근의 <여름 이야기 Conte d'ete>(1996) <가을 이야기 Conte d’automne>(1998) 등 ‘계절 이야기’로 넘어갔다. 로메르는 지금도 아주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고 무명배우들을 기용한다. 주연으로 발탁한 배우와 매일 저녁 상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그렇게 6개월을 보낸 뒤 촬영에 들어갈 정도로 유유자적하게 영화를 만든다. 항상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촬영하며 촬영중에도 배우들과 계속 토론하면서 영화 대부분을 즉흥연출로 찍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하다. 영화로 철학하는 감독. 누벨바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도 로메르는 전통적인 이야기체 영화를 무시하고 항상 새로운 어법으로 마음의 풍경을 담아낸다. 마지막 남은 누벨바그 감독이고 어쩌면 20세기 최후의 대가 감독일 것이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