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없이 썼다. 두려움 없이 사랑했다…
불꽃처럼 꿈꾸다 눈꽃처럼 사라지다!100년 전 영국, 꿈 많은 소녀 엔젤은
남들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을 서슴없이 꿈꾸며,
두려움 없이 활자로 옮기고 하나씩 실현시켜나간다.
성공, 명성 그리고 사랑까지…
꿈꾸던 것을 모두 이룬 그 다음의 삶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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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풀> <8명의 여인들>의 프랑소와 오종 감독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녀!
악동 오종의 다음 작품?
어린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과감한 연출과 개개인의 심리와 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영화계에 충격을 던지며 또 그만큼 사랑 받아왔던 “프랑스 영화계의 악동” 프랑소와 오종 감독. 초기작 이래로부터의 회고전이 열리는 등 빠르게 인기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일찍이 <스위밍 풀>(2003), <8명의 여인들>(2002) 등의 작품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데뷔 이래 거의 매해 어기지 않고 새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언제나 전혀 새로운 영화세계를 선보여온 그이지만, 에이즈에 걸린 게이 포토그래퍼인 주인공이 지난 삶을 정리하는 내용을 담은 서정적이고 회고적인 영화 <타임 투 리브>(2005)에 이어 그가 선보이는 작품은 놀랍게도, 1905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그리고 모든 대사가 영어인) 시대극 <엔젤>이다!
<엔젤>과 <스위밍 풀>
하지만 이 잘생긴 감독은 천연덕스럽게도 지금으로부터 5, 6년 전 소설 ‘엔젤’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영화화를 생각해 판권을 사두었다고 인터뷰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결국 나는 엔젤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책 속의 그녀는 끊임없이 나를 웃기고, 유혹했는가 하면 결국은 깊이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인 감독인 그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다. 프랑소와 오종은 그간 발표했던 <스위밍 풀> 또한 ‘엔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고 고백한다: “말하자면 발을 적셔볼 기회였다고 할까. 그 때 나는 아직 ‘엔젤’을 영화화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위밍 풀>은 내게 비슷한 테마: 작가와 그녀의 편집자와의 관계, 현실과 픽션의 경계, 창조적 영감의 정체와 여류 작가와 같은 어떤 영국적 전통이라는 테마를 탐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후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설을 영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엔젤>의 원작소설, ‘엔젤’의 실제모델
100년이 지난 후 타국의 감독을 이토록 사로잡은 ‘엔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영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1957년도 소설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자신이 태어났을 무렵인 20세기 초, 오스카 와일드와 동시대를 살며 빅토리아 여왕의 깊은 사랑을 받았던, 영국에 실존했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영국 최초의 스타 작가인 ‘마리 코렐리’를 모델로 ‘엔젤’을 완성했다. 영국에는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등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써낸 제인 오스틴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여류작가의 전통을 갖고 있긴 했지만, 글 쓰는 재주 하나로 신분상승과 부의 축적이 가능해진 것은 그녀 이후 한 세기가 지난 20세기 초였던 것이다. 동시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마리 코렐리’의 책들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경향으로 더 이상 읽혀지지 않지만, 그녀를 모델로 한 소설 ‘엔젤’은 소설이 쓰여진 이후로도 반 세기를 살아남아 영화화에 이른다.
‘여배우의 감독’이 발견한 것
오종을 그토록 사로잡은 소설 ‘엔젤’의 작가 이름이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와 동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며 동시에 아이러닉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소설 주인공 ‘엔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화려한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소와 오종이 지난 작품들에서 언제나 여배우들과의 섬세한 조응으로 그녀의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신선한 모습을 이끌어냈던 ‘여배우의 감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오종은 작가의 이름을 보고 운명적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검증된 바는 없다). 아무튼, 오종은 엔젤에게서 한 평생 꿈 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현실인 듯 연기를 멈추지 않으며, 종종 자기 자신조차 속이고 마는 천재적인 여배우를 발견한 것이다: “그가 엔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하고 또 그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는 그녀가 지나치게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또 언제나 그녀를 변호했다. 아마도 그것은 프랑소와가 여배우들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고 엔젤 그 자신이 여배우라서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영화들은 특별하고 훌륭한 여배우들이나 곤경에 빠진 캐릭터들과 사랑에 빠진 그 자신의 고백들인 것만 같다. 그는 그들의 삶, 그들이 각각의 유혹에 흔들리며 발버둥치는 모습, 그들의 사랑 받고 주목 받고자 하는 욕구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점, 각기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서로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점에도. 나는 그것이 그가 엔젤에 품고 있는 연민과 사랑의 키워드인 것 같다(엔젤 역의 로몰라 가레이 인터뷰 중에서).“
멜로드라마
보잘 것 없는 평범한 한 여자가, 어느 날 갑작스런 기회로 마치 신데렐라 같은 신분상승을 이루고, 꿈에 그리던 왕자님 같은 남자를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엔젤’의 이야기 구조는 여성들의 달콤씁쓸한 인생역정을 주로 다르던 전형적인 헐리웃의 193, 40년대 멜로드라마의 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오종 또한 소설 ‘엔젤’을 읽었을 때 자신이 사랑하는 그 장르를 실험해볼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아름다운 의상,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함께 정열적인 사랑, 매력적인 연인, 마음을 죄게 하는 위기와 호기로운 극복, 꿈만 같은 성공과 부의 성취, 그리고 가슴 아픈 운명의 장난 등, 영화 <엔젤>은 관객에게 기성의 멜로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쾌감을 빠짐없이 선사한다.
멜로드라마: 오종의
오종의 이야기는 단순한 한 겹의 그것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 실제이고 환상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꿈에 빠져들었던 그녀, 너무나 간절하게 빌면 꿈도 현실이 되리라 믿어 결국 꿈을 현실로 이루어내고 만 놀라운 능력을 가진 그녀 엔젤이 주인공이기에 관객은 기존의 멜로드라마와 닮았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층위를 가진 이야기를 경험하며 상상할 수 없이 다양한 주인공의 ‘실체’를 찾아 헤맨다. 수 없이 많은 각의 커팅으로 더욱 밝게 빛나는 보석처럼, 장대한 화음으로 더욱 놀라운 음색을 내는 교향곡처럼 화려했던 엔젤의 삶은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남겨진 엔젤의 인생 후반부로 들어서면 고독한 단조의 단선율로 변화한다. 이 쯤에서 여정을 함께 한 관객들은 이 놀랍고도 가엾은 주인공 ‘엔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영화를 다 보고도 엔젤에 대한 존경과 연민으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엔젤은 마치 자신의 소설처럼 삶을 하나 하나 만들어 나갔다: 삶, 사랑 그리고 사회적 지위까지도 자신이 정한 대로 하나씩 실현시켜 나갔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어느 것 하나 그녀의 삶에 진정한 행복이나 삶의 풍요로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섹스만을 봐도 알 수 있다. 결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해야 하기 때문에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자신의 진짜 욕망이 뭔지 본인조차 헷갈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난 그래서 그녀가 불쌍했다 (에스메 역의 마이클 파스빈더 인터뷰 중에서).“ 그리고 어느 눈치 빠른 관객들이라면 극장 문을 나설 때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일 수 밖에 없음을 발견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오종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이야기 구조 속에 교묘하게 섞어 짜낸 자신만의 이야기 방법으로 관객들을 주인공의 삶 바로 지척까지 다다를 수 있도록 길을 내어놓은 것이다.
눈부신 욕망의 날개를 달고, 파라다이스의 꿈을 꾸었던 천사, 엔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손길로 더욱 매혹적으로 변신한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에 우리 또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프랑소와 오종 감독 인터뷰
>><엔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왜 하필 이 작품인가?
5, 6년 전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읽고 난 후, 여주인공의 현란한 인생역정을 주로 담고 있는 1930년대와 40년대 멜로 드라마의 전통을 살린 서사 대작을 만들어볼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엔젤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책 속의 그녀는 끊임없이 웃기고, 유혹하는가 하면 결국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프로듀서에게 판권을 사 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가 프랑스로 바뀌면 말이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이것은 영국 여성작가의 전통에 근거한, 매우 영국적인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엔젤이란 캐릭터는 오스카 와일드와 동시대에 살면서 빅토리아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마리 코렐리Marie Corelli라는 실제 인물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코렐리는 책을 써서 스타가 된, 대중을 유혹하는 기술로 베스트셀러를 쓴 첫번째 작가세대인 셈이다. 오늘날 그녀는 영국에서 거의 완전히 잊혀졌다. 그 시대 프랑스에는 그녀와 같은 인물은 없었다.
>>그 동안 당신은 <스위밍 풀>이란 영화에서 여성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말하자면 발을 적셔볼 기회였다고 할까. 그 때 나는 아직 ‘엔젤’을 영화화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위밍 풀>은 내게 비슷한 테마: 작가와 그녀의 편집자와의 관계, 현실과 픽션의 경계, 창조적 영감의 정체와 어떤 영국적 전통이라는 테마를 탐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후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설을 영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소설은 어떤 방식으로 영화화되었나?
내게 주어진 주요한 도전은 “엔젤”을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책에서는, 주인공 캐릭터가 종종 그로테스크해진다. 작가는 엔젤과 그녀의 책, 그녀의 행동에 대해 다소 빈정대는 듯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테일러는 그녀의 글쓰는 능력과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인정하지만, 꾸준히 그녀가 얼마나 엽기적이고 추한 인물인지를 강조하며 조롱한다. 책에서는 어떨 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 중 누구도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주인공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 영화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엔젤은 그녀의 밉살스러운, 때로는 악취미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워야 했다. 스칼렛 오하라가 바로 떠올랐다. 그녀는 당신이 진정으로 혐오하면서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캐릭터다. 나는 엔젤이 자신의 유혹하는 힘을 인지한 상태로, 자신의 편집장과 노라에게 그 힘을 사용하도록 했다. 나의 엔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그녀보다 교묘한 편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롱하는, 장난스러운 것이지 사악한 종류의 것은 아니다. 시작부분,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비판한다: 선생님, 엄마, 이모, 그리고 편집장의 아내까지. 우리는 엔젤과 그녀의 작품이 오해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호기심을 고조시킨다. 특히 그녀가 글을 쓰는 장면에서 그렇다. 나는 그녀가 쓰고 있는 것이 실은 그리 대단한 문학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영화 속에서 드러나기 전에, 관객들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고 싶었다.
>>오히려 관객은 이미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에 반했기 때문에 그 글이 좋은 글인지의 여부는 그다지 주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영화 시작 후 약 20분 후, 그녀가 자신의 소설을 이용한 연극을 관람하는 장면을 통해 엔젤의 글이 그리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 씬은 그녀의 글의 정수를 시각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나는 엔젤이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되어 행하는 반응을 표현함으로서 그녀의 문학적 무능력함이 불러오고야 말 차가운 시선을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나는 공상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그리고 그 안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창조적 힘을 그려내고 싶었다.
나는 미스터리 작가나 로맨스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쓰는 지엔 전혀 관심 없다. 궁금한 것은 그들의 에너지와 영감의 발생이다.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떻게 그것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침투시키는가? 예술이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는가? 혹은 그것을 빨아내는가? 작가는 자신의 예술에 얼마나 자신을 바쳐야 하는가? 엔젤과 에스메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지만, 모두 자신의 예술에 충실하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실패한 인생을 산다. 에스메는 미약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결국, 전형적인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의 면모를 가진 그는 후세에 기억될 것이다. 반면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가득 찬 나머지 반성이라곤 모르던 엔젤은, 잊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문학을 통한 일탈의 경험을 제공하며,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당신이 예술가라면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망각의 세계로 미끄러지기 전 일생 동안 인정받으며 부와 명성을 누릴 것인가? 혹은 삶의 그늘 속에서 몸부림치며, 사후에나 인정을 받을 것인가, 반 고흐처럼?
>>당신 자신은 엔젤과 에스메 누구에게 더 가깝다고 느끼나?
내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창조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내 영화가 시간의 시험을 이겨낼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든다. 예술은 세기를 건널 수도 있지만, 동시에 즉각적인 소비를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는 창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의 측면에서 엔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독단과 고집은 그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지만, 그녀의 예술은 그녀의 풍족한 삶을 위해 봉사한다. 그것은 그녀에게 꿈꾸던 집과, 고가품들로 가득한 환경과 사랑하는 남자를 지원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엔젤은 진정으로 에스메를 사랑한다.
책에서는, 러브 스토리는 완벽한 허상이다: 엔젤은 이 로맨틱한 ‘생각’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화가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신혼여행은 재앙이었다. 에스메는 오로지 돈을 위해서 그녀와 함께한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영화 속 엔젤을 사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그녀의 사랑의 진정성이 믿음직스러워야 했다. 엔젤이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공상 그 자체에 사랑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뜨거운 열정으로, 그녀는 진심으로 에스메를 돕고자 한 것이다.
>>엔젤을 향한 노라의 욕망은 어떤가?
책에도 동성애적인 설정은 등장하지만, 책 속의 노라는 심지어 수염이 있다고 묘사될 정도로 매우 못생긴 여자다. 나는 그녀가 갖는 분노와 쓰라림의 감정을 유화시켜 그녀를 늪에서 건져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우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나머지 문 앞의 깔개가 되는 것조차 서슴지 않을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의 매력을 가진 존재가 되길 바랬다. 책에서 노라는 엔젤을 계속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오빠의 여자친구를 비밀에 부친다. 영화에서 노라는 서서히 오빠의 애인에 대한 진실을 밝힌다. 하지만 어째서 현장의 에스메를 본 후 바로 엔젤에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갑자기 노라는 비극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엔젤을 향한 욕망과 자신의 오빠에 대한 유대감 사이의 갈등으로 엔젤이 겪는 고통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완전히 사악한 캐릭터는 스크린에 내놓을 수는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당신의 작품 <언더 더 샌드>나 <타임 투 리브>에서 당신이 보여줬던, 감정에 대한 접근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내가 책을 완전히 따랐다면, 전체 영화는 엔젤이 히스테리컬한, 속이 검은 괴물처럼 보이는, 편집장의 집에서의 식사 장면같이 되었을 것이다. 캐리커쳐 풍자만화 같은 식으로 계속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좀 더 놀라운 속도로 신분상승을 이룬 강한 여자로서의 이미지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는 엔젤이란 여자 속의 연약함과 복잡한 심리 상태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의 성공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스펙타클한 면이 있다. 그녀는 스스로의 주인이다, 그녀는 스스로 남편을 고르고 자신의 집을 사며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시대의 고루한 전통을 깨고 자유를 획득한다. 그녀는 말하자면 초창기의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오늘날의 여성은 그녀에게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동전의 양면을, 그녀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엔젤은 한평생 진실된 감정을 속인 채로 거짓말 위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녀가 종종 스스로 설정한 역할에 빠져, 연기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학교에서 비난 받을 때나, 혹은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 같이 그녀 자신이 될 수 밖에 없는 장면들을 포함시켰다. 책에선 간결하게 포함되었던 그 장면들에 나는 엔젤의 진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후반에서 엔젤은 완전히 상처받은 채로, 버림받았다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곧 이어지는, 기자가 찾아온 장면에서 “오, 슬프도다!”라고 연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엔젤의 그런 애매모호함, 거리두기와 동일시 사이를 넘나드는 이면적인 모습을 잡아내고 싶었다.
에스메의 장례식 장면에서도 비슷한 감정의 겹을 발견한다. 교회에서 그녀가 읽는 글을 통해 우리는 엔젤이 스스로의 러브 스토리를 새로 썼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의 눈물이 과장된 것이라는 것을 짐작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엔젤은 동시에 진심으로 감동한 것이다. 그녀는 두 개의 별이 만난 것과 같은 운명적인 연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터무니 없고 실제 에스메의 죽음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믿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엔젤은 아직도 성공과 부귀영화와,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는 소녀인 것이다. 오늘날의 십대들처럼.
>><타임 투 리브>는 점점 비워내는 방식의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었다면 이 영화에서 당신은 그런 미니멀리즘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렇다, 엔젤은 최근 나의 작품들이 디테일적인 면에서 점점 더 많은 빈 공간을 둔 것과는 달리, <엔젤>은 나를 훨씬 바로크적이고 장식적인 세계에 데려다 놓았다. <엔젤>은 거미줄같이 무수한 캐릭터들의 촘촘한 관계로 이루어진 총천연색의 복잡한 세계로, 한 장면에서만도 수많은 감정과 자기모순을 넘나드는 화려한 음계를 들려준다. 하지만 영화는 엔젤이 결국 가난과 고립이라는 상황에 빠지면서 하나의 음조로 막을 내린다. 멜로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징 외에 내게 가장 큰 도전이 된 것은 영화 속 ‘시간’이라는 음계와의 싸움이었다:각 캐릭터들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터닝 포인트를 영상적인 면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처음으로 크로스 페이드cross fade 기법을 시험하는 것이 그것이다.
>>음악은? 편집과 마찬가지로, 감정적 발란스를 찾기 위한 질문이었나?
유니버설 사에서 더글라스 서크가 만들었던 멜로드라마들을 위해 프랑크 스키너가 만들었던 것과 같은 음악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심지어 영화 편집을 시작할 때 그 음악들을 써보고는 기막히게 화면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음악과 비교했을 때 그것들이 너무 구닥다리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작곡가인 필리페 롬비에게 스키너의 멜로드라마틱한 음악을 참고해주기를, 옛 레코드의 음색을 닮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주기를 부탁했고 동시에 엔젤의 비밀스런 포부와 잘 어우러져 관객들이 그녀와 쉽게 동일시하게 해줄 수 있는 테마를 곁들여주기를 부탁했다.
>>영국의 복잡한 클래식 작품을, 영국 배우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은 단순한 우연인가?
시작할 당시부터, 영국 배우들은 내가 익히 보아왔던 높은 수준의 연기력으로 장면들에 깊이와 심오함을 더해주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해, 그들을 영화 속에 실제 인물처럼 되살려내기 위해 했던 수많은 대화와 내가 썼던 지문들을 존중해 연기를 준비해주었다. 프랑스 배우들이 하루 하루의 연기를 해낸다고 치면, 영국 배우들은 좀 더 장거리 주자 같다고 할 수 있다. 로몰라는 스스로 일주일 전에 자신의 역할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토록 열심이고 헌신적인 배우들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매일 로몰라는 많은 양의 연기를 해야 했고,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오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절대 지치지 않았고, 아무 불평도 없이 그 미친듯한 심리를 유지해주었다. 장면들은 순서대로 촬영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언제나 다양한 시대를 위해 준비된 상태였고 우리가 찍는 시대를 위해 액센트를 조정해주었다.
>>당신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연기하는 배우들을 연출하는 것은 어땠는지?
우려했던 일이었지만, 곧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내 대사들을 불어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영문으로 번역해준 마틴 크림프와 친밀하게 작업해왔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는 그 언어의 뉘앙스와 왜 프랑스어를 직역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주었다. 영어에서는, 모호함이나 아이러니를 희생하지 않고도, 언어를 간단히 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 때가 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그것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길 원했다. 배우들에게 약간은 생소하지만, 책을 읽는 것 같지는 않도록. 영어에서는 불어에서보다 손쉬운 방법이다.
>>캐스팅 과정은 어떠했는지?
그 이야기는 헐리우드의 ‘스타 시스템’이야기와 연관이 되어있는데. 사실, 미국 스튜디오에서 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지만, 미국의 작가와 일년 동안 일해야 하고, 해피 엔딩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었다. 내가 그렇게 하면 그들은 미국의 스타를 붙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난 조금 덜 알려진 배우들과 그보다 작은 비용으로일지라도 나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의 놀라운 젊은 영국 배우들의 팀을 꾸려준 영국의 캐스팅 디렉터와 일했고 아주 만족한다. 스크린 테스트를 한 후 배우들을 선정해, 일정과 열정을 고려해 함께 했다.
>>로몰라 가레이를 여주인공으로 발탁한 이유는?
로몰라는 역할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엔젤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로테스크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동시에 자신의 그 크고 어린 아이 같은 눈으로 배역에 매력과 너비를 부여해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엔젤을 정말 좋아했다. 모든 여배우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그녀가 기괴하고 못된, 안티 히로인, 거짓말쟁이, 실패자로 인식했다, 엔젤이 그들을 겁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몰라는 엔젤에게 곧장 접근했고, 그녀의 삶을 아무 두려움 없이 정확하게 표현해주었다.
>>에스메 역할의 마이클 파스빈더는 이 영화의 발견인 것 같다.
현대의 관객들에게 엔젤과 에스메가 커플인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두 배우들 사이에서는 강렬한 케미스트리가 존재해야했다. 그리고 젊은 화가는 현실적인 동시에 육감적이고,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오만한 느낌이어야 했다. 마이클 파스빈더는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러니와 야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아일랜드 인이어서 영국인과는 다른 액센트와 매너를 보여주었는데 그래서 더 남성적이고 날 것이란 느낌이 있었다. 샘 닐로 말하자면 그는 각본을 읽고 바로 그것을 사랑해주었다. <엔젤>이 매우 흥미로운 동시에 감동적이었다고 한 그의 열정은 촬영일정을 통틀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샬롯 램플링과 다시 일한 경험은?
나는 이전에 샬롯과 두 번 일한 적 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영어로 연출한 영화에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엔젤에 대해 관객이 가질 양면적인 태도를 투영하는 헤르미온느라는 작은 역할을 그녀가 수락해준 것은 단순한 우정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초반에 헤르미온느는 엔젤이 천박하고 건방지다고 생각해 그녀에게 차갑게 대하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의견은 변한다. 후반부 헤르미온느는 작가로서는 인정할 수 없지만, 여자로서는 그녀가 성취해낸 것들에 감탄하고 있다고 그녀를 변호하는 것이다.
>>루시 러셀은?
노라 역의 배우들을 여러 명 만나봤다. 스크린 테스트 동안, 나는 그들 대다수가 사실은 ‘엔젤’이 되길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리딩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엔젤 역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바로 엔젤이에요!”라고. 그들 대부분이 조연을 맡을 생각이 없었던 것임에 비해, 루시 러셀은 달랐다. 그녀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머리를 엄격하게 넘긴 늙은 하녀 같은 복장을 하고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다. 사실 그녀는 노라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물론 역할 자체는 엔젤 보다 훨씬 덜 화려하지만, 루시는 그늘에 있으면서도 주목 받는 방법을 알았다, 꼭 비싼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아도 말이다! 그리고 샬롯처럼, 루시도 불어에 능통했는데, 덕분에 세트에서 큰 역할을 해주기까지 했다.
>>누가 에스메의 페인팅을 그렸는나?
나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까띠아 위콥은 영화 <반 고흐>에서도 일했었는데, 그 때 그 영화를 위한 그림을 그려주었던 질베르트 피뇰씨를 연결해주었다. 에스메의 스타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아서 우리는 엔젤이 좋아할 법한 소재 위주의 장식적인 그림을 설정한 후, 그 반대의 그림을 만들어보았다. 에스메의 작품은 스펙트럼의 맞은 편에 위치한다. 그는 어둡고, 고뇌에 찬 표현주의 화가다. 그는 묘지와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 엔젤은 그의 그림들을 싫어한다. 그녀는 예술이란 컬러풀하고, 아름답고 즐거워야 한다고-현실보다 나아야 다고-생각한다. 엔젤의 초상화를 위해서 우리는 루시안 프로이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시대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영화 속에서 에스메의 그림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인 반응을 강조하기에는 알맞았기 때문이다. 먼 거리에서는 엔젤의 얼굴을 흐릿하게 알아볼 수 있지만, 가까이 가면 마치 ‘도리안 그레이’를 연상케 하는 망가진 형태의 도상을 보게 된다. 초상화는 빠른 터치로 두껍고 뭉친 질감을 살려 거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맞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견 끔직한 동시에 ‘엔젤’로도 보여야 했으니까.
>><엔젤>은 당신이 처음 시도한 시대극이다.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당신이 한 노력은?
처음에는 리얼리즘을 필요로 했다, 엔젤이 벗어나고자 하는 세상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붉은 벽돌로 된 놀리 시내 풍경에, 식료품점, 그녀의 어머니... 하지만 엔젤이 파라다이스 하우스로 옮겨가자, 역사적 고증과 리얼리즘은 없어져버린다. 갑자기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었던 장식과 의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엔젤의 환상세계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루이 2세의 성에서 가져온 듯한 유치한 악취미적 취향을 공유할 수 있었다.
처음 영국에서 투자를 받으려고 했을 때, 어째서 프랑스 감독이 영국의 시대물을 찍으려고 하는지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건 이미 TV에서 실컷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시대물은 언제나 오래되거나 학술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모든 편견을 깨고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영국의 조언자들로부터 받은 의견들에 기초해서 나는 상당한 자유를 취했다. 예를 들어, 에스메는 관의 뚜껑을 연 채로 장례식을 하는데, 이는 에드워드 시대의 영국 프로테스탄트 문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중해식의 문화다. 하지만 어쨌든 난 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엔젤의 세상이고, 그녀는 사회 관습이 어찌됐든 신경 쓰지 않으니까. 엔젤은 해석 불가능한 여자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현실을 재창조하고, 그것은, 놀랍게도, 그녀가 생존하는 방식이다.
PRODUCTION NOTE
파스칼린 샤반느 Pascaline Chavanne
의상 디자이너
-오종과의 작업
<엔젤>은 오종과 함께 한 여덟 번 째 영화였다. 그리고 여덟 편 모두 하나 같이 다른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매번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오종은 의상 디자인에 대해 세심하게 하나 하나 관여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재질이나 무늬, 색상에 대해서 주연 배우들의 의상 뿐만 아니라 조연과 엑스트라의 의상까지도 꼼꼼히 체크한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까다롭고도 복잡한 작업이 될 수 밖에 없지만 결과는 언제나 훌륭하다. 엔젤의 경우엔 스케일이 큰 사극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오종의 이런 작업 방식이 작품에 다이너믹함을 불어 넣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8명의 여인들>은 마치 게임과도 같았다. 8명의 주인공들이 8가지의 의상을 입고 인형의 집에서 24시간을 보내는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면 <엔젤>은 거대하고도 화려한, 심지어 가끔은 공포스럽기까지 한 무대를 필요로 했다. 영화 자체가 다이너믹하다 보니 작업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주인공의 세계를 의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엔젤은 자유로운 여성이며 동시에 당대의 패션룰을 비웃으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따르는 인물이다.
-구성
프랑스, 영국, 벨기에 스텝들과 벨기에와 영국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이동이 많았다. 엔젤, 노라와 헤르미온의 의상은 파리에서 제작했고 엔젤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남자 배우들의 의상은 모두 영국에서 제작했다.
엑스트라 의상은 대부분 런던에서 작업했는데, 오종이 특별히 의도한 무도회장 씬에서의 여배우들의 의상은 이태리에서 네 가지의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파스텔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만들었다.
-모델
<8명의 여인들> <드래곤 윅><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지지><순수의 시대>등을 주로 참고하였다. 여기에 에드워드 시대를 보여준 BBC의 한 다큐멘터리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엔젤의 패션 스펙트럼이 1900년대의 엄격한 전통과 1950년대의 화려한 테크니컬러를 넘나들며 한마디로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교토와 파리 등지의 벼룩시장이나 박물관을 다니며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몇몇 의상중에는 당시의 소재-실크, 벨벳, 레이스, 새틴, 망사, 그물, 리본과 온갖 장신구들-를 사용하여 직접 제작되기도 했다.
-고증
엔젤이 살았던 1900년부터 1928년까지는 세계대전을 겪으며 도덕은 물론 패션도 변화한 격변기였다. 이전까지 여성들을 옭아 매었던 코르셋과 같은 의상이 점차 사라지고 스커트가 짧아지는 등 보다 실용적인 현대의 의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라의 스타일은 당시 여성의 패션을 그대로 반영하여 짧은 머리에 간결하고도 실용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하지만 엔젤은 전혀 시대의 패션을 따르지 않는다. 파라다이스 하우스를 자신의 환상 그대로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었으며, 그 안에서의 자신은 한 세기 전에나 입었던 코르셋과 패티코트를 챙겨 입으며 여왕처럼 군림해야 했던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스스로를 끼워 맞춘 엔젤과 달리 주변 인물들은 당시의 패션 변화를 따르고 있다. 엔젤이 엔젤리카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드디어 자신의 세계가 아닌 타인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엔젤이 얼마나 어색하고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지가 의상을 통해 드러난다. 엔젤리카는 1928년을 사는 평범한 여성답게 현대적인 의상을 갖추고 있지만 엔젤은 마치 1880년의 여성처럼 코르셋과 페티코트에 거추장스러운 스커트를 입고 머리엔 동물 깃털이 달린 우스꽝스런 모자를 쓰고 있다. 섬뜩하기까지 한 그녀의 이런 의상 변화는 자신이 창조한 환상 속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운명을 거스르려 한 그녀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색상
낡은 밤나무색
놀리에서의 가난하고도 무료한 엔젤의 유년시절은 차가운 갈색 톤의 의상으로 표현하였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의상의 색상과 정교함이 업그레이드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도발적인 녹색
엔젤은 극장 씬에서 단 한번 녹색 드레스를 입는다. 녹색이 극장에서는 불운을 상징한다고 해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 색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붉은 색으로 장식된 극장의 실내 인테리어와 대조되는 그녀의 도발적인 녹색 드레스는 완벽한 색상을 얻기 위해 직접 염색하여 제작하였다.
스칼렛 레드
삶이 곧 무대였던 엔젤에게 의상은 현실에 대한 도전과 거부를 그대로 드러내는데, 무도회장 장면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엔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유행하다 사라진 크리놀린 스커트와 강렬한 스칼렛 레드는 파스텔톤의 간소한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다른 여배우들의 의상과 확연히 대조된다. 전원 파스텔톤 복장을 한 파티장에서 그녀의 컬러는 단연 돋보일 수 밖에 없었다.
쇼킹 핑크
헤르미온느는 당시 중산층 지식인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복장을 정확히 입고 있었던 반면 엔젤은 한 세기 전의 핑크색 망사 드레스를 입고 하프를 켜며 시대적 배경을 헷갈리게 만든다. 재미있는 사실은, 딸의 변덕에 맞추느라 늘 피곤한 엔젤의 어머니 역시도 100년 전 의상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
장례식에서의 검정
서유럽의 전통상 장례식에서는 검정 의상을 하고 나오지만, 어머니의 장례식과 남편의 장례식 의상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는 관례대로 하이 컬러와 긴소매의 검정 옷을 입은 반면, 남편의 장례식에서는 가슴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검정 드레스를 입고 있다. 에스메 죽음 이후 그녀 삶에 있을 변화에 대한 복선이라 할 수 있다.
까띠아 위콥 Katia Wyzkop
프로덕션 디자이너
<타임 투 리브>를 끝내자마자 오종 감독에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책을 받았고, 이 책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어 치웠다. 1950년대에 쓰여져서 인지 1900년대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허술해 보였고 디테일에 있어서도 사실성이 많이 떨어졌다.
오종은 자신의 첫번째 사극이 마치 “5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만든 초창기 컬러영화”와 같은 느낌이길 원했다. 우리 둘 다 스튜디오에 실내외 세트를 모두 만들고 싶었지만 이건 프로덕션 디자이너에게나 꿈이지, 제작자에겐 악몽과도 같은 계획이라 할 수 있다.
초반엔 소설 속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얻었지만 차차 각본에 초점을 맞추며 오종에 의해 새로 탄생한 ‘엔젤 프랑소와’가 머리 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촬영 몇 달 전부터 작업에 착수하여, 소품과 인테리어 등을 디자인하고 유럽 최대의 스튜디오에서 3-D 사전작업을 통해 실현가능성 여부를 타진했다. 우리가 모델로 삼았던 영화는 눈오는 장면 뿐만 아니라 모든 촬영을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머빈 르로이의 <작은 아씨들>이었다.
여주인공의 꿈의 집은 조셉 맨키위즈의 <드래곤윅>에서 영감을 얻었고, 오손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에서는 파라다이스 전체적인 풍광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빅터 플레밍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화려하고 디테일한 데코를 참고하기에 완벽했다. 자유롭고도 과감한 색채의 사용은 미넬리의 <지지>를 모델로 삼았다.
파라다이스 하우스의 헌팅을 위해 엔젤의 고향이기도 한 서요크셔 뿐만 아니라 영국 전국의 성과 대저택을 샅샅히 뒤졌다.
2달여의 헌팅 끝에 공동 제작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현실적인 예산을 짜보기로 했다. 2005년 7월까지 영국과 벨기에에서 세트와 소품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엔젤의 대저택 파라다이스 하우스와 정원은 영국에서 촬영했다. 유년기의 엔젤이 벽돌 건축물이 벨기에의 빈민가에서 촬영된 반면. 벨기에에는 집들이 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보존되어 있어서 에스메의 스튜디오를 비롯한 여러 실내 촬영도 가능케 했다.
영국에서 몇 달에 걸친 헌팅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오종과 나는 일종의 헌팅 백서를 만들 수가 있었다. 이것들을 정돈하여 스튜디오 세트와 실외 소품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계획할 수 있었다.
파라다이스 하우스의 실 촬영지로는 브리스톨 근처에 있는 틴테스필드로 결정했다. 확인 결과 2002년에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에 넘어간 부지로, 건물의 후기 고딕양식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1898년에 신자본에 의해 지어졌다는 역사마저도 신분의 한계를 딛고 넘치는 열기로 스스로 성공을 이루어낸 영화 속 엔젤과 닮아 있었다.
가구와 방의 기본 구도는 자연스럽게 바꾸었고 1층을 지하로 바꾸고 엔젤의 사치벽을 표현하기 위해 거대한 창문에 달 화려한 커튼을 제작했다. 높은 천정으로 시작되는 대파티장은 헐리웃 전통에 따라 높고 긴 계단을 만들고자 했던 오종의 의견을 반영하여 계단을 주요하게 배치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뼈대를 세우고 정교한 금장식을 특수 제작하여 입혔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촬영 중 건물을 손상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감시의 끈을 놓치 않았고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여 여러 가지 난점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술처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파라다이스 하우스에 관해서는 최대한 자유로운 방식을 따르려 했다. 파라다이스는 곧 엔젤의 세계였고 엔젤은 패션이란 걸 염두에 두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이런 제멋대로인 엔젤의 성격 덕분에 나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공간을 변형시킬 수 있었다. 거리 하나 하나를 독창적으로 재구성하고, 과감한 컬러를 사용하여 바로크와 고딕이 혼재된 양식의 가구를 사용하였으며 골동품 가게에서 직접 구해온 소품들을 곳곳에 배치하였다.
빨간색은 엔젤의 색이다. 빨강과 핑크 벨벳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 침대와 바로크식 테이블과 고딕 양식의 코너테이블로 채워진 화려한 침실은 큰 내닫이 창까지 더해져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저택 주위에 벽을 쌓고 파라다이스 문양을 새긴 철문을 만들어 세우고 마지막으로 정원에 분수를 설치함으로써 그 외양까지 완벽한 파라다이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파라다이스의 쇠락을 보여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여름은 건물정면에 포도덩쿨과 등나무를 뒤덮어 표현했고, 겨울은 눈으로 뒤덮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성공했다. 가을 씬을 위해서는 포도와 나뭇잎의 색이 자연스럽게 변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오종 감독은 엔젤이 고립과 절망의 시기를 맞음과 동시에 건물이나 배경 역시 쓸쓸하고 황폐해 보이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