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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문

精武門 Fist of Fury

1972 홍콩 15세이상관람가

액션 상영시간 : 106분

개봉일 : 2013-08-29 누적관객 : 317,780명

감독 : 나유

출연 : 이소룡(진진) 묘가수(-) more

  • 네티즌7.80
정무문의 창시자이자 태극권의 사부인 ‘허영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첸’(이소룡)은 사부의 주검 앞에서 세상을 잃은 듯 오열 한다. 사부의 죽음에 수 많은 의심을 품은 ‘첸’은 복수를 위해 첫 번째로 홍백파의 도장으로 찾아가 그 동안 사부에게 배워왔던 모든 기술을 이용해 어디서도 보지 못한 현란한 발차기와 쌍절곤으로 수십명의 관원들을 단숨에 쓰러뜨린다.

상해로 떠나기로 결심하던 날, 사부를 독살한 범인을 알아낸 ‘첸’은 최후의 복수를 다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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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
[ Intro ]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것이고,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전진할 것이다”
이소룡 (1940.11.27 ~ 1973.7.20)


이소룡이 우리에게 남긴 것…

1971作 <당산대형>
1972作 <정무문>, <맹룡과강>
1973作 <용쟁호투>

그리고,
그는 볼 수 없었던, 유작 1978作 <사망유희>




[ About ]

‘사람 이소룡!’
32세라는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가다!
1940년 11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소룡은 생후 3개월 만에 전통극 배우였던 아버지 품에 안겨 영화의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그 후, 그는 18세까지 총 23편의 영화에서 아역으로 출연하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쿵푸의 매력에 빠지게 된 그는 당대의 고수 엽문과 그 제자들에게 영춘권을 배우게 되고 1964년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서 열린 국제 가라데 선수권 대회에서 기존의 형식에 기준을 고집하는 쿵푸 대신, 자신이 개발한 신기술을 선보여 신선한 충격과 경탄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당시 복싱이나 가라데를 호신술로 알고 있던 미국이나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충격과 감흥을 안겨주었고 이후, ‘이소룡 따라하기’ 열풍이 일어나며 단숨에 그는 유명해졌다. 이로써 그는 배우이자 무술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소룡은 미국 인기 TV시리즈 <그린호넷>(1966)의 일본인 조수 ‘카토’역을 맡으며 할리우드에서까지 주목 받지만 동양인을 위한 할리우드 배역은 한정될 수 밖에 없었고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늘 누군가의 조수나 친구와 같은 단역뿐이었다. 이후, 이소룡은 홍콩으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찍은 그의 첫 주연작 <당산대형>이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아시아권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어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를 통해 세계적인 액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이소룡의 진정한 모습은 액션배우 이상의 이면에 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무술과 철학을 매우 중요시 여겼는데 실제로 워싱턴 주립대학 철학과를 입학해 학구열을 불태웠고 그의 철학적인 이상은 현재 수많은 명언으로 남아있다. 또한 그는 단순히 액션을 잘하는 스타를 넘어서 끝없이 자신을 연마하며 그 무술을 연구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입혔다. 그가 창시한 ‘절권도’는 쿵푸를 바탕으로 권투, 펜싱, 유도, 레슬링, 가라데, 무에타이, 태권도 등을 절충시킨 실전 무술이었고 그것은 철학과 기술을 집대성 해 놓은 것으로 이소룡이 단지 영화배우가 아닌 무술 철학가였음을 입증해준다.
하지만 1973년, 이소룡은 전세계적인 인기와 쿵푸에 대한 열정, 영화에 대한 애정 등을 미처 다 펼쳐보지도 못한 채 32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소룡은 단 다섯 편의 출연작으로 그 어떤 배우도 따라가지 못할 많은 관심과 인기를 현재까지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있으며 예술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캐릭터 이소룡’
70년대, 그를 한번이라도 따라 하지 않는 남자는 없었다!
이소룡하면 머릿 속을 스치는 것이 있다. 쌍절곤과 다부지고 단단한 몸, 그리고 노란색 트레이닝복이 그것이다. 현재의 액션 스타들을 비롯하여 수 많은 남성들은 한번쯤 어린 시절에 그의 영화를 보고, 극 중 그가 사용하는 액션 기술들을 따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며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캐릭터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통해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그가 진정한 스타 아이콘으로 남은 데에는 작품들을 통해 항상 신선한 모습을 선보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중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한 괴조음은 할리우드 영화 <킹콩>의 괴수 소리에서 착안해 몇 개의 동물소리와 본인의 목소리를 합성한 소리이다. 이처럼 그는 영화를 통해 기존의 중국영화 틀에서 벗어나 늘 새로운 것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해 왔기에 오랜 시간 사랑 받는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캐릭터 면에서도 이소룡은 여타의 액션 스타들과는 상당히 차별된다. 이소룡이 배우로 활동하던 1970년대 홍콩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강자로 인해 약자인 주인공이 처절하고 억울한 상황을 맞이 하게 된다. 하지만 정의롭고, 용감한 주인공은 이내 정정 당당한 복수를 하는 클라이막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통쾌한 역전극을 선사하는 것이 전형적이었다. 하지만 이소룡은 이런 캐릭터들과 달리 영화의 첫 시작부터 탁월한 무술 실력을 겸비한 고수로 등장한다. 영화 초반에 그가 상대에게 맞거나 무술로 굴욕을 당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실력을 감추고 인내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적어도 이소룡의 영화에선 이소룡보다 더한 최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는 그가 최강자임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며 이로 인해 이소룡이라는 배우와 영화 속 그의 캐릭터는 영화계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강렬한 캐릭터는 이소룡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불과 다섯 편의 작품으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드래곤>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 [철권]의 캐릭터 ‘마샬로우’ 같이 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창조되어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 독보적인 캐릭터로서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배우 이소룡’
단 한 장면을 위해 대역도, 어떠한 효과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전세계 액션 영화의 시작이다!
1971년, 그의 첫 쿵푸영화 주연작 <당산대형>은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당시 홍콩 최고의 흥행기록이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누르고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정무문>, <맹룡과강>의 연이은 히트는 그를 진정한 스타로 만들었다. 이처럼 그가 사랑 받은 이유는 그 간의 무술영화에서 보여졌던 액션 공식이 확 바뀌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무술 시퀀스는 서로 짜맞춘듯한 어색한 동작들과 손으로 치고 받는 액션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사실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소룡은 상대를 한방에 가격하는 발차기와 함께 결정적인 정권 찌르기를 통해 짧고 간결하게 판을 정리하는 그만의 색다른 리얼 액션실전무술을 선보였고 이는 <당산대형>에서 <용쟁호투>까지 그의 작품들을 통해 액션은 단순한 싸움이나 격투가 아닌 예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경험케 했다. 특히 <용쟁호투>의 무술대회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이후 로저 무어의 007영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패러디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이소룡의 액션미학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영화 중 첫 번째 작품은 1971년작 <당산대형>으로 이소룡 액션의 신호탄 같은 작품이다. <당산대형>을 통해 당시 여타 중국 영화 속 액션과는 달리 굉장히 사실적인 이소룡만의 액션을 첫 선보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구사한 무술이 카메라 장난을 통한 눈속임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원 컷으로 찍었고 덕분에 여러 장면에서 그의 빠른 발 놀림과 손동작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당산대형>에서 선보인 ‘삼단치기’ 액션은 당시, 대단한 화제를 낳으며 그가 최고의 액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이소룡의 최고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정무문>에서는 이소룡의 절권도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호쾌한 액션이 등장할 뿐 아니라, 처음으로 쌍절곤을 사용하며, 이소룡과 쌍절곤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이 후 자신의 첫 각본과 감독작인 <맹룡과강>을 통해 무술 액션의 섬세한 부분까지 표현해내는데 성공했고 할리우드 배우이자 가라데 고수인 척 노리스와의 압도적인 1대1 대결을 선보이며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할리우드와 합작한 <용쟁호투>는 이소룡 영화의 절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절제되면서도 임펙트있는 액션 연기로 최고의 액션배우임을 입증했다. 이는 그가 쿵푸를 바탕으로 실전에서 응용 가능한 모든 무술을 섭렵한 것과 실전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였다. 이 후 수 많은 모방자를 낳았지만 단 한 명도 그에게 근접하지 못했다. 이소룡은 여전히 남자들의 로망이자 영원한 우상이며 말 그대로 액션배우 중 최고임은 40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이유다.


‘이소룡의 <정무문>’
수 많은 리메이크작을 탄생시킨 홍콩 액션 대표작 <정무문>의 원조!
이소룡식 액션의 진정한 시발점이자 최고의 무술영화로 평가 받는 영화 <정무문>은 이소룡의 두 번째 작품으로 40년이 지나도록 리메이크가 거듭되고 있는 영화이다. 홍콩의 내로라하는 대표 액션 스타인 견자단과 이연걸이 <정무문>의 리메이크작을 통해 홍콩 대표 액션배우로 탄생되었을 정도로 영화 <정무문>은 중국 영화사에서 빠질 수 없는 영화이다. 더불어 <정무문>의 주연 배우로 캐스팅되는 것은 차세대 스타의 자리를 따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처럼 시간이 흘러도 인정받고 있는 영화 <정무문>은 스승의 복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열혈 청년의 이야기 그린 작품이다. 오랜 시간 회자될 정도로 영화는 당시 큰 인기를 누렸으며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유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반일감정과 민족의식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무문>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쌍절곤을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서 어떠한 효과도 사용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선사 할 수 없는 리얼한 액션임을 증명할 수 있었던 소품의 첫 등장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무문>에서의 쌍절곤 사용은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었던 이소룡만의 사실적인 액션과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의미가 크다. 여기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1대100 결투씬은 이후 견자단의 <정무문: 100대 1의 전설>로 타이틀화되어 리메이크 될 정도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소룡의 날라차기와 동시에 총성이 울리는 마지막 장면은 홍콩 영화사에 한 획을 그으며 40년이 지난 지금도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


‘스타 이소룡!’
전세계 스타들도 사랑한 전설적인 스타!
불후의 스타 이소룡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존재감이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로 출연했던 작품보다 더 많은 영화에 등장하고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세대와 시대를 초월한 팬들이 여전히 그에게 뜨거운 애정을 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명 감독, 스타들은 자신의 우상으로 이소룡을 뽑으며 그에게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달콤한 인생><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자타공인 스타 영화감독 김지운은 지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자리한 오픈 토크를 통해 “내가 영화라는 것에 빠지게 된 것은 이소룡 덕분이다” 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짝패><부당거래><베를린> 등 국내 대표 액션감독 류승완 역시 “이소룡은 영화스타라기 보다는 한 시대를 휘어잡고 불꽃처럼 살다간 하나의 아이콘이었던 것 같다.” 라며 그에 대한 열렬한 팬심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비열한 거리><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누구보다 이소룡을 향한 애정을 과감 없이 드러낸 유하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오마주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2007)라는 책을 출판하며 매사에 이소룡에 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펄프 픽션><황혼에서 새벽까지><장고:분노의 추적자> 등을 통해 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빌>(2003)에서 극 중 주인공 ‘더 브라이드’역의 우마 서먼에게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1978)를 향한 강렬한 오마주를 담았다. 특히 이소룡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그의 대역까지 하며 친분을 나눴던 세계적인 스타 성룡은 “나는 이소룡 같은 신이나 영웅이 될 수 없다”며 우상이 된 이소룡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현재 자신의 역량을 한계 없이 펼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들이 자신의 창조물에 이소룡에 대한 영감을 숨기지 않으며 그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보내고 있다.




[ Epilogue ]

김지운 감독
내가 영화라는 것에 빠지게 된 것은 이소룡 덕분이다.

성룡 배우
나는 이소룡 같은 신이나 영웅이 될 수 없다.

유하 감독
몆 주일 동안 버스비를 아껴서 이소룡의 영화를 봤다. 그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일종의 축제였다.

류승완 감독
이소룡은 영화스타라기 보다는 한 시대를 휘어잡고 불꽃처럼 살다간 하나의 아이콘이었던 것 같다.

장혁 배우
절권도의 창시자 이소룡을 존경한다. 남자의 몸매 중에서는 이소룡의 몸매가 가장 멋진 몸매였던 것 같다.

김수로 배우
이소룡을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지금도 그의 무술을 사랑하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류수영 배우
그냥 그의 삶을 좋아했다. 차력 동아리에 가입했고 매일 쌍절곤을 들고 다녔다.

왕조현 배우
이소룡은 중국영화가 세계에 설 수 있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자, 그는 모든 배우 그리고 중국인의 영웅이다.

견자단 배우
이소룡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분노의 주먹 <정무문>이다. 그의 발차기는 굉장히 빠르고 멋지다. 난 처음 그의 영화를 볼 때 탄성을 금치 못했고. 그는 아직도 나의 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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