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구석구석 잊혀진 기억 곱게 영글게 해주옵소서
4.3 사건으로 상처 입은 제주도와 제주사람들...그리고 지금 아프게 부서져 가는 강정마을의 이야기
제주시 애월읍 납읍에 살고 계신 강상희 할머니, 할머니의 남편 김봉수는 4.3으로 희생되었다. 해군기지 문제로 떠들썩한 서귀포시 강정마을. ‘4.3의 원혼이 통곡한다’ 와 같은 수많은 현수막이 제주 4.3과 해군기지 문제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카메라는 유령처럼 제주도 납읍리, 가시리, 강정마을, 일본 오사카 등을 돌며 그 흔적과 균열들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다시 강상희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집 앞마당으로 돌아온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잠자리 밑에 녹슨 톱을 두고 살아온 할머니의 삶...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짊어진 제주도와 제주사람들의 삶에서 녹슨 톱은 언제쯤 치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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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65주년인 2013년 봄
세상을 울릴 4•3 영화 2편 <비념><지슬>을 만난다!
지금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제주섬의 노래!!
바야흐로 3월과 4월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뚜렷한 역사적 인장이 찍힌 달이다. 3월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의 달이며, 4월은 현대사의 가장 슬픈 핏빛 역사로 기록될 제주 4•3사건과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인 4•19혁명으로 기억되는 역사적인 달이다. 이렇듯 뜻깊은 3월과 4월에 세상을 울릴 영화 2편이 연이어 개봉한다. 2편 모두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비념>과 <지슬>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영화 최초의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의 쾌거를 올린 오멸 감독의 극영화 <지슬>은 먼저 3월 1일 제주 개봉을 시작해 3월 21일 전국 개봉을 앞뒀다. 제주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섬과 제주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념>은 바로 그 4•3사건의 65주년이 되는 2013년 4월 3일 관객들을 만난다.
<비념>은 제주 4•3사건으로 상처 입은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의 오랜 한숨과 깊은 슬픔에 귀 기울이고, 최근의 강정마을 사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를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비극을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4•3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강상희 할머니의 삶을 주축으로, 제주도가 아름다운 관광지면서 동시에 실은 거대한 무덤이며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영혼들의 땅임을 보여준다. 임흥순 감독은 우리가 만들어낸 제주의 낭만적인 풍경 속에 묻힌 시린 역사와 기억들과 나무, 돌, 바람, 숲의 실제 풍경을 통해 제주섬과 제주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불러낸다. 관객들은 그렇게 소환된 4•3의 영혼들과 아물지 않은 상처를 통해 우리가 지금,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제주섬의 노래와 조우한다. 그리하여 <비념>은 제주 구석구석의 잊혀진 4•3의 기억과 영혼들을 불러내어 애도하는 것만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다.
오멸 감독의 <지슬>은 1948년 제주사람들이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 소개령을 듣고 피난길에 오르며 겪었던 제주도민들의 혹독한 겨울을 담아낸 작품이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영화 특유의 이미지와 숨막히는 미장센, 깊이 있는 서사로 관객에게 강렬한 매혹을 선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슬>의 미덕은 그 춥고 배고팠던 시절, 역사적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민초들의 삶을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마당극처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4•3 당시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학살이라는 실화가 바탕인 만큼 <지슬>은 관객들에게 보다 진정성 있는 감동을 준다.
‘빌고 바란다’라는 기원(祈願)과 같은 의미로도 해석되는 제목의 <비념>과 제주어로 ‘감자’를 뜻하며,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양식이자 희망의 끈이며 삶의 매개체인 <지슬>. 올봄, 우리에겐 반드시 귀 기울여야할 제주섬의 노래이자 보편적인 삶의 숭고함을 노래한 영화 2편 <비념>과 <지슬>이 당도했다.
1948년 4•3사건과 2013년 강정문제를
함께 담은 최초의 영화가 온다!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한 깊이 있는 문제작!!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누가 뭐래도 제주도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귤, 해녀, 유채꽃, 돌하르방 등 지역의 상징을 술술 말할 수 있는 곳! 몇 년 전부터는 ‘올레길’과 ‘제주 이민’ 트랜드로 젊은이들에게 힐링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가 그 찬란한 한편으로,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립문제로 몇 년째 외로운 투쟁 중이라는 사실을 대중은 얼마나 알까. 강정마을 사태 또한 일반대중에게는 65년 전 4•3사건처럼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어느새 잊혀져가는 이슈가 되어버렸다. 이 조금은 낯설고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비념>을 통해 숨죽이며 맞닿았다.
임흥순 감독은 거대담론보다는 개인의 미시적인 관점의 역사, 가족에서 출발하는 방식의 작업들을 주로 해온 비주얼 아티스트다. <비념> 역시 제주도를 드나들다 우연히 알게된 강상희 할머니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개인의 관점에서 출발해 현재의 강정마을 사태, 그리고 과거 4•3사건까지 확대시켜 거슬러 올라가 제주도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그렇게 <비념>은 현재의 강정문제가 불현 벌어진 사건이 아님을 사유한다. 더불어 치유되지 않은 4•3의 상흔과 청산되지 않는 역사의 오류를 통해 반복되고 있는 씻기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임을 발견한다. 2007년 국방부는 강정마을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지역으로 선정했고, 2010년 첫 공사가 시작됐다. 마을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이 공사는 2013년 현재도 여전히 강행 중이다. 지금까지 강정 해군기지 건설반대를 위한 종교, 사회, 문화계 등의 다양한 액션과 제스쳐가 있었다. 특히 영화로는 <잼 다큐 강정>이라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가 있고, 이는 8인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강정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다. 임흥순 감독은 환경적이고 정치적인 접근이 아닌, 개인의 역사로부터 출발해 강정사태의 기원을 4•3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인터뷰와 과거의 거친 기록영상을 통해 4•3사건이 국가적 폭력으로 자행된 역사상 가장 무자비한 학살이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현재의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여러 영상들을 치밀하게 뒤섞음으로써 반세기가 지난 과거와 현재가 깊게 조응하는 모습을 목도케 한다. 하지만 <비념>은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 혹은 반대라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임흥순 감독은 4•3사건의 피해자인 개인들의 기억과 강정 사람들의 이야기와 주장을 그대로 보여줄 뿐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감독은 이를 통해 국가의 권력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초들을 짓밟아 왔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폭력으로 강정이 파괴되고, 앓고 있는지 보여주고 들려준다. 구럼비 바위를 뚫고 있는 굴삭기의 어마어마한 소음 속에 강정마을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처연하게 묻히는 시간을 공유케 한다.
<비념>은 임흥순 감독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만든 영화이다. 4•3사건이 학살이라는 국가의 실제 폭력이었다면, 강정사태는 찬반의 문제가 아닌 과정의 문제로써 주민들의 의견이 무시된 폭력이다. 여전히 같은 맥락으로 반복되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로서 맞닿은 제주4•3과 강정의 슬픔은 4월 3일 <비념>을 통해 볼 수 있다.
이미지와 사운드 중심으로 직조된
낯설고 매혹적인 감성에 홀린다!
놀라운 미학적 성취를 이룬 웰메이드 아트 다큐!
<비념>은 4•3의 진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영화도, 강정의 현실을 주장하려는 영화도 아니다. <비념>은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섬과 제주 사람들에 관해 나즈막히 읊조리는 작은 기도, 혹은 가만가만 부르는 치유의 노래이다. 임흥순 감독은 이와 같은 감성을 직조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을 적용했다. 기존 다큐멘터리들처럼 서사와 인물에 기대어 관객을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감정의 진폭을 조정하기 위한 연출과 편집을 지양하고, 최소한의 인터뷰를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에 녹여내는 방식을 택한 것. 이는 임흥순 감독이 영화감독이기 전에 앞서 사진,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작업을 활발히 해온 역량 있는 중견 비주얼 아티스트인 까닭이다.
특히 <비념>이 다른 다큐멘터리와 차별되는 지점은 인터뷰이의 음성과 화면이 몇 장면을 빼고는 거의 다 분리되어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제주의 쓸쓸한 풍광에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목소리로만 들려주는 식이다. 감독은 관객의 감정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일반적인 방식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시각적인 자극보다 감각적인 부분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일종의 몽타주 효과로 불일치의 긴장감에서 터져 나오는 불편함을 통해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전언. 더불어 좀 더 대중적인 방식의 4•3 이야기를 만들라는 주변의 의견도 있었지만, 임흥순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쉽게 말한다고 해서 듣는이가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니라고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어부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비념>은 이야기보다는 공간, 사물의 움직임, 바람 부는 풍경, 곤충과 동물 같은 생명들을 보여줌으로써 은유와 상징을 통해 제주의 슬픔에 다가간다. 그렇게 제주도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낸 혹은 주입된 낭만의 풍경이 아닌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실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제주섬의 내면의 풍경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또한 제주의 고유색을 찾고자 골몰한 감독은 제주 지천에 널린 주황색과 녹색을 대표색으로 설정한 듯, 감귤과 그 감귤을 감싸는 녹색의 이미지를 여러 컷에 걸쳐 담아낸다. 주황색도, 녹색도 아닌 감귤 한 개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컷 하나로도 관객은 처연한 슬픔을 맛보게 된다. 때때로 카메라는 4•3사건 이후 비극의 현장어었던 공간들을 훑으며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헤매기도 한다. 야간 산행 속에서, 혹은 눈밭 위의 박히는 발자국을 따라 이내 가파른 호흡과 함께 발자국 소리를 되살려낸다. 어딘가를 향해 두려움으로 짖어대는 개들을 올려다 보고, 깃발을 날리고, 비닐 봉지를 날리는 서로 다른 바람, 파르르 날라가는 새떼들 풍경, 심방(무당)이 흔드는 요령(방울) 소리, 강정의 구럼비 바위 뚫는 굴삭기 소리 등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비념>의 모든 이미지 컷과 사운드는 4•3사건과 강정문제로 상처입은 제주섬과 제주사람들의 이야기에 오롯이 복무한다. 이는 바람 한점, 돌멩이 하나에도 제주섬의 오랜 한숨과 설음이 묻어 있을을 임흥순 감독의 예민하게 아파했던 까닭일 것이다. 그리하여 <비념>은 이 낯설지만 매혹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감각적인 직조를 통해 놀라운 미학적 성취를 이뤄낸 웰메이트 아트 다큐멘터리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 DIRECTOR’S COMMENT ]
이 영화는 ‘제주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역사와 기억들과 나무, 돌, 바람, 숲과 함께했다. 역사는 현재의 권력과 망각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4.3은 유령이며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실체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죽은 자에 대한 ‘애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본성이고 기본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우리들의 그러한 간절한 마음, 숨겨진 마음(비념)을 불러내는 요령(방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PRODUCTION NOTE ]
비는 마음
죽은 것이라고 해서 역사에서 까지 죽은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역할은 초혼이다. 사자가 자신들과 더불어 묻어버린 미래를 우리에게 되돌려 줄 때까지 사자와의 대화는 끊어져서는 안 된다.
- 헤이너 뭘러 Heiner Muller -
1. 제주도는 일제강점기 말기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었던 일본의 동북아 요충지로서의 전략기지였다. 해방 직후에는 일본군의 철수와 함께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고, 외지에 나가 있던 제주도 사람 6만 명이 귀환했다. 대흉년, 구직난, 생필품 부족과 미군정(1945-1948)의 미곡정책 실패는 도민들의 불만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행사 도중 경찰에 의한 발포사건이 발생하면서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제주도민들은 미군정 비호아래 있는 우익과 경찰들의 폭정에 대항했고, 그것이 ‘제주 4•3사건’의 전주곡이 되었다. 도지사, 군수, 경찰청장, 서장 등 행정관리 대부분 육지 출신이었고 특히 섬의 특성과 공동체 생활에 무지했던 경찰관과 서북청년회의 횡포는 도민들의 분노를 들끓게 했다. 이어진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1948.4.3)를 시작으로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1954.9.21) 될 때까지 무고한 제주도민 3만 명이 희생하게 된다. 비공식으로는 8만까지도 추산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8만 명 이었으니 9명 중 최소한 1명이 죽은 셈이다.
한국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이 고통의 역사이듯 제주도 또한 그것을 비켜가지 못했다. 푸른 바다와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알고 있던 제주도에는 이러한 가슴 아픈 역사, 그것도 50년간 국가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지만, 또 다시 오래된 기억 속으로 소멸되어 가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사람들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살아남은 자들 역시 하나 둘 그 뒤를 따른다. 어느 날 그들의 절망과 간절함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있다면 어디에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 강상희(1925년 제주시 애월읍 상가생)는 1946년 22세에 납읍으로 시집와 1948년 김순자(1948년 제주시 애월읍 납읍생)를 낳았다. 그리고 1949년 4•3으로 남편 김봉수(1927년 제주시 애월읍 납읍생)를 잃었다. 김순자는 이번 제주 프로젝트(영화)의 공동기획과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김민경의 어머니이다. 어느 날 강상희, 김순자 두 사람과 함께 故 김봉수 묘를 가보기로 한다. 강상희는 10년 만에, 김순자는 9년 만에, 우리는(임흥순, 김민경) 처음이다. 출발 전 강상희는 묘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안다고, 김순자는 위치가 가물가물 하다고 한다. 여러 밭을 지나 산 중턱에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무덤들, 쌍 묘와 애기 묘, 비석이 있고 없는 많은 무덤들. 결국 길을 잃는다. 그리고 흘러 간 시간.
노구의 몸을 이끌고 한 시간여를 헤매 기어이 찾아 故 김봉수 묘 옆에 앉아 망연자실하게 앉는다. 제주풍습에 벌초는 남자들의 전유물이기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다는 김순자, 그 책임을 남자들에게 유예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납읍은 제주도에서도 유명한 유림촌으로 전통 민간신앙 또한 유교적 색채가 강한 마을이다.
3. “나는 무장대(4•3 당시 남로당을 중심으로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나 토벌대(경찰, 군인, 서북청년단)나 지금도 어느 한쪽만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습니다.”이번 작업을 시작하면서 90년대 이후 4•3에 대한 진상조사 및 작품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중 김성주 시인과의 인터뷰 내용 중 한 대목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4•3이후에 태어났지만 김성주 시인은 4•3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47년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4살 때 무장대에 의해 반죽음 상태로 산에서 내려왔고, 남로당, 토벌대, 무장대에 소속된 친가와 외가 모두 4•3 때 죽었다. 어릴 적이지만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복잡한 가족사는 성인이 된 이후 연좌제로 다시 이어졌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봤었어요. 빨간색과 파란색이 서로의 색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뒤섞이면 탁해집니다. 흑색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럼 모두가 죽어요. 그래서 고민한 게 그 중간색이 뭘까 고민해봤죠. 주황과 녹색이 그 중간색이라고 생각해요. 이 색을 만들려면 노란색이 필요하죠. 그 노란색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어요.” 시인의 구체적인 고민들은 하나의 방향 제시이면서 동시에 적지 않은 물음을 던져 주었다.
4. 오늘날 제주도는 도시생활에 지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 받고자 육지에서 찾아 온 사람들로 붐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서 4•3 당시 한라산으로 올라갔던 제주도 사람들을 떠올렸다. 64년 전에도 살기 위해 올라갔다.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죽어서 내려오거나 죽어서도 못 내려 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삶과 죽음사이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기 전 이들이 본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때에 일어났던 일들 혹은 사건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도 이유 없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죽어간 그들을 되살려 억울함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다.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현실적이지 못한 방법이 있다. 나무에게, 숲에게, 죽은 자에게 말을 걸고 듣는 것이다.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상처가 흙과 돌, 나무, 바람 등 제주 구석구석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의 상황과 심리를 체험하기 위해 야간 산행과 숲속을 찾아 다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이며, 산 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몰랐던 숨겨진 역사를 만나러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숲은 눈으로 보는 것과 들어가는 것의 차이가 없는 듯 했지만 컸다. 깊은 숲은 생각지도 못한 공포와 두려움을 전달해 주었다. ‘나’에게 닥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오래전 죽은 자들의 인간에 대한 배신과 분노였던 걸까.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고통의 공간, 그곳의 흔적과 균열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 ‘이름 없는 풍경’은 상상, 접신(接神)과 같은 비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보려고 하는 노력만으로도 가능하다. ‘이름 없는 풍경’은 그렇게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는 보이지만 보고자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5. 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가 인정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다. 그리고 어느 지역을 가더라고 일제강점기와 4•3의 상흔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제주도에 64년 전과 같은 일이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재현되고 있다. 대다수 주민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나아가 제주도가 배제된 채 정부와 해군의 일방적인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양해군’의 기치를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대중국 방어를 위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 안에 들어가는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 이는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자연환경 파괴와 마을 공동체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해군기지 찬반 문제로 이웃은 물론 형제들까지 갈라놓았고, 마을포제와 같은 공동의례를 지내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아이러니하게 강정마을은 2006년 5월 환경부로 부터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선정된 곳이다. 이 문구가 적힌 마을입구의 표석만이 예전 평화스러웠던 강정마을을 예측하게 한다. 현재 주민들은 또 다른 4•3의 ‘잃어버린 마을’의 참화를 겪지 않기 위해 5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외로운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역사는 현재의 권력과 망각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고, 지금의 제주도 강정마을이 그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4•3은 유령이며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실체이다.
6. 故 김봉수 제사와 납읍리 풍경을 시작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비장한 제주도의 숲과 나무, 바람을 따라 낯선 길을 나섰다. 그리고 가시리 등 제주의 본향당과 일본 오사카 안의 용왕궁(제주도 재일 교포들이 토속신앙의 대상인 용왕에게 소원을 빌고 굿을 하던 곳으로 지금은 폐쇄되었다)을 통해 척박한 환경만큼 가혹했던 여성들의 삶, 또 다른 강상희 할머니들과 마주한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잠자리 밑에 녹슨 톱(제주도는 악몽을 꿀 경우 잠자리 밑에 톱과 같은 날카로운 쇠붙이를 두는 풍습이 있다)을 두고 살아온 강상희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본다. 제대로 통곡도 하지 못했을 그 절규와 절망을 바람과 나무가 전해주고, 그 마음이 지금 이곳의 우리들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적대감, 무관심, 편견의 더 큰 톱을 든 악몽 같은 우리들의 현실을 비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업이 4•3의 진실을 설명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이 흔적, 이 사건의 기억을 체험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통해 지금의 삶 또한 과거와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자 함이다. 그것이 고통의 미래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이유이다. 타자에 대한 ‘연민’과 죽은 자에 대한 ‘애도’는 인간의 본성이고 기본적 예의이다. 참된 삶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남을 짓밟고 올라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물질로부터 내쳐진 ‘나’의 두려움과 영혼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업이 그러한 굳어 버린 마음, 숨겨진 마음을 불러내는 요령(방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3, 4번은 2011년 11/12월호 B-ART(monthly visual art magazine form Busan)에 실린 글 ‘이름 없는 풍경’을 수정하여 재수록 한 것이다.
글 임흥순
(위 글은 출간된 임흥순 작가의 도서 <비는 마음>의 서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TIP 2: 영감놀이
영감놀이는 한국의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영감놀이는 옛날부터 제주도에 전해 내려오는 무속(巫俗)의 하나로 영감이란 귀신의 제주도식 존대어이다. 질병을 몰고 오는 신은 영감의 동생 신인데, 이 신은 항상 아름다운 여인을 탐하므로, 그런 여인에게 빙의하여 질병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병을 고치려면 형님이 되는 영감신에게 청하여 그로 하여금 질병을 준 동생 영감신을 데려가게 함으로써 낫게 한다는 것이다. 이 놀이는 형님되는 영감신을 청하여 빙의해 있는 동생 영감신을 데려가게 하는 과정이 중심이 되어 있는 것으로서, 원시종교의 신령관과 질병관에서 이루어진 치병의례(治病儀禮)의 극적인 민속놀이다.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TIP 3: 귀양풀이
제주도 지방에서 장례를 지낸 날 밤에 상가에서 치르는 무속의례.
이 의식을 치름으로써 죽은 사람의 혼이 비로소 저승으로 가게 되고, 후손들도 편안하게 된다고 한다. 제의의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사자상(使者床)ㆍ차사상(差使床)ㆍ영개상[靈魂床]ㆍ문전상(門前床)ㆍ공싯상 등의 제상을 차리고, 평복차림의 심방(神房 : 무당) 2인이 북, 장구, 요령 등의 악기를 사용하여 진행해나간다.
절차는 먼저 초감제부터 시작하는데, 천지개벽으로부터 자연ㆍ인문현상의 기원과 형성을 노래하는 ‘베포도업침’, 굿하는 날짜와 장소를 노래하는 ‘날과 국섬김’, 굿하는 사연을 설명하는 ‘연유닦음’, 그리고 신이 오는 문을 여는 ‘군문열림’을 행한 다음에 신을 청해들이는 ‘신청궤’를 한다. 이어서 신에게 제물을 먹도록 권하고 비는 ‘공연’과 ‘하정’, 죽은 영혼에게 원미(元味 : 쌀미음)를 바치는 ‘원미 권청’, 죽은 영혼을 저승에 곱게 데려가주도록 비는 ‘저싱 초지옥 사나움’, 차사의 내력담을 노래하고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해주도록 비는 ‘차사본풀이’와 ‘막지옥에 사나움’, 상위 신들을 돌려보내는 ‘상당숙임’과 마지막으로 모든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 그리고 끝으로 집안 구석구석에 술을 뿜어 부정을 씻고, 콩을 뿌려서 잡귀ㆍ잡신을 쫓는 ‘살생다림’으로 끝을 맺는다.
이 굿은 시왕(十王)ㆍ차사 등의 신을 청하여 죽은 사람을 저승까지 고이 데려가도록 비는 것이 의례의 중심을 이룬다. ‘살생다림’의 제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의미 외에 정화(淨化)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굿의 형식은 다소 다르나, 본토의 자리걷이(집가심)와 그 성격이 같다.
(제주도 무속자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