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거미의 땅

Tour of Duty

2012 한국 15세이상관람가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 150분

개봉일 : 2016-01-14 누적관객 : 1,017명

감독 : 김동령 박경태

  • 씨네217.00
  • 네티즌10.00
철거를 앞둔 경기 북부의 미군 기지촌, 멀찌감치 포성과 전투 헬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카메라는 이름 없는, 혹은 이름만 남은 무덤들이 그득한 숲을 지나 폐허가 된 유령 마을로 내려온다. 마을에는 신체에 각인된 역사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이 있다. 바비 엄마 ‘박묘연’은 30여 년간 선유리 선유분식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왔다. 박묘연은 미군에게서 버림받으며 스물여섯 번의 중절 수술을 감행했다고 증언한다. 박인순은 의정부 뺏벌의 쇠락한 좁은 골목길에서 폐휴지를 주워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며, 미국에 두고 온 두 자식 푸셀라와 쿤티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아프리카계 혼혈인 안성자가 있다. 그녀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구 세라를 회상한다. 그렇게 망각된 기지촌의 공간 속에서 의무의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신기루처럼 잊혀진 유령들이 메아리처럼 귀환하는데…
more

별점주기

0
리뷰 남기기

포토 (11)


동영상 (1)

전문가 별점 (5명참여)

  • 6
    박평식감독의 좋고도 나쁜 고집
  • 7
    유지나아픈 기억, 그 힘으로 피어나는 다큐 시학!
  • 9
    이용철<위로공단> 이전에 <거미의 땅>이 있었다
  • 7
    윤혜지오롯하게 담아내기란 이토록 어렵다
  • 6
    정지혜감정의 재연이 주는 득과 실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제작 노트
Focus 1
동시대 영화의 최전선, 아방가르드 필름의 탄생!
미학과 윤리를 아우르는 쾌거
높은 수준의 구성력

<거미의 땅>은 쇠락한 기지촌과 거기를 배회하는 여성들을 담은, 동시대 영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영화다. 가히 미학과 윤리를 아우르는 쾌거를 성취했다고 할 수 있다. 감독들은 비동일시와 과잉된 동일시 사이 어디쯤, 타자와 아슬아슬하게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낸다. 그들은 우리 주변의 낯선 자들에 대해 쉬이 겁먹지 않으며, 쉬이 동정하지도 않는다.

<거미의 땅>은 유령 마을을 배회하는 인물들과 함께 장면을 재창조하였다. 처음에 영화는 기록하고 전달한다는 다큐멘터리의 어떤 오래된 전통에 충실하는 듯하다. 식재료를 다듬고 당뇨병 주사를 맞는 박묘연의 일상을 비추는 동시에 그녀의 애끓는 증언을 묵묵히 듣는듯 보인다. 관객들은 이 재현이 갖는 모종의 진실성과 일회성을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행동들은 감독과 배우 간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몇 번이고 반복되어 촬영된 것이다. 안성자의 시퀀스에서는 실험의 수위가 높아진다.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 1969-1978”는 영화 내에서 독립적인 모듈로 작동할 수 있는 하나의 시네 에세이로, 단순한 설명문을 뛰어넘어 높은 수준의 구성력을 갖고 있다. 또한 감독들은 전지적 시점을 지녔다고 비판 받는 내래이션을 통해, 외려 사실주의적 재현이 갖는 권위를 우화적으로 해체했다.

그래서 <거미의 땅>을 단순히 ‘피해자’의 ‘이야기’로 여겨선 곤란하다. <거미의 땅>은 비극에만 밑줄 긋지도 않으며, 인물들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남겨두지도 않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역사의 증언자는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주체의 기억은 파편화되어있다. 그래서 인물과 가까운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는 것만으론 온전히 그 기억에 접근할 수 없다.

<거미의 땅>은 쉬이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영화다. 불필요한 형식적 실험에 치중하지 않으며 윤리적인 재현을 위해 진지한 탐구를 지속함으로써, <거미의 땅>은 동시대 영화의 최전선으로 전진하고 있다.


Focus 2
숨을 옥죄는 트라우마의 전경!
독특하고 기묘한 이미지, 세심하고 정교한 사운드
몫 없는 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거미의 땅>은 신기루처럼 기억되지만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귀환하는 트라우마를 영화화했다. 독특하고 기묘한 이미지가 관객의 머리를 짓누른다. 카메라는 마치 유령을 쫓는양, 아니면 그 자신이 유령인양 비밀이 숨겨진 황량한 마을과 트라우마가 새겨진 폐건물을 배회한다.

이 영화는 분명 구체적이며 역사적인 장소, 미군 기지촌이 있던 쇠락한 경기 북부의 한 마을을 무대로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쉬이 마을에 대해 전체적으로 지도그리기(mapping) 힘들다. 인물의 기억이 분절된 만큼, 영화 역시 공간을 분절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배경 공간이 트라우마의 전경으로 뒤바뀌며 망자의 상흔이 출현한다.

그렇다고 카메라가 공간을 추상적으로 해체하는 건 아니다. 외려 감독들은 신중하게 인물들의 육성과 몸짓을 씨줄과 날줄로 공간들을 엮어낸다. <거미의 땅>은 감독들이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박묘연, 박인순, 안성자와 왕래하며 영화적인 가능성을 계속 실험한 결과물이다. 감독들의 말대로 공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공간은 결국 인간의 기억이 그 속을 채우기 때문이다.

한편 감독들은 영화가 내러티브로만 소구되지 않도록 이미지는 물론, 무척 세심하고 정교하게 사운드를 배치하였다. 박묘연의 시퀀스가 지나면, 감독의 우화적인 내래이션이 이어지는데, 카메라가 눈 내리는 황량한 마을을 비추는 와중 메아리처럼 떠도는 기억들을 대변하듯 산에는 군대의 포성과 구령소리가 덧입혀있다. 음향뿐 아니라 음악도 인상적이다. 인디밴드 ‘투명(twomyung)’이 참여해, 지나치지 않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음악을 선보였다. 소리와 영상이 충돌할 때, 관객들은 그 틈에서 나오는 트라우마를 엿보는 동시에 엿들을 수 있다.

감독은 말할 수 없는 자, 말하여도 듣는 이 없는, 몫 없는 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안한다. <거미의 땅>에서 풍경과 소리는 이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부재를 증언하는 흔적이 된다. 이처럼 <거미의 땅>이 실험하는 다양한 영화적 가능성은 더욱 미적이기에 더욱 정치적이다.


Focus 3
기지촌 공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
한국 근현대사의 트라우마가 새겨진 마을
기억하는 법에 대한 급진적인 질문

기지촌은 한국에서 주한미군 주둔기지 근처에 형성된 마을을 뜻한다. 전후 생계 유지를 위해 미군부대 인근에서 한인들의 서비스업이 성행했으며, 성노동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은 유엔마담, 양공주와 같은 멸칭으로 불리며, 마을 사람에게 돌팔매질을 당했다. 심지어 국가가 개입하여 강제적으로 여성을 격리수용하기도 했다. ‘몽키하우스’는 그중 악명 높은 ‘낙검자’ 수용소 이름이다. 낙검자는 보건소 실시 성병 검진에서 떨어진 여성들을 일컫는 말로, 그들은 아무런 테스트 없이 페니실린 주사를 투약당해 쇼크사하기도 했고 반복되는 수용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가 떨어져 죽기도 했다. 거인들의 전쟁 아래 인권이 유린된 끔찍한 역사다.

<거미의 땅>의 배경은 의정부 뺏벌과 선유리로, 대표적인 기지촌 지역이다. 하지만 미군 부대가 이주한 뒤 유령마을이 되어버렸다. 감독들은 원래 이렇게 사라져가는 경기북부 기지촌에 관한 사진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 넓이의 9배에 달하는 공간을 모두 탐사하고 아카이빙하려는 계획이었다. 주민들은 감독들을 경계하였지만, 인터뷰를 통해 신기루처럼 사라졌던 기억 속 공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감독들은 휴전선과 가까운 마을 중 기지촌이 아닌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망각에 소름끼쳐하며, 감독들은 <거미의 땅>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근 우리는 한일 양 정부가 종군 위안부라는 문제를 ‘최종 타결’하려는 시도를 목격하고 있다. 기억을 위해선 기록이 필요하다. <거미의 땅>은 어떤 기억을 남기기 위한 기록물이자,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 그리하여 기억하는 법에 대해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Focus 4
세계를 사로잡다!
한국 최초! 야마가타 국제다큐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및 특별상 수상의 영예
영화제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권위의 뉴욕현대미술관(MOMA) 초청

<거미의 땅>은 일본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국내 최초로 경쟁 부문에 진출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또한 캐나다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체코 이흘라바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비롯해 뉴욕현대미술관(MOMA) 다큐멘터리포트나잇에 초대받았다. 특히 야마가타와 핫독스의 경우 세계 3대 다큐멘터리영화제라 불리고 있으며, 현대미술에서 뉴욕현대미술관은 으뜸가는 위상을 자랑한다. <거미의 땅>은 영예로운 작품이다.

특히 “일말의 선정적 전략에 의존하지 않고도 숨을 멎게 한다”는 제 17회 몬트리올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평은 영화의 윤리적 태도와 미학적 성취 모두에 대한 가장 간결하며 적확한 찬사다. 제 13회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평을 통해 <거미의 땅>이 영화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쾌거를 이뤄냈음을 인정하고 있다.

“황량한 이미지 속에 담긴 기묘함과, 미스터리하고 우울하지만 시적인 섬세한 감각이 있다. 동시에, 이 영화를 진정으로 유의미하게 만드는 정치적 관점이 명료하고 강렬하게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거미의 땅>은 부산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더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정성일, 김성욱, 신은실, 변성찬 등 수많은 영화계 인사를 비롯해 진은영 시인 등 역시 지지를 밝혔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비명처럼 들리는 사연들, 폐허의 공간, 빛과 색채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을 전했으며, 신은실 프로그래머는 "말할 수 없는, 말하지 못하는, 말하지 않는 이의 몸짓과 더불어 그녀들이 머물고 떠도는 곳이, 보여줄 수 없는 기억을 나눈다"는 평을 남겼다. 그 중 가장 뜨거운 마음을 보내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평을 아래 소개한다.

"세 명의 여자, 세 마리의 거미, 이 영화는 마치 거미줄처럼 연약하지만 끈질기게 이어지고 다시 이어진다. 나비같은 당신이 부디 여기에 걸려들어 이 힘겨운 삶의 증언을 고스란히 견뎌주었으면 고맙겠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