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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Nobody’s daughter Haewon

2012 한국 청소년 관람불가

드라마 상영시간 : 90분

개봉일 : 2013-02-28 누적관객 : 34,876명

감독 : 홍상수

출연 : 이선균(성준) 정은채(해원) more

  • 씨네217.17
  • 네티즌7.26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했던 그녀의 슬프고 아름다운 며칠간의 이야기.

대학생 해원(정은채)은 학교 선생인 성준(이선균)과의 비밀스런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 내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엄마(김자옥)와 만나고 우울해진 해원은 오랜만에 성준을 다시 만난다. 그날 식당에서 우연히 같은 과 학생들을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게 된다. 해원은 더 불안해지고, 성준은 둘이서 어디론가 도망을 가자는 극단적인 제안을 한다...
해원은 자주 꿈을 꾼다. 그녀의 꿈은 그녀의 깨어있는 삶과 비교가 될 것인데, 그 중 어느 것도 그녀의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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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6명참여)

  • 6
    김봉석남자는 찌질하고, 그녀는 매력적이고
  • 8
    김혜리거짓말을 싫어하는 그녀는, 너무 예뻤다
  • 8
    이동진가봤던 곳과 해봤던 일인데도 번번이 미끄러지는 처연함
  • 6
    황진미정은채를 위해 다시 찍은, 홍상수 근작들의 속편 모음
  • 8
    이화정해원을 만나 상담해주고 싶다
  • 7
    장영엽슬픈 꿈을 ‘봤다’
제작 노트
[ FROM HAEWON ]

‘해원의 초대장’
첫 말 - 몰라야 진짜가 될 수 있어요
저, 해원이에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요. 제가 누구의 딸도 아니기는 해도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이기는 한데요, 하여간에 이 분 참 이상해요. 남들 영화에는 주제도 있고 교훈도 있다는데 제가 제 이야기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런 건 잘 모르겠거든요. 저 분은 그런 건 없어야 한대요. 그리고 몰라야 하고 모르는 게 영화를 만드는 데 힘이 된대요. 정말일까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울 뻔 했어요. 이렇게 멋진 영화의 주인공이 저인 줄 몰랐거든요. 제 일기장에서 가져간 하루하루의 일기가 진행되는데 어디가 꿈이고 아닌지 모르겠고 그걸 보고 있으면 정말 신비하게도 슬퍼지거나 행복해지거나 하는 감정이 동시에 벅차 오르거든요. 그런 경험을 해보셨나요? 길 하나를 나란히 따라 걷고 있는데도 여러 개의 샛길을 같이 걷고 있는 느낌이요 혹은 시간이 번지는 느낌이요 또는 슬픈데 동시에 행복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요.

둘 째 말 - 잊지 못할 배우들을 보세요
정은채라는 주연배우에 대해서 잊지 않고 말하고 싶어요. 이 영화는 제 이름을 빌어서 해원의 모험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정은채의 모험이라고 해도 되거든요. 영화 속에서 그녀의 매력은 섬세한 여러 개의 결로 매 순간 빛나고 있어요. 이렇게 애틋하고 예쁘고 씩씩하게 저를 연기해준 그녀가 정말 고마워요. 아직은 신인이지만 이번에 그녀를 보신다면 왜 이 영화의 주연배우가 그녀인지 새삼 느끼게 되실 거에요. 그리고 그녀만큼 중요한 배우들을 빼먹으면 절대 안 되겠지요. 저의 애인 역할을 맡은 이선균, 그가 엉엉 울 때는 얼마나 슬프고 그가 제게 잘해 줄 때는 얼마나 행복 하던 지요. 그리고 잊지 못할 다정한 나의 엄마 김자옥, 카페의 매력적인 두 남자 김의성과 류덕환, 가장 친한 언니 예지원과 그의 애인 유준상. 이들의 매력을 어떻게 짧게 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아름답고 수려하다고 할 수밖에요. 아, 그리고 잊지 마세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 제인 버킨도 출연 하는데요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이 참 재미나요.

셋 째 말 - 서촌과 남한산성과 봄으로 오세요
혹시 그거 알고 계시나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종종 여행길에 오른다고 해요. 그들은 <하하하>의 통영으로, <다른나라에서>의 모항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그렇게 여행을 간대요. <북촌방향>의 술집과 밥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해서 많아 진 거에요. 이번에도 두 개의 특별한 곳, 서촌과 남한산성이 배경이에요. 북촌이 아닌 서촌은 고즈넉하고 수수한 카페들과 조그만 유적지와 제가 뛰어 노는 학교 운동장이 있어서 보시면 가고 싶으실 거고요, 남한산성의 그 오르막길은 저의 애틋한 사랑과 애증이 펼쳐지는 곳이라 또한 가보고 싶으실 거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계절이 봄을 배경으로 했다는 게 저는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저의 이야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이제 막 시작하는 봄의 신선함과 감수성에 정말 잘 어울리는 영화이거든요. 그러니 2월28일에 저를 만나러 오시면 좋겠어요. 그때 봄이 왔다면 좋지만 아직 오직 않았다고 해도 괜찮아요. 이 영화가 봄을 드릴 거에요. 이것이 여러분께 보내드리는 저, 해원의 따뜻한 초대장이에요.




[ PRODUTION NOTE ]

기록: 조연출 이제한

1. 2012년 3월 21일. 제인 버킨이 온 날
촬영 일주일 전쯤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배우이자 가수이기도 한 제인 버킨이 한국에 온다는 기사가 있었고, 그녀의 인터뷰에 실린 기사 속에 홍상수 감독님께 보내는 그녀의 짧은 프러포즈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했고, 그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뜻이었지요. 하지만, 그녀는 3월22일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는 21일부터 촬영이 시작되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인 버킨은 자신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촬영 첫날 우리의 현장에 잠시 들리겠다고 했고, 그리고 홍감독님이 원하면 그날 까메오 역할로라도 출연을 할 수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제인 버킨은 이미 <다른나라에서>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이자벨 위페르에게 감독님의 현장이 얼마나 작고 소박한지, 그리고 이것이 때론 배우에겐 큰 불편함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익히 전해 들었음에도,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펑퍼짐한 코르덴바지를 입고 촬영장에 와주었습니다.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누구 못지않은 열렬한 호기심과 사람을 대하는 깨끗함은 스탭들에게 적잖은 기쁨이었습니다. 그녀는 현장에 오자마자 인사와 함께 대본을 건네 받곤, 삼십 여분 정도 그것을 외우고, 촬영을 하고, 스탭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북촌을 떠났습니다. 짧았지만 모두에게 기분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그날은, ‘해원’을 연기한 정은채 양에게는 더욱 흥분되는 날이었습니다. 은채 양은 제인 버킨의 딸인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녀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온 관객이자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북촌의 식당에서 꾼 ‘해원의 꿈’ 속에서 ‘제인 버킨’에게 그녀의 딸처럼 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말하는 ‘해원’은 어쩌면 배우 은채 양의 속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에서 피디님이 감독님에게 은채 양이 제인 버킨의 딸과 실재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매끄럽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재료를 얻는 감독님의 창작방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결정되고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을 바라보는 스탭들의 마음속은 생각보다 더 어지러웠습니다. 일종의 수수께끼. 도대체 어떻게 제인 버킨과 홍상수와 정은채가 2012년 3월 21일 아침에 북촌의 구석진 골목길에서 조우하게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우연이 필요한 것일까요?

2. 2012년 3월 22일. 서촌엔 구멍이 너무 많다.
이날은 온종일 서촌을 배회하며 촬영을 한 날이었습니다. 유독 실내로 들어가는 씬이 적었고, 서촌의 길과 사직공원이 카메라에 많이 담긴 날이었습니다.
<옥희의 영화>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번 프로덕션도 사람이 적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독님을 포함한 스탭이 겨우 9명이었으니까요. 제작부가 없는 프로덕션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스탭들에게 여러 가지 역할이 동시에 요구되곤 했습니다. 딱 한번 목격되었지만, 홍상수 감독님께서 슬레이트를 치는 경우가 있었을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이튿날 내려온 서촌은 작은 인원으로 프로덕션을 진행하기에 쉬운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감독님의 카메라는 자유롭고 유연하게 움직여야만 했고, 서촌의 행인들은 촬영에 관심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이런 사태를 예견한 피디님은 서촌 촬영에 앞서, 다년간 감독님의 조감독을 하셨던 베테랑 이광국 감독님과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의 제자이며, 또한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조연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주었던 재홍, 다원, 신선을 섭외하여 서촌의 골목을 통제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뿐만 일까요, 서촌의 구멍은 상상외로 많아 현장에서 예외 없이 매니저님들까지도 모두 통제에 투입되었습니다. 가끔 배우 분들이 매니저님들을 찾았지만 그 때마다 들려오는 대답은 ‘김 아무개 통제 중입니다’이었지요. 뒷집의 개가 너무 짖어 촬영에 지장이 있자, 커다란 덩치의 개를 끌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두 시간여를 산책하신 매니저님도 계셨답니다. 이른바 혼연일체의 현장이라 일컬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 2012년 3월 23일. 비 오던 날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새벽5시부터 서촌에 있는 순대국밥집에 자리를 잡고 시나리오를 쓰고 계셨고, 예기치 못한 비의 양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하하하>를 찍을 땐 태풍이 왔는데도 촬영을 했었는데, 이정도 비야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였지요. 근처 식당에서 빌려 놓은 빨간색 파라솔 밑에 모니터와 카메라가 놓이고, 스탭들은 모두 우비를 입고 서촌을 배회하며 촬영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날 밤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던 배우들 중 건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 배우들은 일찍부터 나와 제작부 역할을 맡았지요.
다들 비가 오는 날씨 탓에 느지막이 ‘원창식당’에 들어갔을 땐 모두 녹초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날의 마지막 쇼트였고, 모두가 궁금해 하는 진짜로 술 먹는 씬이었습니다. 대본을 리허설 하며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배우들 모두 얼굴이 붉어졌고, 혀가 꼬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8명의 배우가 10분이 넘는 테이크를 집중력 있게 끝낼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선균 선배님과 은채 양은 테이크 중간에 물로 대체한 소주병을 헷갈려 진짜 소주를 글라스에 가득 담아 마시기도 하였지요. 단 한 번의 킵이 나오기도 힘든 장면이기에 스탭들은 모두 바짝 긴장해 있었고, 총 8번의 테이크가 끝나고, 오케이가 나오자 그제야 배우들은 진짜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어떨 때엔 자기가 연기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2012년 3월 26일 남한산성에서의 첫날
이날은 남한산성에서의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촬영지가 미리 섭외가 되어있어야만 했기에, 미리 결정된 아주 최소한의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새벽 6시 즈음이었습니다. 감독님께서 급히 피디님께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요는 기주봉 선생님을 출연 섭외 해달라는 전갈이었습니다. 촬영시작시간은 오전 10시. 불과 출연 4시간 전에 출연 섭외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년간 감독님의 급 섭외 요청에 단련된 피디님은 그 시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남한산성까지 모시는 데에 성공하였고, 추운 날씨임에도 미처 제대로 된 방한복을 준비하지 못하신 기주봉 선생님께는 선균 선배님의 매니저 용근 씨의 초록색 점퍼가 최종 의상으로 결정되었답니다. 이날 의상을 헌납한 용근 씨는 출연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남한산성 벤치에서 라면을 먹는 커플 중 남자가 바로 이분입니다. 그리고 그의 애인으로는 연출부 지은 양이 열연을 선보였습니다.
이날의 남한산성에선 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은채 양과 선균 선배님이 수어장대 계단에 걸터앉아 카세트로 음악을 듣는 장면입니다. 감독님께서 오랫동안 가지고 다니신 소니 카세트 플레이어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 둘은 정용진 음악감독님께서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을 듣게 되는데요, 정말 신기하게도 이 음악과 대사는 마치 의도한 듯 완벽한 리듬 안에서 서로의 텐션을 주고받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음악을 두고 그 쇼트의 길이를 결정한 마냥 그 길이가 완벽하게 조우하였습니다. 그 카세트의 음악은 감독님이 이날의 집필을 마치고 연출부들이 직접 녹음한 것으로 감독님께서 그걸 들으며 글을 쓰신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정용진 음악 감독님과의 홍상수 감독님의 많은 작업에서 둘의 리듬이 마치 미리 정한 것처럼 프레임 단위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하니 그 신묘함이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5. 2012년 3월 29일 해원과 중원
스탭들은 다시 서촌으로 모였습니다. 중원(김의성 분)과 해원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해원에게 자신의 통찰력을 과시하며 그녀를 꿰뚫어 보는 중원이지만, 마지막 초능력으로 회색 택시를 불러들이는 그는 사기꾼의 풍모를 느끼게 해 줍니다. 재미있게도, ‘그 가게’라는 까페에서 중원이 해원에게 선물하는 그 시계가 실제로 감독님께서 2011년도에 대중문화예술상을 받을 당시에 기념품으로 받으셨던 그 시계라고 합니다.

6. 2012년 3월 30일. 뜻밖의 엔딩
30일은 남한산성으로 모이는 날이었습니다. 은채 양과 선균 선배님을 비롯하여 기주봉 선생님, 준상 선배님 그리고 지원 선배까지 촬영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아본 스탭들이 다들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날 대본에서 내연 관계로 등장하는 중식과 연주의 이름을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 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바로 <하하하>에서 통영을 여행하던 바로 그 중식과 연주였고, 극중에서 둘이 사귄 기간도 꼭 <하하하>로부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만큼 늘어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연의 직업인 스튜어디스도 그대로였지요.
아무도 예상 못했던 중식과 연주의 등장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습니다. 가끔 스탭들이 모이면 감독님께서 무당처럼 날씨를 조종한다는 농담들을 하곤 했는데, 이날의 날씨가 꼭 그랬습니다. 남한산성 북문에서의 첫 쇼트가 끝나고, 산성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마치 거짓말처럼 산등성이를 타고 짙은 안개가 산성을 뒤덮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스모그라도 뿌린 듯 바로 앞이 안보일 지경이었지요. 어떤 특수효과를 쓴다 해도 담지 못했을 이날의 풍광을 우린 단지 그날 거기에 카메라를 뻗치고 있었던 것만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에 걸친 헌팅과 26일의 첫 촬영에서도 마주한적 없는 안개였습니다. 마치 미세하게 절단된 세상의 틈새로 미끄러져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만 같았습니다. 스탭들 모두 귀신 같은 안개의 등장에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날엔 신기한 일이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해원(정은채 분)은 예전에 성준(이선균 분)과 함께 산성을 처음 올랐을 때, 후원(기주봉 분)이라는 등산객을 만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날엔 해원 혼자 산성을 걷다 우연히 후원을 만나 맛있는 막걸리를 얻어먹는 장면의 촬영이 있었습니다. 해원과 후원의 두 번째 만남이지요. 이 장면에서 후원은 해원에게 예전에 함께 보았던 성준의 안부를 묻는데 “그 전에 봤던 그 분, 남자 분 어떡하고 혼자서?”라고 묻는 대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주봉 선생님께서 마지막 오케이 테이크에서 ‘그 전에’를 ‘좀 전에’로 바꿔서 대사를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용상 맞지 않았지만, 소품으로 사용해야 할 막걸리가 그 테이크를 끝으로 다 떨어져서 더 이상 테이크를 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감독님께선 모니터를 확인하시곤, “사실 ‘그 전에’와 ‘좀 전에’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그 전에로’ 썼었는데, 이걸로 바꿔서 하신걸 보니 이게 운명인가 봅니다” 라고 말씀하시곤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혹시 이 때문이었을까요? 원래 이 날 뒤에 예정되어 있는 두 번의 회차는 일정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날 웃으며 ‘운명인가 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감독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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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 [제34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후보
  • [제4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신인연기상 후보
  • [제4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