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거장 론 하워드 감독
<글레디에이터>, <뷰티풀 마인드> 러셀 크로우
<시카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르네 젤위거...
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진과 스타가 모여 전설적인 복서 제임스 브래독의 일생을 담은 영화 <신데렐라 맨>을 완성했다.
미국의 최고 암흑기였던 경제 대공황 시기...
전도유망했던 라이트 헤비급 복서 브래독은 잇단 패배와 부상으로 복싱을 포기하게 되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하지만 복싱에 대한 꿈을 단념하지 못한 그는 결국 다시 링 위에 오르고, 왜소한 체구, 끊임없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이미 2명 이상의 상대를 사망 직전까지 몰아간 악랄한 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결전을 눈앞에 둔 브래독...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경기를 위해 링에 오르는데...
스스로를 '헝그리 복서'라 칭하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한 전설적 복서 짐 브래독... 그의 진실된 이야기와 함께 가슴 벅찬 가을의 감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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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디에이터>, <뷰티풀 마인드> 러셀 크로우
<시카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르네 젤위거...
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진과 스타가 모여 전설적인 복서 제임스 브래독의 일생을 담은 영화 <신데렐라 맨>을 완성했다.
미국의 최고 암흑기였던 경제 대공황 시기...
전도유망했던 라이트 헤비급 복서 브래독은 잇단 패배와 부상으로 복싱을 포기하게 되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하지만 복싱에 대한 꿈을 단념하지 못한 그는 결국 다시 링 위에 오르고, 왜소한 체구, 끊임없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이미 2명 이상의 상대를 사망 직전까지 몰아간 악랄한 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결전을 눈앞에 둔 브래독...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경기를 위해 링에 오르는데...
스스로를 '헝그리 복서'라 칭하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한 전설적 복서 짐 브래독... 그의 진실된 이야기와 함께 가슴 벅찬 가을의 감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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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역사에서 제임스 J. 브래독의 삶은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결정체이다.” —데이몬 러니온 (1936)more
지독한 경기침체가 미국 전역을 휩쓸던 경제 대공황 시기에 인간이 가족과 그 자신을 위해 얼마만큼 최선을 다해 싸울 수 있는 지를 입증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준 영웅이 등장했다.
그는 바로 역사상 가장 놀랍고도 경이적인 스포츠 전설로 남아있는 신데렐라 맨, 제임스 J. 브래독이다. 1930년대 초반, 이 가난한 전 프로복서의 삶은 당시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그러했듯이 지치고 힘들기만 했다. 그의 복싱 생활은 이제 끝이 난 것처럼 보였으며 집세조차 내지 못할 형편에 정부의 보조를 받아 근근히 생계를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복싱에 대한 그의 꿈을 단념하지 못했으며, 마침내 가족의 사랑과 명예, 그리고 불굴의 의지에 힘입어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그 꿈을 이루고야 만다.
가족을 도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브래독은 링 위에 다시 선다. 그 누구도 그가 재기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나 그는 단순한 경쟁을 뛰어넘은 그 무언가의 힘에 의해 연속 행진을 이어간다. 직장조차 가질 수 없었던 이 평범한 노동자는 하루 아침에 불패의 신화를 가진 선수가 된다. 브래독은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마침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이미 2명의 상대를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세계 헤비급 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결전이다.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를 비롯해 론 하워드 감독, 아키타 골드만 각본 담당, 그리고 영화배우 러셀 크로우와 르네 젤위거로 구성된 아카데미 수상팀이 모여 위대한 복서로서가 아닌 어둠과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링 위에 올라 마침내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되는 한 위대한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전형적인 미국 영화 <신데렐라 맨>을 선보인다.
아카데미 수상 배우, 러셀 크로우가 한결 같은 가족에 대한 헌신과 존엄이 페인트 기술과 치명적인 레프트 훅 만큼이나 유명해진 짐 브래독 역을 맡아 열연한다. 미국 전역이 심각한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던 시기, 한때 전도유망했던 브래독이 잇단 패배로 인해 복싱을 포기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절박한 가난에 직면하게 되면서 짐은 곁에서 항상 힘이 되어준 아내, 매 (오스카 수상 배우 르네 젤위거)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기를 원한다. 처음에는 선착장에서 일을 해보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빚은 늘어만 가고 뉴저지의 혹한 속에서 히터도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해 한다.
그 후 불굴의 매니저, 조 굴드 (골든 글로브상 수상 후보, 폴 지아메티)의 노력으로 짐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링 위에 다시 오를 수 있는 뜻밖의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식탁에 음식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나이와 배고픔, 부상에도 불구하고 또한 남편에 대한 매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브래독은 링 안에서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유망주인 상대를 쓰러뜨리면서 관중과 매스컴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족을 위해 연속 승리의 행진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승리를 거듭할수록 짐 브래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사람들의 우상이 되어가고, 매번 상대와 맞서 싸울 때마다 마치 그와 같이 자신들의 가족을 보살피고 꿈을 단념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수백만의 관중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미 두 명의 상대를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위력적인 주먹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결전을 눈앞에 두게 된다. 어떤 이들은 브래독이 다시는 링 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그 외 나머지 사람들조차 10대 1로 베어의 승리를 점치는데, 그는 과연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론 하워드 감독은 “짐 브래독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인간의 인내심과 사랑의 힘이 얼마만큼 위대해질 수 있는 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니까요. <신데렐라 맨>은 어려움속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항상 영화제작자인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라고 말한다.
<신데렐라 맨>은 론 하워드 필름의 파크웨이 프로덕션과 브라이언 그레이저 프로덕션이 함께했고 유니버설 픽쳐스/미라맥스 필름/이메진 엔터테인먼트가 제공한다. 거장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브라이언 그레이저, 론 하워드, 그리고 페니 마샬이 제작을 맡았다. 그 밖에 클리프 홀링스워스가 원안을 담당하였으며 홀링스워스와 아키바 골드만이 각본을 맡았다.
크로우 그리고 젤위거와 함께 브래독의 일생을 그린 이 영화에는 역대 가장 위대한 컴백을 이루어낸 독설가 트레이너, 조 굴드 역의 폴 지아메티 (<사이드웨이>, <아메리칸 스플렌더>)를 비롯해 헤비급 챔피언, 맥스 베어 역의 크레이그 비에코 (<브로드웨이의 뮤직맨>, <롱 키스 굿나잇>), 30년대 쇼맨쉽으로 한판승부를 꾀했던 복싱 프로모터, 지미 존스톤 역의 브루스 맥길 (<콜래트럴>, <엘리자베스 타운>), 대공황 시기에 개인의 몰락이 브래독의 놀라운 성공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가공의 인물, 마이크 윌슨 역의 패디 콘시딘 (<천사의 아이들>) 등이 캐스팅 되었다. 링에서 브래독의 상대로 등장한 현직 복싱선수는 헤비급 복서 아트 빙고브스키 (콘 그리핀 역)을 비롯해 라이트 헤비급 복서 트로이 아모스-로스 (존 헨리 루이스 역), 그리고 헤비급 복서 마크 시몬스 (아트 레스키 역) 이다.
경제 대공항기 미국과 복싱 경기장의 스릴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 론 하워드 감독의 제작팀에는 촬영감독 살바토르 토티노 (<애니 기븐 선데이>, <실종>)를 비롯해 프로덕션 디자이너 윈 토마스 (<뷰티풀 마인드>, <애널라이즈 댓>), 오스카상을 수상한 편집 담당이자 론 하워드 감독의 오랜 동료들인 마이크 힐과 댄 핸리 (아폴로 13, 뷰티풀 마인드), 의상 담당 다니엘 올랜디 (<미트 페어런츠>, <알라모>), 음악 담당 토마스 뉴만 (<로드 투 퍼디션>, <니모를 찾아서>)이 포함된다. 그 밖에 전설적인 복싱 트레이너자 컨설턴트인 안젤로 던디의 지도하에 복싱 안무가 닉 포웰과 복싱/스턴트 코디네이터 스티브 루세스쿠가 영화의 복싱 장면들을 코디네이트하였다.
제임스 브래독의 신데렐라 이야기:
영원한 전설이 되어버린 그의 일대기와 시대에 대한 짤막한 기술
1920년대 재즈 에이지(The Jazz Age)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와 번영을 축하하던 미국의 황금기였다. 또한 링에서의 원초적이고도 원시적인 싸움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잔인하기는 하나 아름다운 발레와 같은 스포츠인 복싱의 황금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다. 20세기 초 여러 인종의 융합 도시 미국에서는 각기 다른 이민 집단들이 자국의 선수들을 통해 자부심을 느꼈으며 선수들은 자국의 국기색과 상징을 한 유니폼을 입고 링 위에 올랐다.
강력한 오른손 주먹으로 유명한 뉴저지 출신의 아마츄어, 제임스 J. 브래독이 프로로 전향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여느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브래독은 복싱을 출세를 위한 티켓으로 생각했다. 복싱은 그의 유일한 특기였으며 한동안 그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덩치가 훨씬 큰 상대와 끝까지 싸우는 그의 굽히지 않는 강인함으로 인해 “버건의 불독” 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초기에 그는 전도가 유망한 선수였다. 그러나, 오른손의 잇단 부상으로 그의 권투 생활은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1929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토미 로프란과의 15 라운드 경기에서 그는 계속되는 불운으로 인해 쓰라린 패배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브래독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해 주식시장은 일반주의 액면가가 40 퍼센트나 하락하면서 붕괴되었으며 충격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각계 각층의 미국 가정은 저축자금뿐 아니라 비즈니스, 집, 그리고 농장을 잃었다. 1932년까지 직장을 갖지 못한 미국인은 네 명 중 한 명으로 나타났다.
한때 일을 하던 가족들이 구세군 보호시설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나라 전체가 충격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식량을 기다리는 줄, 일자리를 기다리는 줄, 그리고 공공구호를 기다리는 줄 등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이러한 일들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극빈자들은 “후버빌즈”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플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에게 패하기 이전에 고통받고 있는 가정들을 위한 연방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허버트 후버 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본 따 만든 마을 이름) 라 불리는 도시 변두리의 판자촌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직업을 찾아 나라 전체를 배회하였으며 국가적 차원의 방황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배고픔과 영양부족에 시달렸다. 또한 직업을 잃은 남성들의 자살률이 급등하였다.
대다수의 은행원들, 도축업자들, 농부들, 그리고 공장 근로자들과 마찬가지로 짐 브래독은 그의 인생 또한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방 복싱 위원회가 그의 선수 면허를 취소함으로써 그에게 은퇴를 종용하자 브래독은 허드렛일을 찾아 다녔다. 그는 조선소 일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으나 5명의 가족을 먹여살리기에 한달에 24불은 턱없이 부족했다. 더 이상 가족의 우유와 가스, 전기 등의 기본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브래독은 생활보호 대상자 신청을 하게 되며 이는 그의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다 주었다.
1934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본격화 되자, 브래독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우연히 그는 모두가 그의 패배를 점친 존 “콘” 그리핀과 대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부두에서 일하면서 단련된 왼손 덕택에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승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라이트 헤비급 선수 존 헨리 루이스와의10라운드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는 이전의 승리가 요행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냈다. 그 후 아트 래스키와의 15 라운드 대결에서도 브래독은 그를 때려 눕히게 된다.
이러한 놀랄만한 승리를 거듭하면서 브래독의 투지는 새롭게 부활한다. 벌어들인 돈으로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정부 공공구호 기관에 빚진 돈을 갚는 일이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팬들로부터 “젠틀맨 짐”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의 명성은 순식간에 쌓이게 되고 마침내 그는 헤비급 챔피언 맥스 베어와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이러한 기회는 어느 복서라도 선뜻 응하리라 보여 질 수 있으나, 브래독은 이 대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결이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베어보다 체구가 왜소했을 뿐 아니라 경험도 훨씬 부족했으며 부상당한 오른손을 대신해 새로 단련한 왼손 훅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베어는 최근 그의 폭발적인 녹아웃 펀치로 상대를 즉사하게 함으로써 살인 혐의를 받고 있었다. 비록 그 후에 살인 혐의에서 벗어났지만 가장 위험한 선수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베어는 1932년 어니 샤프와의 대결 10 라운드에서 녹아웃 펀치로 그를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샤프는 그 후 프리모 카네라와의 대결에서 사망하였으며 베어의 잔인한 펀치가 그의 사망에 크게 일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1933년 베어는 역대 최고의 경기중 하나인 맥스 슈멜링과의 10 라운드 경기에서 그를 쓰러뜨림으로써 역사에 기록을 남겼다. 1934년 짐 브래독이 콘 그리핀과 대결을 벌이던 같은 날 저녁, 그는 프리모 카네라를 11 라운드 동안 11회나 쓰러뜨렸다.
브래독이 불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와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아내 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브래독은 기존과는 다른 강도 높은 훈련에 열중했다. 이러한 그의 훈련은 경기의 긴장감만을 증폭시켰으며, 맥스 베어는 이번 경기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한 브래독을 “무능아”라고 부르며 자극적인 말로 그를 놀렸다.
마침내 1935년 6월 13일,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가득 메운35,000명의 팬들 앞에서 브래독 대 베어의 결전은 시작됐다. 처음 몇 라운드에서는 베어가 강세를 보였으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싸우고 있는 브래독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한 선수가 라운드에서 우세를 보일 때마다 관중들은 경기가 일찍 끝나리라 예측했다. 그러나 상대는 계속해서 반격을 해왔다. 이러한 주고 받기 싸움은 믿기 어려운 15 라운드까지 이어졌고 불굴의 투지와 엄청난 인내력으로 맹공을 퍼부었던 브래독은 마침내 심판의 만장일치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것은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전승임을 보여주었다. 미국 전역의 바와 거실에서, 사람들은 마치 브래독이 그의 가족인 것처럼 기뻐하며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스포츠 작가인 데이몬 런욘은 브래독의 이야기가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된 동화 속 이야기와 흡사하다고 해서 그를 “신데렐라 맨”으로 칭하게 되었다.
그 후 브래독은 경기를 계속했으며 1937년 8 라운드에서 조 루이스에게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당시 루이스는 23세였던 반면 브래독은 32세였으며, 루이스는 후에 브래독이 그가 대결을 펼쳤던 선수들 중에 가장 용기있는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브래독은 1938년 토미 파와의 경기를 승리를 이끌면서 타이틀 재획득의 기회를 얻었으나 자신은 싸움 그 자체가 아닌 아내와 가족을 위해 싸워왔노라고 기자들에게 말하면서 은퇴를 했다.
수년 동안 브래독은 그의 이야기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영웅으로 남았으며, 1964년에는 복싱 명예의 전당에 그리고 2001년에는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으며, 그 후 대공항기에 자신이 소액을 받고 노역을 했던 부두에서 중장비 회사를 운영했다. 1950년대 당시 가장 큰 현수교인 브룩클린의 유명한 베란자노교 건설을 도왔다. 1974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신데렐라맨 재발견하기:
브래독의 이야기는 어떻게 영화제작자들과 두 명의 배우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짐 브래독은 무명에서 출발해 1930년대 전 미국의 가족영웅이 되었지만 세기말에 이르러 그의 놀랄만한 용기와 헌신은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와 스포츠 저널리즘, 특히 복싱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스포츠와 복싱팬이었던 클리프 홀링스워스는 브래독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이들 중 한 사람으로 가족을 위한 그의 헌신 (그리고 맥스 베어와의 대결로 인한 기대치 못했던 명성)은 영화의 소재로 삼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브래독의 이야기는 단순한 스포츠 승리를 뛰어넘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이야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제가 신레렐라와 같은 짐 브래독의 이야기를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1994년이었습니다. 영화로 만들면 아주 멋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라고 홀링스워스는 회상한다. “이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복싱 팬으로써 전 헤비급 챔피언들에 관한 이야기는 다 읽곤 했지요. 그 중에서도 짐 브래독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홀링스워스는 브래독의 조카와 연락이 닿아 그를 통해 브래독의 두 아들, 제이와 하워드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작가와 협조하는데 동의하였으며, 그 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유명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본의 초안은 가족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졌다.
“짐 브래독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면에서 평범하지 않습니다.”라고 홀링스워스는 말한다. “그는 1935년도에 전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다 준 국가적인 영웅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인물이죠. 저의 희망은 이 잊혀진 영웅이 다시 한번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신데렐라 맨”이 된 브래독의 이야기에 매료된 또 한명의 복싱팬은 바로 배우 러셀 크로우였다. 크로우는 가난으로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전전하던 남자가 무적의 스포츠 챔피언이자 일반인들의 영웅이 된 브래독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고 영화 출연을 결심했다.
크로우는 브래독이 자신의 명성이나 개인적인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싸웠다는 점에서 그를 다른 영화 속 영웅들과는 다르게 보았다. 브래독을 1930년대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웅으로 만든 것은 바로 “평범함”으로 오늘날 관객들이 단순히 남편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선수가 성취해 낸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크로우는 “<신데렐라 맨>이 어떻게 한 가정이 대공황에서 살아 남았는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한다. “브래독은 복싱을 그만 둔 후에 가족을 보살피고 아내를 사랑하며 아이들의 성장과 손자들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살아가다가 1974년도에 세상을 떠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이 진정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크로우는 하워드 감독과 <뷰티풀 마인드>를 함께 촬영하면서 가까워지자 그에게 브래독의 이야기를 건네주게 되고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오던 감독 역시 짐 브래독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다양한 테마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하워드는 <뷰티풀 마인드>를 비롯해, <아폴로 13>, <분노의 역류>, <우리 아빠, 야호>, <페이퍼>, <코쿤>, <파 앤드 어웨이>, 그리고 최근작 <실종> 등의 영화를 통해 천재의 미스터리에서부터 우주여행의 용기, 그리고 가족의 혼란에서부터 서부개척의 암흑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미국인들의 경험을 보여주었다. 그의 영화에는 항상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 기질, 즉 개인주의, 영웅주의, 연대의식, 이상에 대한 추구, 투지의 강인함,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강한 매력 (때로는 가슴 아픈 현실)이 드러나 있다.
“저는 항상 관객들을 새로운 상황속으로 안내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 상황이란 때때로 수학자의 마음 깊숙한 곳일 수도 있고 격노한 화염속일 수도 있으며, 우주 캡슐 속 무중력 상태일 수도 있죠.”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 영화는 저에게 1930년대의 복싱 링에 빠져들게 했을 뿐 아니라 순식간에 생존을 위한 악몽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동화 속 이야기로 삶이 바뀌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짐 브래독은 세상 앞에서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 점이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죠.”
하워드는 브래독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는데 있어 그가 기존의 작품에서도 비중 있게 다룬 바 있는 인상 깊은 주제를 조명했다. “미국인들은 본래 터프한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죠. 실패는 결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주 비행사들 (<아폴로 13>)도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존 나쉬 (<뷰티풀 마인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리고 짐 브래독도 역시 가난에 굴복하지 않죠.”라고 그는 말한다.
안토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에서 루비 역을 맡아 세 번째 오스카상 수상 후보로 선정된 적 있는 르네 젤위거에게 매 브래독의 역은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제작자가 결정되기 이전부터 이 프로젝트의 성사 여부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매의 캐릭터는 젤위거에게 특히 의미있는 것이었는데, 매가 대부분의 여성들이 전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기에 강하고 완고하지만 헌신적인 아내였기 때문이다. “매의 위대함은 바로 자신의 강한 의지를 통해 짐에게 가장 의미 있는 목적이 됐다는 거죠. 그녀와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그가 매달릴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매는 짐의 든든한 지원자이지만 동시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입니다. 비록 짐이 듣기 싫어하는 말일지라도 마음속에 있는 것을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경우는 절대 없어요. 여러면에서 볼 때, 브래독 집안의 키를 쥐고 있던 사람은 그녀였지요. 시대에 비해 매우 진보적이고 활동적이었죠.”
크로우를 통해 프로젝트를 알게 되면서 하워드는 젤위거가 매의 역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뛰어난 두 배우의 강한 애착은 영화에 관한 제작자의 열의를 한층 뜨겁게 하였다.
기묘하게도, 하워드는 그의 아버지 렌스 (<신데렐라 맨>에서 장내 아나운서 알 파진 역으로 카메오로 출연했다) 가 어린 시절 브래독과 맥스 베어와의 불꽃튀는 경기를 라디오를 통해 청취한 적이 있기 때문에 브래독의 전설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브래독 대 베어의 경기는 아버지가 처음 들으신 걸로 기억하는 첫번째 시합입니다,”라고 하워드는 말한다.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시내에 있는 당구장에 데리고 가셔서 라디오를 들으신 게 아마 아버지가 일곱 살 내지는 여덟 살 때였을 거에요. 자라면서 아버지는 저에게 용기와 성실성, 그리고 단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닌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의지의 예로 항상 짐 브래독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프랭크 카프라와 하워드 혹스를 포함해 대공황기를 겪은 유명한 미국의 영화제작자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받은 하워드 감독은 이 영화가 미국이 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롤러 코스터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해 온 미국의 운명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그는 특히 의지와 희망, 그리고 헌신이라는 가느다란 끈을 꽉 부여잡음으로써 어떻게 전 국민이 위기를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브래독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저는 미국의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새롭고도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그려내고 싶었을 뿐 아니라 브래독의 이야기에는 시간을 초월한 고귀함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특히 힘든 시기일수록 미국 문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희망과 위기 극복의 의지에 관한 것이죠. 또한 매일 남성들이 가족을 위해 해야 하는 희생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요.”
오스카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는 <신데렐라 맨>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순간 호감을 갖게 되었다. “러셀이 저에게 짐 브래독의 얘기를 들려줬을 때, 너무 가슴 아프고 감동적이더군요.” 라고 그는 회상한다. 저는 이 이야기를 놀랄만한 용기를 가지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낸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았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일 뿐 아니라 초기 역사 속에서 미국이 겪었던 고충에 대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다 줄 돈도 없고 손은 부서져 다시는 링에 못 오를 것 같던 남자가 세계 챔피언이 되어 마침내 꿈을 이루고야 만다는 이 놀라만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실화입니다.”
그레이저와 하워드 그리고 크로우와 한 팀을 이루어 <뷰티풀 마인드> 제작에 참여했던 각본가 아키바 골드만은 “짐 브래독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저에게 멋진 기회였습니다.” 라고 말한다. “미국의 역사상 최대 암흑기를 배경으로 한 한 남자의 삶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였죠.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었겠지만 작가들에게는 선물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나 골드만은 이 이야기가 이색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로 채택될 경우 가질 수 있는 함정을 재빠르게 지적해냈다. “브래독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제목자체가 결과를 확연하게 말해주죠. 모든 동화의 끝은 언제나 ‘그 후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 입니다. 그러나 삶에는 제목이 없어요. 게다가 삶은 해피 엔딩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여 지는 게 아니라, 불확실성과 심연의 슬픔,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이 소용돌이 치는 바다를 통해 보여집니다. 짐의 이야기가 신이 주신 은총 충만한 이야기였다면, 그의 삶의 경험들은 정반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죠. 우리는 미래의 결과들은 볼 수 없도록 나레이션으로 영화를 시작했죠. 정작 승리하기 전까지 그 가망성이 얼마나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는지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말이죠.”
“우리는 이 이야기가 휴먼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브래독을 위대한 복서라고 부르지는 않죠. 다만 그는 거의 모든 미국인들, 특히 노동자 계급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놀랄만한 의지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브래독은 먹거리와 잠자리를 찾아 애쓰는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링에 섰을 때 모두들 그를 집단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라고 그레이저는 말한다.
“브래독은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솔직하고 순진했을 뿐 아니라 아주 겸손했죠. 그런 면에서 그는 링 안에서보다 링 밖에서 더욱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는 일상에서 영웅적 자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브래독의 영웅적 자질로 인해 크로우는 그의 팬이 되었다. “복싱을 그만 두고 무슨 일을 했는지, 그의 아이들이 모두 어떻게 자라서 아이들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아내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등등의 브래독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라고 크로우는 말한다. “이렇게 명예롭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이 현재의 풍요로움은 자식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근면한 부모인 짐과 매와 같은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로우는 매 역에 대한 젤위거의 관심을 알았을 때 몹시 기뻐했다. 그는 최근 뮤지컬 <시카고>의 클럽 가수 역에서부터 <콜드 마운틴>의 농부 루비, 그리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독신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그녀와 함께 일하기를 늘 바라고 있었다.
젤위거는 <신데렐라 맨>이 요즘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전형적인 미국적 특성을 지닌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거의 프랭크 카프라 풍의 미국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전에 한번도 이런 작품을 해본 적이 없죠. 이 영화는 매우 단순하지만 아주 감동적입니다,” 라고 그녀는 말한다.
젤위거는 30년대 어려운 시기에 브래독 가족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됐던 매의 열의와 용기를 재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가 나가서 싸우는 건 보고 싶어 하지 않지만 조건 없이 그를 지원해주죠.” 하고 그녀는 말한다.
“제가 <신데렐라 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떤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짐과 매는 항상 사랑이라는 힘으로 그것을 극복해 낸다는 거예요. 그들의 사랑은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는 토대죠.”
젤위거는 자신이 맡은 역을 준비하면서 실제 브래독 가족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짐 브래독이 매에게 썼던 200통이 넘는 러브 레터를 빠짐없이 읽었다. “이런 종류의 자료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드물어요.” 라고 그녀는 말한다. “편지를 읽으면서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직면한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죠.”
“특히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브래독의 아이들이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 지를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짐과 매는 자신들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모든 것이 괜찮다고 아이들을 안심시켰으니까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얼마나 운이 좋은가를 상기시켜 줍니다. 아이들이 매일밤 먹을 걱정, 잠자리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죠.”
기자 회견에서의 매의 장면을 지켜보면서, 젤위거는 카메라를 부끄러워하는 그녀가 갑작스럽게 영웅이 된 남편으로 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깨달았다. “그녀는 주목 받기 싫어했어요.” 라고 젤위거는 말한다. “그녀는 무척 부담스러워 했죠. 제 생각에 사랑하는 남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아요.”
<신데렐라 맨> 매력적인 배우들을 만나다:
폴 지아메티, 크레이그 비에코, 브루스 맥길, 그리고 패디 콘시딘
짐 브래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신데렐라 맨>에는 크로우, 젤위거와 함께 <아메리칸 스플렌더>와 <사이드웨이>에서 빛나는 연기를 펼친 폴 지아메티를 비롯해 재능 있는 조연배우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폴 지아메티는 짐 브래독의 충실한 매니저, 조 굴드 역을 맡아 또 다른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브래독의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인 굴드는 모든 사람들이 브래독을 한물 간 선수로 취급할 때에도 그에 대한 믿음을 계속 보여주었다. 작은 체구에 유창한 말솜씨를 가진 유태인 골드와 건장한 키에 말수가 적은 아이리쉬인 브래독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대로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존경은 전설로 남아있다.
지아메티는 두 사람의 우정에 특히 매료되었다. “역할을 조사하면서 많은 역사가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굴드가 복싱계에서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마찰을 잘 일으키고 밉살스러운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와 브래독은 사이가 좋았죠.”라고 지아메티는 설명한다. “조 굴드가 퉁명스럽지 않게 대하는 사람은 짐 하나뿐이었습니다. 둘은 거의 형제나 다름없었지요.”
“조는 짐의 경력을 관리하는데 책임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 온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고 나라 전체가 불황에 빠지자 그의 운도 동시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죠. 이를 지켜보기가 무척 힘들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굴드는 짐이 더 이상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 할 수 없지만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브래독의 기적과 같은 재기로 굴드는 30년대에 보기 드문 영웅이 된다. 굴드에 대한 몇 권의 싸구려 전기가 출간되기도 하였지만 지아메티는 이들 전기들이 사실보다는 재미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종류의 인기 전기들은 완전히 그럴듯한 말로 얼버무리고 각종 상투적인 말들과 과정으로 가득차 있죠.” 라고 지아메티는 설명한다. “단지 이러한 전기들은 이 이야기가 나라와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만을 확인해 줄 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죠.”
대신 조부가 잠시 복싱을 한 적이 있는 지아메티는 브래독의 시합 장면을 보면서 굴드의 얼굴 표정과 생생한 그의 버릇을 살펴볼 수 있었다. 게다가 지아메티는 세계 일류 복싱 트레이너인 안젤로 던디와 함께 일한 것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이 부분은 결코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라고 그는 말한다. “기본적으로 안젤로는 복싱에 대해 제가 알아야 지식 및 단계 등 모든 것을 제게 알려줬습니다. 단지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조 굴드에 대한 공부가 됐죠.”
굴드가 짐 브래독의 투지에 놀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아메티 또한 러셀 크로우의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와 역할에 대한 애착에 경외심을 느꼈다. “그가 어떻게 해냈는 지 모르겠어요.” 라고 지아메티는 말한다. “매번 복싱 장면이 끝나고 나면 거의 기진맥진해서 제가 하는 일이라곤 구석에 서서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거였죠. 러셀은 놀랄만한 스테미너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안젤로와 같은 누군가를 만났더라면 복서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는 함께 일하기에도 아주 편한 배우이죠.”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성공적으로 넘나들며 연기를 펼치고 있는 크레이그 비에코는 헤비급 챔피언 맥스 베어의 역을 맡았다. 비에코는 헤비급 챔피언을 연기함으로써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매혹적인 특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뿐 아니라 미국 역사의 암흑기를 어렴풋이 알게 될 기회를 가지게 됐다.
“소속사를 통해 론 하워드 감독이 맥스 베어 역으로 저에게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맥스 베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본을 읽어보고는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어요. 캐릭터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인기 절정에 있는 베어를 무비 스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베어는 춤과 노래에도 능했죠. 베어를 맡아 연기하는 동안 엄청난 양의 훈련과 조사가 필요하겠구나 하는걸 알았습니다.”
베어 역을 소화해 내기 위해 비에코는 운동 및 복싱을 포함한 육체 훈련을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15파운드나 감량했다. (챔피언의 곱슬 머리와 유사하게 보이기 위해 파마를 하기도 했다.) “전에 복싱을 해 본적이 한번도 없을 뿐더러 복싱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핵터 로카 (복싱 트레이너)가 복싱에 대한 많은 것을 저에게 알려줬죠. 보통 복서로 훈련시키려면 약 2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초강력 코스로 3개월을 집중 훈련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해내는데 두려움이 아주 많았는데 이 역을 맡고 난 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브루스 맥길은 복싱 프로모터 지미 존스톤 역을 맡아 연기한다. 지금까지 6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바 있는 맥길의 진지하면서도 냉소적인 유머는 프로모터 역에 제격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죠.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경기가 열리고 존스톤은 선수들의 대전계획을 짰습니다. 그의 승인이 없으면 시합을 하지 못하는 거죠.” 라고 맥길은 말한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그보다 나이가 어린 대부분의 복서들에게서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존스톤은 영국제도에서 태어나서 12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민자인 셈이죠. 기본적으로 사회 최하층이었죠. 많은 복서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싱을 했죠. 지미 역시 복서는 아니었지만 프로모터로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크로우, 젤위거, 지아메티, 비에코, 그리고 맥길과는 달리 패디 콘시딘은 <신데렐라 맨>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을 맡아 연기한다. 짐 쉐리단 감독의 <천사의 아이들>로 알려지기 시작한 콘시딘은 짐 브래독과 일터에서 만나 그의 팬이 된 가공의 인물, 전 주식 중매인 마이크 역을 맡았다.
마이크란 인물은 한 가닥 희망으로 짐 브래독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가난한 미국인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콘시딘은 아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된 브래독의 인생 여정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애를 한층 깊게 해 줄 것으로 보이는 마이크란 역에 매료되었다.
“마이크는 영화의 줄거리 상 중요한 인물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었죠. 그러던 어느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가 빈털터리로 전락하고 말죠. 불행히도 짐 브래독의 경우와는 완전히 반대인 셈입니다. 마이크는 극단적인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죠.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보다 비탄에 잠기죠. 그는 공항을 겪음으로써 국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짐에게서 그가 찾고 있던 강인함을 발견하곤 그와 친구가 되죠.”라고 콘시딘은 말한다.
대공항을 조사하면서 콘시딘은 마이크와 같은 남성들이 얼마나 많았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내에게 직장을 잃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매일 아침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와 하루 종일 센트럴 파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 남자들은 자신들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수치스러워 했죠. 이러한 개인적 자부심의 상실은 사회전체의 크나큰 손실입니다. 짐 브래독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발견해야 했을 겁니다.”
마침내, 짐의 버팀목이자 결코 굴복할 수 없었던 영감이 되어 준 세 자녀를 연기할 배우들에 대한 캐스팅 작업을 끝으로 <신데렐라 맨>의 주요 출연진들이 결정되었다. 가족들 간의 탄탄한 유대관계가 이 영화에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론 하워드는 크로우와 젤위거를 브래독의 자녀들을 뽑는 오디션에 초청하고 마지막 심사과정에 참여토록 하였다.
결국 하워드 브래독 역에 패트릭 루이스, 제이 브래독 역에 코너 프라이스, 그리고 어린 로즈마리 역에 아리엘 워커가 캐스팅되었다.
신데렐라 맨으로의 변화:
자신도 모르게 영웅이 된 평범한 한 남자의 역할에 러셀 크로우는 어떻게 접근했는가
브래독이라는 인물을 구체화하기 위한 조사 및 준비와 더불어 크로우는 그 당시 위대한 복서들과 대결을 벌이기 위해 용기 뿐 아니라 여러 권투 기술들을 지녔던 한 남자를 그려내기 위해 엄청난 신체적 훈련을 견뎌야만 했다. 크로우는 전성기 시대의 브래독의 모습이 담긴 사진 및 영상기록들에 몰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몇 시간이고 꼼꼼하게 링 안에서의 브래독의 일거수 일투족과 얼굴 표정을 일일이 분석했으며 그의 초자연적인 힘과 끈기를 파헤쳤다.
동시에 크로우는 21년간 무하마드 알리의 트레이너로 일해왔던 안젤로 던디로부터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는 헝그리 프로복서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다. 크로우는 훨씬 복잡한 오늘날의 트레이닝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짐 브래독이 사용하곤 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들을 사용했다. 조사를 하면서 크로우는 1930년대의 복서들은 오늘날의 복서들보다 체중 조절을 위해 거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근육단련운동은 피했다. 대신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훈련에 집중하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스파링 연습을 했다. 결국 크로우는 <마스터 앤드 커맨드>에서 선장 잭 오브레이를 연기할 당시 228 파운드였던 몸무게를 시합당시 브래독의 몸무게인 178 파운드로 감량하였다.
크로우의 천부적인 열정을 이용해 던디는 전 올림픽 권투선수인 웨인 고든을 데려다 카약, 수영, 달리기, 사이클링, 하이킹, 줄넘기 등의 운동요법을 기획했다. 이 모든 것은 힘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한 강한 (지나친 근육이 아닌) 몸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크로우는 브래독의 체격 (일부는 헤비급 챔피언은 차지해두고라도 지역 경기를 하기에도 너무 가볍고 왜소한 체형이라 말했다)과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몸무게를 감량했다.
브래독의 독특한 권두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크로우는 여러 번 브래독의 경기를 직접 관람한 적 있는 안젤로 던디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러셀에게 브래독이 오른손의 결합을 극복하기 위해 단련한 왼손 훅 사용법을 가르쳤다.
크로우의 완전히 달라진 모습은 던디를 놀라게 했다. “러셀이 바로 짐 브래독이더군요.” 라고 그는 말한다. “러셀은 스피드, 리듬, 결단력,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복서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웠죠. 러셀은 브래독처럼 머리를 쓸 줄 압니다. 그가 영화배우가 아니라면 훌륭한 복서가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전에 크로우와 함께 일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론 하워드 또한 브래독의 모습으로 변모한 크로우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 역시 “러셀 크로우처럼 영화 속 인물에 몰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복싱은 부상의 위험이 높기 마련인데, 짐 브래독과 마찬가지로 크로우 역시 부상을 피해갈 순 없었다. 촬영 시작 바로 1주일 전에 크로우는 스파링을 심하게 하다가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을 당했다. 수술이 불가피했으며 그로 인해 촬영이 7주나 연기됐다.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크로우는 발놀림과 링에서의 기술을 다듬는데 전념했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나 그는 체육관으로 돌아왔으며 시합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다친 어깨를 강화시켰다. 한편 제작팀은 이 기간을 보다 복잡한 링에서의 동작을 짜는데 사용했다. 궁극적으로 크로우는 촬영연기가 그를 포함한 제작진 모두에게 보다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사고는 크로우에게 브래독의 내면세계를 새롭게 통찰할 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크로우의 부상은 제작 기간 내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신데렐라의 꿈, 미국의 악몽속에 펼쳐지다
론 하워드 감독과 그의 디자인팀은 어떻게 현대의 관객들을 복싱 경기장과 미국의 대공황 현실속으로 안내했는가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있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하워드와 그의 팀이 안고 있는 어려움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독과 촬영감독 살바토르 토티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간단명료한 의견만이 있을 뿐이다. 토티노는 설명한다. “론은 영화속에 진정한 용기와 진정한 삶에 대한 감성이 담겨질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객들이 시합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와 30년대 뉴욕시의 모습에 빠져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복싱의 경우 이 말은 기본적으로 두 남자의 대결인 스포츠의 특성을 잡아내기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와 앵글을 이용해 시합을 촬영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실성이 느껴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제작진들의 노력은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했다. 밀착 촬영기법은 배우들과 선수들의 신체적 접촉이 아주 가까워야 하며 때로는 겹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복싱 안무가인 닉 파웰이 말한 바와 같이 그 위험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 “규칙제한이 없는 펀치를 여러 카메라에 담으려 할 경우,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만한 폭 안으로 장면을 잡는 것이죠. 이 말은 때때로 실제적인 접촉이 이루어졌다는 걸 의미하죠.” 라고 포웰은 인정한다. “론은 이런 것들을 ‘즐거운 사고’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놀라운 리얼리즘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죠. 시각적으로는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펀치를 받는 쪽이 아닐 경우라면 말이죠.”
대부분의 경우 펀치를 받는 쪽은 크로우 자신으로 복싱 장면들이 실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무수히 많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브래독이 레스키(마크 시몬스)를 상대로 벌이는 시합에서 크로우는 그러한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야 했으며 공포로 질린듯한 지아메티의 반응은 박진감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모든 사람들이 글로브가 러셀의 머리에 닿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가 어떻게 시합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라고 지아메티는 말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의 마지막 컷에서 볼 수 있다.)
특히 펀치에 아주 근접해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는 카메라 기술자들조차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은 편집자의 일이 그 만큼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워드가 30,000 피트 가량의 필름을 건네줘 편집자들 (댄 핸리와 마이크 힐)을 놀라게 한 적도 간혹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놀래더라구요.” 라고 감독은 말한다. “편집자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양의 피트를 넘겨줬죠. 하지만 경기를 보고 가장 좋은 장면들을 컴파일링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즉시 찾더군요.”
한편, 러셀 크로우는 그의 상대로 섭외된 전문 복서들로부터 그들의 펀치를 끌어당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촬영을 하는 동안 그들에게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훈련은 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라고 복싱/스턴트 코디네이터인 스티브 루세스쿠는 설명한다. “한번만 살짝 빗나가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프로선수들을 훈련시키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짐 브래독에 의해 녹 아웃되는 척 연기를 시키는 것이었다. 자진해서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싶어 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선수들 중 몇몇은 링에서 녹아웃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죠.”라고 루세스쿠는 말한다. “이따금씩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했어요. ‘대본을 보세요, 지금 쓰러져야 한다구요!”
“우리는 경기 장면들을 영화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조명할 수 있도록 각각의 시합들을 분석하고 기획하고 안무를 짜는데 많은 시간들을 투자했습니다. 우리가 한 일이란 기록에 남겨져 있는 대로 브래독의 경기장면들을 재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장면들을 드라마틱하게 새로 구성했죠.” 라고 감독은 말한다.
<신데렐라 맨>은 복싱 경기 외에도 대공항이라는 경제적 정서적 혼란으로 인해 엉망이 된 도시의 모습을 영상속에서 자세히 고찰한다. 이러한 시대를 재현함으로써, 하워드는 오늘날의 관객들을 브래독이 살았던 시대의 현실로 안내한다. 이러한 힘든 시기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경제 불황 속에서 미국 국민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그리고 70년 전 나라 전체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잊고 있습니다.” 라고 하워드는 말한다.
하워드는 어린시절에 그의 부모님의 삶을 포함해 많은 미국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대공항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에도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가 소년시절의 영화를 만드는데 영감을 주곤 했다.
“저의 부모님은 어릴 때 대공황을 겪은 분들로서 이러한 경험들은 그분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 과제로 제가 만든 첫 번째 영화가 바로 이 시기에 대한 것이었죠. 그 영화를 위해서 예닐곱 명의 공황을 겪으신 어르신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형 바우어 수퍼 8 카메라와 매크로 렌즈를 가지고 그분들의 얼굴을 찍었죠. 정말이지 그 때 당시 그 프로젝트에 흠뻑 빠져서 지금까지도 그 시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제 하워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이야기 도구들을 갖추고 대공황을 다시 찾아갈 기회를 잡았다.
하워드는 불확실성, 절망감, 그리고 고난 등의 시각적 분위기를 영화에 불어넣기 위해 촬영감독 살바토르 토티노와 긴밀하게 협조했다. “론은 그 시대의 패기를 끄집어내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강렬한 느낌의 거리를 사진에 담기로 했죠.” 라고 토티노는 설명한다. “30년대를 묘사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것보다는 좀더 새로운 것을 시도했습니다. 이전 영화에서 보아왔듯이 공황기를 멋지고 아름답고 밝게, 그리고 이상적이면서 시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로 조명과 카메라 작업을 아주 거칠게 하면서 현실의 비타협적인 측면을 훨씬 강조했습니다.”
하워드는 토티노와 더불어 <뷰티풀 마인드>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윈 토마스와도 긴밀하게 협조하였다. 토마스는 6년이라는 기간 동안 짐 브래독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해갔는지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브래독의 운명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담기 위해, 토마스는 여러 단계로 영화를 디자인했다. “제가 하는 일은 전적으로 시각적 틀을 가지고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평온하기만 하던 1928년도를 처음 설정으로 잡았습니다. 모든 것이 밝고 활기에 차있으며 자동차들은 모두 반짝반짝 윤이 나죠. 이 때에는 금색과 화려한 색상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다가 경제 불황이 시작되면서 모습은 변화하게 되죠. 색상이 극적으로 바뀌면서 영화에서 거의 사라집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그 동안 보아왔던 강렬한 이미지의 1930년대의 사진들이 영화에서 다양하게 재현됩니다. 하지만 브래독이 그의 가능성과 전도유망한 미래를 되찾기 시작하는 영화의 끝부분에 가서는 모습이 또 다시 바뀝니다.”
1930년대 뉴욕의 복싱 장면을 가장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서, 토마스는 제작팀이 당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 몇 안 되는 대형 스포츠 경기장 중 하나인 캐나다의 메이플 리프 가든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931년에 세워진 캐나다 하키 경기장은 브래독 시절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대신 사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메이플 리프 가든은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35,000여명의 관중들로 가득 메워진 브래독 대 베어의 경기 장면을 촬영할 수 있을 만큼 광대했다. 게다가 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 않아 영화 제작기간 내내 촬영이 가능했다.
외경을 위해서, 토마스는 토론토의 허드슨 베이사 상점 뒤편이 이 유명한 빌딩과 여러 건축적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로케이션을 찾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토마스는 마이클 메이든이 디자인한 10,000개의 조명을 가든 차양에 다는 것을 비롯해 빌딩 외관을 완전히 재작업 하도록 했다.
브래독 가족이 사는 집 주변의 외경을 위해서 토마스는 몇 개의 거리를 만들어 고독하고 황폐하며 문을 닫은 상점들이 늘어서도록 하였다. 그는 단지 정육점과 제과점, 렉솔 약국,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당포만이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한편, 상점 진열장에는 당시 유행하던 짚으로 만든 아담 모자에서부터 마제스틱 다용도 토닉에 이르기까지 당시 가장 잘 팔리던 물건들을 그대로 재현한 물건들로 가득 채웠다.
토마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비좁고 습기 차 있는 비참한 환경이지만 점점 험난해져 가는 바깥 세상으로부터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짐과 매의 아파트 디자인이었다.
“짐과 매는 매우 가혹하고 암울한 환경으로 이사를 오지만 매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집을 고쳐 나갑니다. 이 점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녀와 가족들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죠.”
토마스는 브래독의 집과 주변 환경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특히 르네 젤위거와 함께 일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아파트를 디자인하기 전에 르네와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죠. 그런데 놀랍게도 방을 하나 하나 살펴볼 때마다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 들더니 거기에 얽혀있는 가족사를 얘기하더라구요. 덕분에 모든 것이 아주 의미 있게 되었고 우리가 진짜 짐과 매의 집을 재현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습니다.”
한편 이전에 <아폴로 13>에서 하워드와 함께 작업한 바 있는 의상 디자이너 다니엘 올란디는 1930년대 부두 노동자들을 비롯해 복서들, 그리고 정부의 구호를 받고 있는 가족들이 입었던 전형적인 의상들과 친숙해지기 위해 사진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결국 그는 1930년대 미국인들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다. 그는 국민들이 가장 힘든 시기에도 헤진 옷 대신 우아한 옷차림을 계속해서 추구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공황하면 보통 <분노의 포도>와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라고 올랜디는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뉴욕시의 경우는 아주 달랐어요. 모든 사람들이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심지어 길바닥에 나앉아 있더라도 정장을 입었던 것으로 보이죠. 1933년도에 발간된 이 책에서 구직광고를 보고 있는 남자들의 사진을 보면 한결같이 정장과 타이와 모자를 갖춰서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공황이 지속될수록 훌륭한 의상일지라도 점차 닳아 해진다는 점을 주목하고 영화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오래되고 낡은 의상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러셀 크로우를 위한 의상의 경우, 올랜디는 복서 가운을 걸치고 찍은 짐 브래독의 사진들에 의존하였다. “러셀의 모습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 재현했습니다. 하지만 또한 의상을 이용해 캐릭터의 몰락과 성공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길 원했죠. 영화에 처음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잘 나가는 복서의 모습으로 멋진 1920년대 줄무늬 정장을 입고 투톤 구두를 신었을 뿐 아니라 세련된 시계까지 차고 있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모습은 점차 수수해지고 기본적인 차림새만 갖추게 됩니다.”
크로우의 복싱의상과 관련해, 올랜디는 크로우와 협력하였으며 마침내 가장 실제적인 소품으로 1930년대 스타일의 복싱 부츠를 찾아냈다. “러셀은 매사에 정확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부츠가 맞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록들과 박물관을 모두 뒤졌습니다.”
올랜디는 또한 르네 젤위거에게 허름한 옷을 입혀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르네는 허영심도 없을 뿐 아니라 구멍이 난 스웨터와 공항기의 볼품없는 드레스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훌륭한 배우입니다.” 라고 그는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남편의 시합을 보러 갈 때 입을 수 있도록 당시의 패션에 알맞은 몇 벌의 의상을 만들어 그녀를 사랑스럽고도 예쁘게 꾸밀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올랜디에게 가장 즐거웠던 작업은 아마도 비에코가 맡은 헤비급 챔피언 맥스 베어의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맥스는 특히 복서로서 아주 화려했습니다. 털 코트와 말쑥한 턱시도로 잘 알려져 있죠. 그래서 맥스와 짐 사이에 성격의 차이가 대조될 수 있도록 크게 강조했습니다.” 라고 올랜디는 설명한다.
미국 주요 도시 외곽에 밀집되어 있는 “후버빌즈”의 모습을 디자인하는 것은 올랜디에게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처음부터 거의 홈리스들을 위해 옷을 바느질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엑스트라를 의상에 맞게 준비시켰죠. 엑스트라들이 윈이 설정해 놓은 세트에 서 있을 무렵에는 완전히 30대 사진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구요. 그들 모두 짐 브래독과 유사한 일들을 겪었죠.”
출연진에게 있어, 영화의 상세한 디자인들을 통해 공황기로 되돌아 가는 것은 경외심을 일으키는 경험이었다. 르네 젤위거는 “론과 모든 제작진이 식탁의 음식에서부터 복싱 링에서의 진품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 세심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런 희망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대한 작품을 하게 된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어요.”라고 르네 젤위거는 말한다.
론 하워드 필름의 파크웨이 프로덕션과 합작으로 유니버설 픽쳐스/미라맥스 필름/이메진 엔터테인먼트가 제공한다. 러셀 크로우와 르네 젤위거를 비롯해 폴 지아메티, 크레이그 비에코, 브루스 맥길, 패디 콘시딘 등이 출연한다. 토마스 뉴만이 음악을 담당했다. 의상디자이너는 다니엘 올랜디이며 공동 제작 총지휘자는 제임스 위트테이커이다. 부제작은 루이스카 벨리스와 캐서린 맥길이 맡았으며 편집은 마이크 힐과 댄 헨리가 담당하였다. 촬영감독은 살바토르 토티노이다. 제작총지휘는 토드 할로웰이 담당하였다. 브라이언 글레이저를 비롯해, 론 하워드, 그리고 페니 마샬이 제작을 담당하였다. 그 밖에 클리프 홀링스워스가 원안을 담당하였으며 홀링스워스와 아키바 골드만이 각본을 맡았다. 거장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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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브래독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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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브래독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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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굴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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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베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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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윌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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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존스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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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본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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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브래독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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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브래독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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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브래독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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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브라이언 그레이저
론 하워드
페니 마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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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클리프 홀링스워드
아키바 골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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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살바토레 토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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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토마스 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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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다니엘 P. 핸리
마이크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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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윈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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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다니엘 올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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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이매진 엔터테인먼트
유니버셜 픽쳐스
미라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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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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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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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
http://www.cinderellam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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