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다른 이름난니 모레띠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53-08-19
- 성별남
- 신장/체중182cm
소개
로베르토 베니니, 잔니 아멜리오와 함께 이탈리아영화의 오늘을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 3인 중에서도 형식에서 가장 전복적이고 가장 진보적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어 이탈리아영화인들의 존경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가 영화를 만들 때면 초기 제작단계에서부터 신문 문화면 상단에 오른다.
1998년 4월에 <4월>이 개봉됐을 때 그의 이름은 연일 신문의 톱기사가 됐고, 모든 매스컴에서 이 영화에 대한 토론과 논평이 이루어졌다.
혼자서 제작, 시나리오, 배우, 심지어 극장주와 배급까지 겸하는 1인제작 시스템으로도 유명하다.
혁명적 열기가 유럽대륙을 휩쓸었던 60년대에 10대를 보낸 모레티는 영화작업 초기부터 전통적 서사를 벗어난 반자연주의적 화법에 몰두했고, 그를 통해 희망없는 현실의 미로를 드러내려 했다.
68세대의 분노를 그린 장편 데뷔작 <나는 자급자족한다 Io Sono un Autar-chico/ I Am an Autocrat>(1976), 자기만족에 빠진 대도시 좌파 중산층을 비꼬며 당대 최고 배우 가운데 하나였던 좌파 알베르토 소르디를 풍자한 <에체 봄보 Ecce Bombo>(1978), 희망없는 감독의 영화 만들기 과정을 그린 <좋은 꿈꿔 Sogni D’oro/Golden Dreams>(1981)에까지 이런 경향은 이어진다.
1978년 타비아니 형제가 만든 <파드레 파드로네>에서 주인공의 군대시절 친구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모레티는 타비아니 형제로부터 카메라에 현실을 담는 법을 배웠다.
카메라가 등장인물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고정된 카메라 앞에 배우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다.
이런 형식은 <비안카 Bianca>(1981)에서부터 약간 수정된다. 드라마적 요소도 가미되고 평면적이던 화면도 훨씬 풍부해진다. 한 고등학교의 수학교사가 살인자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그의 이름을 유럽 평단에 알렸다.
미켈레라는 젊은 신부를 내세워 치유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사회를 풍자한 <미사는 끝났다 La Messa Finita/The Mass Is Over>(1985)는 상업적 성공과 함께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는 비평적 성공도 거둔다.
이 성공을 발판삼아 1986년 친구 안젤로 바르바갈와 함께 자케르필름(Sacher Film)이라는 제작사를 차렸고 이때부터 오늘까지, 제작부터 배급까지를 자신이 총괄하는 1인제작 시스템에 몰두해왔다.
94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카로 디아리오 Caro Diario/Dear Diary>는 모레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영화 속에서 실명으로 출연한 모레티는 스쿠터를 타고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한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과 진술을 통해 이탈리아 좌파의 몰락과 희망 부재의 현실을 절절하게 드러내며 영화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수작이다.
1998년 칸영화제에 출품된 <4월 Aprile>은 좀더 정치적인 영화로, 이탈리아 정치사와 모레티 자신의 가족사를 교차시키며 이탈리아 좌파의 흉한 몰골을 드러낸다.
1991년부터 로마에 360석 규모의 극장 누오보자케르를 개관해 운영해오고 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
<li>연출작
<패배>(La Sconfitta), <나는 자급자족한다>(Io sono un autarchico), <에체 봄보>(Ecce Bombo), <좋은 꿈꿔라>(Sogni d'oro), <비앙카>(Bianca), <미사는 끝났다>(La messe est finie), <빨간 비둘기>(Palombella rossa), <일기>(Caro Diario), <4월>(Aprile)
<li>수상
1981년, <좋은 꿈꿔라>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1990년, <빨간 비둘기> 이탈리아 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
1986년, <미사는 끝났다>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
1994년, <일기> 깐느 영화제 감독상, 이탈리아 비평가협회 감독상 수상
2001년, <아들의 방>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다비드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수상
이탈리아 비평가협회 감독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