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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병규, 김철홍, 김예솔비 평론가의 비평적 과제들
김철홍(평론가) 사진 백종헌 2023-05-04

오늘날 영화비평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오랫동안 제기되어온 ‘영화비평의 위기’에 관해 동시대 영화평론가들은 어떤 시선을 견지하고 있을까. <씨네21>은 당사의 영화평론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김병규, 김철홍, 김예솔비 영화평론가에게 대화를 청했다. 1~5년 이상 활동해온 이들에게 영화비평과 비평가의 역할, <씨네21> 지면의 의미와 한계, 외면적으로 어떤 자리와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김철홍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각자 하는 일이 궁금하다. 영화비평가로서 혹은 다른 정체성으로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김예솔비 현재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중인데, 과 특성상 영화만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전시, 퍼포먼스, 연극 등 미술과 관련한 기획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끔 전시 서문을 쓰거나 기획을 돕고, 때로는 기록 촬영을 하기도 한다.

김철홍 그게 김예솔비라는 정체성의 얼마만큼을 차지하고 있나.

김예솔비 구분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는 나 자신을 우스갯말로 영화와 미술 사이를 오가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요즘은 <씨네21>에 쓰는 글들에 꽤 공을 들이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비평의 한복판에 있다거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아니다. 나는 스스로가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 같고, 미술과 영화가 분리되지 않은 지금의 상태가 자연스럽다.

김병규 나는 공식적인 평자가 된 지 5년 정도 됐고, 그사이 학부를 졸업하고 계속해서 영화 만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씨네21> 활동으로만 한정한다면 한달에 한번 ‘프런트 라인’ 지면에 글 한편을 기고하는 것에 불과해서, 비평가의 업무가 생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평을 쓰는 것만이 평론가의 비평적 업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뤽 고다르가 조너선 로젠봄과 대담을 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업무를 하다가도 영화나 비평에 관한 아이디어가 생기면 언제든지 실천할 수 있고, 우리는 그런 방법으로 지속 가능한 비평을 상상해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지난 활동을 종합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어디까지가 비평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에 대해 구분 지어 접근해보지는 않았다.

김예솔비 굉장히 고다르적이다.

김병규 그러려고 폼을 잡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 나에게 주어진 상황 자체가 비평가로 공식적인 활동을 하기에 앞서 영화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비평과 창작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크게 부자연스럽지 않게 느끼고 있다.

김철홍 그렇다면 비평 글을 쓰는 것과 영화 연출 외에 하는 일이 있나.

김병규 일용직 노동자처럼 다른 글을 쓰거나 진행을 맡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해 비평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환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단순히 지면에 평론을 쓰는 것만이 평론가의 덕목일까. 더 많은 비평적인 활동들, 이를테면 프로그래밍이나 큐레이팅, 혹은 영화 역사에 있어서 누락된 관점을 환기하는 것도 비평가가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의 업무가 오직 글로만 한정되는 인상이다.

김철홍 나 역시 당선 이후 지면에 글을 쓰며 한계를 많이 느꼈었다. 글을 쓰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글을 쓴다고 해서 다른 기회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혼자라도 지면을 마련해 매주 영화 글 한편을 쓰고 있다. 영화 뉴스레터를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발행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씨네21>에 쓰는 비평 글보다는 조금 더 느슨한 형식의 글을 쓴다. 이런 걸 하다 보니 영화 관련 소셜 커뮤니티에서 섭외가 와 영화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김예솔비 그런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비평적 실천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나.

김철홍 스스로를 시네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평가가 하는 일을 노출시키고 다양한 영화를 큐레이팅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일이라고 본다. 오랜 기간 동안 ‘영화비평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 않나. 나는 새로운 시네필들의 유입이 적은 상황이 고인 물을 만든 요인 중 하나라는 가설을 혼자 세운 채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한명에게라도 비평을 읽거나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면 나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씨네21>과 비평 지면의 역할

김병규 시네필적 관습이나 습관 바깥에서 비평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고민해볼 문제 같다. 관련해서 각자 <씨네21> 지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거나, 한계를 느끼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김철홍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비평을 쓴 다음 유의미한 피드백을 받은 게 거의 없고 그 지점이 가장 아쉬웠다. 원인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뚜렷한 답을 내리지도 못했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안 읽어서일까, 아니면 읽긴 했는데 재미가 없어서일까. 재미가 없는 게 우리의 글인 걸까, 아니면 이 게임 자체가 이제는 세상에서 재미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걸까.

김병규 피드백이 드문 것에 관해선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동시대 평론가들이 쓰는 글의 동향과 그 이유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최근 적지 않은 비평이 특정한 영화 형식을 나타나게 하는 역사적 맥락과 변화를 감지하기보다, 무작위로 본 것들을 자의적으로 조합해서 견해를 만드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완성도와 별개로 그런 식의 비평은, 의견이나 주장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이는 각 평자뿐만 아니라 <씨네21> 내부에서도 답을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평의 기능과 의미 혹은 비평 지면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김예솔비 듣다 보니 한때 유행했던 ‘<씨네21>식 비평’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마테리알>에서 이에 관해 의견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정 부분 동의했던 기억이 있는데, 다소 안전하고 수사적인 비평들이 그런 지적을 받았다는 점에서 김병규 평론가가 말한 의제와 주장이 결여되어 있는 특징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유체 이탈 화법인 듯한데. (웃음) 아무튼 변화가 있어야 하는 건 맞다. 무엇보다 현재 지나치게 정렬되어 있는 비평 지면의 시간성을 흩뜨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봉작에 한해서 다뤄야 하는 규율 같은 것들을 흔드는 시도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김철홍 두분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잘 모르겠다. <씨네21>에 <씨네21>식 비평을 벗어난 비평들이 실리는 날들이 왔다고 해보자. 그런다고 상황이 더 나아질까?

김병규 어느 방향이 더 나은 방향이냐에 대한 기준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건, 현재 <씨네21>의 역할 대부분이 개봉작, 신작들에 대한 글의 제공이라는 것이다. 반면 비평가의 비평 행위는 그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더 넓은 비평 활동을 <씨네21>이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현재 박스오피스와 산업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질서에 대안적인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거다. 로젠봄이 말한 이야기인데, 비평가는 교과서나 흥행 성적에서 벗어난 정전의 목록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비평가가 산업 논리에 균열을 일으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예솔비 나는 <씨네21>이 이 대담을 기획한 제스처 자체가 그에 관한 일종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다들 정규 지면 외에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김철홍 ‘뒤늦은 발견’들이 많아지면 어떨까 한다. 나도 신작 위주로 비평을 반복하다 보니, 어떨 땐 예지 능력을 테스트받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매주 개봉하는 신작과 주간지의 호흡에 맞추느라, 생각이 잘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견해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게 개봉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과거의 비평 환경에서는 비평가들의 필요 덕목이었지만,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현재 ‘뒤늦은 발견’과 가장 가까운 지면이 OTT 추천작을 다루는 짧은 지면이라는 점이 재밌게 느껴진다.

김예솔비 그 지면에 자주 참여하지 않나.

김철홍 가끔 쓴다. 그 지면을 쓸 때도 매번 신작을 소개하는 것이 어려워서 예전 작품들을 한두편 끼워넣는데, 그럴 때 가끔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기도 한다. 아, 이 영화를 지금 이 시점에 이야기해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문득 든 생각인데, 김병규 평론가가 OTT 추천작을 쓴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웃음)

김병규 거의 못 보지만 넷플릭스 구독을 다달이 하고 있다. (웃음) 어쨌든 그렇게 잡지 안에서 불균질한 시차를 발생시키는 시도가 있다고 본다. 관련해서 두 가지 지면을 떠올려본다면, 하나는 다수의 평자가 긴 호흡으로 참여하는 연재다. 내후년이면 21세기도 25년이 지나는데, 21세기 영화에 대한 폭넓은 비평적 접근, 영화의 형식이나 제도를 포함해서 영화가 어떻게 유통되고 경험되는지 짚어보는 긴 기획을 이 시점에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다. 두 번째는 영화평론상의 개편이다. 단순히 등단만 시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수상한 평자가 어떤 글을 쓰는지 보여주는 연재 지면을 주는 거다. 오프라인 지면이 어렵다면 자체 웹진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름값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평자가 어떤 의제를 주요하게 생각하는지 듣고 반응해볼 필요가 있다.

김예솔비 나는 최근 KMDb(한국영상자료원 영화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 연재된 정지돈&금정연 작가의 ‘한국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을 재밌게 봤다. 실패하는 글쓰기의 장점은 실패를 예감하다 보면 헤매게 되고, 헤매다 보면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마주침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비평 글이 꽤나 정형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씨네21>에서도 비평에 관한 여정으로서의 글쓰기를 통해 질서 바깥의 영화들과 마주치는, 그런 형태의 연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병규 비평이 정형화됐다고 했는데, 거기엔 어떤 포맷의 문제, 또는 글쓰기 자체에서 제기되는 패턴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다루는 영화의 목록이다. 비평에 적합하다고 여겨 관습적으로 다루는 작가나 영화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재설정하는 폭넓은 연재, 정전들을 다시 설정하고 제대로 담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철홍 지면의 포맷뿐만 아니라 그 안을 어떤 영화로 채울지에 대한 고민은 필수적이라고 본다. 나는 영화제와 긴밀하게 연동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의 뉴 커런츠/한국경쟁 부문은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지 않나. 그런 영화들에 주목해 선제적인 담론을 형성한다면, 김병규 평론가가 지적한 산업 논리에 대항할 수 있는 움직임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본다.

‘젊은’ 비평가라는 범주

김철홍 기존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여전히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이건 꼭 젊은 비평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애초에 젊은 비평가라는 범주화 자체가 가능한 것일까.

김병규 이야기 주제였던 아마추어리즘과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비평가라고 해서 반드시 젊은 글,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듯, 비평 역시 프로냐 아마추어냐에 따라 나뉘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영화비평은 근본적으로 아마추어 시네필들의 충동적인 행위였고, 여기에 ‘프로’라는 제도를 덧붙인 건 저널리즘의 습관일 뿐이다. 저널리즘의 관습 안에 있지만, 그것을 흔드는 일도 비평가의 실천일 거다. 따라서 우리가 이야기할 건 저널리즘이 포용하지 못하는 부분을 말하고 규격화된 제도를 흔드는 것이지,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눈 뒤 특정 영역에 그 자체로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는 건 또 다른 관습을 생산할 뿐이다.

김예솔비 프로와 아마추어리즘이 반대항이 아니듯 젊음과 아마추어리즘 또한 긴밀히 연결되는 속성은 아닌 것 같다. 아마추어리즘은 복수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저널리즘 비평 안에서도 아마추어리즘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어떤 경로로 비평하느냐를 고민함으로써 체계 바깥의 것들을 다룰 수 있는 비평적 언어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넓은 의미에서는 <씨네21>에서도 분명 이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지만 질적, 양적 한계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김철홍 두분이 비평 행위의 측면에서 말했으니 나는 조금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젊은 평론가와 아마추어 비평가라는 표현이 어떤 관점에서 같은 개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무슨 말이냐면 경제적 기반이 없는 불안정적인 상태의 사람이 ‘젊은 비평가’를 넘어 ‘늙은 비평가’가 되는 게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 하는 거다. 쉽게 말해 밥을 못 먹는데 긴 호흡의 과정이 필요한 비평 행위를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비평가도 어엿한 프로 비평가가 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의 밑바닥 또한 탄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담의 소회

김병규 모든 영화잡지가 명목상으로는 비평과 비평가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런데 무엇이 중요하다는 걸까? 90년대의 영화비평은 교양의 기능을 목표로 삼았고, 2000년대 이후 <씨네21>은 ‘전영객잔’을 통해 시네필리아적 비평을 저널리즘에 안착시켰다. 그럼 다음 세대가 계승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지금 우리는 동시대 영화의 질서와 치열하게 부딪치지도 않고, 영화의 변화를 첨예하게 역사화하지도 못한 채 눈앞의 촛불을 바라보며 자족적인 감탄사만 내뱉는 건 아닐까? 우리가 하는 비평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평에 대해 말해야 할 때, ‘젊은 비평가’라는 우스꽝스러운 구분보다는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희박한 장소를 상상해보고 싶다.

김철홍 젊은 비평가들이 모인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이 우리를 모은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함께 머리를 싸매봤지만 끝내 알아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늙기 전에 젊은 비평가 대담에 한마디를 얹을 수 있었던 것 자체는 좋았다. 무엇보다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론 의미가 크다. 그 목표는 바로 젊은 비평가로 살아남아, 늙어서도 계속 비평가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몸과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리라 다짐해본다.

김예솔비 대담 내내 ‘젊은 평론가’라는 상태가 어떤 대화를 위한 특수한 조건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의 공통점은 시간이 많다는 것이었다. 각자 정도는 다르지만 생활의 어떤 부분을 방치해두면서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에 대한 글을 쓰거나 모임을 만드는 일로 비정기적인 일상을 보내는 탓일 테다. 우리가 가진 시간의 유동성을 어떻게 가능성으로 치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영화비평이라는 활동의 외연을 가늠해보았다. 균열, 지속, 비평적 과제와 같은 단어들을 가로질러 영화와 사건을 일으킬 시간의 공모자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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