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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바다 너머 섬)>(이하 <이어도>)는 7편의 단편영화(스크린)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봤을 때, 개별적인 영화들이 연결되는 순서가 있는가. 아니라면 당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
공간적·시간적 장치이자 은유로서 나선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해류도 나선형이고, 해녀들이 물질로 채취하는 소라도 나선형이다. 각 작품의 내러티브는 선형보다는 원형에 가깝고,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지역적이고 장소적인 것에서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되며,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어서는 더 넓은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를 위해 스크린과 관객의 좌석을 나선형으로 배치하여,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 연관되도록 전시 공간을 조성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로 연결되는 인과적 연속의 고정된 내러티브가 아닌, 물결과 공명의 느낌을 작품에 반영했다. 하나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관객이 작품을 서로 연결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을 기반으로 구성했
[인터뷰] ‘자연은 인간의 감각과 문화 형성에 근본적인 역할을 해왔다’, MMCA ‘올해의 작가상 2024’ 참여 작가로 선정된 제인 진 카이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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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MMCA)은 SBS문화재단과 공동 주최로 ‘올해의 작가상 2024’를 개최하고 4명의 후원 작가를 선정했다. 이중 제인 진 카이젠은 <이어도(바다 너머 섬)>라는 제목으로, 상호 연관된 7개의 영상을 선보인다. 작가는 7개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 스토리텔링, 수행성, 사운드, 구술을 교차시키며 시간 기반 미디어 탐구를 확장한다. 제주 태생으로 덴마크로 입양된 카이젠은 강렬한 시각성을 동반하는 시적이고 수행적인 영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인의 경험과 정치적 역사의 교차점에서 기억, 이주, 국경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일곱점의 영상으로 이루어진 연작 <이어도(바다 너머 섬)>는 지역공동체와의 오랜 협업을 바탕으로 제주의 자연, 역사, 문화, 오늘날의 쟁점에 대한 작가의 다층적 연구를 집약하여 보여준다. 그는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작가로 참여하였고, 2021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이별의 공동체>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올해의
[기획] 시간의 지층과 접속하는 헤테로토피아 - 역사 너머의 태곳적 기억 제인 진 카이젠의 <이어도(바다 너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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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월레스와 그로밋을 찾아온 때는 월레스가 경제적으로 곤궁한 형편에 처했을 시기였다. 발명가 양반은 자신의 영감을 주체할 수 없기에 늘 과하게 발명을 해댄다. 체납 고지서는 쌓이고, 여윳돈은 없다. 그나마 변통할 수단이라면 방치된 방 하나를 세놓는 것. 그래서 세입자를 들이는 광고를 냈다. 그리고 그가 찾아왔다. 과묵하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허름한 방 대신 그로밋의 방을 차지한다. 굴러온 돌은 너무나 당당하게 박힌 돌을 빼냈다. 집주인 월레스는 당황했지만 당장 한푼이라도 아쉬웠기에 받아들였다. 그는 무례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략적으로 살갑게 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월레스에게는 살갑게, 그로밋에게는 무례하게 굴었다. 월레스와 그로밋의 관계에 파고들어서 둘을 떼어놓는 것, 이간계는 적중했다. 이제 월레스의 집은 그의 거사를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었고, 월레스는 범죄의 대리 수행인으로 조종될 운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기생충
[기획] ‘오락영화의 물리법칙이 거꾸로 작동할 때’, 설 연휴 추천 OTT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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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는 네명의 여자가 있다. 준비 태세를 갖추더니 곧이어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손에 든 망개나뭇가지, 털실, 립스틱, 권투 글러브를 카메라 너머로 힘껏 날리며 포효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의 드라마 <아수라처럼>의 오프닝을 처음 본 이후 매일 수없이 영상을 돌려보았다. 진창 난 내면을 배회하다 이윽고 촉발되고 끝내 화르르 불타버리는 그런 여자들을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짐승과도 같은 그녀들의 울음소리에 응답할 준비를 하며 며칠을 보냈다. 1월9일 목요일 <아수라처럼>이 오픈되고 그주 주말에 뒤늦은 시청을 하였는데, 결론은 나는 그녀들의 포효에 응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네 자매가 정말로는 포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프닝의 장면들은 실상 본편에서는 없는 장면들이었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삼녀 타키코는 도서관이 오픈되기도 전인 이른 시간에 출근해 차녀 마키코에게 전화를 건다. 할 얘기가 있다며 자매들을
[기획] ‘아수라처럼, 진짜 아수라는 아닌’, 설 연휴 추천 OTT <아수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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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는 늘 볼거리로 넘쳐난다. 극장가뿐 아니라 OTT에서도 흥미로운 콘텐츠들이 긴 연휴를 풍성하게 채워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작품들의 리스트를 정리해보는 게 이 무렵의 정석이겠지만 때론 꼭 집어 한편만 골라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씨네21>에서는 이번 설 연휴에 꼭 챙겨봐도 좋을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을 각각 한편씩 꼽아보았다. 기준은 하나다. 이 작품이 지금 왜 다시 만들어졌을까.
첫 번째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 <아수라처럼>이다. 1979년 <NHK>에서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무코다 구니코의 동명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을 위해 미야자와 리에, 오노 마치코, 아오이 유우, 히로세 스즈 등 일본의 대표적인 여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무엇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번째 넷플릭스 드라마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국내 팬들의 주목을 모으는 중이다. 서로 다른 삶을
[기획] 보고 또 보고 – 연휴에 챙겨볼 만한 시리즈 <아수라처럼>과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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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가나다순
*제작·배급사 요청 등으로 미표기된 작품이 있으며 개봉 일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25년 영화 개봉예정작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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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은 지구 안팎을 넘나들며 일과 사랑 모두를 향해 달려가는 요즘 청년들의 연애를 가능한 한 달콤하게, 그리고 동시대적으로 전하려는 애니메이션이다. 작중 동년배인 두 캐릭터이지만 목소리 출연한 김태리와 홍경이 자아낼 묘한 연상-연하미, 불안형과 안정형이 만난 연애의 구원 서사도 기대된다. 일상성이 돋보이는 단편애니메이션으로 주목받고 퀴어 로맨스 <그 여름>으로 데뷔한 한지원 감독이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발표하는 첫 장편애니메이션을 지휘했다.
- 우주 비행사와 뮤지션의 로맨스물로 알려져 있다.
우주 비행사와 뮤지션이라는 특수한 직업 세계의 일들에 국한되지 않는 감정에 더 주안점을 뒀다. 일과 사랑 모두를 열심히 고민하는 내 또래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또 자신의 꿈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일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적인 영역에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이 있지 않나. 그런 난영이 제이를 만나서 생기는 변화를 담고 싶었다. 이건
[인터뷰] 요즘 우리들의 연애, <이 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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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은 좀비다.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유일한 좀비.” 네이버웹툰에서 2018년부터 2년간 인기리에 연재됐던 이윤창 작가의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은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로그라인을 가진 작품이다. 물론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좀비가 번창한 세상에 남겨진 부녀가 주인공인 ‘천만 영화’(<부산행>)도 존재한다. 그러나 웹툰 <좀비딸>은 보는 이들의 예상을 기분 좋게 반전시키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아빠 정환의 입장에서 좀비는 처치해야 될 괴생명체가 아니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할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자 자연스레 극의 톤도 바뀌었다. 그동안 <인질> <운수 오진 날> 같은 스릴러 장르만 연출해온 필감성 감독 또한 원작이 품고 있는 의외의 코믹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되었다고 밝혔다. 거기에 더해, 지난해 코미디 연기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인터뷰] 호러도 코믹도 제대로,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필감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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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혼원정기>의 황병국 감독이 오랜만에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돌아왔다. 시작은 <특수본> 때 인연을 맺은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가 보내준 한 기사였다. “1년에 검거된 마약사범이 1만6천명이었다. 최근에 다시 알아보니 2만3천명으로 늘어났더라. 암수율을 감안하면 실제는 거의 20배가량 될 것이다.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고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 특히 기사에 언급된 ‘야당’이란 이들의 존재는 창작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야당이란 마약 세계의 정보를 검찰과 경찰에 비밀리에 제공하는 자를 일컫는 은어다.
대개 마약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장르적인 데 반해 <야당>은 일상 속에 침투한 마약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와 캐릭터 변화가 관건이다. “감정 전달이 뛰어나고 천진난만함부터 어두운 내면까지 보여줄 수 있는, 연기 폭이 넓은 배우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야당 일을 하는 강수 역에 강하늘, 검사 관희 역에 유해진을
[인터뷰] 사실적인 마약 범죄 영화, <야당> 황병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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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거룩한 밤’은 악을 숭배하는 집단에 의해 혼란에 빠진 도시를 구할 어둠의 해결사로 통한다. 악마를 찾아내는 자 샤론(서현), 악마를 잡는 자 바우(마동석), 이들을 돕는 자 김군(이다윗)까지 총 3인 체제로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어느 날, 거룩한 밤은 간곡한 의뢰를 받는다. 정신과의사 정원(경수진)이 몸속에 악마가 들어와 고통스러워하는 동생 은서(정지소)를 구해달라고 찾아온 것. 사건의 심상찮음을 느낀 팀은 실력 발휘를 위해 나선다. 오컬트 장르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요즘, 또 한편의 즐길 만한 한국형 오컬트물이 상반기에 찾아온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별세계에 해박한 신예 감독과 무궁한 아이디어를 가진 액션 스타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대학 때부터 동양 샤머니즘에 관심이 있어 연구를 해왔고 관련 주제로 단편도 여러 편 찍은” 임대희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마동석 배우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며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악
[인터뷰] 맨주먹 오컬트 액션,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임대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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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로 지난해 여름 극장가를 달궜던 이종필 감독이 곧바로 신작 <파반느>를 선보인다. 박민규 작가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왠지 음울한 인상의 백화점 직원 미정(고아성)이 모두에게 주목받는 사람 경록(문상민)을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멜로드라마다. 미정과 경록 사이엔 백화점의 유명한 괴짜 요한(변요한)이 끼어들어 오작교를 자처할 예정이다. 이종필 감독의 말마따나 근래 흔치 않은 ‘정통 멜로’로 인사할 <파반느>를 기대해본다.
- 원작을 영화화하기로 한 배경은.
원래부터 박민규 작가를 좋아했던 터라 2009년에 소설이 나오자마자 읽었었다. 왠지 모르겠는데 꼭 내가 이 책을 쓴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막 20대가 끝나고 30대에 접어들던 때여서 그랬는지, 누구를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세밀한 과정에 굉장히 몰입했던 것 같다. 무척 사실적인 사랑의 연대기여서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지
[인터뷰] 오랫동안 기다려온 ‘정통 멜로’, <파반느> 이종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