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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 조이(맥신 아이겐만)는 혼수상태의 자산가 개럿(데이비드 헤이먼)의 대저택에 입주 도우미 제안을 받는다. 자신을 조카라 소개하는 캐서린(리앤 베스트)은 조이에게 안정적인 주급과 개인 방을 제안한다. 조이가 딸 그레이스(제이든 페이지 보아디야)를 집 안에 몰래 데려와 키우면서 브로커를 통해 불법 체류 신분을 해결하려는 어느 날, 켜켜이 묵은 가문의 끔찍한 비밀이 모녀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필리핀계 영국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레이징 그레이스>는 대저택에 우연히 발을 들인 외부인의 시선으로 집 안 깊숙이 자리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앞선 할리우드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겟 아웃>보다는 호러 요소가 무르고 <나이브스 아웃>보다는 추리 요소가 부족하다. 동시대 ‘가정부 스릴러’ 범주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기생충>과도 원치 않게 비교될 것이다. 필리핀 음악과 의상 등 동남아시아 전통문화의 이미지를 장르에 적절하게
[리뷰] ‘레이징 그레이스’, 대저택 미스터리 속 불완전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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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파일럿 리퍼(러셀 크로)는 필리핀 술루해에서 피랍된 CIA 요원을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델타포스팀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팀의 구성원은 베테랑 요원 아벨(루크 헴스워스), 비숍(리키 휘틀), 슈가(마일로 벤티밀리아) 그리고 항공기공격통제관 키니(리암 헴스워스)다. 이들은 작전 수행 중에 예기치 못하게 적에게 습격당해 뿔뿔이 흩어진다. 혼자 살아남은 키니는 드론의 도움으로 탈출하던 중에 폭포에 떨어져 기절한다. 그를 구한 것은 죽은 줄 알았던 아벨이다. 아벨은 키니에게 납치된 비숍을 구하러 가자고 설득한다.
<랜드 오브 배드>는 <언더워터>(2020)의 감독 윌리엄 유뱅크의 신작이다. 독창적 비주얼을 그려내려고 애쓴 감독의 전작과 달리 영화는 낡고 전형적인 전쟁 블록버스터에 불과하다. 초반에는 그나마 전장과 본부를 넘나드는 리퍼와 키니의 전우애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전장을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생각하는 군인과 영화를 보는 관객에
[리뷰] ‘랜드 오브 배드’, 이 영화의 올드함은 악지 중의 악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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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 웹(다코타 존슨)을 임신한 콘스턴스는 초능력을 지닌 독거미를 채집하러 아마존으로 떠난다. 그녀는 동행인 이지키엘 심스(타하르 라힘)에게 살해당하고, 채집한 독거미까지 빼앗긴다. 다행히 카산드라 웹은 거미와 공생하는 원주민 아라냐에게 구출된다. 30년 뒤인 2003년 뉴욕. 독거미의 힘으로 초능력자가 된 이지키엘은 10대 소녀 줄리아 콘월(시드니 스위니), 안야 코라존(이사벨라 메르세드), 매티 프랭클린(셀레스트 오코너)이 자신을 죽이리라는 미래를 본 뒤 그녀들을 죽이려 한다. 마찬가지로 미래를 보는 카산드라는 세 소녀를 지키려 한다. <마담 웹>은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신작이다. 원래 조연이었던 노인 캐릭터 마담 웹을 주체적인 X세대 젊은 여성 캐릭터로 재해석했다. 마담 웹이 지킨 세 소녀가 스파이더우먼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고편식 결말로 끝나지만 이 영화만 볼 때 시리즈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일단 모든 캐릭터가 일차원적인 데다 전개마저
[리뷰] ‘마담 웹’, 히어로 영화라기보단 CPR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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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사고를 친 뒤 나락에 빠진 배우 수연(박지연)은 요즘 화병으로 앓아눕기 직전이다. 재기하려 사인회를 열어도 오는 사람이 없고 같이 사는 후배 배우 가영(김누리)과 소속사 대표로부터 무시당하는 나날이 이어지자 다시 술에 손대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결국 술을 진탕 마시고 잠들었다 깬 수연은 직전까지 싸웠던 가영이 칼에 찔려 죽은 것을 목격한다. 혹여나 만취한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던 와중에 문밖에서 의문의 남성을 발견한다. <화녀>는 궁지에 몰린 여성이 위기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담는다. 수연은 남자와의 일대일 싸움에서 그동안 쌓인 분노 에너지를 활용해 그를 제압하고 집을 찾아온 경찰들 앞에서는 연기대상을 받은 배우답게 능청스러운 연기로 그들의 시선을 돌린다. 배우 박지연은 발견이라 할 만큼 반짝인다. 명성을 잃은 배우의 처연함을 실어나르는 목소리가 특히 귀를 사로잡는다. 반면 거친 만듦새는 아쉽다. 파편적인 감정선은 인물들의 행동을
[리뷰] ‘화녀’, 정돈이 필요한 분노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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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시(줄리앤 무어)와 조(찰스 멜턴)의 관계가 발각된 1992년 여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조의 아이를 임신한 그레이시는 아동 강간 혐의로 구속되어 철창 안에서 분만하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그로부터 23년 후 이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엘리자베스(내털리 포트먼)가 평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듯 보이는 그레이시 부부를 방문한다. 당시 그레이시의 나이가 된 조와 이젠 예순을 바라보는 그레이시. 그리고 성년을 앞둔 세 자녀가 이룬 가정이 엘리자베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메이 디셈버>는 1990년대 토드 헤인스의 초기 필모그래피를 떠올리게 하는 사이코드라마다. 현재 시점에 남아 있는 주변과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과거를 추적하는 탐정극 플롯 자체가 흥미롭다. 게다가 감독 특유의 전복적인 에로티시즘이 영화의 야릇한 분위기를 규정하며 관객을 흥분케 한다. <세이프>를 시작으로 토드 헤인스의 일탈적
[리뷰] ‘메이 디셈버’, 곪아빠진 인간들의 에로틱한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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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각별한 이와의 관계가 불가항력으로 뜯긴 후 그 이별이 전부 자기 탓이라 자학해본 적 있다면, <로봇 드림>으로부터 상대와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모두 당신 덕이었다는 위로를 건네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동물만 사는 198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한 아파트에 사는 개는 꺼진 TV 액정에 홀로 사는 스스로의 반영이 비칠 때마다 고독이 치민다. 때마침 개는 TV 광고에서 쓸쓸한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반려 로봇을 본다. 동거를 택한 개와 로봇은 서로의 삶에서 다시 마주하기 어려울 찬란한 우정을 나누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행복은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 증발해버리고 만다. 어느 날 개와 함께 해수욕을 즐기던 로봇은 그만 고장이 나 멈춰 선다. 개는 백사장에 로봇을 잠시 남겨둔 후 서둘러 수리 도구를 갖춘 채 다시 휴가지를 찾지만, 그새 폐장한 해변엔 다음 여름까지 입장이 불가능하다. 그날 이후 둘은 밤낮으로 상대의 꿈을 꾼다. 홀로 남은 로봇은 우두커니
[리뷰] ‘로봇 드림’, 로봇의 표정에서 찾아내는 수많은 인간감정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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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나영(권유리)은 바깥세상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주민들의 하루를 담고 한집 사는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나영에겐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나 나영의 행복은 가족들의 변화로 인해 깨질 위기에 처한다. 엄마 정옥(길해연)이 돌연 재혼을 발표하더니 고등학생인 동생 성운(현우석)은 갑자기 서울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영을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볼링이다. 나영은 친한 볼링장 주인 미숙(박미현)과 서울에서 온 다정한 외지인 해수(심희섭)의 도움을 받아 볼링이란 낯선 세계에 눈을 뜬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한 <돌핀>은 주인공을 인간의 손을 떠나 레인 위의 질주를 시작한 볼링공에 빗대어 풀어낸다. 줄곧 변화를 두려워하던 나영은 집안의 대소사를 겪고 볼링이란 새로운 취미를 만나면서 도전하는 삶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도랑에 빠져 굴러가던 볼링공이 마지막에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볼링핀을 쓰러뜨리는 기적 같은 순간과 맞닿는다. 긴장감이
[리뷰] ‘돌핀’, 자꾸만 도랑에 빠지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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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원 러브>는 레게 음악으로 고국 자메이카의 평화와 세계의 화합을 이끌었던 뮤지션 밥 말리의 일대기를 그린다. “밥 말리의 시작은 더없이 초라했다”라는 자막을 통해 1945년생인 밥 말리의 유년기와 청년 시절을 축약한 영화는 그의 마지막 전성기라 할 1976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로부터 1978년까지의 일이 중심으로 그려지되 몇번의 플래시백을 통해 그의 과거를 조명하기도 한다. 레게 뮤지션으로 잘 알려진 그의 공적인 삶뿐만 아니라 어릴 적 백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던 상처, 아내 리타와의 사랑 등 그의 삶에 걸친 개인사가 밝혀진다. 1976년에 이미 세계적인 스타였던 밥 말리는 정치적 대립과 물리적 충돌이 극에 달했던 고국에서 공연 ‘스마일 자메이카’를 진행한다. 그러나 그는 공연 전에 한 청년의 총격을 받고 가까스로 공연을 끝낸 후 영국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이후 런던과 파리 등 유럽을 오가며 20세기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Exodus》
[리뷰] ‘밥 말리: 원 러브’, 그의 삶보단 다소 안전하게 꾸려진 정석의 음악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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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를 보고 난 뒤 혼란한 감정에 휩싸였다. 무엇을 기준에 두고 영화를 판단하거나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오컬트 장르에 초점을 두는 것이 무난하지만, 분명 캐릭터 무비의 성격이 보다 도드라진다. <검은 사제들>에서 하나의 집단으로서 두 사제가 보여주었던 앙상블이 <파묘>에 이르러 도무지 섞일 것 같지 않은 이들에게서 발휘된다. 결혼식 단체 사진을 찍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진사의 주문에 의해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져 서게 된 이들의 위치는 서로 떨어진 자리에서 묘한 균형을 이루는 별자리와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멀고도 가까운 그 미묘한 거리감과 위치 선정이 <파묘>의 본질임을, 마지막 장면은 말하는 것 같다.
화림(김고은), 봉길(이도현), 상덕(최민식), 영근(유해진) 등 4명의 주인공은 알려지지 않은 전사에 의해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쿨하게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이란 뜻이다. 무속, 풍수,
[비평] <파묘>, ‘몸의 메커니즘, 장르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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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노동자계급을 주로 다룬 그의 다른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영국인’으로서 자국의 식민 지배로 인한 아일랜드 내전을 다룰 때, 감독의 포지션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테리 조지 감독의 <호텔 르완다>(2004)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벨기에의 분할 지배의 결과로 후투족과 투치족은 1994년 100만여명이 사망하는 상호 학살극을 낳았다. <호텔 르완다>는 강대국을 상대로 피식민 주체의 협상 전략을 다룬다.
두 작품은 제국주의로부터 형식적인 독립을 이룬 국가들의 식민성(콜로니얼)과 그 유산(포스트 콜로니얼)에 관한 텍스트다.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해방 후 국가 건설 방식과 통치 시스템을 둘러싸고 혼란과 분열을 겪었고, 급기야 침략자에게 향했던 총을 ‘동족’에게 겨누었다. 한국전쟁은 그중 가장 큰 규모의 비극이었다. 8·15 해방과 함께 시작된 제노사이드인 4·3은 “일정(
[비평] 르상티망의 정치와 진영 논리, 영화 <건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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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영화 연구사의 중추였던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이 지난 2월29일 세상을 떠났다. 1947년생으로 팔순을 앞두고 있던 그는 작고 3일 전에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 대한 글을 썼을 만큼 영화에의 애정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에 김지훈 중앙대학교 교수가 데이비드 보드웰의 2002년 내한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부터 그의 연구 업적 및 의의를 폭넓게 짚어주는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과거의 인물이 쌓은 시간을 발판 삼아 후대의 영화인은 한 계단을 더 올라간다
2002년 11월12일 동국대학교 학술문화관은 한국영화학회가 초청한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의 특별 강연을 듣기 위한 청중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현장의 열기는 이 시기가 1990년대 후반부터 시네필 문화의 발달과 조응하여 본격적으로 성장한 국내 영화학이 적어도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서 전성기였다는 점, 그리고 보드웰이 배우자 크리스틴 톰슨과 함께 쓴 개론서 <영화예술>이
[기획] 형식, 스타일, 관객 -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 부고를 계기로 돌아본 그의 영화예술, 영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