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스트 카우>로 2021년 평단을 휩쓸었던 미국 인디영화계의 거목 켈리 라이카트의 신작이자 감독의 오랜 페르소나 미셸 윌리엄스가 합류한 <쇼잉 업>이 국내 관객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 1월8일 개봉한다. 그리고 같은 날, <히트><콜래트럴> 등으로 할리우드의 작가주의를 수호해온 마이클 만의 신작이자 애덤 드라이버의 연기 변신으로 이목을 끌었던 <페라리> 역시 극장에 걸린다. 2025년을 맞아 반갑게 찾아온 두편의 영화를 나란히 두고 동시대 미국영화의 흐름을 간략하게 짚은 리포트, 더하여 두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함께 조망한 <쇼잉 업> <페라리>의 리뷰를 전한다. 미국영화에 대한 넓은 시선과 두 작품에 대한 깊은 탐색의 창구가 되길 바란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쇼잉 업>과 <페라리> 리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변화와 보존 사이, 동시대 미국영화의 흐름 분석 <쇼잉 업>과 <페라리> 리뷰
-
영화 <인서트>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에서 크리틱b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시선상을 수상한 이종수 감독은 부산영화제가 2023년부터 주목해온 신인이다. 장편 데뷔작 <부모 바보>로 처음 부산영화제를 찾은 그의 손엔 당시 KB 뉴 커런츠 관객상이 쥐어졌다. 부산에서 연이어 조명된 이종수 감독의 특징은 독특한 형식적 실험을 취하는 창작자라는 것이다. <부모 바보>에서는 사회복무요원 영진(안은수)과 그를 관리하는 사회복지사 진현(윤혁진), 자식과 불화를 겪는 순례(나호숙)을 중심으로 그러한 연출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세 인물은 복지관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규정하기 어려운 관계를 형성해간다. 쌓여가는 시간의 굴레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각도로 포착하며 영화는 전에 없던 감흥과 인상을 축적한다. 반복과 변주 속에서 익숙한 서사는 새로운 인상을 입고, 그렇게 <부모 바보>는 자신만의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 자전적 경험을
[인터뷰] ‘온갖 삶이 사회복지관에서 만난다’, <부모 바보> 이종수 감독
-
폴란드인 할머니는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했다. 몇 세대 후 미국인 손자들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달고 산다. 역사적 고통의 거대함 앞에서 현재의 개인적 고통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하지만 감독 겸 배우 제시 아이젠버스는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쓰고 찍으면서 그것이 덜 중요하거나 정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격이 딴판인 사촌 형제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어런 컬킨)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고향 폴란드를 방문한다. 홀로코스트 역사를 되짚어보는 이 여정엔 배우 윌 샤프와 <더티 댄싱>(1987)의 스타 제니퍼 그레이가 함께한다. 제40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첫 상영을 가진 영화 <리얼 페인>의 네 배우가 고통의 여러 교차점에 선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스스로 검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제시 아이젠버그 감독 겸 배우, 배우 키어런 컬킨
- 제목 <리얼 페인>(A Rea
[인터뷰] 압도적 고통에 연대할 수 있을까, <리얼 페인> 제시 아이젠버그 감독 겸 배우, 배우 키어런 컬킨, 윌 샤프, 제니퍼 그레이
-
2024년 3월 배우 박훈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다.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필름어워즈(AFA)에서 <서울의 봄>의 문일평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이다. 첫 연기상 트로피를 어디에 두었냐고 묻자 박훈은 “전시할 성격이 못 된다며 어디 안 보이는 곳에 잘 보관했다”라고 말했다. 이 일화가 증명하듯 박훈은 2015년 <오 나의 귀신님>으로 매체 데뷔 뒤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바라지 않고 내 기준에 맞춰 충실하게 연기”해왔다. 배우 자신도 인정한 선 굵은 마스크와 오랜 연극과 뮤지컬 생활로 다져진 또렷한 목소리를 가져 선역이든 악역이든 신념 있는 역할에 주로 소환되었다. 지난해 12월24일 개봉한 <하얼빈>에선 이견 없는 악당, 일본군 모리 다쓰오로 분했다. 2025년으로 건너가기 직전, 박훈을 직접 만나 다쓰오가 등장한 장면 하나하나에 관해 물었다. 진지하게 답을 내놓는 그의 눈빛은 <하얼빈> 속 동지들처럼 뜨겁게 빛났다.
-
[인터뷰] “미니멀한 연기 통해 공포 살렸다”, <하얼빈> 배우 박훈
-
-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에서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자를, 반대로 총기 사용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은 후자를 택한다. 총이 사람을 죽인다는 주장은 총 자체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말에서 총은 단순한 도구로 간주되어 칼이나 다른 흉기로 대체 가능한 것이 된다. 양쪽 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나로서는 총구가 사람을 향해 겨누어지고 총알이 발사되는 것 외에 총이 다르게 사용될 일이 있을까 싶어 전자에 마음이 갔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과학기술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이 문제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총과 사람 중 어떤 쪽도 사람을 죽이는 본질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총과 사람이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 혹은 ‘사람이 방아쇠를 당긴 총’
[임소연의 클로징] 총과 여자 그리고 2025년
-
“아무래도 X됐다.”(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의 첫 문장) <마션>은 유인 화성 탐사 임무 중 혼자 화성에 낙오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549화성일간의 ‘로빈슨 크루소’식 생존기를 다룬다. 2013년 <그래비티>, 2014년 <인터스텔라>에 이어 개봉한 이 작품은 앞선 우주 배경 영화와 달리 낙관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살려 차별화됐다. 캘리포니아 공학대학 출신 작가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과 비교할 때 화성의 중력 묘사(지구의 3분의 1 정도이기 때문에 지구에서처럼 돌아다닐 수 없다), 소리 전달(소리를 전달한 매질, 즉 대기가 지구보다 훨씬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비티>를 생각하면 된다) 등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영화적 허용을 한 일부 대목을 제외하면 과학적 논리도 잘 살아 있다. (다만 화성의 대기압이 지구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모래 폭풍 때문에 화성상승선
[임수연의 이과 감성] 화성에서 정말 감자를 키울 수 있을까?
-
2024년 12월3일, 밤새도록 뉴스를 보다가 지쳐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너희 아빠 무서워서 우셨다.” 부모님이 계엄령을 경험한 세대였다는 것이 덜컥 실감이 나서, 우리 세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무서워서 저도 울컥했습니다. 이후 며칠간은 일상이라는 것이 박살 난 상태로 뉴스를 봤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12월7, 8일에 있을 연말 단독 공연을 기다리며 그걸 준비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이제 7일은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삶이 심각하게 침범당하는 이때에 우리는 준비해온 공연을 약속대로 해야 합니다. 공연팀에게도 관객들에게도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공연 당일, 대기실에서 곱게 화장을 하고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데 뉴스 소리가 들렸습니다. 막이 오르기 전 암전 속에서 기도를 했는데 무대팀 스태프가 기도하는 제 두손을 아프도록 꼭 잡아주었습니다. 오프닝곡이 끝나고 인사를 하니 관
[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우리가 살아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
-
<Happy>와 <Get Lucky> 등을 만들고 그래미상을 13회나 거머쥔 뮤지션, 타고난 패션 감각으로 스트리트 패션 붐을 일으키고 루이비통의 남성복 디렉터로 활동하는 패션 아이콘. 아티스트 퍼렐 윌리엄스의 스펙트럼은 한 사람이 한 일이라고 보기에 놀랍고 다채롭다. <피스 바이 피스>는 레고 무비와 다큐멘터리 장르를 혼합한 실험적인 형식으로 그의 경력을 스케치하는 전기영화다. 이 형식은 창작을 레고 블록의 분해와 조립처럼 보는 그의 사유를 반영한 것이다. 여러 장르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영화의 스타일은 대체로 신선하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퍼렐 윌리엄스는 물론, 제이지, 푸샤 티,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그의 삶에 영향을 준 인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각본을 구성하고 실제 인터뷰 음성을 캐릭터의 대사로 쓴 연출이 인상적이다. 애니메이션임에도 다큐멘터리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퍼렐 윌리엄스의 공감각과 예술적 상상력을 그의
[리뷰] 독창적인 힙합 비주얼과 성공학 자기 계발서의 모순된 공존, <피스 바이 피스>
-
절대왕정이던 부탄왕국은 2006년 국왕에 의해 자발적인 민주화를 맞이한다. 정부는 손수 지도자를 뽑아본 적 없던 국민을 위해 투표 방법을 교육하는 모의 선거를 기획한다. 평화롭던 우라 마을도 모의 선거로 인해 한바탕 소을 겪는다. 한편 마을의 큰어른인 라마승은 제자 타시(탄딘 왕추크)에게 선거가 있을 보름달이 뜨는 날까지 총 두 자루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총을 든 스님>은 <교실 안의 야크>로 부탄영화의 매력을 보여준 파우 초이닝 도르지 감독의 신작이다. 세계 최연소 민주주의국가라는 외신의 평가처럼 이제 막 민주화에 적응해야 하는 국민의 소박한 적응기를 그려냈다. 총과 선거,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서늘한 긴장감도 서툴고 순수한 부탄 사회에선 하나의 해프닝처럼 흘러간다. 순수한 시선에서 제기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질문을 결코 무지함으로 여기지 않는 영화의 태도가 미덥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큰 호응을 이끌었다.
[리뷰] 무지하지 않은 순수, 작금의 시국에 필요한 선의, <총을 든 스님>
-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려온 은우(도준영)와 태이(동하)는 지금도 작업실을 공유하는 사이다. 하지만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은우에 비해 지지부진한 작업으로 태이는 초조함을 느낀다. 어느 날 태이의 연인 유진(김수민)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태이는 유진의 동생 유림(허지원)과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사건에 다가설수록 태이는 익숙했던 현실이 자꾸만 낯설게 느껴진다. 이현지 감독의 <코넬의 상자>는 애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심리 스릴러다. 영화의 제목인 <코넬의 상자>는 아방가르드 조각가 조셉 코넬의 대표작인 상자 연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상의 편린을 초현실적 콜라주로 승화시킨 조셉 코넬의 명성과는 달리 영화가 빚어낸 결과물은 엉성하기만 하다. 상투적이고 직선적인 서사는 서스펜스를 직조하는 데 실패하고, 꿈과 현실을 교차하려는 시도마저 투박한 연결점으로 무위에 그친다.
[리뷰] 굳이 열어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코넬의 상자>
-
목을 다쳐 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아오이(야마다 료스케)는 삶을 기대 없이 살아가기로 한다. 청소부로 일하는 대학에서 평소처럼 옥상 작업을 하던 어느 날, 투신하려는 여자를 구하면서 삶에 생기가 찾아온다. 여자의 이름은 미카(하마베 미나미). 유망한 피아니스트로 주목받았으나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고 방황 중인 피아노과 학생이다. 다시 살 마음을 먹은 미카는 연주 연습을 결심하고 폐강당을 찾지만 잠긴 문에 돌아서고 만다. 그 모습을 목격한 아오이가 강당 문을 열어주면서 둘은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된다. <사일런트 러브>는 조심스러운 두 주인공을 닮은 영화다. 깊은 상처로 곁을 주지 않던 남녀가 결이 맞는 서로에게는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응원하는 시선으로 담아낸다. 히사이시 조의 섬세한 음악이 인물들의 심리를 충분히 표현한다. 피아니스트란 목표를 지켜나가는 미카 캐릭터와 공들여 찍은 그의 연주 장면이 인상적이다.
[리뷰] 대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히사이시 조의 섬세한 음악, <사일런트 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