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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순정복서'

국산 돼지 삼겹살 한근 값이면 앞다리는 두근, 뒷다리는 세근을 살 수 있다. 나는 이를 ‘근의 공식’이라 부르며 고기가 당기는 날엔 중간값인 앞다리에서 만족감을 구하곤 한다. 다소 궁상맞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드라마에서 돼지 앞다리를 구워 먹는 장면을 KBS2 드라마 <순정복서>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한우 갈비를 쏘겠다는 관장의 말에 환호했던 한국 최고의 밴텀급 복싱 챔피언 한아름(채원빈)과 동료 복서 박혜진(임영주)은 체육관 옥상에서 삼겹살도 아닌 앞다리를 사와 구우며 넉살 좋게 웃는다. 챔피언이 6개월마다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타이틀 방어전 비용 1억원을 마련하느라 후원사를 찾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관장과 대전료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어 각종 아르바이트를 겸하는 선수들의 조촐한 회식 자리는 비인기 종목의 어려운 처지를 함께하는 복싱인들의 유대를 짐작할 만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역경 속에서 도전하고 꿈꾸는 이들이 스포츠 드라마의 주인공일 법하지만 <순정복서>는 도망치고 쫓기는 선수와 에이전트가 메인 서사를 끌고 간다. 권투가 끔찍하게 싫었던 18살의 천재 복서 이권숙(김소혜)은 아름과의 타이틀매치에 불참하고, 의무방어전을 치르지 못한 아름은 타이틀을 반납하게 된다. 3년간 잠적해 이름도 바꾸고 유치원 교사로 살아가던 권숙에게 접근한 에이전트 김태영(이상엽)은 권숙이 복싱계에서 영원히 떠날 수 있는 픽스매치(조작경기)를 제안한다. 천재가 대중의 환호에서 완전히 잊히는 방법은 평범한 선수가 되는 길뿐. 어떤 의심도 사지 않게 패배하는 연습이 순조로울 리 없고, 최선을 다해 지는 방법을 논의하는 희한한 에이전트는 권숙에게 막다른 코너의 바깥을 보여주고 끝의 다음으로 데리고 간다. 21살의 권숙은 자신이 망친, 링을 지키는 선수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배우고 “너는 복서가 아니”라는 아름의 말에 작은 불씨를 다시 지폈다.

CHECK POINT

배우가 극 중에서 운동선수처럼 보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잠시 생각한다. 실제 선수들이 대중 인터뷰에서 드러내는 어색한 시선을 카피하면 우스꽝스러워지고, 너무 노련하게 말해도 실감이 떨어질 터. 현 챔피언 한아름 역의 채원빈이 “노력은 너무, 자주, 배신합니다. 그걸 알고도 포기하지 않고 링을 지키는 것 그게 저의 재능입니다”라고 했던 인터뷰 장면은 여러 번 돌려볼 정도로 감탄을 자아냈다. ‘너무’와 ‘자주’를 말하며 옅게 몰아쉬는 숨에 실리는 담담함과 건조함은 정말로 노력형 선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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