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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즘>
2001-05-08

시사실/엑소시즘

Story

마야(위노나 라이더)는 어린 시절 악령에 씌었던 고통스런 기억이 있다. 당시 엑소시즘 의식을 집전했던 라렉스 신부(존 허트)는 일가족을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수학 교수 버드슨을 구원하자며 마야를 찾아온다. 엑소시즘 의식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마야는 버드슨이 써놓은 숫자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한다. 그 내용은 ‘피터 켈슨’(벤 채플린)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름. 마야는 피터 켈슨이 사탄의 타깃임을 알고 그에게 찾아가 경고하지만,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Review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구리 동상처럼 단단한 몸뚱이를 내던져 사탄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했을 때, 이제 안심이다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제아무리 슈퍼히어로가 희생을 자청했어도 선과 악, 신과 사탄의 대결을 마무리지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엑소시스트>가 23년 만에 디렉터스컷으로 재개봉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지난해 미국에서는 멕 라이언과 위노나 라이더가 의기투합해 또다른 사탄영화 <엑소시즘>을 만들었다. 그러나 <엑소시즘>은 ‘웬만해선’ 새로울 것 없는 사탄이야기를, 개성없이 변주하고 안일하게 반복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제작자 멕 라이언도 주연배우 위노나 라이더도 그들의 해사하고 청량한 이미지를 벗어던지려는 욕심만 먼저 앞세운 것은 아닌지, 슬쩍 의심이 드는 것이다.

<엑소시즘>은 과거 악령에 씌었던 여인이, 사탄의 지배를 받을 운명에 처한 남자를 구원하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따라잡고 있다. 그러나 결론으로 치닫는 길은,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입체적인 조명도, 별다른 긴장감도 없이 밋밋하게 흘러간다. 수년 전 악령을 퇴치해준 신부는 사경을 헤매고, 사탄의 타깃이 될 남자는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마야의 싸움은 외롭고 절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신변에 일어나는 기이한 징후들로 인해 마야를 믿고 따르게 되는 피터도 극도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내면 심리는 잘 배어나오지 않고, 둘의 관계에도 불필요한 로맨틱무드가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다. ‘선과 악은 환상’이며 ‘사탄 같은 건 없고 악의적인 나르시시즘이 있을 뿐’이라는 믿음을 설파하던 일류 작가, 맨해튼의 여피족이자 무신론자인 남자의 육체에 사탄이 깃들게 된다는 설정, 충격적인 반전일 수 있는 그의 정체도 영화 초반에 너무 일찍 드러냄으로써, 영화는 스릴러로서의 미덕을 진작에 포기하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오스카 촬영 부문에서 2년 연속 수상한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의 연출 데뷔작. 감독은 청색과 갈색톤의 화면 속에서, 빗물에 젖은 도시의 암울하고 불길한 이미지와 닫힌 공간에서의 폐소공포를 잘 살려내고 있다. 벽과 바닥에서 핏물이 배어나오거나, 미로 속을 헤매는 환상 등도 제법 공포스럽게 연출해내는 등 일류 촬영감독다운 세련된 비주얼을 선보인다.

박은영 기자 cineb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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