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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F 2호 [인터뷰] ‘길 건너에서 만나요’ 정해지 감독, 차별을 가로지를 용기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3-10-21

송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우연히 만난 지현과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자신이 임대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지현의 어머니와 친구들로부터 차별을 받는다. 전작 <수라>로 제44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졸업작품 특별상을, 같은 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에서 본상-우수상을 수상한 정해지 감독이 신작 단편 애니메이션 <길 건너에서 만나요>와 함께 BIAF를 찾았다. 그는 더 예리해진 시선으로 현실을 파고들면서, 아이들에게까지 가난의 죄의식을 지운 사회에게 과연 이것이 최선인지 되묻는다.

-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표현하는 방식이 무척 현실적이다.

= 실제 나의 동네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평생 임대 아파트와 브랜드 아파트가 마주보고 있는데 이를 기점으로 학교도 나뉘어져 있다. 당시에 학교 선생님들이 어느 아파트에 거주하느냐로 차별을 많이 하셨다. 중학생 때 사춘기를 겪었는데, 내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니 ‘왜 넌 저런 애들이랑 노느냐’며 나무라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우정에 조건을 거는구나 싶어 충격적이었다. 민감한 주제이긴 하지만 이에 관해 한 번은 다뤄보고 싶었다. 3년 전 스토리를 쓰기 시작할 때는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게 연출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송이에게 마음이 갔고 결국 송이에게 비중이 실리게 됐다.

- 아파트라는 공간, 임대아파트와 브랜드 아파트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다. 추가적으로 자료조사도 진행했나.

=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공간에 익숙해진 상태였고, 임대아파트와 브랜드 아파트의 사진, 영상을 촬영해 작업 시 참고했다.

- 작업하며 새롭게 시도한 부분이 있나. 전작과 비교해 그림체가 달라졌다.

= 본래 여백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아파트라는 공간이 나오고, 또 이를 대비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밀도가 올라가더라. 아파트에 공간감을 더 주고 싶어서 3D를 접목해 작업하기도 했다. 처음엔 배경 묘사에 힘을 싣다가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조심스러워 점차 송이와 지현의 관계에 집중하게 됐다.

- 지현과 송이 상황의 대비가 명확하다. 송이는 블루, 지현은 핑크로 주요색도 다르다.

= 핑크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선호하는 컬러이지 않나. 지현이는 송이가 선망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핑크색 옷을 많이 입혔다. 상대적으로 송이에게는 어둡고 푸른 계열의 톤을 많이 썼다. 자세히 보면 송이는 커서도 입을 수 있도록 옷의 소매가 손등 위로 길게 내려오는데 지현이는 소매가 손목에 딱딱 맞는다. 그런 디테일을 표현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 주거지로 인한 차별을 살갗으로 느끼면서도 송이는 지현과 놀 때, 혹은 지현이가 사는 브랜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때 설레고 기뻐한다. 그런 감정이 동화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실제로 예전에 브랜드 아파트에 살던 친구 집에 놀러갔던 나의 경험과 감정이 일부 반영된 연출이다. 송이의 나이를 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설정했는데, 어린이는 그런 감정을 더 동화적으로 느낄 것 같았다. 작업하면서 논문을 많이 찾아봤는데 빈곤 아동들은 가난이 자기 가족의 잘못이라 여겨 자존감이 결여돼있다고 하더라. 빈부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차별을 느껴야 한다는 게 너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연출할 때 의도적으로 어린이 관객의 시선을 고려했다. 그들의 눈에도 이건 옳지 않은 일임이 직접적으로 전달됐으면 했다.

-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에게 배척받을 때 송이의 몸 주위로 물방울 형태의 막이 생긴다. 일종의 방어기제였을까.

= 그런 의미도 있다. 예전에 너무 부끄럽거나 크게 충격을 받을 때 순간적으로 몸이 무거워지고 귀가 먹먹해지면서 삐 소리가 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송이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해 그렇게 표현했다.

- 어른에 관한 묘사는 많지 않다. 만약 송이에게 용기를 줄 보호자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심 송이가 혼자서도 꿋꿋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후반부의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송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의 신호등은 전부 초록불이다. 말하자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상황인데도 송이 혼자 주저하며 건너가질 못했던 거다. 쉽지 않은 걸 알면서도, 자기 환경 때문에 겁나서 건너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가서 자유롭게 친구들이랑 놀길 바랐다. 그런 마음이 반영돼있다.

-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에 진학했고, 현재 동대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가는 중이다. 처음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 중학교 3학년 때 사고뭉치였다. 와중에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하니까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께 미술학원에 보내보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그걸 계기로 만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왕 하는 거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재수까지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 막상 학교에 가니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았고, 내가 뭘 잘하고 뭘 하면 좋을지 몰라서 3학년까지 방황했다. 졸업할 때가 돼서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싶었고, 그렇게 만든 게 <수라>였다. 그때야 비로소 눈이 뜨인 기분이 들었다.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맞구나. 그 뒤로 애니메이션 작업에 애착이 생겼다. 덕분에 <길 건너에서 만나요>는 즐기면서 만들 수 있었다.

- 전작 <수라>는 고등학생의 임신·낙태 문제를 다룬다. 평소에도 사회적 이슈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편인가.

= 사실 그렇게까지 날을 세우고 보는 편은 아닌데, 내가 ENFP다. (웃음) ENFP의 특징은 타인과 외부적 상황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회 문제를 계속 눈여겨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주제를 골랐다기보다 그간 해온 작업들을 보며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들, 그리고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사회문제에 관한 것이라는 걸 깨달은 편이다. <수라>와 <길 건너에서 만나요> 모두 질타를 받을 수 있는 주제다. <수라>에 관해서도 인터넷상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진 걸 봤다. 그렇게 영화 밖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좋다. 앞으로도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떤가요?’라고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다.

- 또 어떤 질문을 건네고 싶나.

= 주거 문제를 다뤄보려 한다. 요즘 집을 사기 위해 너무 많은 기회비용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현실을 작품에 반영할 예정이다. 소스는 생각해놨고 시나리오 작업만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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