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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2022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사회자 공민정, “사랑의 온갖 모양처럼”
김소미 2022-11-30

2009년 김한결 감독(<가장 보통의 연애>)의 단편 <구경>으로 처음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공민정은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총 55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장·단편, 단역에서 주연까지를 가로지르며 부지런히 활동한 숫자만 놓고 보면 이제 제법 노련한 표정의 배우가 연상되지만 공민정은 여전히 “아직 제대로 갖춘 것 없이 이제 막 시작한 느낌”이라고 차근히 말한다. 그건 과한 겸손이라기보다 연기에 대한 자신의 떳떳함과 제대로 된 쓸모를 고민하는 가장 공민정다운 발상이다. 그렇게 <이장> <희수> <파로호> 등 인상적인 독립영화를 거쳐 연기의 근육을 기른 그는, <82년생 김지영> <연애 빠진 로맨스>처럼 개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중저예산 상업영화들과 입소문 난 드라마들인 <갯마을 차차차> <작은 아씨들>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주연한 <이어지는 땅>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서독제에 초청됐다. 데뷔작을 만든 조희영 감독과는 앞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단편 <주인들>에서도 함께했는데, 장편영화까지 의기투합하게 된 과정은 어떠했나.

=조희영 감독과는 꽤 오래된 인연이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 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됐고, <주인들> <이어지는 땅>을 모두 함께한 정회린 배우와도 사석에서 처음으로 셋이 함께 만나 친해졌다. <주인들>팀이 전주에 머무를 때 우연히 감독과 촬영감독이 여행 겸 영국에서 영화를 하나 찍어보자고 의기투합했고, 마침 근처에서 혼맥하다가 감독 생각이 나 전화를 건 내가 ‘나도 영국에 친구가 있다’면서 같이 가겠다고 했다. (웃음) 이후 조희영 감독이 빠르게 써내려간 시나리오가 너무나 훌륭했다. 프로덕션 인원은 스탭 3명, 런던과 이탈리아의 현지 스탭 겸 친구 2명 정도가 전부였다. 스탭, 배우 구분할 것 없이 다 함께 장비를 들고 이동하는 등 모두가 제 일처럼 뛰어들어 일했기에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론 충만했다. 작업이 잘 나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는 관계 속에서 작업했다. 런던, 이탈리아를 합쳐 11일 정도 있었는데 딱 하루를 제외하곤 하루 종일 정신없이 걷고 찍었다. 올 한해의 기억 중 가장 꿈같은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

-<이어지는 땅>은 런던 유학생 호림이 길에서 캠코더를 주운 이후 우연히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겪는 일들을 담았다. <주인들>에선 버려진 가방을 주운 이후 해프닝을 겪는데, <이어지는 땅>에선 캠코더를 주워서 일이 생긴다. (웃음)

=확실히 조희영 감독만의 세계가 있달까. 두 작품 모두 현실과 꿈의 경계,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소유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다. <이어지는 땅>은 편의상 1부, 2부라고 구분해서 볼 수도 있을 텐데, 양쪽 등장인물이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으며, 한 사람의 과거나 미래일 수도 있다. 관객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

-서독제와의 인연은 언제가 처음인가.

=첫 서독제 경험은 김인선 감독(<어른도감>)의 단편 <아빠의 맛>(2014) 덕분이었다. 이후 여러 장·단편으로 초청받아 내겐 서독제가 가족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폐막식 사회를 제안받았을 때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고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해엔 개막작 <스프린터>, 그리고 새로운 선택 부문의 <희수>의 배우로 영화제를 찾았다.

=특히 <희수>는 개인적으로 뜻깊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어쩌다 보니 데뷔 초에 주로 세고 강한 이미지의 역할을 제안받곤 했다. 본연의 상태보다 더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내 안의 숨겨진 강한 면모를 찾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 반면 <희수>는 무언가 일부러 만들어내지 않고 가장 나다운 상태로 몰입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둘의 성격은 아주 다르지만, <갯마을 차차차> 속 표미선도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나오는 가장 편안한 내 모습을 꺼내어 썼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천변’이 가장 의지하는 생활형 검사 나예진을, <작은 아씨들>에서 자수성가한 정란회 키드이자 정계 유착형 기자 장마리를 맡으면서 올해는 드라마로도 주목받았다. 특히 <작은 아씨들>의 장마리는 호감형과는 거리가 먼 안타고니스트임에도 독한 대사들을 정연하다 못해 속시원히 소화하는 배우의 연기력 덕분에 의외의 화제성도 견인했는데.

=운이 따랐다. <갯마을 차차차>에선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모습이었는데, 그 뒤로 오히려 검사, 기자 등 직업적 면모가 부각되는 역할을 연이어 제안받아 재미있기도 하고 내심 의아했다. 감독님들 말씀을 들어보니 공통적으로 내가 출연한 여러 독립영화들을 보고 다양한 면모를 발견했다고 하시더라. 김희원 감독님은 내가 웃을 때와 무표정 사이의 간극이 크다면서, 그중 특히 못되고 서늘한 얼굴을 끌어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좋은 자극이 되는 코멘트였다.

-독립영화로 시작한 배우의 일, 앞으로는 어떻게 확장해나가고 싶나.

=학창 시절에 연극을 보면 가슴이 뛰는 아이였지만 내성적이고 눈치도 많이 봐서 어디 가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도 못했다. 그런 욕망이 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오히려 손사래치거나 아닌 척할 정도로 약간은 억눌려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다 대학을 연기 전공으로 진학한 이후로는 ‘나는 어차피 계속 배우 할 거니까, 나이 들어 좋은 배우가 되려면 젊을 때 최대한 경험을 많이 해야 해’ 하고 내심 배짱도 부릴 수 있게 됐다. 부모님은 내가 전과할 거라 믿고 계셨지만. (웃음) 학교에 엄청 부지런히 나갔는데 정작 강의는 잘 안 들었고 대신 연애를 열심히 했다. 그러니 기회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사랑 이야기 속에 푹 들어가보고 싶다. 사랑은 온갖 감정의 상태와 모양을 다 품고 있는 행위 아닌가. 배우로서 그 스펙트럼을 온전히 소화해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떳떳하게 연기하고 싶다. 내가 행복하려면 내 마음을 충분히 쓰고 진심으로 이해하면서 연기해야 한다. 늘 100%일 순 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나의 언어로 말하자고 다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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