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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나의 의사 선생님
윤덕원(가수) 2023-01-12

연말 공연이 코앞으로 닥쳐왔다. 그리고 동시에 한파가 닥쳐오는 바람에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목이 붓고 몸살감기가 온 것이다. 오랜만에 병원에 갈 때가 되었다. 조금 참고 기다려보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타이밍임을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러다 더 아프게 되면 공연 때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직전에 먹는 약들은 그저 통증을 완화시키는 정도일 뿐이다.

이럴 때면 나는 나름 나의 주치의라고 할 만한 조환석내과에 간다. 이곳은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명망 높은 내과의원으로, 원장 선생님이 랩(?)을 하시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주로 감기와 연관된 장염 증상에 섭취하면 안되는 음식과 먹어도 되는 음식들을 알려주시는데, 그 내용이 길고 복잡하지만 리듬감이 있어 랩처럼 들린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는데, 수년간 방문하면서 그 내용을 거의 외우게 되어 몸 관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것으로 화제가 되어 TV에 출연하신 적도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무척 당황했지만….

하지만 그런 얄팍한 이유로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진료를 받아 선생님이 나의 증상이나 몸 상태를 잘 알고 계시기에 언제나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나의 주치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를 해주시기도 하고, 내가 자주 겪는 증상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신다. 언젠가 평소에는 없던 증상의 신호가 왔을 때는 서둘러 검진을 받아보기를 권하시기도 했다.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다. 걱정한 대로라면 난리가 났겠지만.

지금은 내가 이사를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기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오랜만에 방문한 병원에는 겨울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꽤 오래 대기하고 나서 선생님을 뵀다. 반가웠지만 진료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사이에 안부를 나누고, 증상을 확인하고 혹시 모를 경우들을 확인해주시는 모습이 든든했다. 언제나 해주시는 촉진도 익숙하고 나의 증상도 역시 익숙했다. 요즘 유행하는 감기의 동향도 알려주신다. 오늘은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꽤나 연차가 있는 환자로서 그 정도는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선생님의 체력을 보존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여겨진다.

생각해보면 이곳에 다닌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선생님이 혹시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윤덕원씨 아니냐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으로 라디오 고정 게스트 출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알고보니 선생님은 정선희 누나의 오랜 팬이셨다. 유쾌하면서도 다정한 말씀과 적절하고 효과적인 처방에 나는 선생님의 팬이 되었고, 오랜 시간 병원을 다니며 큰 도움을 받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때 수액을 맞거나 강한 약을 써서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던 적도 있다.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 잔병치레가 적은 편이다. 성대도 조금은 강해진 것 같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 예전처럼 걸어서 가던 때와 다르게 차를 타고 가야 해서 걱정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급하게 선생님을 찾는 일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래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오래 음악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무던하게 해나갈 수 있던 것에는 오랜 시간 도와주고 계신 분들의 힘이 있었구나 생각을 해본다. 길게는 10년 이상을, 짧게도 수년간 늘 의지할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감기> - 홍갑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감기인가 싶어

뒤척이다 옆으로 누웠지

빼꼼한 발가락 사이로 들어왔겠구나 감기야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이야

그랬지 내가 너무나 튼튼했었지

좀만 머물다 가렴

긴 옷을 챙겨 입고 나갔지 뚜벅뚜벅 걸었지

약국은 스치고 지나갔지 밥 먹으면 나아지겠지

무엇을 먹을까 감기야 무엇을 마실래 어린 감기야

그래 넌 물어보는 걸 싫어했었지 날 닮아 나에게 왔구나

이제 자야겠어 감기야 누워 있고 싶어 피곤한 감기야

내일은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데 다 할 수 있을까

쌀쌀한 바람 가을을 넘어 코끝을 스쳐가네

서랍을 열어 두터운 옷을 꺼내 놔야지

오랜만이네 너도

쌀쌀한 바람 가을을 넘어

코끝을 스쳐가네

서랍을 열어

두터운 옷을 꺼내 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