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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양자경의 글로리
이주현 2023-03-17

영화는 제목 따라간다더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가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의 모든(에브리씽) 상을 휩쓸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까지 7관왕. 이처럼 주요 상이 한 작품에 몰리는(올 앳 원스) 경우는 극히 드물다. 스포트라이트가 한 작품에 쏠릴 경우 자칫 시상식이 싱거워질 수도 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양자경조너선 케 콴의 수상 소감을 비롯해, 수상 직후 여기서도 저기서도(에브리웨어) <에에올>의 오스카 7관왕이 회자되었다. 물론 <에에올>이 그렇게 대단한 영화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작품상 후보작 중 <에에올>보다 더 재밌게 봤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따로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오스카의 결과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수상 결과만큼이나 시상식의 흥행을 좌우하는 것이 수상 소감이라면, <에에올>팀의 수상 소감엔 이러한 수상 결과가 온당하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에에올> 속 다중우주에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이 아니라 홍콩의 유명 액션배우로 성공한 에블린도 있는데, 지난 3월13일의 오스카 시상식은 영화 속 다중우주의 연장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에 아름답게 방점을 찍은 건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이었다. 무대에 오른 양자경은 왼손에 트로피를 들고 오른손으론 주먹을 말아쥔 채 말했다. “오늘밤 이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나와 닮은 어린 친구들에게, 나의 수상이 희망과 가능성의 불빛이 되길 바랍니다. 꿈을 크게 가져요. 꿈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여성 여러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믿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수상 소감 대필 작가를 따로 고용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감동적인 소감이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나이 든 여성배우들이 밀려나고 잊히고 사라지는 상황을 목격(혹은 경험)한 사람이 건네는 진심의 응원 같아서 더 가슴에 남는다. “난민 캠프에서 시작해 오스카 무대에까지 오른” 조너선 케 콴 역시 꿈을 포기하지 않은 자의 뜨거운 눈물과 기쁨의 웃음이 교차하는 영광된 순간을 연출하며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한편 한국에선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영광 없는 복수의 세계가 여전히 화제다. 너그러운 용서와 무자비한 복수가 아닌, 장대하고 치밀하고 서늘한 복수극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 복수의 끝에서 만난 질문은 무엇인지를 이번호에 긴 지면을 할애해 담았다. <더 글로리>는 기성배우, 신인배우 할 것 없이 배우들이 돋보인 작품이기도 한데 먼저 문동은(송혜교)을 괴롭히는 가해자 역을 연기한 세 배우 박성훈, 김히어라, 차주영을 만났다. 작중에서 수도 없이 이름이 불린 연진 역의 임지연 배우와도 곧 만날 예정이다(나 지금 되게 신나, 연진아. 우리 다음주에 꼭 보자, 박연진!). 더불어 송혜교와 작업하면 최소 세번은 반하거나 감동하게 된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도 실었다. 영화의 힘, 이야기의 힘, 배우의 힘을 느낀 한주가 이렇게 또 정신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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